[Opinion] 동경 이야기(1953) [영화]

글 입력 2021.03.18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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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가 지나다니고 공장에서는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기존의 가족 공동체로 굳어진 이데올로기는 조금씩 흔들린다.

 

기존의 가치 계승과 지혜를 주는 기성세대로서의 위치는 점차 사라진다. 서로 도움을 받고 살아가는 가족 공동체로서의 조건이 부실해지자 근대의 가족들은 흔들리고 그 규모는 축소되기 시작한다. 더 이상 합리적이지 않을지도 모르는 가족 공동체는 1950년대 당시 산업화의 중심이었던 일본의 수도, 동경에서 흔들린다.

 

영화 <동경 이야기>는 노부부가 자식들을 보기 위해 도쿄로 올라왔다가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는 간단한 서사를 통해 산업화에 따른 근대의 가족 공동체의 질서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노부부의 도쿄 방문에 자식들은 대접하려 노력하지만 각자 삶에 바쁜 나머지 소홀해진다. 장남인 코이치는 환자로 인해 노부부의 도쿄 구경을 미루고 장녀인 시게는 사실상 미용원 강습회를 이유로 노부부에게 아타미로 온천여행을 제안한다.

 

노부부의 도쿄 방문이 코이치와 시게를 번거롭게 만들고 이는 공간의 불편함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도쿄의 집은 여유롭지 않은 공간이고 노부부를 맞기 위해서는 있던 짐들을 미리 치우고 비워둬야 한다. 노부부를 위해 코이치의 아들, 미노루의 책상이 베란다로 옮겨지는 것을 보고 툴툴대던 미노루가 아빠의 진료실에서 숙제하는 모습은 노부부의 방문으로 인해 그들의 공간이 침해되어 보인다.

 

시게의 공간에서 또한 마찬가지다. 자식들이 그리워져 예정보다 빨리 아타미에서 시게의 집으로 돌아온 노부부는 시게의 일정으로 인해 그 공간에 머물지 못하게 되고 잘 곳을 찾아 떠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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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가 깊지 않은 세대 사이의 소통 또한 원활할 리 없다. 손자들은 노부부가 크게 반갑지 않고 노부부에게 다가가지 않는다. 커서 무엇이 되고 싶냐는 할머니 토미의 질문에도 손자는 듣지 못한 듯 대답하지 못한다.

 

이처럼 소통의 어려움은 노부부와 자식들 간에서도 일어난다. 코이치와 시게는 계속해서 노부부가 마음에 들어 할 것이라 짐작하여 행동하는데 이는 사실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려 하는 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 합리성을 따른 판단에 더 가까워 보인다.

 

노부부의 온천여행도, 시게의 남편이 노부부를 생각해오며 사온 케이크도 모두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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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에 따른 변화는 가족 구성원 역할의 변화도 동반했다. 여성들은 어머니의 존재로서만 자리하는 것에서 벗어나 노동에 참여하고 직장과 가정을 병행한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속의 할머니 토미의 죽음은 그 전 세대가 저무는 것을 은유하는 듯하다.

 

할아버지의 죽음이 아닌 할머니 죽음인 이유는 이것에 있다. 기존의 여성, 어머니로서의 여성의 존재가 토미라면 영화 속 노리코, 시게를 비롯한 여성들은 어머니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가족의 ‘돌봄’이 중심이었던 여성의 자리는 할머니의 죽음을 통해 전복됨을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는 가족 질서의 무너짐에 비탄에 빠지지도 분노하지도 않으며 바라보려고 한다. 토미의 장례를 마치고 코이치, 시게, 케이조 모두 각자의 이유로 빨리 도시로 돌아가려 하고 그런 언니 오빠에 대해 쿄코는 투정을 부린다.

 

노리코는 시간은 흐르기 마련이라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것을 쿄코에게 알려주는데, 기존의 질서는 다음 질서를 위해서 계속 전복당할 것이며 그것을 똑바로 바라보는 이 영화는 그런 점에서 단순히 가족의 해체를 다루는 것을 넘어 그것의 원인이 되는 시간까지 끌어와 의미를 확장해낸다.

 

 

[김소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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