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타인의 인생영화 - 김 모씨의 어느 가족 [영화]

당신이 어떤 사람이든, 누군가와 함께할 수 있기에.
글 입력 2021.03.15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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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친구, 지인의 인생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기록합니다.

 

메신저로 나눈 대화를 기반으로 합니다.

문장 교정, 매끄럽게 다듬기 용으로 수정을 거친 후

문맥을 살리기 위해 편집된 내용입니다.

 

 

*

아주 많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영화를 사랑하고 애정하는 20대 김00입니다. 작게 마련한 씨네마룸에서 영화 보는 것을 삶의 낙으로 살고 있습니다.

 

 

인터뷰이로 섭외하는 과정 중에, 인생영화를 하나 뽑아달라고 부탁드렸죠. 그 과정에서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하신 걸로 알아요.

 

네 맞아요.


왜 그렇게 고민을 많이 하셨나요? 어떤 생각 때문에 인생 영화를 고르시는 게 힘들었는지 궁금합니다.

 

일단 좋아하는 영화가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딱 하나만을 고를 수가 없었어요.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인생영화란 인생관을 정립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영화라고 하는데, 사실 저는 영화 한 편이 제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경험 같은 것이 없어요. 딱 하나의 기적같은 작품! 이런 게 아니라 다양하고 많은 영화들이 제 삶의 곳곳에 스며들었기 때문에 그 중에서 하나를 꼽는다는 것이 저에겐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인생영화 후보였던 영화들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짤막하게 왜 후보였는지도 설명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인사이드 아웃 - 뇌 속에 감정들이 살아있다는 아이디어가 기발했다. 부정적으로 여겨지는 슬픔이라는 감정이 필요하다는 메시지가 좋았다.

원더 - 가끔은 정말 동화같은, 아름다운 이야기가 보고 싶을 때가 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영화 중 최고봉.

월플라워 - 원더와 같은 감독. 성장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영화. 트라우마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이 아름답다. 개인적으로 많은 위로가 된 작품.

 

신중한 고민 끝에 고르신 인생영화는 어떤 영화죠?

 

그래서 제가 고른 인생영화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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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족이 있다. 할머니 엄마 아빠 큰 딸 아들 막내딸. 사실 이렇게 타이틀을 붙이기도 이상한데, 어쨌든 딱 저런 연령대의 다섯명이 모여 산다. 사는 모습도 특이하다. 마트에서 물건을 슬쩍하기도 하고, 아이들은 학교도 다니지 않고. 가난하고 궁핍하지만, 한 데 모여서 사는 모습이 정답다.

 

 

왜 그 영화를 인생영화로 꼽으신 건가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저는 인생영화를 인생에 가장 큰 변화를 준 작품이라 정의하기로 했습니다.  저에게는 작품이라기 보다는 감독이 맞겠네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제 인생 영화 감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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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 1962년생.

일본을 대표하는 감독 중 하나.

대표작으로는 '걸어도 걸어도', '아무도 모른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필자가 제일 좋아하는 건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마냥 밝지는 않지만 적당히 산뜻하게 인생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진 출처 arthouse)

 

 

이 감독의 영화를 보고 처음으로 영화의 매력에 깊이 빠지게 되었고, 영화를 공부하고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과생이었던 저를 문과로, 지금의 길로 이끈 주범(? 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이자 원인이죠. 그런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바로 <어느 가족>이기에 저는 인생영화로 이 작품을 골랐습니다.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의 어떤 점이 그렇게 좋으셨어요?

 

우선 영화를 보다 보면, 설명하기 힘든 많고 다양한 감정들이 몰아치는 것을 느낍니다.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으며 영화에서 내 삶으로 관점이 변화되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 과정이 좋았던 것 같아요. 특히나 고레에다 감독 영화들은 무언가를 정의 내리려고, 답을 주려고 하지 않기에 저 스스로 고민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 좋았습니다.

 

감독이 다루는 삶과 죽음, 가족, 사회라는 주제는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지기도 하고요. 이런 주제는 정말 중요하지만 살아가면서 자주 잊어버리게 되니까요. 영화를 통해서 한 번 더 떠올려보는 거죠.

 

 

“어 말이 좀 어렵다.”

“옛날에는 걍 와 재밌다~~ 슬프다~~ 놀랍다~~ 화난다~~ 왜저래~~ 이랬다면. 처음으로 영화를 보면서 나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를 의식했던 것 같아.”

“감독이 영화에서 키워드로 삼은 것에 대해 네가 한 번 생각하게 된다는 얘기구나. 원더풀라이프에서 죽음 이야기를 할 때, 나는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생각을 시작한 것처럼.”

“맞아. 그리고 억지로 감정을 끌어올리려고 하지 않는 것도 좋았어. 메시지가 강하면 영화를 보는 내내 부담스러운 경우가 많은데, 고레에다 감독 영화는 그렇지 않아서 편하게 생각할 수 있었어.”

 

 

고레에다의 가족 영화 시리즈 중에 제일 좋아하는 영화라, 어느 가족을 인생영화로 꼽고 싶다고 하셨죠. 왜죠?

 

네. 전 고레에다 감독의 인간, 가족에 대한 따듯함과, 이와 더불어 (다큐멘터리를 했어서 그런가*) 사회를 바라보는 냉철한 시선을 좋아하는데 <어느 가족>은 이 모든 것들이 담겨 있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TV 다큐멘터리 연출을 맡다가 1995년 '환상의 빛'으로 영화 감독으로 데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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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바라보는 냉철한 시선이라, 이 영화에서 특히 두드러졌던 것 같아요. 같이 있는 장면은 그렇게 정다운데,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끔 좀 섬뜩해요.

 

맞아요. 각자가 처한 처절한 현실이 너무 드러나서 더 섬뜩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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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는 이 영화 제목을 너무 잘 지은 것 같아요. 어느. ‘어느’가 진짜 딱 들어맞는다고 영화를 보는 내내 생각했어요.

 

그거 아세요? 사실 일본 원제는 만비키 가족, 한국어로 하면 좀도둑 가족이에요. 한국에 오면서 어느 가족으로 바뀐 거죠.

 

아 들어봤던 것 같아요. 그러면 상희 씨는 둘 중에 어느 제목을 더 좋아하세요?

 

저도 어느 가족을 더 좋아합니다. 좀도둑 가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을 어느 가족이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라든가, 장면 있으세요? 좋아하는 이라는 표현이 한정적이라면 인상 깊은 인물이나 장면.

 

사실 꼽으라면 많이 꼽을 수 있어요. 유명한 불꽃놀이, 해변가(할머니의 '다들...고마웠어...'), 취조실 장면 등 너무 많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엄마 노부요와 막내딸 린의 목욕탕 씬을 가장 좋아해요. 둘이 팔 같은 곳에 있는 비슷한 상처를 맞대며 서로의 상처를 쓰다듬는데 그게 참 아름다워 보인다고 해야 하나. 위로는 이렇게 하는 거구나 했어요. 나중에 노부요가 린한테 사랑의 의미를 가르쳐주는 것*과도 연결되구요.

 

*린이 이 가족을 선택하고 처음에 왔을 때 입은 옷을 불태우면서, 사랑한다면 이렇게 안아주는 것이라고 노부요가 가르쳐주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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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장면.

.

 

영화를 정말 잘 기억하고 계시네요. 대체 몇 번이나 보신 거죠?

 

그렇게 많이 보지는 않았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본 건 한 4번 정도? 처음 개봉했을 때, 고레에다 감독 내한, 동생이랑, 혼자서. (개봉 당시 영화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처음과 끝은 정-말 많이 봤지만요.)

 

볼 때마다 보이는 게 조금씩 달랐나요? 저도 제일 좋아하는 영화를 볼 때면 이번엔 누구한테 이입이 되고, 그 다음엔 누구 사정이 조금 보이고. 조금씩 달라지더라구요.

 

그럼요. 저도 그랬어요.

 

어떻게 다르던가요?

 

처음에는 노부요가 제일 눈에 들어왔어요. 이 캐릭터를 연기한 안도 사쿠라 배우가 연기를 잘해서 저도 모르게 빨려 들어갔던 것 같아요. 그 다음으로는 아무래도 아이들, 쇼타와 린. 특히나 쇼타와 아버지의 관계에 이입이 됐죠. 키키 키린이 돌아가시고 난 이후에는 할머니가 더 잘 보이더라고요. '다들... 고마웠어...'라고 말하는 클로즈업샷에서는 처음 볼 땐 안 그랬는데 눈물이 막 나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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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시고, 이 영화로 인해 생각이 바뀌게 된 경우는 있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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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란 무엇인가’겠죠? 가족이란 꼭 혈연으로 이어져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함께 있어야만 가족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서로를 얼마나 이해하고 의지하는가. 그게 피보다 더 중요한 게 아닐까요?  어렵네요. 사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고민하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가족이라는 명목 하에 못할 짓을 하는 사람도 많으니.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영화인 것 같긴 해요. 남들은 이 사람들 보고 가족이 아니라는데, 그 사람들 사는 걸 지켜본 우리는 가족이 맞다고 말할 수 있잖아요.

 

아 맞아요. 좋네요. 그게 이 영화의 포인트죠. 우리도 역시 '가족'의 형태에 나름의 편견이 있을텐데, 그걸 부수고 이 가족을 가족이라 맞다고 말하게 되잖아요.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 영화의 가족을 왜 가족이라고 부를까요? 앞서 말씀하신 서로를 이해하고, 의지하기 때문에?

 

그렇죠. 가르쳐줄 건 도둑질밖에 없는 처참한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위하고 사랑하는 게 관찰자인 저에게도 느껴지니깐요.  "스스로 부모를 선택하는 게 더 강하다", "우리는 마음으로 이어져 있다"는 대사가 이 가족을 말해준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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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영화가 인생영화라고 표현되는 이유는 자기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이 영화가 당신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요? OO씨는 워낙 고레에다 영화를 좋아하시니까 이 영화에 한정짓기 어렵다면 고레에다 영화로 말씀하셔도 좋아요.

 

인간에 대한, 넓게 보면 삶에 대한 애정을 가지게 됐어요. 영화 속 참 다양한 사람들을 보면서, 죽음에 대해 고민해보면서, 내 삶을 돌아보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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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스스로가 참 불완전한 인간이라고 생각해요. 제 가족도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사실 속으로는 겉만큼 반지르르하지 않죠. 고레에다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가 다 약점을 지니고 있어요. 완벽한 인간은 없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가족을 이루고 상처와 불완전함을 보듬으면서 살아가는 것을 보는 것 자체로 저에게는 위로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이 세상의 돌연변이가 아니며 나같은 사람도 다른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면서 살아갈 수 있는 존재다 라는 걸 확인시켜주는 것 같아요.

 

약점을 지닌 사람이어도, 가족과 함께 할 수 있고, 더 나아가자면, 그래도 이 세상에서 누군가와 함께 살 수 있다는 가능성, 희망을 보셨군요.

 

네 맞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결국 고레에다 영화는 '혼자보단 함께 사는 삶'을 보여주고 있나 봐요.

 

네 저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감독이 인간성에 대한 깊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쵸, 아니면 허구한 날 도둑질을 하는데 그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봐야 하는가. 사람의 양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 같기도 하구요. 인간성이란, 행동 하나, 그 사람의 단편적인 부분으로만 판단하지 말라구요.

 

아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맞네.. 고레에다 멋져…! 다음 영화 빨리 만들어 주라.”

 

 

이 영화에 대해 코멘트를 남긴다면? *왓챠에 코멘트를 남긴다고 생각해주세요. 왓챠의 코멘트를 참고하고 오셔도 좋습니다, 만약 참고하신다면 어떤 코멘트를 참고하고 영감을 받았는지 알려주세요.

 

그렇게 가족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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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참고했어. 이 영화도 좋아.” 

 

 

**

 

개봉 당시에 친구와 본 영화였는데, 영화를 다시 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도둑질을 하고, 경찰에 잡혀가고, 다사다난한 걸 보면서 마음이 무거웠기 때문에. 이번 인터뷰를 준비하며 다시 봤는데 예상한만큼 힘들진 않았다.

 

고레에다 영화를 보고 위로를 받는다는 김OO의 말에 크게 공감했다. 그의 영화에 나오는 인물은 하나같이 뭔가 부족하다. 완전한 느낌은 아니다. 살짝 위태로운 것 같기도 하고. 마냥 인간성이 뛰어난 사람같지도 않고. 그래서 결국엔 어쨌든 저 사람도 사람이구나,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곁에 있는 서로를 위하기 때문에, 서로에게서 힘을 얻기 때문에 돈독하게 살아가는 것을 보면 나도 힘이 난다. 보고 있으면 나도 내 삶과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힘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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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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