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건강하고 평화롭게 고독한 생활을 즐기는 나는야, 명랑한 은둔자 [도서]

글 입력 2021.03.14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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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가? 나는 그랬다. 나는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믿었다. 대표적으로 내가 확신했던 것은 나는 고독한 환경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남과 시간을 보내기보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대체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코로나와 더불어 산지 1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자 나의 확신에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코로나의 시대가 오기 전 느끼지 못했던 ‘사람이 고프다’는 감정을 체감하며 이 세상을 혼자 외롭게 살아가기란 어려운 것이라는 당연한 진리를 뼈져리게 느꼈다. 고독에서 평온함을 느끼는 내향인에게도 타인과의 주기적인 만남은 중요했다.
 
그렇다면 고독은 왜 어쩔 땐 평화로운 선물처럼 여겨지고 또 어쩔 땐 나를 삼켜버릴 것 같은 외로움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이토록 감정의 층위가 달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보다 훨씬 일찍 내향인의 삶을 살다간 캐럴라인 냅은 고독의 양가적인 감정을 ‘고립’이라는 단어를 추가해서 설명했다.
 

내 경우, 가장 중요하나 과제는 고독과 고립의 경계선을 잘 유지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 둘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사회적 기술은 근육과도 같아서 위축될 수 있고, 내가 경험한 바로도 육체적 건강을 유지하는 것처럼 사람과의 접촉을 유지하려고 애쓸 필요가 있다. (…) 고독은 종종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배경으로 두고 즐길 때 가장 흡족하고 가장 유익하다. 적절한 균형을 지키지 못하면, 삶이 약간 비현실적인 것이 된다. (48p)
 
 
캐럴라인 냅의 에세이 책 『명랑한 은둔자』 속 한 구절이다. 『명랑한 은둔자』는 냅이 3, 40대에 썼던 에세이를 묶은 책이다. 냅은 어린 시절 내향인을 향한 나쁜 편견에 열등감에 시달리다가 고독과 고립의 균형이 중요함을 알게 되었고, 이내 자신은 ‘명랑한 은둔자’라며 혼자만의 건강한 생활을 긍정하며 나아가는 방향으로 에세이를 썼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반대로 명랑한 은둔자의 생활을 즐기고 있었고, 고독 속으로 고립이 파고들고 있다는 점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냅의 통찰에 눈이 번쩍 뜨이는 격이었다. 어쨌거나 나는 소수의 지인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자주 만나지 못한다는 점에서 요즘도 고독과 고립의 아슬한 줄타기에서 생활하는 셈이다.
 
내향인이라는 점 이외에도 냅과 비슷하다는 점이 많았다. 김소연 시인의 추천사를 빌리자면 아마 꽤 많은 독자가 냅의 글에 깊이 공감하며 읽었을 듯싶다. “캐럴라인은 내 친구 같고 내 자신 같다. 아마 당신도 그럴 것 같다.”
 
여기, 냅이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섬세한 시선으로 쓴 에세이들이 있다. 에세이들은 내향인의 삶을 조명하는 ‘홀로’, 타인과의 관계를 생각하는 ‘함께’, 상실을 감각하는 ‘떠나보냄’, 세상을 바라보는 ‘바깥’, 부유하는 생각들을 써 내려간 ‘안’으로 분류되어 있다. 책을 다 읽고 내가 가장 감명 깊었던 에세이를 재분류해보니 ‘고독’, ‘우정’, ‘가족’, ‘중독’, ‘변화’ 등의 키워드로 정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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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 검사에서 I(내향성)의 지표가 높게 나온 사람은 홀로 사는 생활의 즐거움을 담은 냅의 글에 상당한 공감을 표하며 읽었으리라 감히 추측한다. 글 속에 담긴 냅의 성향을 떠올려보자면, 냅의 내향성 지표는 상당히 높은 수준에 있으리라 짐작된다. 그가 묘사하는 자신은 수줍음이 많고 이웃과의 저녁 약속에도 몹시 긴장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냅도 고독과 고립을 분리해서 볼 것을 강조한다. 고독이 얼마나 쉽게 고립이 되어버리는지, 고독의 즐거움과 고립의 절망감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말이다. 냅의 글을 읽기 전까지 나는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우울감에 매번 당황했었다. 혼자 있을 때 충만하다고 느끼다가도 갑자기 지독한 외로움에 휩싸일 때 단순히 스스로가 변덕이 심한 것이라 여겼다.
 
또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믿었으므로 홀로 있을 때 드는 외로운 감정은 나답지 않다고 무시했다. 고독함을 좋아하는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감정이라고 여겼다. 그것은 냅이 경고한 고립으로 빠지는 길이었다.
 
과잉된 자의식은 때론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게 하는 지긋지긋한 구석이 있다. 때로는 내가 혼자 있을 때조차 어떤 이미지이고자 스스로를 포장하는 느낌을 불어넣는다. 그래서인지 유독 포장 없는 냅의 솔직한 글이 좋았다. 나라면 숨기고 싶을 것 같은 자신의 약한 모습과 거기에서 변화하는 과정에 대해서 쓴 냅이 멋졌다. 꾸밈없이 자신을 보여주는 글쓰기를 하는 그가 부러웠다.
 

 

이제 나는 어머니가 외부적인 문제들로 투덜거렸던 것은 자신에게 더 깊은 불안을 안기는 문제들을-자신의 건강을, 변함없는 슬픔을, 두려움과 회한을-투덜거리기에는, 특히 딸에게 투덜거리기에는, 너무 내밀하고 자존심 강한 사람이라서였음을 안다. 어느 정도는 나도 어머니의 목소리에서 그 밑에 깔린 불안을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내가 그 반응로 불쑥 짜증과 죄책감을 느끼고 했던 것은, 아마 어머니의 괴로움을 직면한 나 자신이 무능하고 혼란스럽게 여겨져서였을 것이다. 어머니의 불안에 괜히 내가 불편한 것, 어머니를 도와야 한다고 느끼지만 방법을 모르는 데 대한 답답함, 어머니의 불안이 가라앉고 모든 것이 저절로 괜찮아지기를 바라는 (아마도 유아적인) 마음. (148p)

 

 
타인과의 관계, 특히 가족과의 관계에 있어서 드러나는 솔직한 통찰 역시 마찬가지다. 희생과 배려가 미덕이라고 여겨지는 가족관계에서 그 이외의 감정은 부유하는 죄책감으로 남기 일쑤다. 아무리 가족이라 해도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타인인 이상, 매번 긍정적인 감정만을 가질 수는 없는 법. 냅은 감춰두었던 감정을 해부해 섬세한 문장으로 재탄생시킨다. 잊혔다고 생각했던 감정을 에세이를 통해 마음으로 느끼기에 냅의 글이 자신의 일기 같다고 느껴진다는 독자가 유독 많은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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냅의 글에서 가장 주목하고 싶었던 부분은 중독 상태에서 건강 상태로의 ‘변화’였다. 알코올 의존증과 섭식장애 등 일평생 그를 괴롭혔던 마음의 강박에서 벗어나 건강한 상태로의 변화. 냅은 타인과의 소통을 위해서, 두려움을 무디게 하기 위해서, 외로움과 분노와 같은 감정을 없애기 위해서, 궁극적으로는 존재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 굶고 마셨다.
 

어떤 중독이든, 어느 시점이 되면 당신이 감정을 통제하기 위해서 행동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행동이 당신을 통제하게 된다. (162p)
 

 

굶는 행동과 술을 마시는 행동은 일시적으로 자신을 잘 통제하고 있다는 만족감을 주었지만 결국 그것은 주객전도되어 삶이 행동에 수렁처럼 빨려 들어갔다. 나는 술을 잘 이용한다면 인간관계의 윤활유나 삶 속의 활력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하지만 냅은 중독의 끝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음주 행위에 대해 매우 단호하게 부정적이다. 냅은 술이 ‘사람의 성장을 지체’시킨다고 말하며 술의 힘을 빌려 현실을 대신 살고자 하는 생각을 경계한다.
 
냅처럼 알코올 중독이 심해 치료가 필요한 상태까진 아니지만 최근 습관처럼 맥주캔을 땄던 나의 모습에 뜨끔했다. 맥주캔을 딸 때의 그 청량감이 좋아서, 들뜨는 기분을 만들고 싶어서 매일매일 술을 깠다. 냅이 내 옆에 있었더라면 인상을 찌푸리며 손목을 홱 낚아챘을지도 모르겠다. 마음 한구석이 허한 까닭에 자꾸만 술을 마신 것 같아, 냅의 조언에 술잔을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책을 덮으며 나는 20대이지만 이미 많은 것을 냅과 공유하고 있다고 느꼈다. 3,40대의 냅이 썼던 에세이는 아마 나의 시간이 쌓여감에 따라 감상이 여러 겹 덧대어질 것이다. 나와 비슷한 존재가 썼던 글을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두고두고 꺼내 읽을 수 있다는 건 무척 행운이다.
 
무언가에 강박적으로 집착하고 있거나, 수줍음에 대한 편견 때문에 힘들거나, 고독하고 싶지만 고립되고 싶지는 않은 사람이라면 냅의 이야기를 펼쳐보길 바란다. 나와 같은 사람이 삶 속에서 분투하고 건강한 삶의 방향으로 변화해간 용기 있는 이야기는 나의 삶을 바꿀 잔잔한 바람이 되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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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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