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떠도는 마음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영화 - 정말 먼 곳

'정말 먼 곳'으로 도망치는 우리 모두를 위해.
글 입력 2021.03.11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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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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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과 같은 평범함을 원하는 마음이, 욕심이 되고 마는 이들은 현실과 떨어진, 아득히 먼 곳을 꿈꿀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은 같지만, 현실은 버겁기 때문이죠. 영화 <정말 먼 곳>은 그런 거리감을 늘 마음 한편에 지닌 채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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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강길영)

 

 

주인공 진우(강길영)는 동성애자로, 서울을 떠나 그곳으로부터 말 그대로 정말 먼 곳인 강원도 화천에 정착해 살고 있습니다.

 

한적한 목장이 있고 자신을 엄마라 부르는 조카 설(김시하)을 딸처럼 키우며, 자신의 정체성을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온전한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그곳은 진우의 안식처이자 그를 숨죽이게 만들었던 현실은 아직 침범하지 않은 곳입니다.

 

하지만 그런 평온한 일상은 진우의 오랜 연인이자 시인 현민(홍경)의 방문을 시작으로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정말 먼 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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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를 유치원에 보내지 않는 이유로, 아직은 목장에서 뛰노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하는 진우에게 현민은 “네가 두려운 건 아니고?”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에 진우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자신이 일군 안식처의 그 모든 것이 그대로이길 바라는 마음을, 오랜 연인인 현민은 너무나도 쉽게 꿰뚫어 본 것이죠.

 

2시간에 한 번씩 서울로 오고 가는 버스가 다니는 화천은 서울과 물리적으로 먼 곳인 동시에 진우에겐 그가 여태껏 성적 소수자로서 받아온 모든 사회적 혐오와 차별로부터의 해방을 꾀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진우는 그에겐 늘 닿지 않았던 생애 첫, 평범함을 온전히 누리게 됩니다. 그곳은 진우의 낙원이며 거기에 그는 지지 않는 영원함을 바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며 특히나 순수함이 깃들어 있는 공간일수록 오염은 너무나 쉽고 또 순식간에 이루어집니다.

 

 

 

두 번의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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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민(홍경)

 

 

진우의 공고한 낙원은 현민의 방문을 기점으로 균열하기 시작합니다. 현민의 존재는 애석하지만, 그가 도망치고자 했던 현실의 한 조각이자 이 모든 일의 시발점이 되는 도피와 그 시작을 같이 하기 때문입니다. 실로 현민으로 인해 목장 식구들은 처음으로 진우의 과거를 제대로 알게 되고,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을 통해 목장 아저씨 중만(기주봉)은 진우의 성적 정체성을 눈치채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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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영(이상희)

 

 

또한, 설이를 찾으러 온 은영의 존재 역시 현실과 맞닿아 있습니다. 그녀로 인해 딸이었던 설이는 조카가 되고 친구로 가장한 오랜 연인 현민과의 사이 역시 그녀의 실언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됩니다. 현실의 침범은 그렇게 진우만의 ‘정말 먼 곳’을 돌이킬 수 없이 붕괴합니다.

 

이러한 붕괴는 목장 할머니 명순(최금순)의 죽음, 그 자체가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죽음’이란 피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현실의 그 어떤 것으로, 영원한 것은 없음을 할머니의 죽음은 경종을 울리듯 그 무엇보다 가시적으로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 둘의 방문은 견고하게 쌓아왔던 진우의 안식처를 송두리째 흔들고 애써 잊으려 했던 현실을 가져옵니다.

 

진우와 현민이 연인 사이라는 것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수군댔고 현민은 유일한 일자리를 잃게 됩니다. 그렇게 낙원의 붕괴와 함께 진우는 다시 한번 허망하게 설 곳을 잃게 됩니다.

 

 

 

평범함을 원하는 마음이 욕심이 된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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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의 붕괴 후 남게 된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현민과 달리 진우는 그 모든 자극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시작합니다. 완벽한 안식처를 꿈꾸는 진우, 그런 진우의 마음을 `욕심`이라 칭하는 현민. 그 둘은 갈등하고, 결국 현민은 진우를 떠납니다.

 

현민이 가진 여유가 버티는 삶을 살아야 하는 그들의 처지에 도움이 되는 듯하지만, 실은 그 어느 쪽을 택하든 늘 반 만인, 어딘가 결핍된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 것은 현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그러한 여유가 어떠한 배움이 아닌 '버팀'에서 비롯됐기에 또 한 번 안타까웠습니다.

 

결국, 담담한 현민도 한껏 날이 선 진우도, 단지 들어냄의 차이일 뿐 각자 다른 방식으로 고통받고 있는 것이죠. 혐오가 양산한 고통은 그리 쉽게 지워지지 않고, 그렇기에 상처받은 마음들은 오래 떠돕니다. 진우는 변해버린 홍천을 떠나는 것을 택하고 영화는 그 처음 시작인 할머니 양의 죽음과 대조를 이루는 새끼 양의 탄생을 비추며 막을 내립니다.


 

정말 먼 곳을 상상하면 불안해졌다

우리가 상상을 잘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의 상상이

맞았는지 틀렸는지 알 수 없었고

거짓에 가까워지는 것만 같았다

정말 먼 곳을 상상하는 사이 정말 가까운 곳은

매일 넘어지고 있었다 정말 가까운 곳은

상상을 벗어났다 우리는

돌부리에 걸리고 흙을 잃었으며 뿌리를 의심했다

견디는 일은 떨어지는 일이었다

떨어지는 소리는 너무 작아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정말 먼 곳을 상상하며 정말 가까운 곳에 서 있었다

그래야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정말 먼 곳, 박은지

 

 

영화 <정말 먼 곳>을 제작한 박근영 감독은 영화가 박은지 시인의 등단작인 ‘정말 먼 곳'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히며 “우리 사회와 소수자와의 거리를 영화 속에 담고 싶었다. 어딘가에는 한 줄기 빛처럼 안식처가 자리할 거란 믿음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 양의 죽음과 탄생이 각각 영화의 전반부와 후반부에 있는 것도 절망 속에도 희망이 존재할 것이란 의지를 드러내고 싶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다수란 이름 아래, 그들의 무게에 의해 각자의 평범함이 허용되지 않는 이들은 멀리, 그리고 더 먼 곳으로 떠납니다. 자신의 존재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그 어느 곳을 향해서.  그리고 그들의 여정은 오랫동안 계속됩니다. 결국, 이 영화는 현실에서 도망칠 수밖에 없는 모든 이들을 위한 영화입니다.

 

그것이 진우와 경민의 경우에는 사회적으로 터부시되는 성 정체성이었고 그들은 잠시나마 평범한 사랑을 꿈꾸며 더 먼 곳을 그렇게 갈망했던 것이죠. 그게 무엇이 됐든 영화는 그 모든 이들에게 담담한 위안을 전해 옵니다. 정말 먼 곳에 당도한 뒤 잠시나마 행복했던 진우와 현민 모습과 그렇게 떠난 후에도 희망은 있으리라는 영화의 결말은 말입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하지만 시 속에도 나와 있듯 정말 먼 곳에 다다르는 일은  때로는 거짓에 가까워지는 것만 같은 불안감을 자아내고 그것을 상상하는 동안 현실은 매일 넘어집니다. 그러니 그곳을 찾아 떠나는 이들의 마음은 그 자체로 불안하며 공간의 진위에 대한 의심 역시 쉽사리 지울 수 없습니다.

 

또한, 진우가 일군 낙원의 운명이 보여주듯 정말 먼 곳의 취약성으로 인해 그러한 여정의 마지막조차 우리는 짐작할 수 없습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이 없다는 말이 있듯, 도망친 우리에겐 그러한 낙원마저 사치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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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그 공간이 어딘가에는 있으리라는 믿음과 그러기에 우리, 모두의 존재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인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그것이 산다는 것의 다른 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복잡한 사정을 안고 온전한 우리로 존재할 수 있는 아득히 먼 곳을 상상하며 정말 가까운 곳에 서 있길 택하고, 때로는 그런 상상만이 우리를 계속 살아가게 하는 순간과 분명 마주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끝없이 먼 곳으로의 여정을 택할 수밖에 없는 이들은 짧게 행복하고 오래 불안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결말이 보여주듯, 절망 속에도 희망이 있기를. 그리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먼 곳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정말 먼 곳을 꿈꾸는 우리 모두를 위한 영화 ‘정말 먼 곳’이었습니다.

 

 

[신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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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Kyi
    •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먼곳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라는 구절에 저도 동감합니다. 진우와 현민이 행복할 수 있는 곳은 왜 정말 먼 곳이어야하며, 이곳의 존재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아는 순간 ‘오염’된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여성간의 사랑을 다룬 ‘핑거스미스’나 남성보다 여성의 신체적, 경제적 조건이 나은 결혼생활을 이어가는 ‘제인에어’ 등의 작품들의 결말들도 이들은 모두 산 속 깊은 곳이나 사람이 떠난 집에서 둘만 살아가는 모습으로 마무리짓습니다.
      이처럼 평범하지 못한 사랑은 도심 한가운데에서 다른이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가지 못하고 정말 먼곳으로 도망가서 사랑해야 한다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앞서 말한 두 작품은 옛 작품이니 시대적 배경에 따라 그런 결말이 이해될 수도 있지만, 오늘날의 작품인 ‘정말 먼곳’처럼 현재까지도 이러한 결말을 맞게 된다는 것이 씁쓸합니다. 이러한 결말을 만드는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의 편견이 없어지는 그날이 오길 바랍니다.
      이번 글도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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