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지역과 문화, 우리의 기록 - 출판저널 521호

글 입력 2021.03.09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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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수도인 서울, 그곳은 이미 포화상태다. 이 작은 나라에서, 이 작은 도시에서 964만 8,606명이 부대끼고 살아간다. 서울시 면적은 대한민국 전체의 0.6% 지만, 인구는 약 1천만 명이다. 인구 집중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 되며, 우리가 느끼는 피로도 또한 하늘로 치솟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포기할 수 없다. 퇴근길이 꽉 막힌 혈관처럼 느껴져도, 아무렴 각종 편의점과 영화관, 전시회장, 도서관, 서점, 각종 기업들의 라이브러리 산업이 있기 때문이다. 해외 아티스트의 투어 콘서트, 국내 아이돌 공연, 클래식, 뮤지컬까지. 그렇기에 입시에서의 지방 정책, 입사에서의 지방 정책도 소용이 없다. 서울에서는 우리가 원하는 모든 문화생활이 가능하다. 우리는 모두 서울을 원하고, 서울을 동경하고, 서울에 상경한다.


대학교에 진학한 이후, 봄과 가을이면 어김없이 답사를 준비해왔다. 이른바 ‘엠티’라고 불리는 친목 여행과는 완전히 다른 결을 띈다. 조를 나누어 각자의 필드지(마을 등)를 정하고, 그 필드지 안에서는 주제를 정한다. 조장은 방학부터 조사 계획서를 준비하고, 필드지에 도착하면 모든 조원들이 힘을 모아 주제와 관련된 정보를 끌어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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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보성군 오봉리,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왕능리, 제주도 전체.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다녀온 필드지 세 군데다. 오봉리와 왕능리는 주민 평균 나이가 70 세에 육박한다. 초등학교는 폐교 위기에 처해 전교생 20여 명이 전부이고, 중학교는 이미 사라졌다. 젊은 사람이 없으니 문화도 번성하기 버겁다.

 

예술이라 지칭할 수 있는 것들은 고즈넉한 풍경과 자연의 소리, 지역 고유의 사투리. 그러한 것들도, 기록하는 젊은이들이 없기에 ‘서울’에 닿을 수가 없다. 주류 문화에 속해 보려는 시도조차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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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다르다. 지역과 문화, 그리고 책. 세 가지가 결합되며 엄청난 여행 욕구를 일으키고, 동시에 기록 욕구를 일으켰다. 눈을 크게 뜨면 바다 옆 독립서점을 만날 수 있다. 제주 여행에 관한 책부터 제주 살이에 관한 책, 해녀의 일상을 기록한 도서까지. 제주도에서의 자연과 사람이 주는 문화는 제법 잘 기록된다. 어쩌면 서울 문화와 정반대의 것을 가졌기에 누릴 수 있었던 특권일지도 모르겠다.


지방자치단체가 노력을 하지 않지도 않는다. 다만 노력에 비한 성과가 더디었을 뿐이다. 드라마 세트장, 영화 세트장 혹은 벽화마을, 이러한 것들이 지역의 매력이 되기엔 힘들다는 것을 그들은 몰랐을 것이다. 부산의 경우엔, 장기적으로 봤을 때 ‘감천문화마을’보다 ‘보수동 책방 골목’이 점진적으로 호평을 얻었다. 지역 문화를 지키면, 잘 기록해 두면, 그것들은 언젠가 큰 힘이 되며 그러한 힘이 모여 문화가 된다.


그러한 지역 문화로, 서울의 독점을 진정시킬 수 있을까? 물론 관광과 생활은 다르고, 향유와 제작은 다르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우리는 모두 밥을 먹어야 살아갈 수 있다. 밥을 먹으려면 돈이 필요하다. 심지어 예술을 하며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어떻게든 나와 비슷한 연령과 취향을 가진 이들에게 내 것을 어필해야 한다. 화가인 내가, 작가인 내가 서울에서 6 시간 떨어진 거리에 있다는 이유로 대기업의 지원을 받을 수 없다면? 협업을 거절당한다면? 그야말로 배고픈 예술가가 따로 없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아티스트를 찾아, 갤러리 혹은 공연장을 찾아 서울로 떠난다.


고유의 지역문화와 예술. 한국 문화가 전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는 지금, 우리는, 모든 영역의 예술과 콘텐츠를 네모난 기기 하나로 향유할 수 있다. 향유 뿐인가, 마음만 먹으면 노래도, 영상도, 글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것들은 요상한 전파를 타고 멀고 먼 지역으로 퍼져나간다. 나는 이 세상 모든 젊은이에게 기록을 권유하고 싶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의 풍경, 그 안에서 있었던 작고 사소한 일들, 예전부터 동네를 지키고 있었던 어른들의 말들. 별것 아닌 일들이 활자로 모이고, 이미지로 모이고, 영상으로 모이면 그것은 지역 문화가 된다.


이렇게 기록한 지역 문화와 예술들은 아마도, 기업을 끌어들일 것이다. 예술과 상업, 상업과 예술은 서로를 배척하면서도 사랑하는 모순적인 관계이니까. 어떠한 지역의 사건이나 형태, 랜드마크가 기업의 눈에 들어오면 그들의 문화 가치를 활용하기 위해 여러 건물이 들어설 것이다. 기업이 개입하면, 그들의 주도면밀하고도 효율적인 방법으로 지역 문화를 다듬어내고, 홍보하고, 심지어 여러 매체에 등장시킨다. 사람의 기록이 다른 사람을 불러내고, 다른 사람들은 또 다른 사람들을 불러내는 구조다.


우리가 모을 글자들은 하나의 글이 되고, 단편 소설이 되고, 장편을 거쳐 시리즈물이 될 수 있다. 0.7 초 분량의 씬이 모여 만들어지는 영화 속 거대한 세상처럼, 우리는 우리의 세계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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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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