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기록에 생명을 입히는 '기록 습관' [도서/문학]

김신지,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서평
글 입력 2021.03.09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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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새로운 동네를 갔을 때 호기심 많은 고양이처럼 이 골목 저 골목을 누비며 새로운 풍경과 건물, 가게들을 구경하며 눈에 익히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그날 돌아가는 길에 손에 쥘 소소한 것을 찾아다닌다. 그건 새로 간 카페의 디저트일 때도 있고, 마스킹 테이프나 스티커 같은 문구류라던가 한 권의 책일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그날 돌아다닌 장소와 시간을 하나로 묶어 기억하려 한다. 마치 바닷가에 가면 조약돌을 주워 오듯이. 추억을 수집하는 방식이 소소한 구매행위가 된 것이다.


문득 그런 기억의 수집 방식을 구매 행위에서 창작 행위로 전환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경험들을 나의 생산물로 기억하는 것으로. 그럼 자잘한 짐은 줄고 내 글은 한 편이라도 더 쌓이겠지. 생각나는 대로 적는 일기와는 또 다르게, 이왕이면 하나의 사물처럼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성을 가지는 글 한 편이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기록을 하기로 했다. 기억을 ‘맺으려면’ 글감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기록에 대해 보다 정리된 체계와 새로운 마음가짐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전에도 기록을 자주 하는 편이었지만, 기록은 바로 활용되기보다 ‘쌓여 있기만’ 할 때가 많았다. 잠들어 있는 기록을 넘어 한 편의 완결성 있는 글, 나만의 콘텐츠로까지 발전시키려면 기록에 대해 기존과 다른 습관을 쌓아야 한다. 길라잡이가 될 만한 책이나 정보가 어디에 있지 않을까 궁금해지던 차에 한 독립서점에서 이 책을 만났다. 김신지의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주)휴머니스트출판그룹,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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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는 사람’이라 부르는 김신지 작가는 자신의 기록 유형과 습관, 노하우를 네 장의 구성으로 나누어 소개한다. 1장 일기 쓰기, 2장 순간 수집, 3장 영감 수집, 4장 사랑하는 것들을 기록하기. 각 장의 작은 목차마다 독자를 위한 ‘기록 연습’ 페이지가 있으며, 그다음 페이지에는 작가의 기록 예시가 첨부되어 있다.


첫 장에서는 가장 기초적인 기록 습관에 대해 말한다. 바로, 짧게라도 매일 일기를 쓰는 것. 꾸준히 채운 다이어리는 단순히 하루의 일정만을 적었다 해도 자기 관심사를 알려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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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자신을 매일 일기 쓰는 사람으로 만들어준 다이어리를 하나 소개한다. 그건 바로 5년 다이어리다. 한 페이지에 2021년의 1월 1일부터 2025년까지의 1월 1일 일기를 적을 공간이 모여 있는 형식으로 된 일기장이다. 한 페이지에 5개의 하루가 들어가니 하루치 일기 공간은 채 몇 줄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부담 없다. 한 해의 일기를 쓰고 나면 다시 앞장으로 돌아와 작년, 재작년, 3년 전의 오늘은 어땠는지 확인할 수 있으니 자연히 흥미와 성취감도 생긴다. 작가는 이 일기장을 자주 보이는 곳에 두고, 자기 전에 일기를 썼는지 확인하며 매일 짤막한 일기를 쓴다.


5년 다이어리와는 별개로 저자가 또 하나 추천하는 것은 ‘마음의 일’에 대해 적는, 이른바 ‘감정 일기’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불편하고 불안한 순간은 기록하지 않고 넘어가기 쉽지만, 작가는 그것을 모른 척하지 않고 카카오톡 나만의 대화 창에 메모해 보라고 한다. 그 기록을 바탕으로 감정 일기를 쓰며 마음 챙김을 하는 것이다. 결국 기록만큼 중요한 것은 그 기록을 다시 열어 정리하는 것이다.


실제로 저자는 기록을 다시 꺼내 보고 정리하는 행위를 의식적으로 반복한다. 매년 12월마다 적는 연말 결산 노트가 그것이다. 그런데 연말이 되면 한 해의 기억이 흐릿해지니 연말 결산을 위한 월말 결산 노트도 만든다. 이를테면 이달의 여행지, 이달의 음악, 이달의 문장, 이달의 새로움 같은 항목에 혼자서 답을 채워보는 것이다. 매일 써 오던 일기가 월말 결산과 연말 결산의 참고자료가 된다.

 

두 번째 장은 순간 수집에 대한 것으로,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가장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기억에 남는 것은 '1일 1줍' 기록이었다. 커다란 행복은 아니어도 하루에 한 번 소소한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는 ‘좋은 순간’을 만나면 사진으로 찍어둔다는 그. 그렇게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 비공개 계정에 올리고, 쌓인 사진을 보며 자신이 좋아하는 순간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갔다고 한다.


저자는 이 기록을 통해 ‘내가 즐거워지는 순간’을 파악했다면 그 순간을 좀 더 자주 반복하라고 말한다. 그것이 일상을 사랑하는 방식이라고. 실제로 우리는 먼 목표에 집중하다 일상을 즐겁고 편안하게 만드는 것들을 잊어버리고는 한다. 일상을 윤택하게 만드는 것은 무언가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일상 속 ‘사소한 아름다움들’이다. 그러니 ‘1일 1줍’ 같은 기록이 있다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잊지 않는 데 유용할 것이다.


그의 ‘1일 1줍’ 사진에 자주 등장하는 하늘과 풍경, 그리고 식물은 ‘테마별 기록’으로도 발전해 나간다. 예를 들면 동네 화분 사진 아카이빙과 특정 공간에서 보는 풍경의 사계절 기록, 그리고 그리워질 공간에 대한 기록. 기록의 대상과 목적이 구체화될수록 어떤 기록을 어떤 매체로, 그리고 어떤 장소에 저장할지에 대한 고민도 서서히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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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장은 영감 수집을 다룬다. 에세이 글감부터 콘텐츠 제작자로서의 레퍼런스 수집, 그리고 독자들이 자기만의 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한 수집을 위한 팁을 알려준다.


글감을 모을 때 주의사항에 대해 정리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작가에게 영감 수집의 시작은 문장이다. 책을 읽다가, 방송을 보다가, 지인과 대화하다가 ‘마음의 수면에 어떤 파동이 이는 순간’ 그 즉시 메모할 것. 그리고 그 메모를 알맞은 ‘서랍’에 넣는 것. 기록을 다시 읽고 알맞은 항목의 주제에 분류하는 것을 말한다. 저자가 강조하듯, 메모에서 끝나면 ‘그냥 수백 개의 메모를 가진 사람이 될 뿐’이다. 그는 매일 밤 자기 전, 혹은 일요일 밤에 한 주의 메모를 정리하는 습관을 만들기를 권한다. 그리고 모아둔 글감으로 ‘뭐라도’ 글을 쓰기를 당부한다.


이렇게 수집한 문장의 분류 및 관리에 대해 저자는 각각의 ‘문장 서랍’에 이름을 붙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행복, 재능, 가족, 책, 예술/창작, 여행. 이렇게 해 두면 어떤 주제로 글을 써야 할 때, 해당 서랍을 열어 수집한 문장들을 일목요연하게 읽을 수 있다. 자신의 마음에 와 닿은 것들이 하나의 주제에 대한 자신의 성향, 태도를 인식하게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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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은 결국 취사선택의 문제이다. 모든 걸 기록할 수는 없으니 기록의 대상은 그 사람에게 더 중요한 것일 테다. 작가는 기록의 그러한 특성에 가슴 저릿할 만큼 걸맞은 주제로 책의 마지막 장을 채운다. 바로 ‘사랑하는 것에 대한 기록’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은 언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사실 저자의 사례를 보면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기록이다.


2장과 3장에서 기록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 고무되며 기록 관리법에 대해 배웠다면, 마지막 장에서는 기록의 의미에 대해 다시 진지하게 돌아보게 되었다.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이상하게 민망해서 미뤄두었던 기록에 대한 반성 또한.


4장에서 보이는 저자의 안타까움과 애틋함은 독자인 나의 것과 다르지 않다. 내 지난 시간을 잊더라도 나로 살아있는 한 새로이 기록하여 시간을 붙잡을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우리 곁의 소중한 사람들과의 순간은 다르다. 언젠가는 우리 곁을 떠날 부모님, 조부모님의 걸음걸이, 말하는 모습, 목소리. 이런 것들에 대한 기록은 어쩌면 사소한 상황을 담은 영상과 녹음일수록 훗날 더 소중해지겠지. 결혼식이나 환갑잔치 영상은 찍어도 부모님이 TV를 보며 웃거나 시시콜콜한 대화를 하는 장면은 잘 찍지 않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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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은 수집과 선택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어떤 대상을 기록하는 것 자체가 선택받은 대상의 중요도를 보여준다. 그런데 때로는 축적된 기록이 '기록한 사람'에게 무엇을 좋아하는지 보여주기도 한다. 예상치 못한 관심사는 과거의 자신이 남겨둔 여러 편의 글, 사진, 영상에서 반복되는 풍경이나 사물, 주제 등으로 나타난다. 그렇게 발견한 관심사는 일상을 풍요롭게 함은 물론 새로운 창작의 가능성을 열어주기도 한다. 선호하는 것을 일상에서 더 자주 접하도록 행동할 수 있고, 모아둔 글감과 레퍼런스를 활용해 글을 쓰거나 자신만의 콘텐츠를 기획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탄생을 가능케 하는 것은 기록의 분류와 관리이다. 기록을 계속 열어보지 않는다면 '서랍장'에 넣어둔 빛나는 추억이나 영감은 뽀얀 먼지와 함께 잊히고 잠들게 된다. 기록의 서랍을 다시금 열게 하는 힘은 결국 기록의 분류 체계에서 온다. 기록을 저장하는 장소에 주제별, 쓰임 별로 적합한 이름을 붙인 카테고리를 만들고, 기록물을 알맞은 곳에 두어야 한다. 바로 알맞은 서랍에 저장하면 좋고, 그러지 못했다면 하루 혹은 한 주의 기록을 정리하는 시간을 정해두는 것이 좋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고 나서 기존에 사용하던 메모 앱의 카테고리 이름들과 미분류된 채 ‘서랍’에 들어가지 못한 여러 메모들을 훑어보았다. 이제는 무엇이 미흡했는지 보인다. 분류를 미루는 순간 그 메모를 다시 열어볼 가능성은 매우 낮아지는 것이었다. 이제 김신지 작가가 알려준 노하우를 토대로 기록의 분류와 관리를 생활화해보아야겠다. 벌써 하나는 시작했다. 이 책을 처음 읽은 시점이  마침 2월 말이었기에 작가를 따라 월말 결산 노트를 만들었다. 『기록하기로 했습니다』에서 얻은 가장 큰 교훈은 이것이다. 기록을 자꾸 열어봐서 살아있게 해 줘야 한다는 것. 보다 효율적으로 기록하고, 그 기록을 바탕으로 새로운 성과를 내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결국, 살아있는 기록이 새로운 작품을 낳는다.

 

 

[신성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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