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본질의 개념을 새로이 하다 : 공간과 정체성 [미술]

가상으로 기획해보는 전시서문
글 입력 2021.03.08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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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의 개념을 새로이 하다 : 공간과 정체성」


 

본질, 정체성, 3차원 공간. 세 개의 단어가 같은 선상에 놓일 수 있을까.
 

20세기 후반, 과거 모더니즘적 정체성에 대해 조금씩 반격을 가하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체성’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권 미술의 핵심 주제로 다루어져 온 영역이다. 즉 단일한 정체성에 관한 문제들이 불완전하고 유동적인 정체성에 관한 문제들로 바뀌게 되면서, 1990년대부터 ‘혼종성’이란 개념이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 우리는 본질의 개념을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바꾸어 본래의 정체성과 정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예술가들의 시각을 3차원 공간에 실현해 놓은 작품인 만큼 우리도 깊숙이 그것에 빠져들 필요가 있다. 우리는 가상현실(약칭 VR : Virtual Reality)을 통해 그들의 가치관과 의도를 보다 가까이 접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가상현실(약칭 VR : Virtual Reality) 뿐만 아니라 직접 눈으로 보고 감상할 수 있다.
 
우리가 물음을 던지고 메시지를 전달받을 예술가는 서도호 작가와 양혜규 작가이다.
 
서도호 작가(1962~)의 작품 키워드는 ‘공간’과 ‘정체성’이다. 그는 본질의 개념을 바꾸어 새롭게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해 주어 개개인의 정체성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그의 작품 속 공간은 정서가 농축된 삶의 공간이며 우리의 감성을 일깨우기도 한다. 그에게 ‘집’이란 또 다른 자화상이다.
 
양혜규 작가(1971~)의 작품 키워드는 ‘공간’과 ‘시간’이다. 그의 작품은 여러 소재를 한 공간에 배치하여 어떤 효과를 내는지 탐구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모순되고 상반되는  그의 세계관을 다소 흥미롭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서도호 작가 – 또 다른 자화상,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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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호 설치미술가 (1962~ )

 

 

당신에게 건축물이란 단어는 어떠한 느낌을 주는가. 단단함·콘크리트·대리석·나무·무거움 같은 묵직한 단어들이 연상되지 않는가. 이러한 개념을 바꾸어 건축물을 직접 손으로 운반할 수 있고, 외부에서 내부를 모두 볼 수 있다면? 그것을 작품으로 실현한 예술가가 있다.
 
서도호 작가는 시폰 원단처럼 얇고 투명하게 비춰 보이는 폴리에스테르 등의 합성섬유를 사용하여 내부 구조가 겹겹이 보이는 집을 지었다. 집의 형태뿐만 아니라 생활용품들을 얇은 천으로 재구성하여, 물건에 대한 개념을 무거운 것에서 가볍고 쉽게 옮겨갈 수 있는 것으로 바꾸는 시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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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호 (Do Ho Suh), 서울집 (Seoul Home), 2012

 

 

그가 살던 한옥을 모티브로 하여 천으로 실제 크기의 집을 지은 것을 보자.
 
이러한 그의 발상은 아름다운 한국의 전통한옥을 미국에 놓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작품이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세계 곳곳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 본인의 정체성과 현대인의 운명을 담아내고자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단지 불투명한 천으로 지은 것이 아닌, 반투명 고운 색감의 직물로 공간을 창조해 천장에 매달았다. 2차원의 직물로 만든 3차원의 공간이 천장에 떠있는 것은 현재 곁에 없는 추억 속 공간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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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호 (Do Ho Suh), 뉴욕 웨스트 22번가 348번지 아파트, 복도, 계단 (348 West 22nd street, New York, NY 10011, USA-Apt. A, Corridor and Staircase), 2012

 

 

그가 살던 미국의 집을 모티브로 하여 지은 작품을 보자.
 
같은 재질의 천이지만 천장에 떠있지 않고 지상에 맞닿아있는 것으로 보아 현재 그의 거취 공간임을 짐작할 수 있다. 지상에 있는 그의 아파트와 추억 속의 한옥이 서로 부딪히게 하는 그의 상상은 문명의 충돌을 연상시킨다.
 
한옥과 서구식 아파트의 직접적 만남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경계에 있는 듯하다. 우리는 다시 생각해 본다. 그에게 ‘집’이란 건축물이 아닌 또 다른 자화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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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호 (Do Ho Suh), 베를린 집: 3개의 복도 (Wielandstr. 18, 12159 Berlin, Germany-3 Corridors), 2011

 

 

그의 작품과 함께하면서 우리는 직물의 유연함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고, 단단한 콘크리트에 짓눌려있던 신경세포들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고운 색감들이 무채색의 도시로부터 당신을 어루만져 주는 느낌이라면 상상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건축의 형태, 문화의 차이, 재료 등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거주하는 공간이란 진정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는 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거주하는 공간이란 개인의 정체성이자 지역적 정체성이며, 개인의 공간이지만 재료의 투명성을 통해 타인과 연결되는 소통의 공간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는 기존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료에 대한 개념을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대체하여 그 본래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양혜규 작가 – 모순되고 상반되는 세계관의 균형을 이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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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혜규 설치미술가 (1971~ )

 

 

식탁, 사무실 책상, 푹신한 소파가 한 공간에 같이 있다면 무슨 생각이 드는가. 각양각색의 블라인드가 바닥에서 천장에 이르기까지 당신의 시야를 방해한다면? 앞서 말한 것은 모두 현실에서 생각할 수 없는 조합이거나 상상할 수 없는 공간일 것이다. 이와 같이 모순되고 상반되는 매개체를 이용하여 작품을 구현하려 했던 예술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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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혜규 (Haegue Yang), 성채, 2011

 

 

양혜규 작가가 블라인드를 이용하여 표현한 추상적 형태의 작품「성채(2011)」는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다. 유독 어두운색으로 사방이 막힌 큐브에 들어서면 성채가 보이는데, 바닥부터 천장에 이르는 알루미늄 블라인드가 주재료이다.
 
블라인드를 주재료로 쓴 이유는 무엇일까? 블라인드의 용도는 햇빛을 가리는 것인데, 외부에서 보는 것과 내부에서 보는 시각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모호한 특성 때문에 우리는 2가지 이상의 세계관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블라인드가 실제 건축 재료에 비해 약한 재료일지라도 형체만큼은 작가의 의도를 공고히 밝히고 있다. 블라인드 주변으로 6개의 조명이 움직이는데, 블라인드의 촘촘한 패턴이 벽면, 바닥, 관람자 사이를 지나가는 모습이다. 이 모습은 우리가 물속을 유영하는 듯한 신비로운 감각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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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혜규 (Haegue Yang), VIP 학생회, 2001

 

 

「VIP 학생회(2001)」는 우리에게 쉼터를 제공해 준다. 다만 쓰임새가 통일된 가구가 아닌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대여해온 의자와 탁자가 한 공간에 있는 것이다.
 
이는 작가 혼자 만든 작품이 아닌 대여자들의 협조로 완성된 작품이라는 의의를 가진다. 각기 짝이 맞지 않는 가구처럼 대여자의 다양한 접근법과 세계관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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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혜규 (Haegue Yang), 사무실 부두 (Office Voodoo), 2010

 

 

그의 작품은 조각과 설치 개념을 확장하는 것을 넘어, 모순되고 상반되는 세계관의 균형을 이룬다. 단순히 설치 미술로 보는 것이 아니라 공감각적인 추상과 체험 미술로서 폭을 넓힌다면 그의 가치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는 전혀 맞지 않을 것 같은 재료와 주제를 통해 다양한 해석을 이끌어내고, 관람자들이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게 가능성을 제공해 준다. 사람의 기억이란 것은 시간과 공간의 절대성에 순응하지 않는데 그렇다면 현실과 비현실이 결합할 경우,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물음을 던지는 작업으로 접근하면 좋을 것이다.

 

 

[황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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