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작은 시인에게 [영화]

나의 삶에서 남길 바라는것을 너가 가지고 있을때
글 입력 2021.03.0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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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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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욕망과 보편적 정의(正義)의 결합은 강력한 동기를 만들어낸다. 비록 그것의 결과가 부조리함이라고 하더라도.

 

‘나의 작은 시인에게’ (The kindergarten teacher)에서 쉽게 끄집어낼 수 있는 물음은 세속적 세상에서 발견된 반짝이는 재능을 지키기 위해 납치라는 행위를 한 유치원 선생의 행동이 옳은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하지만 나는 그 행위의 밑바닥에 있는 리사의 욕망에 집중을 해서 영화를 읽어 나갔다.

 

그녀가 지미를 납치한 동기는 뭘 까? 무엇이 이성적이고 모범적인 선생님이었던 그녀를 극단적인 행위를 하게 만든 것일까?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으로 인해 호기심과 창의력이 없어진 세상에서 지미의 천재성을 키워 내고자 하는 선생의 애정 어린 노력, 그리고 지미의 재능을 소유하고자 했던 개인적 욕망이다.

 

 

 

지켜주고 싶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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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사는 평생학습반에서 시 창작 수업을 듣는다. 그녀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그녀는 호기심이 없어지고 개인의 창의성을 말살시켜버리는 세상에서 시 쓰기를 통해 자신의 예술적 욕망을 해소시키려 한다. 하지만 그녀는 시에 재능이 없다. 그녀의 시는 어딘가 틀에 갇혀 있고 상투적이다.

 

어느 날 유치원에서 리사는 지미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우연히 듣게 되고 그 안에서 지미의 천재적인 재능을 포착한다. 아마도 그녀가 알아봐 주지 않았다며 아무도 알아주지 못했을 것이다.

 

리사는 마치 희귀한 보석을 발견한 것처럼 지미의 시를 정말 귀중하게 생각하고 메모한다. 이후 그의 특별함으로 인해 지미에게만 엄청난 관심을 쏟는다.

 

리사는 지미의 보모와 부모에게 지미에게 천재적인 재능이 있고 그것을 키워 줘야만 한다고 거듭 설득한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만큼 지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보모는 지미를 평범한 아이 취급하고 부모는 돈벌이를 하느라 그만큼의 관심을 쏟지 못한다. 리사는 지미의 재능을 키워준다는 목적으로 교묘하고 치밀하게 지미의 인생에 침범해 들어간다.

 

영화의 후반부에 지미를 납치하고 경찰에게 잡혀가기 전 그녀는 절망적으로 말한다. ‘세상이 널 지배하려고 할 때, 세상에 널 받아줄 사람은 없어. 나 같은 그림자가 될 거야.’ 내가 볼 때 그녀가 한 말은 진심이다. 그녀는 반짝거리던 사람들이 그림자가 되어가고, (자신의 아이들조차 그렇게 만든) 사회의 시스템에 갇혀 그 일부가 되는 것에 깊은 안타까움을 느꼈고 거기서 그림자가 될 지미의 재능을 존경하고 경외했다.

 

하지만 그런 이유만 존재했다면 그녀는 좀 더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해결책을 강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녀가 지미의 보모가 된 시점에서 그녀는 지미 곁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주면서 그의 재능이 꽃피는 것을 지켜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천재에게 버림받은 여자


 

그녀의 안의 욕망은 그녀를 비이성적으로 만들었다. 그것은 ‘질투, 배신감’이다. 분명한 것은 영화에서는 그녀의 모범적인 선생님으로 서의 모습보다 덜 부각된 그녀 안에 모종의 배신감, 질투, 박탈감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단순히 자신에게 없는 것을 다른 이가 (그것도 자신보다 30살 이상은 어린 사람이) 갖고 있다는 사실에서 나오는 질투 그 이상의 야릇함을 느꼈다. 그건 마치 연인에게서 느끼는 감정이었다. (그녀가 다섯 살짜리 아이에게 이성적인 감정을 느꼈다는 것은 아니다.) 지미로 대변되는 ‘천재성’에게서 ‘버림받은 여자’라는 사실. 그녀는 그것에 몸서리친 것이 아닐까.

 

영화 초반에 남편에게 시를 보여주는 부분, 그리고 시 수업 강사에게 자신의 시를 들려주는 부분에서 그녀는 그녀 안에 있는 예술성을 끌어내고 싶었고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자기 자신의 창조성을 표현하고자 했지만, 그녀의 시는 지미의 것처럼 반짝이지 않았다. 당연하게 사람들의 반응도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경험들이 그녀를 무너뜨리지는 않았다. 그녀를 무너뜨린 건, 낭독회에서 ‘애나’가 누구냐는 질문에 자신의 유치원 집 보조 선생님 ‘메건’이라는 지미의 대답을 들은 것이다. 그녀는 표정이 굳어지더니 갑자기 무대를 빠져나가 화장실에서 오열을 한다.

 

그녀를 무너뜨린 건, 천재성을 열망해오고 천재성으로 대표되는 지미에게서 끝끝내 자신은 선택받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오랫동안 바라 오고 헌신한 천재성이라는 신비스러운 희구의 대상에게 완전하게 외면당했다는 걸 확인받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사랑하는 대상을 소유할 수도 없지만 곁에 둘 수도 없다(적어도 자연스러운 방식으로는). 그녀를 무너뜨린 건 그런 박탈감이다.

 

이는 짝사랑의 감정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화난 지미의 부모가 유치원을 옮겼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슬픔의 눈물을 흘렸고, 심지어는 지미의 유치원에 몰래 찾아가 그를 데리고 도망을 친 것이다. 천재성과 함께 하기 위해. 그럼으로써 자신에게 ‘특별함’이 있다고 느끼기 위해.

 

 

 

내가 나라는 특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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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성인으로 성장한 아이들과 다정한 남편이 있는 평범한 가정의 어머니로서, 능숙한 유치원 선생님으로서 두 가지 역할을 오랫동안 잘 수행해왔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어딘지 허전해 보인다. 남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의 소진돼 버린 삶 그 이후에 알 수 없는 허무함을 그녀는 자신의 예술적 욕망으로 해소하려 한다. 하지만 그것마저 잘 되지 않는다. 아마 그녀가 원하는 특별함은 선생으로서, 부모로의 역할을 제외하고도 자신에게 뭔가가 남아있을 거라는 믿음. 그렇지만 그 뭔가 가 더는 자신에게 없다는 박탈감을 그녀는 느꼈다. 흔히 갱년기 이후의 여성이 느끼는 자신이 희미해져 가는 느낌일 수도 있다.

 

서사 이외의 요소들을 얘기하자면, 이영화는 분위기를 정말 잘 만들어냈다. 일상적이고 아름답기까지 한 미장센과 그 위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감정의 레이어드가 긴장감을 놓지 않게 만들었다. 영화의 서스펜스를 더하는 것은 이야기의 전개와 상반되는 분위기이다. 흔히 불법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포악하고 더러운 과거가 있는 범죄자라는 그런 전형성과는 달리, 그녀는 매우 평범하고 이성적이고 책임감 있는 따뜻한 사람이라는 점이 영화의 묘한 심리적 긴장감을 더한다. (서스펜스를 잘 살린 영화 ‘Gone girl’이 떠올랐다.)

 

이상하게 차분하고 따뜻한 영화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심리적으로 묘한 긴장감을 느꼈다. 그리고 후반 부의 갈등 이후의 상황에서의 감정의 과잉에서 이상한 해소의 기분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 이후의 택시 안에서의 지미의 대사가 다시 답답함을 가져다준다.) 분위기로서도 이야기를 하는 영리한 사용이다. 리사로 분한 매기 질렌할의 탁월한 심리 묘사가 한몫을 한다. 그녀는 갱년기 이후 여성의 복잡한 심리묘사를 정말 잘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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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다른 관점으로 볼것을 조언하는 리사

 

"...매일 같은것을 보잖아

그래도 찾고자한다면

색다른걸 발견할 수 있을거야, 뭔가 느껴지니?"

 

"아뇨."

 

 

[박정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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