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언제 어디서 무엇이 어떻게 왜, 당신이 존엄하게 하나요. - 존엄성 수업

글 입력 2021.03.05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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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왜 존엄합니까?


 

‘인간은 존엄하다.’ 대부분 쉬이 고개를 끄덕일 말이다. 그렇지만 ‘언제’ 인간은 존엄해지는가? 같은 개인도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존엄성 여부가 달라지지 않았는가? 당신을 존엄하게 해주는 것은 ‘무엇’이고, 그것은 당신을 ‘어떻게’ 존엄하게 해주는가? 궁극적으로, 인간은 ‘왜’ 존엄한가? 나아가, ‘인간만이’ 존엄한가?


‘인간은 존엄하다.’ 이 문장만큼 간결하면서도 많은 사람의 동의를 얻어낼 수 있는 형이상학적 서술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위 문단에서 필자가 던진 상세한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인구에 수렴할 정도로 다양할 것이다.


특정 사안에 관해 수많은 의견이 도출된다면, 그것은 분명 해당 분야에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차병직 작가(변호사)는 『존엄성 수업』에서 그 ‘수많은 이해관계’를 다룬다.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실제로는 모르는 것이 점점 더 많아진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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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존엄성 수업』에 다른 제목을 붙여 보라고 한다면, “인권학개론” 내지 “일반인권학”과 같은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 그만큼 본서는 깊지는 않더라도 인권의 다양한 측면을 제시하고, 모두가 교양으로서 알아 두어야 할 수준의 권리 지식을 다룬다.


가장 먼저 ‘인간의 존엄성’ 개념을 다루고, 뒤이어 ‘생명권’, ‘평등권’, ‘행복추구권’ 등 우리가 흔히 들어보았을 법하며 적어도 대부분의 인식 속에 잘 안착된 권리가 등장한다. ‘양심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 등 논란이 많이 일고 있는 권리도 등장하며, ‘아동권’과 ‘성소수자의 권리’와 같이 비교적 최근에 주목받기 시작한 권리도 다룬다.


그러나 목차에서 가장 눈길이 갔던 부분은 바로 본 도서가 ‘동물권’을 다룬다는 것이었다. 비록 공장식 축산과 관련된 동물 윤리 문제를 다루지는 않고, 동물권을 인권의 보조적 개념으로 다룬다는 부분은 조금 아쉽긴 하지만, 동물권 개념을 책에 포함한 것만으로도 저자가 얼마나 사려 깊은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저자가 필자의 생각을 간단명료하게 서술하여 정리하고 있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그중에서도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실제로는 모르는 것이 점점 더 많아진다는 사실을 확인한다."(22쪽)라는 말은 특히 공감되었다. 필자도 절실히 느끼고 있는 부분이다. 접하는 것이 많아질수록 함부로 단정 지을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더 조심하게 된다.


저자는 한때 존경하는 두 인물 중 하나로 ‘노자’를 꼽았다고 한 것 역시 인상 깊었다. 비록 현재에는 존경하는 이가 없다고 하였지만, 본서의 서술 방식은 심히 ‘도가적’이라고 할 수 있을 듯했다. 도가적 서술의 포인트는 ‘함부로 단정 짓지 않음’에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14갈래의 방점을 찍지만, 그 어떠한 부분에서도 쉽게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다. 그저 ‘이것도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하는 의문을 더 던져주었을 뿐이다.


따라서 이 책을 읽고 얻을 수 있는 ‘정답’은 없다. 특정 권리에 대한 ‘절대 객관적’ 원리를 바라고 이 책을 읽는다면 실망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존엄성 수업』은 우리가 잘 떠올리지 못하는 문제 의식을 짚어 주고 더 사려 깊은 고민을 하도록 도와준다.


그렇다면 이것이 무슨 쓸모가 있는 것이냐 물을 수 있지만, 형이상학적 개념에 관한 한 그저 막연한 고민을 많이 하는 것마저도 당신의 사고에 있어서 확장을 가져다준다. 오히려 단정 짓는 지식을 제공하는 것은 당신의 사고를 닫을 뿐이다.

 

 

 

문학적, 시적, 신화적 비유와 예시



또 한 가지 돋보였던 것은, 저자의 비유와 예시 사용 능력이 아주 탁월했다는 점이다. 저자는 단어를 손질하여 맛있는 비유가 담긴 음식을 만들어냈고, 풍미 넘치는 예시를 드레싱으로 뿌려 텍스트에 감칠맛이 돋게 하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맛있었던 비유는, ‘프라이버시’를 다룬 8장에서 ‘비밀’의 개념에 대한 비유였다.


 
비밀은 인간의 삶에서 필수불가결한 타인과의 소통과 교류를 가능하게 하는 힘의 원천이다. 비유하자면, 우리가 활동하기 위해서 잠을 자야하는 것과 같다. 노동을 하려면 휴식이 절대적 요소인 것과 다를 바 없다. 비밀은 자아의 양식이다.


-244쪽
 


아쉽게도 앞뒤를 자르고 가져올 수밖에 없으나, 맥락과 함께 섭취한다면 그 맛이 더욱 돋보이는 문장이다.

 

수많은 권리 개념을 다룬 ‘비문학’ 텍스트이지만 그 증명을 위한 예시 중 다수는 ‘문학’을 가져와 썼다는 부분 역시 인상적이었다.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는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쥘 르나르의 『홍당무』, 라이먼 프랭크 바움의 『오즈의 마법사』,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파랑새』 등이 있다. 도서를 읽고 난 후, 어릴 적 가볍게 읽고 말았던 위의 책들을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다시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단어를 사용하는 순간 차별을 하게 된다.


 

전체 텍스트 중 필자의 뇌리에 가장 강렬하게 내리꽂힌 저자의 주장은 ‘단어를 사용하는 순간 차별을 하게 된다’라는 것이었다. 이에 관하여서는 구체적인 예시를 통해 확인하는 것이 이해하기 편할 듯하다.


우리는 이제 ‘동성애자’와 ‘이성애자’를 차별적으로 대우하며, 그들의 권리를 짓밟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동성애자’나 ‘성 소수자’와 같은 단어를 사용하는 것부터 차별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게 무슨 이야기란 말인가? 이 의문에 대한 답변은


 
차별하지 않기 위해서라면 굳이 구별할 필요가 있는가?


-406쪽

 


동성애라는 용어의 사용 자체가 이미 편견을 담고 있는 행위다.


-405쪽

 

 

라는 저자의 주장 두 문장으로 간략히 해결된다.


우리는 왜 ‘동성애’와 ‘이성애’ 사이에 선을 긋는가? 애초에 이 둘을 구분 짓는 행위부터가 차별이 아닐까? 이러한 저자의 서술은 '앞으로의 바람직한 젠더 관념은 ‘젠더리스’가 될 것이다'라는 필자의 생각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였다.

 

 
실제로 우리가 없애려는 편견은 어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휘를 사용하는 우리의 마음에 있다.

-404쪽


   

 

어린이를 잊지 않은 어른



저자는 ‘아동권’ 역시 무게 있게 다룬다. ‘어린이의 권리’는 우리가 평소 가장 ‘악의 없이’ 차별을 실천하고 있는 분야가 아닐까 싶다. 저자는 ‘악의 없는 사람’이, 아니 어쩌면 ‘좋은 사람’이 어떻게 아동권을 짓밟고 있는지를 조목조목 읊어준다.


특히나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에 관한 저자의 통찰이 너무나도 통쾌했다. 어른이 어떻게 학생을 ‘교육이라는 수단 아래에서 마음대로 다루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그것이 왜 잘못되었는지를 증명한다. 그리고 ‘학생의 잘못’을 단순히 ‘학생만의 잘못’으로 몰아가는 것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설파한다.


어느 날 필자는 인터넷에 떠도는 카카오톡 대화창 캡처본을 하나 마주하게 되었다. 대학 수업 단체 채팅방이었는데, 교수가 학생에게 이야기를 할 때에 낮춤말을 사용하였더니, 학생 역시 교수에게 낮춤말을 사용하여 답변한 것을 캡처한 것이었다.

 

교수는 학생이 '자신이 교수인지 모르기에' 낮춤말을 사용한 것이라고 생각하여 본인이 교수임을 밝혔다. 학생은 당신이 교수임을 알고 있지만, 당신이 합의 없이 먼저 자신에게 낮춤말을 사용하였기에 본인도 당신에게 낮춤말을 사용한 것이라고 답변하였다.


필자가 아는 한, 현대 대한민국은 ‘꼰대짓’을 싫어하며 ‘탈유교’를 지향하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위의 캡처본이 게시된 글의 댓글을 확인하면 교수가 아닌 학생을 ‘버릇(싸가지) 없는’ 사람이라고 지적하는 댓글이 대부분이었다.

 

필자가 눈여겨보는 단체인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에서 내거는 ‘어린 사람은 낮은 사람이 아니다’라는 표어가 떠오른 순간이었다. 이 문구를 사람들에게 보여 주면, 대부분은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왜 위의 건에서는 교수가 아닌 학생을 욕하는 것인가? ‘유교적 사고’에 질려하는 당신은 그 누구보다도 ‘유교적 사고’로 사고하고 있지는 아니한가?


물론 대학생은 아동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우리 마음속에 깊이 박혀 있는 ‘어린 사람은 낮은 사람’이라는 인식에서 탈피하는 것이 ‘어린이의 세계’를 존중하고 ‘아동권’을 보장하는 첫 단계이다.


저자는 성인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도 한때 어린이였음을 잊지 않았다. 나의 글을 읽는 사람들 역시 아마 대부분은 성인일 것이다. (필자의 블로그 방문자 통계의 평균이 그렇다고 말해준다) 당신도 당신이 한때 어린이였음을 잊은 것은 아니던가?


이처럼 『존엄성 수업』은 수많은 권리 개념과 그에 얽힌 이해관계를 다룬다. 당신이 인지하고 있었던 범위에 관하여서는 통쾌한 공감을, 당신이 인지하고 있지 못하던 부분에 관하여서는 새로운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

 

 

[최호용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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