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음악과 회화 간의 이행 [문화 전반]

음악을 듣고 어떤 그림을 떠올리고, 그림을 보고 특정 음악을 떠올릴 수 있는가
글 입력 2021.03.06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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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Synesthesia, 번역하면 “공감각”이라는 말이다. 공감각은 동시 감각의 속성을 지니며, 어떤 감각에 자극이 주어졌을 때, 다른 영역의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감각 간의 전이 현상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글자와 숫자를 볼 때 색깔이 느껴지고 음악과 촉감에 대해 향과 맛이 느껴지는 것과 같이 여러 감각이 서로 연결되어 느껴지는 현상으로서 음악-색 공감각과 문자소-색 공감각으로 나뉜다. 전자는 서로 다른 음색이나 음이 다른 색깔을 띠는 것이고, 후자는 요일, 글자, 숫자 등에서 특정 색을 보는 것이다. 이러한 능력은 음악과 회화 사이에 뚜렷하게 있던 경계선을 붕괴시켰으며, 회화를 단지 재현의 모방 또는 인식론적 변용이라는 면에서 탈피시켜 ‘새로운’ 형식으로서의 회화를 가능하게 했다. 이러한 능력을 가진 대표적인 화가로 손꼽히는 사람이 파울 클레, 칸딘스키, 쿠프카 등이다. 파울 클레는 자신의 저서인 『현대 미술을 찾아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며, <빨강의 푸가>와 <리듬에 관하여> 등과 같이 그가 음악을 어떻게 회화에 표현했는가를 잘 보여준다.

 

 

색은 일차적으로 질입니다. 둘째로 색은 색가(色價) 뿐만 아니라 명암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무게이기도 합니다. 셋째로 색은 질과 무게인 동시에 크기이기도 합니다. 색은 한계, 넓이 범위를 갖고 있으며 이 모두는 측정될 수 있습니다[1].

 

 

여기서, 그림이 어떻게 음악과 연결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함축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회화는 여러 가지 선이나 색채로 평면상에 형상을 그려 내는 조형 미술로 정의된다. 음악은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영역의 음과 소음을 소재로 하여 박자, 선율, 화성, 음색 등을 일정한 법칙과 형식으로 종합해서 감정을 나타내는 예술이다. 이에, 회화는 3차원의 세계에 실재하는 구체적인 소재에 바탕을 두고 공간적인 대상을, 말하자면 항구적인 형태로 창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반면, 음악은 문예나 무용과 더불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성, 전개된다. 따라서 조형예술을 정적이고 공간예술로, 음악을 동적이고 시간예술로 부른다.

 

이에 회화의 음악성에 초점을 맞추어 자신의 예술세계를 표현한 칸딘스키의 예술관을 설명함으로써, 음악과 회화 사이에 어떻게 이행이 가능한지에 대해 살피고자 한다. 이때, 칸딘스키의 예술관은 니체의 (비극)예술관과 쇤베르크의 예술관의 영향을 받았으므로, 음악과 회화 사이에 이행이 어떻게 가능한 지에 대해 설명하는 데에 있어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을 기저에 놓고 전개하고자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체코의 화가인 프란티세크 쿠프카(Frantisek Kupka)의 The Primitive를 회화의 음악성에 근거하여 개인적인 견해로 분석하려 한다.

 

 

 

1. 칸딘스키의 예술관


   

칸딘스키(1866~1944)의 예술관에 대해 살펴보기 전, 칸딘스키에게 영향을 끼친 쇤베르크(1874~1951)에 대해서 먼저 알아보고자 한다. 표현주의 음악가인 쇤베르크는 화성 체계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옴으로써 현대 음악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인물로 그의 12음기법[2]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의 음악적 세계는 회화와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형식적 구조와 기존 예술의 관습적 방법에 대한 비판의식이 기저에 있다. 12음기법은 풍부한 화성과 다양한 음색을 추구하는 것으로서 “내면적 세계”를 표출하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따라서, 그는 “주관성”을 중시했으며 무조음악을 통해 내면적 세계의 자율성을 확장시킨다. 무조음악은 조성(전통음악)의 구속을 받지 않는 것으로서 그 시대의 예술관을 탈피하고자 했던 쇤베르크의 성향을 잘 보여준다[3].

 

칸딘스키와 쇤베르크는 동시대 인물로서 서로에게 영향을 끼쳤다. 이 시기는 음악과 회화에 있어 혁명적 전환기로서 예술 세계에 대한 재정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재정의된 예술 세계는 바깥에 있지 않으며 주관의 내면에 있는 것으로서 칸딘스키는 음악적인 체험은 청각적인 것이 아니라, 순순히 영혼, 즉 내적 세계에 있는 것이라고 파악한다. 이런 그는 음악적 회화를 추구하는데 이는 정신적 내면세계의 욕구와 충동들이 지적인 고요함 속에 머물러 있지 않고 역동적인 힘과 긴장들의 관계 속에 있기 때문이다. 칸딘스키는 예술을 구성하는 두 요소를 크게 “색채”와 “회화”로 보았으며 이것이 각각 “언어”로서의 기능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즉, 색채와 형태는 단순히 시각적인 효과만을 드러내 주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존재하는 “울림”을 담고 있음으로써, 우리의 영혼을 향해 호소하는 일종의 언어가 된다. 색채는 영혼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수단이며 살아있는 본질로서 인간의 육체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초인적 힘이다. 반면 형태는 어떤 실재적인 대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추상적이며, 자기의 음향을 갖고 있다. 결론적으로, 그에게 회화란 색채와 형태로 구성된 것이고 이것들은 내적 세계의 외화이며, 내적 세계는 울림, 즉 생명력을 가지고 그 자체로 존재하는 필연성의 세계이다[4].


 

 

2. 니체의 예술관


 

니체의 비극적인 예술관에 대한 전개는 『비극의 탄생』에서 자세히 드러난다. 니체는 고대 그리스 비극 예술의 정신을 해석하고 현대에 적용하여 새로운 창조적 인간상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위해 그는 예술의 두 원리로서 서술하고 있는 것은 ‘아폴론적인 꿈’과 ‘디오니소스적인 도취’로서, 이 원리들이 바로 인간 삶과 실존의 두 원리이기도 하다[5]. 따라서 니체에게 예술은 “삶의 최고 관제이며 진정한 형이상학적 활동”이다. 그는 자신의 예술을 설명하기 위해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 성질 - 예술적, 미학적 범주 - 을 형성하며,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은 항상 새롭게 잇달아 탄생하면서 서로를 고양시켜 가면서 그리스 본질을 지배해왔다고 언급한다[6]. 이는 대립의 과정이며 이로써 비극 예술이 탄생한다. 정확히 말해서는, 디오니소스적 비극 예술이 참된 예술로서 비극은 단순히 비극으로 끝나지 않으며, 비극에 내재한 힘, 그것은 인류의 원초적 힘이고 신화적 힘이다[7]. 니체는 당시의 기독교적인 현실에 대해 비관적인 시선을 갖고 이를 뛰어넘고자 했으며 이를 위해 인간의 내면에 내재한 원초적인 힘을 이끌어 내고자 하였고, 이때, 예술의 힘을 빌려온다.

 

 

음악은 의지로서 나타난다. 이 경우 의지는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의미에서의 의지이다. 즉 그것은 미학적이고 순수하게 관조적이며 욕구 없는 기분과는 반대의 것을 의미한다[8].

 

 

이 예술은 정형화되고 조형화된, 생명 없는 예술이 아니라 비극적이 예술, 즉 힘의 의지로 가득 찬 것이다. 결론적으로, 디오니소스적인 것 자체가 곧 삶의 원동력이며, 삶의 환희를 불러일으키게 하는 예술의 근원적 현상이며, 그것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예술이 음악과 비극적 신화이다[9].


 

 

3. 음악에서 회화로의 이행이 가능한 이유


   

이 논의에 앞서, 음악의 어원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음악이라는 말은 ‘music’과 대응하는 말인데 뮤직은 원래 그리스어 ·라틴어에서 유래하였다. 그리스어 무시케(musikē)는 무사(musa)들이 관장하는 기예(技藝)라는 뜻이다. 무사(複數로는 무사이)는 그리스신화의 주신(主神) 제우스가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에게 낳게 한 9명의 여신으로, 시신(詩神), 또는 시의 여신으로 번역되며, 각기 서사시·서정시·비극·희극·무용·역사·천문 등을 맡아보았다. 따라서 그리스에서의 무시케는 아주 넓은 의미를 지녔고, 특히 역사나 천문을 포함하고 있는 것은 무시케가 시간이나 운동과 깊은 관계를 지닌 인간 활동의 총체를 나타내기 때문이며, 역사나 천문도 그와 같은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같은 어원적인 면에서, 음악에는 회화적인 요소가 이미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음을 조심스럽게 주장할 수 있다.  

 

칸딘스키의 주장처럼, 음악에서 회화로의 이행이 가능한 이유는 근원적으로 니체의 예술관을 통해 설명될 수 있다. 니체에 있어 디오니소스적 예술 충동은 비조형적 예술을 의미하며 음악이 대표적이며, 아폴론적 예술 충동은 조형적 예술을 가리키며 조각과 회화가 그 예시이다. 니체는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절대 단절되어 존재할 수 없으며, 디오니소스적인 것 없이는 아폴론적인 것이 있을 수 없다고 한다. 즉, 예술은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이중성이 상호 조화를 이뤄 결합함으로써, 영원하고 근원적인 예술이 된다. 물론 이때, 니체는 디오니소스적인 예술을 더 근원적인 것으로 바라보며, 음악은 그 자체 자유적인 내적 구조와 논리를 가지고 있으며 이것이 다양한 음들의 관계를 나타내며 음들 사이의 차이가 갖는 관계가 바로 역동성이며 이것이 힘에의 의지의 또 다른 양상으로 파악된다고 생각한다[10].

  

니체의 이러한 미학적 설명에서 우리는 음악과 회화는 결단코 단절되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각각의 분야가 아니라 서로 상호 조화의 결합 속에 있는 예술이라는 것을 명확히 할 수 있다. 이로써 청각적인 특징이 강한 음악과 시각적인 특징이 강한 회화가 서로 연결될 수 있는 근거가 정확하게 마련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칸딘스키는 예술작품을 외적인 것에서 내적인 것으로 끌고 옴으로써, 이를 가능하게 했으며, 이를 표현한 순수회화적 수단이 바로 ‘추상’이었다. 따라서, 그는 정신적 내면세계의 욕구와 충동들이 지적인 고요함 속에 머물러 있지 않고 역동적인 힘과 긴장들의 관계 속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음악적 회화를 추구하였으며, 이를 추상적으로 표현한다[11].


 

 

4. 칸딘스키의 그림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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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바실리 칸딘스키, 구성 8, 캔버스에 유채, 140*120cm, 1923

 

 

통상적으로, 위 그림은 다음과 같이 해석된다. 《다양한 형태와 색채의 기하학적 요소들은 차가운 배경 위에 쌍방향으로 혹은 역동적으로 흩뿌려져 있다. 가장 주목할 만한 모양은 캔버스 왼쪽 상단 코너에 그려진 커다랗고 검은 동그라미다. 그것은 작은 동그라미들을 위한 기준점의 역할뿐 아니라, 날카로운 직선 및 삼각형과의 강력한 대조를 유발한다. 맹렬한 활기와 고요가 공존하는 <구성 8>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칸딘스키의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이다.》 이 그림은 작가의 내면세계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서 색과 형태로서 그것이 나타난다.

 

●■▲시리즈는 색과 기하학 사이의 보편적인 상호 관련을 증명하려는 칸딘스키의 시도를 보여준다. 칸딘스키는 이 색과 형태를 대립 시리즈로 지각했다. 노랑과 파랑은 뜨거움/차가움, 어두움/밝음, 적극적/소극적의 극단을 재현하고, 빨강은 둘 사이에 중개자이다. 삼각형, 사각형, 원과 같은 양극성의 그래픽 등가물이다[12]. 아래의 표는 『점, 선, 면』에 나오는 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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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참고한 뒤, 그림을 보면, 대부분의 색감이 이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도형들도 삼각형, 원, 사각형으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5. 쿠프카의 그림 분석(앞의 논의를 바탕으로 하되, 개인적인 견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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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The Primitive

 

 

이 작품에는 몇 가지의 색깔들이 반복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명도에 따른 빨강, 검정으로 보이는 듯한 녹색, 빨강과 하양 간에 하양 쪽에 기울어져 있는 색들이 그것이다. 이러한 색깔들의 총체는 (개인적으로) 이 그림으로 하여금 십자군 전쟁, 즉 “아이들의 십자군 전쟁”을 떠올리게 한다. 십자군 전쟁은 11C 말에서 13C 말 사이에 서유럽의 그리스도교도들이 성지 팔레스티나와 성도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8회에 걸쳐 감행한 대 원정이다. 하지만, 이것을 단지 종교 전쟁이라고 할 수 없는데, 이는 전쟁에 참전한 사람들의 심리 상태 때문이다. 봉건영주와 하급 기사들은 새로운 영토 지배의 야망에서, 상인들은 경제적 이익에 대한 욕망에서, 또한 농민들은 봉건사회의 중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희망에서 참가했다. 하지만, 십자군 전쟁은 점차 패배로 이어졌고, 교황 이노켄티우스 3세는 새로운 십자군으로서 가난한 농민들의 아이들을 징집하였다. 이때, 많은 아이들이 목적지에 도달하기도 전에 처참하게 죽었다. 이 그림에서 빨간색의 사각기둥들은 교회의 고딕 양식들을 나타내는 듯 보인다. 이에 교회의 종교적인 이유로 아이들이 죄 없이 죽어간 피 값으로서 죽음의 교회를 나타낸다고 느껴진다. 이러한 교회 건축물 위에 떠 있는 구름과 같은 것은 헛된 구원의 믿음 또는 인간의 욕망 덩어리를 나타낸다고 생각된다.

 

칸딘스키의 의견에 입각하여 해석하면 다음과 같이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사각형은 빨간색이며 높낮이에 따라 그 명도가 다르다. 이는 보통 높은 음의 색깔 명도를 밝게, 낮은 음을 어둡게 표현하는 것과 상통한다. 또한, 위의 구름들은 원형의 변형으로 볼 수 있다. 비록, 원이 파란색을 띠고 있지는 않지만, 수동성을 의미하는 적색과 능동성을 의미하는 황색이 미묘하게 섞여 긴장감을 주고 있다. 이처럼 색채와 형태가 주는 느낌은 슈베르트의 <마왕>과 바그너의 <발퀴레의 기행>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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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마왕 中

(우) 발퀘레의 기행 中

 

 

간단히 이 곡들에 대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슈베르트의 <마왕>은 괴테의 시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된 것으로서 한 아이의 죽음에 있어 아이의 관점으로 그리고 있다. 이때, 통절형식(몇 절로 된 가사이든 가사의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가락으로 노래하도록 만든 작곡 형식)과 대화체를 사용하여 극적인 상황을 더욱 생생하게 드러낸다. 서주의 반주부에 등장하는 셋 잇단 음표는 아픈 아들을 데리고 어두운 밤을 달리는 말발굽 소리를 상징한다. 위로와 힘을 실어주는 아버지의 음성에서는 저음을, 공포에 질린 아들의 떨리는 음성에서는 고음을 사용하고 있다. 다음으로, <발퀴레>는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4편(라인의 황금-발퀴레-지크프리트-신들의 황혼) 가운데 음악과 스토리가 모두 가장 흥미진진하고 박진감 넘치는 작품이다. 이 곡은 감정의 격렬한 폭발과 나직하고 정감 있는 이야기 조가 교차함으로써 드라마틱 한 극적 효과를 낸다. 따라서 이 두 곡은 모두 음의 높낮이를 통해 극적 효과를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로써 <그림 2>에서 나타난 사각형들이 음의 높낮이를 나타냄으로써 그림에서 극적 효과를 나타내고 있으며, 이로써 우리는 이 그림에서 리듬을 느낄 수 있으며, 이때 비로소 음악에서 회화로의 이행을 느낄 수 있으며, 더 나아가 회화에서 음악으로의 이행까지도 느낄 수 있다.

 


각주

1. 파울 클레, 『현대미술을 찾아서』, 박순철 역, 열화당, 1979, p.26.

2. 12음기법은 좀더 '조직적'으로 무조음악을 만들어내는 작곡기법이다. 즉 조성음악에 존재했던 으뜸음을 전혀 인정치 않고 1옥타브 안의 12개음(흰건반7개, 검은 건반 5개)에 모두 동등한 자격을 주어 이를 일정한 산술적 규칙에 따라 배열 진행시키는 음악이다. 12음 음악은 원칙적으로 작곡가가 미리 정해놓은 12개의 음렬을 되풀이 해서 계속함으로써 구성되는 데 한 음이 연주된 경우 나머지 11개의 음이 연주되지 않고는 그 음으로 다시 되돌아 올수 없는 식이다. 이 규칙에다가 12음렬의 역행렬, 반행렬, 다시 반행렬의 역행렬등으로 변화시켜 하나의 음렬로부터 총 48개의 다른 음렬을 만들어낼 수 있게된다. 이렇게 12개의 음을 조직적으로 균등하게 사용함으로써 조성 또는 선법에 입각한 음악과는 다른 체계를 만들어낸다.

3. 홍일회, 「니체와 칸딘스키의 예술론 – 음악과 회화를 중심으로」, 『범한철학』 68, 범한철학회, 2013, p.176-7.

4. 같은 논문, p.178-181.

5. 문성화, 「니체의 창조적 예술관 - 『비극의 탄생』을 중심으로」, 『철학논총』 70, 새한철학회, 2012, p.311.

6. 프리드리히 니체, 『비극의 탄생』, 박찬국 역, 아카넷, 2007, p.85.

7. 문성화, 「니체의 창조적 예술관 - 『비극의 탄생』을 중심으로」, 『철학논총』 70, 새한철학회, 2012, p.314.

8. 프리드리히 니체, 『비극의 탄생』, 박찬국 역, 아카넷, 2007, p.106.

9. 문성화, 「니체의 창조적 예술관 - 『비극의 탄생』을 중심으로」, 『철학논총』 70, 새한철학회, 2012, p.324.

10. 홍일회, 「니체와 칸딘스키의 예술론 – 음악과 회화를 중심으로」, 『범한철학』 68, 범한철학회, 2013, p.175.

11. 같은 논문, p.179

12. 박인찬, 「칸딘스키의 Blue, Red, Yellow와 ○, □, △의 관계성 이론에 대한 동양적 이해」, 『Archives of Design Research』, 한국디자인학회, 1998, p.24.

 


[김소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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