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부생 시절, 교양수업으로 접했던 '인권'과 관련된 수업 이후로 인간의 권리를 마주한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사실 교양수업도 인권이 주였던 수업이라기보단, 교수님께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처럼 인권에 대해 다뤄주셨던 게 전부였지만 말이다.
<존엄성 수업>은 인권 변호사인 지은이가 인간에게 마땅히 허용되어야 할 자유와 권리, 즉 인간의 존엄성에 근거하는 '권리'에 대한 모든 것을 담은 책이다. 책은 인간의 존엄성을 시작으로 생명권, 평등권, 행복추구권 등 총 14개의 챕터로 나누어져 있다.
인권과 존엄성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지만, 중간중간 우리에게 익숙한 소설들을 인용하여 이야기를 풀어내기에 큰 부담 없이 다가왔다. 하지만 이 14개의 챕터를 모두 읽기 위한 관문이 존재했다. 바로 첫 번째 장인 '인간의 존엄성' 파트다. 인간의 존엄성을 필두로 길게 늘어진 권리들에 관해 이야기를 만나려면 '존엄성'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한다고 엄포를 놓듯, 첫 번째 장이 굳게 책의 문을 지키고 있는 느낌이었다.
공감한 부분이 많아서일까, 생각할 부분이 많아서일까. 유독 첫 번째 장의 글이 어렵게 다가왔다. 그 뜻을 이해하기 위해 몇 번이고 밑줄을 긋고, 내 생각을 적어 내려갔다.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을까?'라는 질문을 수없이 하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한 인간의 정체성은 도대체 어떻게 유지되는가?
나는 나라는 생각, 즉 의식 때문인가?
그 의식은 어떻게 작용하는가? 마음의 작용인가, 뇌의 작용인가?
뇌세포도 마음도 바뀌는데, 그 작용인 의식은 바뀌지 않을 수 있는가?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변하지 않는 진정한 나 말이다.
- p.20
첫 번째 장에서 유독 시간이 오래 걸렸던 이유는 작가가 던지는 질문 때문일지도 모른다. 책은 독자들에게 계속하여 질문을 던지지만 유독 '인간의 존엄성' 파트의 질문들이 답에 도달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실 답보다는 내 생각에 도달하는 것이었지만, 이조차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살아가면서 한 번쯤 스스로 물었던 질문이지만, 질문에 그쳤던 질문들을 책을 통해 다시 마주했다. 답을 찾고 싶었지만 찾지 못했던 질문들도 마주했다. 어쩌면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작은 기대도 있었지만, 책은 내게 더 많은 질문과 생각거리를 안겨주었다.
하지만 책은 인간이 존엄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고민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바로 해답을 얻을 수 없는 온갖 질문들을 정신의 선반에 쌓아 놓으며, 이 선반이 말로 존엄성의 근거가 아니겠냐고 말이다. 그리고 이 말에 조금의 해방감을 얻었다. 답이 없는 질문들을 한다고 자신을 답답해할 것이 아니라 이러한 질문들이 나의 존엄성의 이유가 된다니.
이처럼 첫 번째 파트의 글을 오랜 시간 곱씹고 곱씹어 조금의 소화를 시키고 나니 다음 장부터는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인간의 권리를 마주할 수 있었다. 다음 장들을 읽으며 '나'에 한정된 존엄성과 인권에 대한 생각들을 조금씩 비워내며 '타인'에 대한 인권에 대한 생각을 채워갔다. 나를 시작으로 타인에 관해 생각해보고, 나의 존엄성뿐만이 아닌 타인의 존엄성까지 보호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이다. '존엄성 수업'이라는 제목에 맞게 나 자신을 학습시켜가는 느낌이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아직 완전하게 수업을 소화하지는 못했다. 마치 혼자 모든 진도를 빼버린 교수님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듯 혼자 허덕거리고 있는 부분도 있다. 수많은 질문과 함께 지은이의 견해와 생각을 함께 받아들여 나만의 정의를 못 내린 부분도 있다. 이는 아마도 조금의 시간을 더 투자해야 정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이번 수업을 통해 오랜만에 나와 타인의 존엄성, 그리고 권리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해 본 시간이 되지 않았나 싶다. 책이 내게 건넨 질문들에 스스로 모든 답을 내리게 된다면 조금이나마 나은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소망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