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결국 계속 쓰는 사람만이 '좋은 에디터'가 될 테니까

글 입력 2021.03.02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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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에디터란 무엇인가?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로 활동하는 4개월의 시간 동안 글을 쓰면서, 끊임없이 내 머릿속에 맴돌던 화두였다. 좋은 에디터란 무엇일까? 문맥에 맞는 적절한 어휘와 유려한 문장으로 글을 잘 쓰는 사람인가. 누구보다 폭넓은 배경지식과 문화 예술에 관한 통찰력을 갖춘 사람인가.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유익함을 줄 수 있는 글, 긍정적인 에너지와 창의적인 영감을 줄 수 있는 이야기를 담는 사람인가.


아트인사이트 에디터에 지원하기 전 우연히 에디터라는 직업에 관심을 갖게 되어, '컨셉진'이라는 매거진에서 진행하는 '에디터 스쿨'을 수강했다. 그곳에서 배운 좋은 에디터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나고,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관심 있어 하는지 발 빠르게 캐치하며,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에 대한 깊은 통찰과 안목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었다. 단순히 글을 잘 쓰는 것을 넘어, 훌륭한 기획자로서의 자질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배웠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나는 이미 탈락이 아닌가. 글을 잘 쓰는 것도 아니고, 넓은 배경지식과 문화 예술에 관한 통찰력을 갖춘 것도 아니며, 사람들의 관심사와 트렌드를 파악하고, 훌륭한 안목을 갖춘 것도 아니니 말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4개월 동안 글을 쓰면서 기고 직전에 열심히 첨삭할 때를 제외하고, 내가 쓴 글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 다시 읽을 때마다 부족한 부분이 보였고, 이미 '출력중'이 되어버린 글은 고칠 수 없었기에 부끄러움과 아쉬움만이 나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아! 이 부분은 뺐어야 했는데…. 여기서 이 문장은 흐름에 맞지 않는데…. 글을 쓰기 전에, 주제와 관련된 공부 좀 더 할걸…. 문단 구성을 다르게 했더라면…. 여기에서는 어휘 선택이 틀린 것 같은데…. 글 속에 나만의 통찰이나 인사이트는 없는 거야? 아, 너무 뻔한 이야기가 아닐까…. 이번엔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가 아닐까…."

 

때로는 다른 에디터 분들의 글을 보면서, '와 어떻게 이런 글을 쓰실 수 있을까. 대단하다. 멋지다.' 감탄함과 동시에, 내 글이 더더욱 부끄러워지곤 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글쓰기에 자신감을 잃어갔다. 그리고 '좋은 에디터'라는 명칭은 나와 별 인연이 없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정식 에디터 활동 기간이 끝나갈 무렵이 되어서야, 비로소 잃어버린 자신감을 되찾고 내가 생각하는 '좋은 에디터'의 정의를 명확히 내릴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된 계기는 바로 나의 글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깨닫고 난 후부터였다.

 

 


나만이 쓸 수 있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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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댓글을 달아주신 분들에게, 오히려 내가 훨씬 더 감사하다는 걸 아실까? 댓글 하나하나, 정말 기쁘고 진심으로 감사했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이렇게 힘이 되어줄 수 있구나, 도움이 될 수 있구나. 이토록 부족하고 미흡한 나의 글이 누군가에겐 좋은 글이 될 수도 있구나. 그제서야 깨달았다. 아무리 서툰 글일지라도, '나의 글'은 소중하다는 사실을.

 

그리고 문득, 지난달 아트인사이트 대표님과의 면담에서 주고받았던 대화가 떠올랐다.

 

- 철한씨가 생각하는 '좋은 에디터'란 무엇인가요?

- 음...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요.

- 그렇다면, 좋은 글이란 무엇인가요?

- 음... 적절한 어휘와 문맥에 맞는 문장과 논리적인 전개와... 좋은 메시지를 담고, 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긍정적인 가치와 영감을 전해줄 수 있는... 기쁨과 행복을 전할 수 있는... 유익함과 즐거움을 동시에 갖춘...

 

물론,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말해놓고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표님께선 내 대답이 끝나기를 조용히 기다리시다가, 빙그레 웃으시며 한 말씀 덧붙이셨다.

 

- 철한씨는 좋은 건 다 하고 싶으신가 보군요. 이번에 '좋은 에디터란 무엇인가'에 관해서 글을 한 편 써보시는 건 어떠세요?

 

지금 돌이켜보니, 나는 '나의 글'을 쓰려 하기보다 그저 겉으로 볼 때 흠잡을 곳이 없는 글을 쓰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정확히 '좋은 에디터'란 무엇인지, 내가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잘 모르기 때문에, 이것 저것 좋은 말은 다 갖다 붙였던 걸지도 모르겠다. 혹은 그저 '잘 쓰고 싶다'라는 지나친 욕심에 사로잡혔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글쓰기가 존재한다. 소설가에게는 문학적 글쓰기가 중요하고,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하는 신문 기자에게는 논리적이고 의미 전달이 명확한 글쓰기가 중요하다. 수필을 쓰는 사람, 소설을 쓰는 사람, 논문을 쓰는 사람, 기사를 쓰는 사람, 등. 각자 저마다의 글쓰기를 할 뿐이지 우열은 없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에디터도 그렇다. 아트인사이트처럼 문화 예술을 주제로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에디터가 있는 반면, 철저히 자기 자신을 배제하고 하나의 콘텐츠와 사물 혹은 사람에게 집중해서 글을 쓰는 에디터도 있다. 패션 매거진 에디터와 아트인사이트의 에디터가 다르듯,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에디터가 있다.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아트인사이트 안에서도 박철한이라는 에디터가 쓰는 글과 다른 에디터가 쓰는 글이 또 다를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그저 '서로 다른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때때로 다름을 우열이라 착각하고, 건강한 성찰이 아닌 자기 비하와 자책으로 막연히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경우가 많다.

 

바로 내가 그런 경우였다. 막연히 타인의 '잘난 글'을 탐내고 있으니, 오히려 글은 더 써지지 않았다. 억지로 흉내내 쓰더라도, 완전히 그 사람처럼 쓸 수는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의 글'을 써야만 했다. 서툴고 미흡하고 삐뚤삐뚤하더라도, 때로는 단어도 문장도 문단 구조도 엉망일지라도, 나의 이야기와 나의 색깔이 묻어난 글을 썼다. 그렇게, 힘들어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글을 썼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나의 글을 좋아해주는 사람이 생겼다. 블로그를 찾아와 구독을 눌러주는 사람이 생겼다. 매번 어떤 글을 쓰던, 읽어주고 좋아요를 눌러주는 사람이 생겼다. 그리고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내 글이 마냥 못나고 열등한 것이 아니라, 그저 '다른 글'일 뿐이었다는 것을. 그렇게 나의 글이 지닌 가치를 조금씩 발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차 내 글을 부끄러워하고 자책하기를 그만두었다.

 

결국, 좋은 에디터가 된다는 건 나만이 할 수 있는 그 무언가가 되는 것이 아닐까. 왜냐하면, 나만이 쓸 수 있는 글, 나의 글을 쓸 때 가장 그 사람의 가치와 장점이 두드러지게 빛날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누구나 자신에게 주어진 직분에 맞는 글을 써야 할 것이다. 소설가라면 소설답게, 신문 기자라면 기사답게, 패션 매거진의 에디터라면 패션 매거진답게, 마케터라면 마케터답게, 자신이 처한 상황과 목적에 맞는 글을 쓰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거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좋은 ㅇㅇㅇ'이 된다는 것은, 직분에 맞는 글을 쓰는 것을 기본으로 '나의 글을 나답게 그리고 훌륭하게 쓰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대문호인 김훈 작가님과 박경리 작가님의 글쓰기가 선명하게 다르듯, 소설가 중에서도 최정상급에 도달한 사람들은 결국 자기 자신의 글을 쓴다. 마찬가지로 좋은 에디터가 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으로 귀결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이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분야의 주제로,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형태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글을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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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고, 연습하고, 노력하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

 

마지막으로 이슬아 작가님의 책, '부지런한 사랑'의 이야기로 이 글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

 

 

스물아홉 살인 지금은 더이상 재능에 관해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된 지 오래다. 꾸준함 없는 재능이 어떻게 힘을 잃는지, 재능 없는 꾸준함이 의외로 얼마나 막강한지 알게 되어서다.

 

재능과 꾸준함을 동시에 갖춘 사람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창작을 할 테지만 나는 타고나지 않은 것에 관해, 후천적인 노력에 관해 더 열심히 말하고 싶다. 재능은 선택할 수 없지만 꾸준함은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10년 전의 글쓰기 수업에서도 그랬다. 잘 쓰는 애도 매번 잘 쓰지는 않았다. 잘 못 쓰는 애도 매번 잘 못 쓰지는 않았다. 다들 잘 썼다 잘 못 썼다를 반복하면서 수업에 나왔다. 꾸준히 출석하는 애는 어김없이 실력이 늘었다. 계속 쓰는데 나아지지 않는 애는 없었다.

 

어떤 아이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놀랍도록 탁월한 문장을 쓴다. 그가 제출한 원고지에서는 휘황찬란한 빛이 나는 것만 같다. 재능의 광채다. 그런 글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지만 웬만하면 재능이라는 말을 빼고 피드백을 적는다. 그저 너의 글을 읽는 것이 너무 즐겁다고 쓴다. 아이들에게 그저 다음주의 글감을 알려주며 수업을 마친다. 얼마나 평범하거나 비범하든 간에 결국 계속 쓰는 아이만이 작가가 될 테니까.

 

써야 할 이야기와 쓸 수 있는 체력과 다시 쓸 수 있는 끈기에 희망을 느낀다. 남에 대한 감탄과 나에 대한 절망은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그 반복 없이는 결코 나아지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 기꺼이 괴로워하며 계속한다. 재능에 더 무심한 채로 글을 쓸 수 있게 될 때까지.

 

책, 이슬아 『부지런한 사랑』 _'재능과 반복' 중에서

 

 

앞서 내가 생각하는 좋은 에디터에 관하여, "나만이 쓸 수 있는 글, 나의 글을 나답게 그리고 훌륭하게 쓰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여기에서 '훌륭하게'라는 말을 굳이 넣은 이유는 나의 글,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쓴다고 모두가 다 좋은 에디터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어서였다.

 

나는 나의 색깔과 이야기가 담긴 글을 어느 정도 써 내려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고, 그 글을 좋아하는 사람까지 조금씩 생기고 있지만, 여전히 내가 '좋은 에디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역시나 냉정하게 내가 쓴 글을 성찰했을 때 미흡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책을 많이 읽지 않아서 여전히 어휘력은 부족하고, 글쓰기 연습량도 많지 않아서 문장과 문단을 구성하는 것에 능숙하지 못하다. 또한, 어떤 주제로 글을 쓸 때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대충 쓴 글도 있다. 그 주제에 관해서 폭넓게 공부하고 깊이 있게 탐구하여 글을 쓰지 않고,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혹은 귀찮다는 이유로 겉핥기 공부를 하고선 글을 쓴 적도 있다.

 

이런 부분들을 그냥 넘어가고 싶지는 않다. 아무리 내용이 좋다고 해도, 아무리 좋아해 주는 사람이 많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핑계 삼아 '노력과 연습'의 측면에서 미흡한 부분이 있다는 걸 외면하고 합리화하고 싶지는 않다. 분명 이것은 누가 뭐래도 '다름'이 아니라 '노력이 부족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며 자존감을 깎아내리고, 못난 글을 두고 자책하는 일은 더이상 하지 않을 테다. 못 쓴 글을 두고서 괜찮다며 안일한 자기 위로 따위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나름 애쓰고 최선을 다한 나를 칭찬하되, 냉정하게 부족한 부분을 되짚으며 끊임없이 발전하는 글쓰기를 지향할 것이다. 부지런히 공부하고, 글쓰기 연습을 계속하고,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바로 이러한 마음가짐이 좋은 에디터로 향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 아닐까?

얼마나 평범하거나 비범하든 간에, 결국 계속 쓰는 사람만이 '좋은 에디터'가 될 테니까.

 

아직 나는 좋은 에디터가 아니다.

하지만 곧 될 거라고, 반드시 될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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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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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dbwlsq0624
    • 요즘 글쓰기에 벽을 만나 방향을 잃은 기분이었는데, 다시 길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노력하시고 공부하시고 성찰하시는 철한님은 분명 '더' 좋은 에디터가 되실겁니다.^^
    • 0 0
    • 댓글 닫기댓글 (1)
  •  
  • 철한
    • 2021.03.28 23: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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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bwlsq0624고맙습니다 :)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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