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짧은 문장 안에 위로가 숨쉬다 - 시가 사랑을 데리고 온다

그들의 짧게 풀어낸 이야기에, 왠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글 입력 2021.03.02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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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사랑을 입체사진.jpg

 

 

싱숭생숭한 하루가 이어지는 요새였다.

 

금방 끝날 것 같던 코로나가 식을 생각 없이 1년이 지나서였을까. 답답한 마스크는 끊임없이 우리의 호흡을 가로막았고, 사람 간의 관계마저 막아버렸다. 당연했던 삶이 더 이상 당연해지지 않았고, 밥 한번 먹자는 이야기는 이야기로만 남았다. 그러는 시간 동안 나도 모르게 조금씩 가라앉고 있었나 보다.

 

가라앉은 기분은 긍정적이던 나를 생각이 많아지게 만들었다. 미래에 고민하게 만들었고, 그 고민은 현재의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지’, ‘잘 살고 있는 건지’ 등 나를 돌아보게 했다. 그동안 주어진 삶에 크게 불만을 가지진 않았는데 잘하고 있는지 우울한 감정을 가지고 왔다.

 

그러다 문득 시를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평소에 시를 자주 읽던 것도 아니었는데, 갑자기 읽고 싶어졌다. 감수성 충전이 필요했고, 나지막이 읊조리는 듯한 담담한 위로와 공감이 필요했다. 너무 긴 글은 바쁜 삶에 치인 나에겐 지치는 것이었나 보다. 그렇게 나는 오랜만에 시집을 읽었다. 나태주 시인이 뽑은 시 120편이 담긴 「시가 사랑을 데리고 온다」라는 시집이었다.

 

 

나태주 시인 이미지.jpg

 

 

나태주 시인은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 「대숲 아래서」로 문단에 데뷔하여, 등단 이후 50여 년간 끊임없는 창작 활동으로 수천 편에 이르는 시 작품을 발표했다. 그의 대표작 「풀꽃」은 한국이 가장 사랑하는 시로 선정될 만큼 사랑받는 대표적인 국민 시인이다.

 

나태주 시인은 잘 몰라도 ‘풀꽃’만큼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나 역시도 풀꽃이라는 시로 처음 알게 되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드라마의 한 장면에서 시가 등장하며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참으로 와닿았다. 투박하지만 그 누구보다 진심이 깃들어 있으며, 특별하지 않은 단어의 나열이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시였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그의 시가 아닌, 그가 사랑한 시를 한 권에 담았다. 울고 싶은 당신에게, 목마른 당신, 외로운 당신에게, 기도하고 싶은 당신에게 시를 드리고 싶다고 말한다. 시가 사람을 살리는 좋은 약이라는 믿음을 한순간도 놓아본 적이 없다는 그가 사랑한 시 중, 나의 마음에 위로가 된 시 몇 편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약해지지 마 - 시바타 도요


 

 

있잖아, 불행하다고

한숨짓지 마


햇살과 산들바람은

한쪽 편만 들지 않아


꿈은

평등하게 꿀 수 있는 거야


나도 괴로운 일

많았지만

살아 있어 좋았어


너도 약해지지 마

 

 

새벽 2시가 넘어가는 시간. 깊은 고요와 함께 시를 읽었다.

 

뭔가 속에서 울컥하는 기분이 들며 눈물이 나올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시를 읽다가 공감이 되는 경우는 있어도 눈물이 날 것 같았던 적은 없었는데, 새삼 나이를 먹고 있다고 생각을 했다. 공감할 만한 일들을 겪었고, 이 얘기에 위로를 받을 정도의 마음 상태였구나 느꼈다.

 

다른 부분보다도 ‘나도 괴로운 일 많았지만 살아 있어 좋았어’라는 부분에서 오래 여운이 남았다. 미사여구로 화려하게 꾸며진 멋진 말이 아닌 담담하게 전하는 얘기라서 오히려 더 깊이 박혔던 것 같다.

 

시바타 도요는 백 살 가까운 나이에 처음 낸 시집이 밀리언셀러가 되고, 다른 나라까지 번역되어 유명해진 할머니 시인으로, 이 「약해지지 마」는 말하듯이 썼다고 한다. 나보다 몇 배의 삶을 더 산 분이 전하는 살아 있어 좋았다는 말에는 그 어느 것보다 깊은 진심이 짙게 묻어나고 있었다.

 

삶을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지만, 행복하게 오래 살고 싶어지는 문장이었다.

 

 

 

젊은 시인에게 주는 충고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마음속에서 풀리지 않는 고민들에 대해

인내함을 가져라.

고민 그 자체를 사랑해라.

지금 당장 답을 얻으려 말라.

지금 당장 주어질 순 없으니까.

중요한 건

모든 것 그대로 살아보는 일이다.

지금 그 고민들과 더불어 살라.

그러하면 언젠가 미래에

너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그 시간에

삶이 너에게 답을 가져다줄 것이리니.

 

 

요 근래 싱숭생숭했던 마음 중 큰 부분을 차지했던 것은 미래에 대한 고민이었다. 회사에 입사한지 어느덧 2년을 앞에 두고 있는 시점이라 그런 것인지 고민이 많아졌다. 첫 회사생활이었지만 그래도 나름 잘 적응하고 열심히 다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새 주변에서 일이 잘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만두는 경우가 더러 생기면서, 입사 초반에 가지고 있던 ‘나는 이 업무와 잘 맞는가?’에 대한 고민이 다시금 시작됐다. 그리고 ‘내가 가진 이 업무가, 이 직업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것 같은데, 계속 있어도 괜찮을까?’ 등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이어졌다.

 

그러다 이 시를 읽었다. 마음속에서 풀리지 않는 고민을 사랑하라고 말한다. 지금 당장 주어질 수 없는 고민에 답을 얻으려 하지 말고, 더불어 살라고 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삶이 답을 가져다줄 거라고 한다. 우문현답이었다. 내가 최근 끊임없이 되뇌었던 고민들에 어느 정도 답이 내려진 기분이었다.

 

이 직업이 아닌 다른 직업을 가진다고 한들, 아마 나는 또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떤 게 맞는 방향인지 모르는 게 삶이기에, 나는 계속 지금 같은 생각을 반복할 것이다. 그냥 지금 주어진 상황에서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게 무엇일지 끊임없이 고민하며 현재를 살아가면, 미래의 나는 지금의 고민에 대한 답을 알 수 있겠지. 내가 하는 고민은 이제 당연한 것으로 남겨두고 지금처럼 열심히 하루를 살아야겠다 생각했다.

 

 

 

상처 - 조르주 상드


 

 

나는 덤불 속에 가시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꽃을 찾던 손을 멈추지는 않겠네.

그 안의 꽃이 모두 아름다운 것은 아니지만

만약 그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꽃의 향기조차 맡을 수 없는 것이기에.


꽃을 꺾기 위해서 가시에 찔리듯’

사랑을 구하기 위해서는

내 영혼의 상처도 감내하겠네.

상처받기 위해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 상처받는 것이기에.

 

 

참으로 멋진 말이었다. 상처받기 위해 사랑하는 게 아닌, 사랑하기 위해 상처받는 것이라니. 이보다 더 용기 있는 말은 없는 것 같았다.

 

사람과 사람이 가까워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서로의 다름으로 인해 상처받기 쉽다. 그걸 알면서 타인에게 다가간다는 것은 꽤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노력하지 않으면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고 느꼈다. 더욱이 집과 회사만 반복해서 다니는 나 같은 집순이라면 더더욱이나 어렵다. 심지어 낯도 많이 가리고, 혹시나 상대의 미적지근한 반응에 실망할까 먼저 다가가기도 어려워하는 성격이라 관계를 넓혀나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지금보다 폭넓은 삶을 위해서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는 생각이 든 이후로 조금씩 바뀌기 위해 노력을 하고는 있지만, 용기를 낸다는 것은 어려웠다. 이 시인은 나와는 달리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를 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대단하다는 생각과 본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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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시인이 꼽은 120편의 시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나에게 위로를 건넸다. 때론 공감으로, 때론 조언으로, 때론 솔직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위로가 되고 마음에 오래 남았던 3편에 대해 이야기해봤는데, 이 외에도 좋은 내용들이 많으니 한 번쯤 위로가 필요할 때 읽어보길 추천한다.

 

어느덧 시간의 훌쩍 지나 3월이 시작되었는데 마침 삼월에 대한 시가 있어 마지막으로 소개하며 이만 글을 줄인다.

 

 

삼월님이시군요, 어서 들어오세요!

요셔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오랫동안 기다렸거든요.

모자를 벗으시지요-

아마도 걸어오셨나 봐요.

그렇게 숨이 차신 걸 보니.

그동안 삼월님, 잘 지내셨나요?

다른 분들은요

‘자연’은 잘 두고 오셨나요?

아, 삼월님, 우리 2층으로 가요.

밀린 얘기, 하고 싶은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삼월 – 에밀리 디킨슨

 

 
*
 
시가 사랑을 데리고 온다
- 바람이 계절을 바꾸듯 곧 좋은 날이 온다 -
 

엮은이
나태주

출판사 : &(앤드)

분야
외국시
명시모음집

규격
117*198㎜

쪽 수 : 264쪽

발행일
2021년 01월 29일

정가 : 14,500원

ISBN
979-11-91209-80-8 (0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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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미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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