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낯선 드라마에서 익숙한 향기가 난다 - 미란다 [드라마]

글 입력 2021.03.01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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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콤을 보기 시작했다. 이유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웃고 싶어서였다.

 

어느 순간부터 어떤 매체를 보더라도 ‘제대로’ 봐야 한다고 생각하며 작품을 순수하게 즐기기 힘들었다. 특히 ‘과몰입’이 특기인 나에게는 더욱더. 내 전공이 문예창작이다 보니 책은 물론이고 드라마나 영화를 봐도 단순히 즐기기보다 어떤 점을 주의 깊게 봐야 하는지를 의식해야 했다. 작품 텍스트 분석을 하거나 비평문을 쓰면서는 무의식적으로 작품을 카테고리화 하여 묶었다.

 

시트콤 중에서도 <미란다>를 골랐다. 한 시즌당 6화 분량에 시즌도 3이 마지막이니 킬링 타임으로는 적절하다 싶었다. 드라마는 예상대로 유쾌했다. 어이없는 몸개그에 웃고, 썰렁한 말장난에도 웃었다. 주인공의 고난과 시련에도 적당히 몰입하여 볼 수 있다고 느꼈다. 그런데 완결까지 볼수록 단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이거, 내 미래 아닌가?

 

 

 

드라마 <미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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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미란다>는 영국 BBC에서 방영한 시트콤으로, 34살에 키가 185cm인 여성 미란다가 그 주인공이다. 미란다는 장난감 가게를 운영하지만, 일보다 자신이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손님이 장난감 가게에 들어와도 고객 응대는커녕 손님을 놀리기 바쁘다. 장난감 가게의 주인은 미란다지만, 실질적 운영은 그의 친구인 스티비가 전부 할 정도이다. 심지어 가게는 종종 스티비에게 맡기고 뛰쳐나간다.

 

그렇다고 해서 미란다가 외향적인가. 전혀 아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금방 당황하여 생뚱맞은 말을 하거나, 몸이 굳어 홀로 넘어지기도 한다. 심지어 초면인 사람에게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내뱉는다. (예컨대 자신이 체조 국가대표라던가, 애가 둘이라던가) 홀로 여행 가는 것도 어려워 동네 호텔에 예약해놓고 주위 인물들에게 해외로 바캉스를 보낸 척 속이기도 했다. 거절도 잘 못 해 그의 어머니가 매일 결혼 하라고 잔소리하고 남성을 소개해주려고 해도 우물쭈물 거절을 미루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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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어딘가 모자란 인물인가 하면 또 답하기 어렵다. 미란다라는 캐릭터가 아주 입체적이기 때문이다. 왜 미란다의 이야기는, 아무리 시트콤이라고 해도 예측이 어려울까. 미란다의 행보 자체에 ‘나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그의 큰 체격과 적은 연애 경험을 비웃어도 미란다는 주어진 조건에서 비관하지는 않는다. 스티비나 주변 인물과의 대화에서는 마치 좋은 연인을 만들고 싶은 것처럼 보이지만 미란다에게 연인은 있으나 마나 자신의 삶이 즐겁다.

 

심지어 가게가 망하고 어쩔 수 없이 일반 회사에 출근했을 때 미란다의 대처는 흥미롭다. 보통의 사람들처럼 주눅 들어 있다가도 결국 이 일이 자신과 맞지 않음을 알고 상사에게 바로 외친다. “이 일 정말 재미없어요!”라고. 심지어 윗옷을 벗고 회의 중에 뛰쳐나가 버린다. 미란다는 그 일을 겪고 나서 다시 장난감 가게를 되찾는다. 우스꽝스러운 일상임에도 미란다 자체가 우스워 보이지 않는 이유도 그의 행보 때문이다.

 

 

 

제목은 내 미래로 하겠습니다. 근데 이제 로맨스와 코미디를 곁들인.


 

그렇다면, 미란다는 멋진 여성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앞서 나는 내 미래가 미란다와 같을 것이라 말했다. 내 미래에 자신 있다는 말일까? 아니다. 미란다의 삶이 내 미래 같다는 것에서는 두 가지의 차이가 존재한다. ‘로맨스’와 ‘코미디’

 

미란다는 키가 185cm에 체격이 크고 연애 경험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는, 종종 주변에 비웃음을 받지만, 자신의 삶 자체를 즐긴다. 게다가 자신이 오래 짝사랑했던 동기 게리와, 시즌 3에서는 진심으로 그를 사랑하는 마이크와 엮인다. 드라마 <미란다>에서 그의 삶에 가장 집중하는 것이 ‘코미디’와 ‘로맨스’이다.

 

그리고 다시 나의 삶과 비교해보자면, 일단 내 삶은 배꼽이 빠질 것처럼 유쾌하지도, 누군가를 사랑하여 마음고생을 한 적도 없다. 그러나 나는 미란다에게 강렬하게 끌렸다. 이 드라마에서 로맨스와 코미디적인 장면만 빼면, 현재 내 삶이자 내 미래임이 분명한 것을 느껴버렸다.

 

점점 주변에서 압박이 오기 시작한다. ‘남자친구는 있어?’ 혹은 더 나아가서는 ‘너 혹시 여자 좋아하니?’라는 질문도 종종 받는다. <미란다>에서는 결국 결혼 압박으로 어머니에게 자신이 레즈비언이라 거짓말한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어머니의 반응은 의외다. “네가 여자라도 좋아해서 다행이야. 난 또 아무도 사랑하지 않은 줄 알았지.”라고 답하고는 레즈비언 축하 파티를 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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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에 첫 시즌이 방영되어 2013년에 종영되었지만, 2021년인 현재까지 이 드라마가 다루는 요소들은 여전하다. 성별, 나이, 결혼 여부 등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요소는 만국 공통이라고 할까. 편견이지만, 나는 <미란다>를 보기 전까지 서양 문화권이 결혼에서는 조금 더 관대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미란다 역시 30대 중반 여성으로, 어떠한 뚜렷한 성과가 보이지 않은 점에서 주변에 비웃음을 받고 압박을 받았다. 나와 마찬가지로 2020년대에도 수많은 미란다가 존재하고 있다. 그나마 우리를 위안해주는 건, <미란다>처럼 코미디라도 더 있기를 바라는 것 아닐까.

 

 

[이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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