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작년 12월 초 졸업 요건인 졸업작품을 완성하고, 나는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우선 자기소개서를 쓰기 위해 내 노트북 어딘가에 흩어져 저장되어 있는 자기소개서를 한곳에 모았다. 주로 학교 소모임이나 대외활동에 지원할 때 쓴 것들이었는데 개중에는 아트인사이트 지원 서류도 있었다.

 

나는 17기로 에디터 활동을 시작했다. 사실 아트인사이트를 알게 된 건 그전 기수지만 지원하지 않았다. ‘에디터’라는 직함이 나에게 너무 과분하게 느껴진 것도 있지만, 사실 가장 큰 이유는 7개나 되는 문항과 1건의 콘텐츠 기고 때문이었다. 분량 제한은 없었지만, 그전에는 겪어본 적 없던 지원 방법에 스스로 위축되어 지원서 파일까지 열어보고 나는 포기했다.

 

신기하게도 나와 가까운 친구가 그 기수에 합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친구의 에디터 활동을 지켜보며 내심 부러워하다가 다음 17기 모집에 나도 용기를 냈다. 그리고 아주 운이 좋게도 합격했다. 무려 1/12의 경쟁률을 뚫은 것이다. 사실 그때 제출한 영화 리뷰를 다시 읽어보라고 한다면 나는 단연 고개를 저을 것이다. 그 정도 분량의 영화 리뷰를 써본 적도 없었거니와 여러 번 엎고 새로 쓴 글 인지라 많이 퇴고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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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출한 지원서의 내용 일부

 

 

하지만 자기소개가 포함된 지원서는 지금 봐도 기분이 이상하다. 구체적으로 문장을 콕 집어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전반적으로 ‘정말 에디터 하고 싶습니다’라는 진심이 느껴진다. 아마 나의 진심이 읽는 이에게 전달됐기 때문에 뽑히지 않았을까 혼자 조심스레 추측하다가 지원서 파일을 끄고 나면 정말 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나의 생각을 흘려 보내지 않고 잡고자 한다던 김혜정은 어느순간 흘러가는 생각들을 지켜보고만 있다.

 

2020년을 돌아보면 졸업을 앞둔 4학년으로서 정말 바쁜 한 해였다. 충분히 예상한 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일찌감치 오피니언에서 리뷰 기고로 활동 범주를 옮겼다. 에디터 활동을 이어가고 싶었지만, 학기 중에는 오피니언을 쓰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 충분치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리뷰글은 정해진 주제와 10일 이내에 기고해야 하는 마감 기한이 있어 오히려 쓰기 편했다.

 

그렇게 거진 1년 동안 나는 도서와 전시, 영화 리뷰 글을 기고했다. 그리고 지금 그 시간의 후폭풍을 겪고 있다. 처음 에디터 활동을 시작할 때 가장 힘들었던 점은 일주일에 한 편씩 글을 기고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 정도 분량의 글을 꾸준히 써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때와 비슷하다. 어떤 주제로 써야 할지, 어떻게 글을 구성해야 할지 그 ‘감’을 다 잊어버렸다.

 

*

 

사실 여태껏 장황한 이야기를 늘어놓은 이유는 지금부터 쓸 글을 위한 주춧돌을 깔아 놓기 위함이다. 나는 다시 훈련을 시작하고자 한다. 나의 생각을 매어 두는 훈련말이다. 매주 한가지 주제로 글을 쓸 것이다. 많으면 한달에 다섯 편의 글이 완성될 것이고, 나는 그중 두,세 편을 오피니언으로 기고할 것이다.

 

이렇게 독자분들께 선언하며 나는 도저히 안 쓸 수 없는 환경을 완성했다. 글의 주제는 앞서 언급했던 친구에게 부탁했다. 그에게 받은 문장이나 단어로 주제 삼기 때문에 나는 어쩌면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것에 대한 글을 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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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내가 받은 주제는 <끝>이다. 지난 월요일, 나는 대학을 졸업했다. 온라인으로 진행된 학위수여식이 끝나고 들어간 학교 홈페이지에서 어느새 나의 학적상태는 ‘졸업’으로 바껴있었다. 나는 아직 졸업장을 만져보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학교가 나에게 선을 긋는 기분이었다.

 

작년 12월부터 내가 관심있는 회사의 채용공고가 뜰 때마다 나는 열심히 서류를 준비하여 지원했다. 가장 최근에 지원한 곳 까지 네,다섯 곳은 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 서류조차 합격해 본적이 없다. 서류를 제출하고 항상 유튜브로 ‘면접 꿀팁’을 검색하던 나는 세 번째 1차 탈락 이후로 ‘자소서 꿀팁’을 검색한다.

 

아무 곳에도 속하지 못한 채 다가오는 3월을 맞이하는 나는 불안과 아쉬움에 사로잡혀 있다. 우선 소속되지 못한 상태는 나를 극도로 불안하게 만든다. 돌이켜보면 나는 어딘가에 속하지 못한 상황을 견디기 힘들어했다. 어쩌다 친구들과 사이가 나빠져 교실의 쉬는 시간 공기가 싫었던 때도, 남들은 어디라도 가는데 나는 그 어떤 대학도 가지 못해 스스로 인생의 암흑기라고 정의하는 스무 살도 나는 혼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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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어느날 꾼 꿈

 

 

대게 많은 친구들이 졸업 후 안정적인 직장에 안착하는데 1년 정도 걸린 것을 생각하니 더 아찔했다. 나 스스로 과도기라고 생각하고 있는 지금이 사실은 시작인 걸까?

 

내가 숨 쉬고 있는 지금이 2월의 마지막 날이고, 그마저도 몇 시간 뒤면 끝나는 것처럼 생각해 보면 어차피 모든 것은 결국 끝이 난다. 내가 영원히 학생 신분일 수 없듯이. 항상 어떤 것에 속해 있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영원히 잡고 있을 수 있는 건 아마 없을 것이다. 모두 그 상황에 익숙해지면서 견디는 게 아닐까라는 막연한 생각이 든다. 하지만 태어나 세 번째로 고립을 느끼고 있는 지금의 내가 오롯이 ‘혼자’ 사는 방법을 알 리가 없다.

 

불안과 동시에 <끝>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아쉬움을 불러오기도 한다. 아쉬움은 만족스럽지 못해 미련이 남는 감정이기 때문에 내가 충분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의 인생을 관통하는 형용사를 하나 꼽자면 ‘아쉽다’가 아닐까. 과정에서 내가 최선을 다했든 그 반대든, 나는 항상 결과에 미련을 느낀다. ‘밤에 잠들지 못하는 사람은 그 하루가 아쉬워 보내지 못하는 것’이라는 맥락의 글을 본 적이 있다. 해가 바뀌고 나는 불면증에 시달리는 중이다. 이부자리에 누워 눈을 감으면 오늘 하루 나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머릿속으로 체크리스트를 작성한다. ‘오늘 계획 n가지 중에 이것저것그것 완료, 하지만 그것저것이것저것그것 하지 못함. 하루 종일 뭐 한 거니?’ 오늘 하루도 수고했고 잘 가라고 보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수능을 준비하며 들었던 인터넷 강의의 강사가 수험생의 열의를 돋우어 주기 위해 했던 말이 생각난다. ‘다시 돌아가라고 해도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삶’ 주어진 순간에 나의 모든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다시 기회를 준다고 해도 할 수 없는 인생. 나에게 물어본다. 2020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2019년으로? 2018년으로?... 가능하다면 2016년으로 돌아가고 싶다. 사실 이렇게 스스로를 심연에 빠뜨리는 생각은 끝도 없이 할 수 있다.

 

하지만 몇 년 뒤 돌이켜봤을 때 2021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도록 지금부터 아쉽지 않은 삶을 살고자 한다. 어차피 5분 전이나 6시간 전, 어제는 더 이상 내가 돌이킬 수 없다. 올해의 첫 오피니언으로 자기고백을 하는 만큼 나는 이 글도 오래 붙잡고 있지 않고, 즐겁게 기고하고 싶다. 동사 <끝나다>의 첫 번째 뜻 처럼 나의 일이 다 이루어지길 바라며 첫 번째 글을 끝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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