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혼다 츠바사 - 일본 패션의 정석 [사람]

글 입력 2021.02.26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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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설명하는 방법은 꽤 다양하다. 외적인 모습을 하나하나 꼬집어가며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조금 두루뭉술 하더라도 비슷한 것을 예로 들거나 그것에 빗대어 설명할 수도 있다. 혹은 특정한 면을 잘 보여주는 단어로 전반적인 이미지를 제시할 수도 있다. 그 대상이 사람, 동물, 물건, 혹은 어떤 나라라 할지라도 가능하다. 우리가 만들어낸 언어라는 도구는 이 매력적인 현상을 가능하게끔 한다.


우리가 사는 이 지구에는 꽤 많은 나라가 있는 것 같지만, 그 수를 세어보면 약 193개 정도 되는데, 생각대로 많다. 익히 알고 있는 미국이나 일본부터 아랍 에미리트, 슬로배니아 처럼 생소한 곳도 있고 어느 섬을 구매해서 이 섬이 자신의 나라이고 스스로는 국왕이라고 칭하고 있는 별 희한한 곳도 있다. 물론 정식 국가 취급은 못 받는다.


하여튼 이 많은 나라를 우리가 세세하게 기억할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대게는 특정한 장소나 추억으로 기억하는데, 유독 일본이라는 나라를 언급할 때는 ‘감성’이라는 키워드가 많이 등장한다. 일본 감성 필터, 일본 감성 영화, 일본 감성 사진 등등 일본과 연관된 것에는 늘 이 “감성”이라는 것이 따라온다. 심지어는 감성 연구소까지 있다. 그럼에도 감성이 뭐냐 물으면 답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앞에서 한 가지 빼 먹은 것이 있는데 일본 패션에도 감성이 붙는다. 다행스럽게도 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는 설명할 수 있어서 머리 아플 일은 없지 싶다.

 

 


은근함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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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via WEAR

 

 

패션은, 그중에서도 옷이라는 분야는 매우 분명하고 뚜렷하게 시각적인 분야다. 우리가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복잡한 비유나 서술로 쓰인 글, 전체적인 흐름으로 해석 해야 하는 영화나 어떤 지식과 화풍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해석해야 하는 그림이 아니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이 곧 그 패션에 대한 해석으로 이어진다. 결론적으로 어떤 사람의 패션을 이해하는 것은 그 사람이 입은 옷들을 읽어내는 눈만 있으면 즉시 이해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미술 교과서에서 질리도록 봤던 몬드리안의 그림을 그냥 볼 때는 색깔 있는 타일 몇 개 끼워서 그린 그림처럼 보이지만 그가 수직, 수평, 평행 등 일관성 있고 정돈된 것을 진리로써 추구하던 사람임을 알고 난 후에는 그 그림 한 편에서 많은 것이 보임과 같은 이치다.


‘일본 스타일’이라고 부르는 패션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먼저 몸에 달라붙는 것보다는 여유를 두고 넉넉하게 떨어지는 실루엣을 선호한다. 여기서 말하는 패션은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자주 접하고 인스타그램 등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그런 패션이다. 시부야나 아키하바라, 우라하라 등에서 보이는 그런 개성적인 것들은 제외한다. 일본은 특히 대중적인 패션과 개성 강한 패션 사이의 거리감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유달리 먼 편이라 개성적인 것들까지 포함하면 특징을 잡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일본 사람들이 넉넉한 실루엣의 옷을 선호함에는 정서적인 영향도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도 그렇고 언어 표현에서 비유적인 표현이 발전한 문화권은 자신의 의사나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출하거나 전달하는 것보다는 한 바퀴 돌려서 은근히 표현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면이 아직 남아있어 자연스럽게 신체를 부각하는 것보다는 너무 과하지 않게 가리는 쪽으로 발전한 것 같다. 상의는 너무 크지 않은 블라우스나 스웨트 셔츠, 혹은 민소매를 입고 하의는 긴 치마나 통이 넓은 바지를 입는 연출을 많이 볼 수 있다. 혹은 비슷한 색의 옷을 배치하는 톤온톤(Tone-On-Tone) 스타일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일본 패션은 비비드하고 눈에 띄는 강렬한 색보다는 은은하고 차분한 파스텔 톤 계열의 색을 선호한다. 무채색을 선호하는 경향이 좀 더 뚜렷한데 옷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추구하고 싶지만 다른 사람의 시선이 신경 쓰이니 너무 튀는 디자인이나 색보다는 밝기는 하되 은은한 계열의 색을 선택한다. 자신의 개성과 타인의 시선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아낸다. 나쁘게 말하면 지나치게 눈치 본다고도 할 수 있지만 이런 흐름이 일본 특유의 스타일을 만든다. 너무 시끄럽지도 너무 조용하지도 않은 적당히 손님이 있는 한적한 카페처럼 소란스럽지 않게 자신만의 개성을 조심스럽게 보여주는 매력이 있다.


일본의 스타일은 공손하다고도 표현할 수 있다. 화려한 프린팅이나 디자이너의 개성이 뚜렷하게 반영된 독특한 디자인보다는 전체적인 실루엣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그중에서도 오버핏이나 세미 오버핏 상의에 마찬가지로 와이드 또는 세미 와이드 핏의 하의를 조합하여 전체적으로 이어지면서 몸을 살짝 감싸듯 떨어지는 실루엣의 스타일이 많다. 화려하고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 자신을 조금 숨기면서 은근하게 드러내는 공손한 스타일이다. 여기에서 조금 더 과감한 이들은 앞서 말 했던 파스텔 톤 계열의 다른 색들을 추가하여 밝은 모습을 연출하고 시선의 벽을 넘어서는 사람들은 종잡을 수 없는 과감한 스타일로 나아간다.

 

 

 

혼다 츠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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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via Honda Tsubasa Official Instagram

 

 

일본 패션 특유의 감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람은 혼다 츠바사다. 왓챠에서 봤던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결 코노 에츠코”라는 정말 일본다운 제목의 드라마에서 친구가 이시하라 사토미에 열광할 때 나는 혼다 츠바사에 푹 빠졌다. 그렇게 시작된 덕질로 이것저것 찾아보니 혼다 츠바사가 패션모델로 활동을 시작하다 배우로 넘어오게 된 것을 알았고, 곧바로 인스타그램 계정을 팔로우했다. 그리고 데일리룩처럼 올라오는 게시물들을 보면서 일본의 패션 스타일을 설명하는 것에 그녀보다 적합한 대상은 없음을 확신했다.


혼다 츠바사의 패션은 한 편의 일본 로맨스 청춘 영화를 보는 기분이다. 포멀한 것보다는 캐주얼이나 스트리트 패션에 가까운 스타일을 추구하지만 과하지는 않다. 펑퍼짐한 실루엣과 은은한 색들을 많이 사용하는 편인데 소녀와 숙녀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나처럼 일본 영화나 드라마를 즐겨보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지만 반대로 나와 같은 사람들은 아마 그녀의 스타일을 보는 순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 속에서 배우들이 입는 옷을 주의 깊게 보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느냐만 서도 일본 작품 좋아하는 사람들은 은연중에 일본만의 독특한 감성을 습득하게 된다. 그 축적된 감성은 패션에도 효과를 발휘한다.


혼다 츠바사의 스타일을 뜯어보면 상의나 하의, 이너웨어는 소녀의 모습을 보여준다. 꽃무늬 원피스나 색이 들어간 후드에 통이 넓은 슬랙스나 청바지를 즐겨 입는다. 그녀의 아이 같은 모습이 강한 얼굴이 더해지면 영락없는 드라마 속의 소녀가 완성된다. 하지만 아우터나 신발, 혹은 가방은 숙녀의 모습을 보여준다. 코트나 블래이저를 즐겨 입고, 로퍼나 부츠를 자주 신는데 캐주얼하게 입을 수 있는 오피스웨어에 가까운 디자인의 제품이 많은 편이다. 가방도 백팩이나 크로스백 보다는 토트백을 든 모습이 많다. 이런 것들로 이너를 가렸을 때 그녀의 스타일은 소녀에서 숙녀로 변하게 된다. 반대로 이들을 치워내면 다시 소녀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믹스매치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더할 나위 없이 잘 활용하고 있는 사람이다.


혼다 츠바사의 패션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한여름 바다의 뜨거운 태양보다는 어느 초여름 날에 부는 시원한 바람과 커튼 너머의 햇살”이다. 문학적인 감성을 가득 담아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표현력으로 거창하게 자판을 두들겨 만들어 낸 표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맞다. 우리 내는 덕질하는 순간만큼은 팔불출이 되는 것을 허락받는다. 그 덕질을 나는 내가 좋아하는 패션으로 풀어내고 있을 뿐이다.


그녀의 패션은 시선을 끌어 어디를 가나 튀는 강렬하고 개성 가득한 스타일은 아니다. 화려한 패턴이나 프린팅, 디자인보다는 전체적인 실루엣과 은은한 색의 조합으로 부드러우면서고 포근하게 풀어내는 스타일이다. 여름은 모든 것이 뜨겁게 요동친다. 젊음의 열정으로 가득 차 어느 정도의 세월을 살아온 사람들은 그 청춘을 바라보며 약간의 생기를 얻어가는 계절이다. 강렬하지는 않지만 깊고도 부드럽게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보게 하는 그녀의 스타일에 담긴 분위기를 이러한 문장으로 표현하는 이유다. 어리다고 하기에는 많고 어른이라 하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에 있어 이런 매력에 더욱 끌리는지도 모른다.

 

 

 

정답은 없다



일본 패션은 모호한, 조금 소심한 사람들에게 아주 좋다. 패션에 있어 소심하다는 것은 자기 개성을 표출하고 싶은 욕구는 가득한데 남들 눈치 보느라 실천으로 못 옮기는 사람이다. 용기 내서 과감한 스타일로 입었는데 “너 무슨 옷을 그렇게 입었어?”라는 말이나 힐끔힐끔 쳐다보는 시선이 두려운 사람이다. 과감하게 도전하라고 추천할 수도 있지만 정말 소심한 사람에게 무턱대고 몰아붙이는 일은 독이다. 오히려 양쪽에서 구석으로 몰려 그냥 현실과 타협해버릴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이들에게 일본의 패션은 시작을 위한 도구로써 적합하다.


혼다 츠바사의 스타일은 미니멀리즘과 맥시멀리즘의 타협점을 찾아간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서 남과 전혀 다른 “내가 낸데”라는 메세지를 보여주는 것이 맥시멀리즘이라면 미니멀리즘은 그 반대다. 모든 것을 덜어내고 필요한 것만 남겨 은근한 매력을 추구한다. 한 번씩 과감한 패턴의 악세서리나 비비드한 색감의 제품을 얹어주면서도 전체적인 모습은 은근한 매력을 표출하는 것이 혼다 츠바사의 스타일이자 일본 패션에서 가장 뚜렷하게 보이는 특성이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귀여운 생각을 스타일로 보여준다. 소심한 도전을 위한 훌륭한 도구다.


패션에 정답은 없다. 패션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 T.P.O(Time, Place, Occasion)인 만큼 남들 신경 안 쓰는 건 본말전도라고 할 수 있다. 상황과 맥락, 함께 있는 사람들과 나 사이에서 조율하는 것도 패션이고, 남들 다 무시하고 내가 원하는 길을 독불장군처럼 걸어가는 것도 패션이다. 내가 기왕 도전하는 김에 과감하게 들이대라고 추천할 뿐이다. 소심한 사람에게는 그런 일이 어렵다는 것도 이해하기에 가벼운 것부터 추천한다. 수학에는 수학의 정석이 있다면 패션에 도전하는 소심한 사람을 위한 정석은 혼다 츠바사의 패션이다.

 

 

[김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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