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매력적인 여성들의 서사를 담은 백수린의 글 PART 2 [문학]

여성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를
글 입력 2021.03.02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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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온기를 가진 사람과 마음을 담은 글 백수린의 글 PART 1과 이어집니다.

 

지난 글에서는 백수린의 몇 작품을 통해 작가가 관계를 바라보는 첨예하고 따뜻한 시선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이 글에서는 백수린의 작품에서 도드라지는 여성 인물들의 개성과 그들의 관계에 주목하여 백수린 문학 속 인물들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엄마와 딸의 관계는 생각보다 더 복잡하다



백수린책_친애하고친애하는(19).jpg

 

 

소설 『친애하고, 친애하는』은 화자 ‘나’와 나의 엄마, 그리고 할머니의 삶을 다룬다. 등장하는 세 여성의 삶을 짧게 요약하자면 할머니는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고 나갈 일이 없어도 항상 자신을 단장하는 본인만의 철칙을 가진 사람이다. 하지만 그런 할머니의 모습에 불만을 가진 할아버지와 부부로서는 불화를 겪는다. 그래도 자신의 딸 만큼은 배우고 싶은 걸 뒷바라지해 준다. 엄마는 그러한 기대(어린 시절 죽은 남동생의 몫까지 포함하여)를 짊어지고 성공한 인물이지만, 다소 가정과 가족에게 소홀한 것처럼 보이는 인물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나’는 성공한 커리어우먼인 엄마의 기대를 본인이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며, 어린 시절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준 할머니와 각별한 사이이다.

 

이 세 모녀 각자의 삶은 그들의 관계 형성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친다.

 

 

엄마는 할머니의 집에 올 때마다 마치 지인의 집을 방문할 때처럼 과일이나 주스 세트 같은 것을 샀다. (...) 엄마는 할머니에게 예의가 바르고 친절하나 할머니가 더 이상 신 과일을 먹지 못한다는 사실을 미처 모르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친애하고, 친애하는』, 41쪽

 

 

나-엄마-할머니로 이어지는 이 삼대에 걸친 모녀 관계는 서로에 대한 기대와 오해가 쌓여 복잡하게 흘러간다. 할머니의 투병으로 할머니 집에서 할머니와 살게 된 ‘나’와 엄마의 죽음을 앞두고서야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동네를 자주 찾게 된 ‘나’의 엄마가 한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그들은 서로의 과거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소설집 『여름의 빌라』에 수록된 「폭설」이라는 작품에 등장하는 모녀 관계도 특별하다. 이 작품은 ‘나’가 어린 시절 낯선 타국에서 새 남편과 새 출발을 시작한 엄마와 둘이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이다. ‘나’는 과거 엄마의 외도 장면을 목격했지만 이를 함구하고, 부모님이 이혼했을 때 아빠의 곁에 남기를 택한다.

 

‘나’는 이후로 계속 엄마를 이해하기를 시도하는 시간을 보내지만 쉽지 않다. 결국 그들이 폭설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을 때, ‘나’는 그제야 엄마에게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들을 쏟아낸다. ‘평범’한 엄마들과는 달랐던, 전교에서 유일한 이혼 가정의 아이가 되도록 만들었던 엄마를 바라보는 ‘나’의 심정은 복잡하다. 특별한 엄마가 좋으면서도, 다른 아이들과 비슷한 엄마가 갖고 싶었던 아이의 마음은 그들의 회상을 통해 드러난다.

 

「폭설」 뿐만이 아니라 백수린의 글에 등장하는 엄마들은 가부장제 속의 ‘모성 신화’를 가뿐하게 누르고 개성 있는 ‘엄마’가 되어 자신이 정의한 엄마의 삶을 개척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특별함은 「폭설」에서 ‘나’의 회상 속에서 드러난다.

 

 

그녀의 엄마는 첫눈이 오면 수업 중에 찾아와 집에 일이 있다는 핑계로 그녀를 조퇴시켜서 바다에 데려갔고, 비가 오는 날에는 집안 가득 탱고 음악을 틀어놓고 그녀와 춤을 췄다. 엄마와 함께했던 그 모든 일들은 그녀에게 애틋한 기억으로 남아 있지만, 천둥 번개가 치거나 아빠가 야근해서 엄마와 잘 때마다 그녀를 재우기 위해 엄마가 이야기를 들려주던 그 밤들만큼 그녀에게 근사한 기억은 없었다. 그 이야기들은 대개 『백설공주』나 『잠자는 숲속의 미녀』 같은 것들이었는데, 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의 공주들은 원작과 달리 왕자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행복하게 잘 살았다.

 

『여름의 빌라』 「폭설」, 111-1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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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작품에서 보이는 엄마-딸의 관계는 둘 사이를 같은 여성, 혹은 ‘모녀’ 관계라는 이유로 무조건적인 이해와 연대를 보여주거나,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라는 식의 적대로 표현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이 서로에 대해 오해하고 오해를 풀고 이해하는 과정은 낯선 타인을 만나 알아가는 만큼의 시간과 정성이 필요한 일이라고 느껴지게끔 한다.

 

오히려 ‘가족’이라는 이유로 덮어두고 이해를 포기하는 상황이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친애하고, 친애하는』에서 엄마를 교양 없다고 무시하는 아빠의 생각을 답습하여 그대로 자신의 엄마를 바라보는 ‘나’의 엄마가 있고, 엄마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함부로 판단하고 추측 내리고 스스로 상처를 내는 ‘나’가 나온다. 이들의 생각은 가부장적인 분위기 아래에 학습한 결과물에 가깝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엄마에게 기대하는 역할이 충족되지 못했을 때 딸이 느끼는 실망감이 드러나기도 한다.

 

두 작품 모두 각양각색의 ‘엄마’들을 보여준다. 이 엄마들 개인의 삶을 보면 여성들이 겪는 억압과 그런 억압에 맞서고자 하는 인물들의 고군분투가 담겨 있기도 하다. 두 이야기 속 화자들인 딸들은 자신들의 엄마가 다른 엄마들과는 달라서 그것 때문에 갈등을 겪는다. 하지만 이들이 자라고 자신들의 엄마와 같은 나이가 되면서 엄마와의 관계는 점차 새로운 이해로 나아가게 된다.

   

백수린의 글 속 인물들이 가족이라는 관계를 마주하는 방식을 보는 과정을 읽는 일은 독자들이 자신의 가족-제일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꼭 그렇지만도 않은-을 다시 바라보도록 만드는 일이다.

 

 

 

다양한 욕망을 가진 여성들



두 작품에서 딸인 ‘나’들이 엄마에게 느끼는 일종의 배신감은 모성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한다. 엄마라는 단어가 주던 과거의 고정적 이미지에서 과감하게 탈피한 그들의 ‘엄마’들은 자신의 욕망을 인정하고 나아가기를 주저하지 않는 인물로 보인다.

 

『친애하고, 친애하는』에서 아이를 낳고 유학길에 오른 ‘나’의 엄마는 아이를 돌보지 않고 자신의 공부에만 전념한다는 주변의 수군거림에도 끝까지 자신의 길을 찾아 인정받은 인물이다. 또래의 엄마들과는 달랐던 개성 넘치는 「폭설」 속 ‘나’의 엄마는 이혼이 흔치 않았던 시절에 자신과 다른 성향을 가진 남편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머나먼 타국으로 새 인생을 찾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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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최근에 출간된 소설집 『여름의 빌라』는 앞서 언급한 「폭설」을 포함하여 이전 소설집보다 더 다양한 매력과 서사를 가진 여성 인물들이 등장한다.

 

아이와 가정이 있는데, 낯선 남성에게 성적 욕망을 느끼는 인물이 등장하는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 아무것도 모르고 자신이 평소 어울리던 친구들과는 다른 친구와의 우정과 미묘한 성적 긴장감을 다룬 「아카시아 숲, 첫 입맞춤」과 같은 작품들은 위에서 언급한 인물들과는 다른 결의 욕망을 가진 여성들이 등장한다. 글 속에서 솔직하게 내면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여성 인물의 서사는 신선하게 느껴진다.

 

「흑설탕 캔디」는 프랑스라는 낯선 나라에서 살게 된 할머니가 언어가 통하지 않는 상대와 연애를 하는 이야기이다. 노인의 사랑에 대한 서사는 여전히 소수의 영역에 있는데, 이 작품에서는 할머니의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며 할머니가 낯선 타국에서 자신의 삶을 빛내줄 수 있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남편이 아닌 낯선 남성, 영원히 나와는 친해지지 않을 것 같았던 여자애, 처음 본 남자애,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 백수린의 글 속 인물들이 타인에게 느끼는 감정들에 대해 고민하고 글 밖의 독자들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은 지극히 사적이다. 하지만 이런 사적인 욕망이 이야기로 쓰여서 다양한 여성 인물들의 목소리가 세상에 나오는 일은 절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

 

다양한 욕망을 가진 인물들은 타인과 세상과 엮여가며 자신의 내면에 더 귀 기울이게 되는듯 하다. 여기서 또 한 번 우리는 왜 다양한 사람들의 서사를 담은 문학을 읽어야 하는지 백수린의 문학을 통해 알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내게 소설 쓰는 일은 누군가에게 건넬 투박하지만 향기로운 빵의 반죽을 빚은 후 그것이 부풀어 오르기를 기다리는 일과 닮은 것도 같다.

 

『다정한 매일매일』, 22쪽

 

 

이 글이 백수린 작가님을 잘 몰랐던 사람에게는 작가님의 글에 흥미를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그의 글을 읽어본 사람에게는 다른 작품들을 읽어볼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지난 글에서 처음에 언급한 에세이의 한 문단을 다시 곱씹어본다.

 

작가님이 다정한 마음으로 빚은 빵의 반죽을 함께 지켜보고, 알맞게 굽고, 그것을 맛보는 일은 독자인 우리들의 몫이지만, 하나의 빵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함께 한다는 점에서 문학을 쓰고 읽는 일은 이미 하나의 연대를 이룬 일일지도 모르겠다. 문학을 통해 우리는 다함께 조금씩이나마 연대의 가치를 실현하고 있을 것이다.

 

 

[전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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