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쉽게 뱉는 말의 무게 [사람]

글 입력 2021.02.26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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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말'을 주제로 말문을 트려니 오히려 아무 말도 못 하겠는 심정이다. 어떤 말로 시작을 해야 더 이 주제가 잘 읽힐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어렵게 한 자씩 써 내려 간다.

 

말 한마디가 단락시키는 관계를 모두 잘 알 것이다. 우리는 말로 관계를 유지하고, 말로 관계를 끊으며, 말 때문에 추억을 쌓고, 말 때문에 그 추억을 저버리기도 한다. 말과 관련한 격언은 지금까지 널리 쓰이고 있으며 요즘 특히 서점에서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대화법, 말과 관련한 서적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시기다. 모두가 같은 고민을 끌어안고 살기 때문에 이런 책들이 계속해서 나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한마디 말이 주는 힘을 알기 때문에 거듭해서 생각하고 내뱉는 연습에 열중하고 있는 요즘, 간간이 웹서핑을 하다 보면 절로 탄식하게 되는 때가 많다. 은연중 유행하고 있는 밈에 특정 대상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을 법한 말이 종종 보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그 쉽게 내뱉는 말에 대해, 그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말해보고자 한다.

 

말의 무게를 실감하게 된 건 고등학교 때였다. 당시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청소년들 사이에서 '암 걸릴 것 같다'라는 말이 유행이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별 뜻 없이 사용하는 말이었고, 나도 그 단어의 문제성을 인지하지 못할 때, 국어 선생님께서 해주셨던 지적이 기억난다. '암 걸릴 것 같'다는 그저 장난으로 내뱉는 말에 실제로 상처받는 환자가 있을 수도 있으며, 말에는 주술성이 있기에 장난으로라도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충고. 당시 학급생 대부분이 그런 쉽게 뱉은 말의 무게를 실감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누구도 피드백을 주고받을 생각을 하지 못했고, 따라서 선생님의 충고를 듣고 나서는 조심스럽게 말을 내뱉기로 약속했던 때가 생각난다.

 

문제는 몇 년이 지난 현재에도 그런 밈이 또다시 재현되고 있다는 것. 얼마 전 sns를 하다가 'PTSD 올 것 같다'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적잖이 충격받던 때가 있었다. 물론 장난뿐일 말이었다는 걸 안다. 그러나 장난으로라도 그런 말을 굳이 썼어야 했을까? 관계의 제한 없이 누구나 들여다볼 수 있는 SNS상에서 그 단어를 맞닥뜨린 불특정 다수 중 누구나 그 말에 웃고 넘길 수가 있었을까?

 

혹자는 '장난 뿐인데 그런 반응을 보이는 건 예민한 것 아니냐?'라는 의견을 표할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러나 PTSD는 사고 후 외상 스트레스 장애라는 진단명으로 분리될 만큼 실제 피해자들이 우리와 공존하고 있다는 점. 따라서 'PTSD 올 것 같다'는 말은 누구에겐 트라우마로 남은 상처를 그저 농담거리로 여기고 있다는 것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아주 역설적이게도, 쉽게 뱉어진 말일수록 우리를 더 날카롭게 파고든다. 우리에게 아직까지 상처로 남아있는 말들도 누군가는 쉽게 뱉은 말이지 않았겠는가. 현재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는 연예인 - 스포츠 선수들의 학교 폭력 논란을 잠자코 보고 있으면 누군가 툭 던진 말과 행동에 평생의 트라우마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저릿하고는 한다. 나에게도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는 언어 형태의 상처가 있으나, 정작 내가 남에게 준 상처에는 하염없이 무디다. 이 역설의 이유를 설명하자면 내가 쉽게 뱉은 말이었기 때문이겠지.

 

주관적인 의견을 덧입혀서 말하자면 상처는 지워지지 않는다. 잊히지도 않는다. 그냥 묻힐 뿐이다. 파고 파고 파다보면 저 밑에서 굳건히 자리하고 있는 기억들이 있고, 아주 오래도록 잊고 살다가 한 순간 상처와 유사한 형태의 말들을 마주하면 나도 원하지 않는 심리적인 반응이 일어날 때가 잦다. 그러나 묵혀있는 상처까지도 예민함의 연장선이라고 치부해버린다면 2차 가해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은가. 상처받은 사람에게 또 상처를 주는 기만은 더 이상 근절되기를 바란다. 그것만을 바랄 뿐이다.

 

말과 말로 대화를 유지하는 인간관계에서, 나는 자신이 그 누구가 되었더라도 자신이 뱉은 말의 무게를 한 번은 체감해보았으면 한다. 멀리까지 생각하고, 두 번, 세 번 생각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서 말하기를 바란다.

 

 

[이보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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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ㅇㅇ
    • 정말 좋은 글입니다. 작년 정의당 장혜영 의원님이 이광재 의원님에게 절름발이는 장애 비하 표현이라고 말씀하신 사건이 생각나는군요. 후일담을 들어보면 이광재 의원님은 9일만에 사과를 하셨고, 그로 인해 장 의원님께서는 이 의원님이 정말로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셨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저도 과거에 심한 만성 두통을 앓은 적이 있는데 눈에 보이지않는 것이 가장 무섭다는 것을 깨닫게 된 사건이었습니다. 그 사건으로 인해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환자를 배려할 때, 겉으로 보이는 것 혹은 두 팔과 두 다리가 온전한지의 여부만 판단하려할뿐 눈에 보이지 않는 고통이나 그 고통의 깊이는 거의 들여다보지 않으려한다는 사실을 저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항상 자신이 과거에 했던 일을 되돌아보고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가장 위험한 것은 자신이 흠이 하나도 없는 길만을 걸어가고 있다는 강한 믿음이 아닐까요..

      이 기사를 보고 공감을 하게 되는 저도 아직 배우고 고쳐야할 점이 산더미 같이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에디터 님께서 쓰신 글은 이 기사를 보는 이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아주 뜻깊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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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omila1073
    • 2021.03.16 20:5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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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ㅇㅇ안녕하세요. 이보현입니다. 저도 세 번째 문단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과거를 되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만이 더 인격적으로 성숙하게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귀한 시간 내주셔서 제 글을 품어주시고 귀한 피드백 남겨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좋은 저녁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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