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족쇄였고 나를 구원해주는 글이란 존재

혼란한 디스토피아에서 나를 구제하는 방법
글 입력 2021.02.22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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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더러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가진 것들 얘기부터 할 수밖에 없다.'

 

- 네루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정혜윤 작가님의 신간 <앞으로 올 사랑>을 읽으면서 알게 된 명언이다. 책을 많이 읽으려고 노력하고, 좋은 구절은 꼭 필사를 하고 마는 습관을 가지면서 알게된 여러가지 명언 명구들이 많지만, 순식간에 내가 가장 어리고 연약했던 시절로 돌아가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은 저 구절을 읽고 처음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글읽기를 힘들어해서, 내가 직접 눈으로 글자 하나하나씩 읽는 과정보다 남들이 얘기해주는 이야기를 더 선호했으며(그마저도 잘 이해도 못했지만), 글자보다 그림이 훨씬 많은 그림책을 받아도, 등장인물의 표정과 행동만 보고 스토리를 이해할 정도로 다른 또래 친구들에 비해 언어구사력이 현저히 낮았었다. 이런 사실을 증명하듯 부모님에게 내 행동의 이유와 감정을 솔직하게 얘기해야 했을 때에도 이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너무 적어서, "그냥 화가나는데 이유는 모르겠어"라고 설명하는 것이 다였다. 그렇게 나는 나를 둘러싼 상황을 혼란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여러가지 감정들의 늪에 빠져 내 자신이 점점 침전되어 가고 있음을 느꼈다.

 

내 머릿속에는 특수효과가 가득한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나의 감정들이 이미지화되어서 보이는데 이를 말로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 너무 암울하게만 느껴졌다. 그저 나에게 '언어'란 학습하고 '기억'되는 것이지 그 의미를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었다.

 

이는 시험 기간동안 바짝 벼락치기가 가능했던 중학교 시절까지 이어지다가, 고등학교를 재학하면서 큰 위험에 봉착하게 된다. 가장 쉬웠던 과목인 국어가 수능직전까지 내 발목을 잡은 것이었다. 아직도 비문학을 처음 읽던 그 순간의 감정을 잊지 못한다. 신채호의 '아와 비아의 투쟁과 연대'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던 이 비문학은 글을 이해하는데 1시간동안이나 나를 붙잡았고, 문제까지 완벽하게 이해하는 데 총 3시간이 걸렸던 기억이 난다. 내 눈을 분명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열심히 굴리고 있지만, 어느 단어 하나도 쉽게 이해할 수 없던 그 답답한 기분에 사로잡혀 비문학은 나에게 철천지 원수로 낙인찍혔다.

 

그렇게 점차 내 어휘력의 한계를 느끼면서 내 자신의 한계를 직면할때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입학했고, 교수님이 가끔씩 내주시는 레포트를 쓸 때마다 또 다시 나의 제한된 어휘력과 단어 한글자에 넘어가지 못해서 한문장을 쓰는데 몇십분이 걸리는 상황에서 멍을 때렸다가 정신차리기를 반복하며 몇시간동안 고통의 시간을 맛보았다.

 

고등학교때부터 이 난제를 극복하고자 열심히 책을 읽어왔는데, 정말 솔직히 얘기하자면 이전에 읽은 책들을 얘기해달라고 부탁받는다면 제대로 소개할 수 있는 책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때도 비문학을 읽었을 때처럼 눈알은 굴러가고 심장은 쿵쾅거리지만 그 어느 단어도 제정신에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대학교때가서야 책의 내용을 필사하기 시작해 그나마 좋은 구절들을 가슴속에 남길 수 있었지만, 책의 장르 상관없이 책을 읽는 과정에서 한 문장 한문장을 이해하기 위해 정말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했었다.

 

그렇게 '글'이라는 매개체는 남들과 비교했을 때 나를 한없이 낮아보이게 하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족쇄같았지만 지금은 갑갑한 현실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도피처이자 숨 쉴 수 있는 창구의 역할로 바뀌게 되었다. 이제는 한 문장을 읽을 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고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글을 쓸 때에도 남들이 쓴 글을 교묘하게 바꿔 표현하는 게 아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내 자신의 목소리와 감정을 한껏 담아 써내려 갈 수 있는 정도로 나아졌다.

  

어떻게 이렇게 순식간에 바뀔 수 있는지, 그 변화의 과정이 어떠했는지는 나도 설명을 할 수 없다. 그저 계속된 노력끝에 맛 본 달디단 열매라고밖에 설명이 불가능했다. 결국 후천적인 노력이 바꿀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체감하게 된 내 일생일대의 큰 기쁨이었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나는 계속 버벅거리고 있고, 내가 쓴 글이 절대 완벽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다해서 글을 쓰다보면 언젠가는 내 마음속에 화폭처럼 그려진 무수한 감정들과 생각들, 그리고 사회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각까지 다 써내려 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오늘도 열심히 책을 읽고 글을 써내려 간다.

 

 

[이윤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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