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비어있는 개인에 투명하게 들어차는 역사 - 이다 [영화]

영화 <이다>
글 입력 2021.02.22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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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다>의 결말을 포함한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82분의 짧은 러닝타임, 미국과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 영화상 (현재는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한 영화 <이다>가 5년 만에 재개봉하게 되었다. 폴란드 출신의 감독이 만든, 자신이 유대인임을 모르고 살다 자기를 낳아준 부모와 스스로의 태생에 대해 알기 위해 이모를 찾아가는 여성의 이야기라는 설명만으로도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내가 나로 살기 어려운’ 이 시기, 역사 속에 숨겨져 왔던 자신의 과거와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성 ‘이다’의 시선을 담담히 따라가며, 우리 안에 쌓인 나의 여러 면면을 만날 기회를 만들어보길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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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수녀원에 사는 견습 수녀 ‘안나’를 비추며 시작한다. 안나는 영화의 주인공으로, 고요한 수녀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러던 중, 수녀원장이 안나에게 하나뿐인 혈육인 이모 ‘완다’를 순결 서약식 전에 만나고 오라는 당부를 듣는다. 안나는 자신을 한 번도 찾아오지 않은 이모를 만나는 것을 꺼려하지만, 이모를 만나기로 결정하고 길을 떠난다. 이모의 집을 찾아간 이다는 그곳에서 자신이 유대인이며, ‘이다’라는 본명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이다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고향을 찾아가 유대인 대학살로 인해 죽어버린 부모 하임과 로자의 유골을 찾기로 결정한다. 이 일련의 사건들이 영화 시작 10분 만에 벌어지는데, 그 다음의 이야기는 약 한 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이다가 이모와 여정을 떠나고, 그들이 몰랐던 진실을 발견하게 되는 과정을 통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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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중의 전쟁터나 수용소 등의 이미지를 전혀 제시하지 않으면서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든다. 작품의 배경은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음과 동시에 그것을 죽지 않고 통과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60년대 폴란드이며, 주인공인 이다와 완다는 학살의 직접적 피해자이기보다는 ‘살아남았지만 아무 것도 몰랐던 혹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사람이다. 영화는 유대인 대학살을 직접적으로 재현 혹은 재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 끝나고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 그 안의 숨겨진 비밀과 침묵을 통해 폴란드의 추운 역사를 기록한다.

 

영화의 서사는 대부분 우연적인 사건이 지배한다. 우연히 이모를 찾아가 자신의 고향으로 가는 것을 결정하고, 그곳에서 자신의 부모를 죽인 사람을 만나 자신이 살아있을 수 있는 이유를 알게 된다. 부모를 밀고하고 살해한 그 남자는 이다가 너무 작고 유대인의 생김새를 가지고 있지 않아 죽이지 않고 성당에 버렸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이모가 낳았던 아들은 검은 피부에 할례를 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에게 죽임을 당했다. 한 개인과 집단에게 커다란 상처를 안겨준 대학살이라는 사건이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우연적으로 벌어졌는지가 이 장면의 남자의 대사를 통해 우회적으로 드러난다.

     

또한 영화를 보는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른 채 고요한 수녀원에서 살던 안나가 수녀원을 나서는 순간부터 시작해, ‘이다’가 되어 0과 같은 무지의 상태에서 몰랐던 기억과 내면의 층위를 켜켜이 쌓아가는 과정을 지켜보게 된다. 우리는 자신의 배경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던 사람이 홀로코스트의 피해자로 죽어갔던 사람들의 자취와 역사를 찾아가며 간접적으로 그들의 아픔을 좇아가는 과정을 화면을 통해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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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앵글은 이러한 시선을 가지도록 충분히 유도하는데, 카메라의 시선은 자주 고정된 상태로 눈 덮인 수녀원이나 황량한 숲 같은 큰 배경을 담고 그 안의 인물들의 모습을 관조한다. 움직이는 인물들을 따라가지도, 그들의 행동을 부각하지도 않는다. 로자, 하임의 유골과, 그들과 함께 죽은 완다의 아들의 유골이 묻힌 구덩이를 그들을 죽인 남자가 파내는 장면에서도 그 행위가 프레임 밖에서 일어나고, 화면은 구덩이 위에서 그의 얼굴이나 이를 지켜보는 이다와 완다의 상체만을 비춘다. 이렇듯, 영화 속에서 중요한 행위들이 카메라가 담지 못하는 시선 안에서 벌어지고, 우리는 그것들을 볼 수 없다. 이는 이다가 되어버렸고 이제 안나로 돌아갈 수 없으며 전혀 다른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안나가 그 전에는 까마득하게 몰랐던 유대인 학살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이제는 다른 시선, 즉 이전의 프레임으로는 볼 수 없던 것을 바라보는 시선과 연결된다. 이다의 여정을 따라가는 우리도 보이지 않는 곳의 행위와 인물들의 움직임을 상상하고 예측하며, 안나가 개인의 경험을 채워가며 지워진 역사를 알아가는 과정과 함께 이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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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결말에 가서는 공산주의 정권 시절 판사로 정치적 재판에서 악명 높았으며, 유대인 가족들을 외면했던 완다가 아들 죽음의 진실을 알게 된 후 결국 창 밖으로 뛰어내려 자살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도 완다의 죽음은 프레임 바깥에서 일어나고, 관객은 그녀의 집에 흐르고 있는 모차르트 교향곡을 들고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살아남은 개인이 느끼는 죄책감과 그로 인한 결말을 간접적으로 보며, 비극의 근원이 된 사건에 대해 환기하고 그것이 가져다 주었을 개개인의 고통에 대해 떠올려보고 이에 골몰하게 된다.

 

이모의 죽음을 알게 된 완다는 수녀복을 벗고 남자와 사랑을 나누며 고모의 삶을 살아본다. 그 후 그녀는 다시 수녀복을 입고 수녀원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녀의 모습을 보여주는 화면은 이전과 다르게 흔들리고 에너지를 담고 있어 이다의 역동적인 상태 그대로를 드러낸다. 이러한 시선 또한, 개인의 기억과 집단의 아픈 역사로 채워진 그녀 내면이 그 전과 다름을, 무엇을 알게 된 자, 경험해 본 자는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알려주는 것만 같다.

 

영화는 홀로코스트나 전후의 폴란드 공산 정권에 초점을 맞춰 이를 직접적으로 전달하지는 않는다. 그것보다 이와 얽혀있는 개인들을 넓은 시야를 통해 바라보며, 흑백의 시선으로 모든 장면을 투명하게 비춘다. 살아남은 개인들이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그들의 내면 속에 알지 못했던 기억의 층위뿐만 아니라 폴란드의 역사가 투명하게 들어차며 개인의 역사와 그 바깥이 공존하게 된다. 영화는 이렇듯 한 개인이 정체성과 잃어버린 기억의 파편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간접적으로 집단의 아픔을 환기시킨다.


‘이다’는 전쟁을 겪은 세대와 그 후 세대에 아픔과 트라우마를 남긴 ‘홀로코스트’라는 역사적 사건을 우연성으로 가득 찬 서사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나가려는 개인의 여정, 빗겨나간 초점 및 프레임 바깥에서 벌어지는 행위 등을 통해 드러내며, 직접적 재현 없이 개인과 집단의 아픔을 환기해 이 고통을 들여다보게 된 자는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주인공 이다를 통해 드러낸다. 이로써 <이다>는, 우리 안의 숨겨진 역사와 과거, 그것과 맞닿아 있는 개개인의 정체성에 대해 골몰할 기회를 마련해준다.

 

우리는 어떤가. 지금의 내가 나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나를 이루는 것들, 그것이 비록 나를 고통스럽게 할지라도 기꺼이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뛰어드는 태도가 때때로는 필요할 때도 있을 것이다. 내가 '나 자신'으로 살기 어려워진 이 시기, <이다>를 통해 나를 찾아가는 여정에 발걸음을 내딛어볼 수 있었으면 한다.

 

 

[조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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