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 세상 모든 은희에게 [영화]

1994년, 가장 보편적인 은희로부터
글 입력 2021.02.22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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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벌새 REVIEW

(스포일러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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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장난치지 마! 나 왔단 말이야!"

 

영화는 은희가 초인종을 눌러도 반응이 없는 문 너머, 엄마에게 소리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자신이 분명 여기 있다는 것을, 그렇기에 절대 무시하지 말라는 소녀의 간절한 외침은 알고 보니 집을 잘못 찾은 실수에 의해 허무하게 지워지고 맙니다. 하지만 대게 모든 영화의 첫 장면이 그렇듯, 이 외침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그 무엇이었습니다. 늘 엄마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중학생 은희, 그에 대한 그 답이 돌아오지 않자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은희의 모습은 과거 한시라도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지던 우리의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합니다. 마치 자는 엄마가 혹여나 죽은 것은 아닐까 코 밑에 손을 넣어보던 그 시절, 우리의 엄마를 향한 순수하고 순애보 같은 사랑을 말입니다. 이번에 은희는 진짜 자신의 집을 찾아 들어가고, 영화는 1994년 중학생 2학년이었던 가장 보편적인 은희의 삶을 그려나갑니다. 그리고 그 속의 은희의 삶은 어른들의 시선에 의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될 수 있으나, 실로 사춘기 시절의 우리, 모두가 그랬듯, 은희는 자기 나름의 전투와도 같은 상황과 대치되어 있습니다.

 

 

 

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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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적이고 가부장적인 아버지, 그런 아버지 다음으로 군림하며 은희에게 폭력을 서슴지 않는 오빠, 그리로 그 모든 폭력이 그저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은희의 삶은 그 당시 가부장 체제가 한 개인을 어떻게 무력화했는지 잘 보여주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이는 은희와 그녀의 유일한 단짝 친구 지숙, 고작 중학교 2학년밖에 되지 않은 두 명의 아이들이 학원 옥상에서 오빠로부터 받은 폭력에 대해 말하는 장면에서 더욱 잘 드러납니다. 마치 그저 짜증 나는 일이 또 일어난 듯 불평을 하는 두 소녀의 모습은 당시 가부장 사회에 무방비하게 놓였던 모든 여성의 삶을 짐작해 볼 수 있게 합니다. 또한, ‘서울대’만이 유일한 성공의 길이라 선생님, 그런 시대상 속 그저 만화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학업에 큰 뜻이 없는 은희는 ‘날라리’로 낙인찍히게 됩니다. 그리고 '대치동', 소위 말하는 좋은 학군에 살며 자식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려 안간힘을 쓰는 아버지까지, 은희에게 있어 현실은 갑갑하게 느껴지기만 합니다.

 

 

남자친구.jpeg

 

 

그런 은희는 남자친구 지완의 등장에, 영화 처음으로 미소를 보입니다.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는 행복한 은희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믿고 의지했던 지완의 바람은 다시 한번 평온해 보이는 그녀 일상에 파동을 일으킵니다. 은희의 삶은 끝없이 파동치며, 그 속에서 은희는 담배를 피우기도, 문방구에서 물건을 훔치기도 하며 답답한 현실을 피해 숨 쉴 구멍을 찾아다닙니다.

 

 

 

영지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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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은희는 원래 일하던 한문 선생님이 그만두고 새로 온, 자신 역시 만화를 좋아한다는, 어딘가 알 수 없는 쓸쓸함의 정서가 묻어있는 영지와 맞닥뜨리게 됩니다.

 

 

相識滿天下 知心能幾人

 

 

"서로 얼굴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가득하지만, 마음을 이해해주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은희는 수업 시간에 배운 명심보감의 한 구절을 친구 지숙과 장난으로 웃어넘겼지만, 야속하게도 이는 그녀 삶을, 어쩌면 우리 모두를 관통하는 그 어떤 것이었습니다. 은희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던 유일한 단짝 친구의 배신, 그 순간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영지였습니다. 영지는 친구의 배신에 마음 아파하는 은희에게 차를 타주며, 오빠의 폭력을 담담히 고백하는 은희를 “싸우지 마라”라고 넘기는 은희의 아버지와 달리 그것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아 합니다. 오빠의 폭력이 시작되면 그냥 끝나길 기다린다는 은희의 말에 보인 영지 선생님의 표정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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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널 때리면, 어떻게든 맞서싸워"

 

그리곤 혹 수술을 한 제자 은희를 찾아와 오랫동안 고심한듯한 말을 해줍니다. 오빠의 폭력을, 더 나아가 그녀를 억압하는 그 모든 것에 결코 침묵해서는 안 된다고 말입니다. 영지의 말은, 어쩌면 그녀 자신에게 향하고 있는 것일지도, 다시금 본인 역시 확인받고 싶은 말이었던 것 같기도 해 보였습니다.

 

 

 

은희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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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의 행복했던 시간도 잠시, 영지는 은희에게 아무런 예고 없이 갑작스레 학원을 그만둡니다. 은희는 영지 선생님이 짐 빼러 오는 시간만 기다렸지만, 시간을 잘못 알려준 원장 선생님에 의해 그녀를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시도가 좌절됐고 이에 은희는 원장 선생님에게 소리를 지르며 분노를 표합니다. 또한, 그런 자신의 행동에 대해 이상한 취급을 하는 부모님에게도 소리 지르며 말합니다. “나 성격 이상한 애 아니야!” 그간에 모든 분노가 터진 듯, 미친 듯 날뛰며 지르는 소녀의 고성은 이제 갓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은 그 날것의 무엇과 분명한 의지가 깃들어 있습니다. 더는 침묵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말입니다. 비록 이러한 시도가 다시 오빠의 폭력에 의해 짓눌렸지만, 필요하면 진단서를 떼주겠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은 그 시도가 그리 허무한 것은 아닐지 모른다는 위로를 던져주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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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 소녀의 목소리를 되찾는 데 도움을 준 영지의 마지막은 예상치 못하게 끝나게 됩니다. 1994년 그해는 결코 무너져 내리지 않을 것 같은, 또 그래야만 했던 다리가 무너진 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버스를 늦게 탄 은희의 언니는 그 사고를 비껴가게 되고, 그렇게 그 사고는 은희에게 소중한 것을 앗아가기도 또 다행히 잃지 않게 해줍니다. 먼저 떠난 영지 선생님을 은희는 성수대교 앞에서 애도합니다. 떠난 이에 대한 애도와 남게 된 자들에 대해 감사함, 그리고 그 알 수 없는 삶의 신비를 떠안고 살아갈 준비를 은희는 마치게 됩니다. 그리고 슬프지만, 그것이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닐까요? 영지의 삶은 그렇게 끝나고 말았지만, 병원 속 “맞서 싸워야 해”라고 말했던 그 일종의 선언과도 같은 메시지는 은희에게만이 아닌, 스크린 너머의 우리 모두를 오랫동안 울릴 그 무엇일 겁니다.

 

 

 

모든 여성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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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끊임없이 파동을 치던 은희의 삶, 그 주변에는 또 다른 여성의 삶이 함께했습니다. 대치동까지 이사 왔는데 창피하게 학교를 강북으로 다닌다며 아버지에게 탐탁지 않은 존재가 된 은희의 언니, 학교를 빠지고 술을 먹고 집에 늦게 들어오며 남자친구를 사귀는 은희의 언니의 삶은 어쩌면 영지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곧 은희가 겪게 될 삶의 순서였을지도 모릅니다. 고된 현실에서 남자친구 지완을 믿고 의지했고 몰래 담배도 피우기도 도둑질을 하기도 했던 은희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녀 삶엔 영지가 있었고, 은희 언니의 삶엔 그런 어른이 없었던 것 아닐까요? 저는 이 영화를 보며 은희의 언니의 삶 역시 무탈하기를 바랐습니다.


또한, 은희에게 그리 좋은 엄마가 아니지만, 등에 붙여지는 파스, 친오빠의 사망, 남편의 외도로 짐작해 봤을 때 은희 엄마의 삶 역시 녹록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은희 엄마의 삶은 실로 은희에게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야 영어 간판도 읽고 남들한테 무시도 안 당하고 캠퍼스를 노닐 것 아니냐는 말을 할 때 슬픔과 동시에 반짝이는 그녀 눈에 다 담겨 있는 듯했습니다. 자기 삶의 애환과 소망, 그 말은 은희를 향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녀 자신을 향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이는 영화 후반부에 그녀가 아파트 앞, 은희의 외침도 듣지 못하고 허공을 응시하는 모습에 잘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엄마이기 전에 한 여성이었고, 그런 그녀의 삶은 그렇게 쉽지 않은 것이었을 테니까 말입니다.

 

 

 

우리 모두의 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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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영지 선생님이 그토록 허무해 하고 고통스러워했던 것은 어쩌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이 맞는지 치열하게 고민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 그녀가 삶에 내린 답은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이었습니다. 영화를 보며 은희에게 더욱 감정이입을 했던 저는 영화가 끝난 이후, 제가 은희가 아닌 영지 선생님의 나이에 더욱더 가까워 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영지 선생님이 그랬듯 저 역시 어떻게 사는 것이 맞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영지 선생님이 한 중학생 소녀 은희를 만나, 그렇게 보낸 시간은 그 답을 조금은 알게 해준 것 같았습니다. 그녀 스스로가 말했듯 영지 본인은 은희란 한 소녀를 만나 그 과정에서 은희에게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많은 용기와 위안을 얻었을 것이며 그건 그대로 그녀에게 행복한 일이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은희가 영지 선생님이 말한 세상의 신기와 아름다움을 조금은 알게 된 듯 하며 끝나게 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 삶은 끊임없이 파동칠 것이며 그 속에 고단함은 늘 함께할 것입니다. 영화의 제목인 ‘벌새’는 1초에 80번 이상의 날갯짓을 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겉으로는 정지한 듯 보이지만, 실상 그 벌새는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이죠. 잔잔해 보이는 수면 아래 은희의 고단할 비행이 조금은 순탄하기를, 그리고 우리 모두의 삶이 조금은 무탈하기를 바랍니다. 1994년, 가장 보편적인 은희로부터 온 편지, 영화 '벌새'였습니다.

 

 

[신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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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KYJ
    • 평소에 보고싶었던 영화였는데 이 글을 통해 접하니 영화를 직접 본 것보다 더욱 깊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벌새’라는 영화제목의 의미를 이해하고 다시 생각해보니 은희의 삶이 더욱 와닿습니다. 은희와 같은 여성으로서, 성장을 경험해본 한 사람으로서 은희 삶에 공감되기도 했습니다. 다음에도 좋은 글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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