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친애하는 나의 벗, 에밀에게 [영화]

글 입력 2021.02.21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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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였던 폴 세잔과 작가 에밀 졸라는 끈끈한 우정을 지닌 친구였으나 시간에 흐름에 따라 가치관의 충돌과 그로 인한 갈등을 겪게 된다. 현실과의 타협을 중요시 했던 에밀과 이상과 꿈을 좇던 세잔은 에밀의 책 <작품>을 끝으로 연을 끊게 된다. 그 작품 속 주인공, 끝내 자살한 실패한 천재 화가 클로드 랑티에를 두고 세잔은 자신을 모델로 삼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 후로 그들은 각자의 인생을 충실히 살았으나 에밀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난 후 세잔은 꽤 오랜 시간동안 제 예전 친구를 애도했다고 전해진다. 그들의 우정을 다룬 영화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에서는 대부분의 극 진행이 에밀의 관점으로 보여졌기 때문에 세잔의 깊은 속내를 알기는 어려웠고, 그 편향된 관점과 끊겨버린 우정은 반대편의 입장과 뒷 이야기를 궁금하게 했다. 세잔이 에밀에게 품었던 감정과 그가 고이 감춰 두었던 우정의 무게는 어땠을지 세잔의 입장에서 죽은 에밀에게 보내는 편지를 한 번 써보려 한다.


 


 

 

친애하는 나의 벗, 에밀에게

 

 

     자네가 떠나고 어느덧 1년이 지났네. 자네 없이 맞는 봄이 처음도 아닌데, 영원한 빈 자리에 들이치는 바람은 평소보다 더 매섭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자네를 마지막으로 마주한 그날, 자네에게 원망을 퍼붓고 길길이 날뛰더라도 자네 눈을 한 번 더 맞춰볼 걸 그랬네. ‘사산된 재능을 가진 불운한 화가’의 더러운 침이라도 몇 방울 튀겨줄 걸 그랬어. 그랬다면 그 때의 침방울을 캔버스로 옮겨 자네를 어렴풋이라도 그려낼 수 있었을 텐데 말일세.

 

     자네와 내가 절연한 그 날을 아직도 기억하네. 자네는 어떨지 모르겠어. 내가 자네를 보러 모였던 군중들 사이에서 나를 모멸한 그 문장을 듣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나? 부디 알고 있었기를 바라네. 쓸쓸히 지팡이를 짚고 떠나는 내 초라한 뒷모습이 자네가 눈 감기 전 스쳐간 주마등의 엔딩이었기를 바라. 그래야 원망스러운 자네의 비극을 기꺼이 애도하고 있는 지금의 나를 스스로도 이해할 수 있지 않겠나. 적어도 나의 에밀은, 제 벗을 향해 내뱉은 잔인한 말을 죽도록 후회했다고. 고고한 자존심에 허락지 않았던 미안함이 목구멍에 응어리진 채 눈을 감았으니, 나는 자네를 용서해야 한다고 말이야. 산 자를 위해 망자가 배려를 해주게나. 이 주인 잃은 편지를 끝으로 나 역시 자네를 잊고, 자네가 사랑했던 현실을 계속해서 마주해야 할 테니.

 

     에밀, 자네는 내 인생의 둘도 없는 친구였네. 여전히 철없고 제멋대로 살지만, 세상을 꺠닫기 전부터 자네와 함께했던 그 순간들이 여전히 찬란하네. 나를 놓지 않아 주어서 고맙네. 가족도 제대로 여며준 적 없는 내 옷깃을, 자네는 끝까지 붙잡으려 하지 않았나. 남루한 넝마가 혹여나 찢어질까, 힘껏 쥐어틀지 못했던 자네의 섬세함을 기억하네. 아, 혹시 그러고 싶지 않았던 것인가. 그럴지도 모르지. 너그러운 자네라고 고약한 악취를 못 맡을까. 고결한 자네의 손에 더러운 냄새가 밸까, 끝까지 놓지 않는 척하는 자네의 위선을 거꾸로 선의라 착각했던 걸 수도 있겠지. 자네는 내 고집이 꽤나 못마땅하지 않았나. 얼마나 대단한 예술을 하겠다고. 세상과 타협 못하는 억척스러운 집념이 부질없다 생각하지 않았나.

 

     그러나 에밀, 자네는 그런 나를 부러워했어. 자네의 글에 얽힌 돈과 명예를 이따금씩 소름끼쳐하지 않았나. 현실에 맞춰 깎아낸 자네의 격정과 맹렬함을 부끄러워 했지. 자네는 초심을 바친 대가로 얻어낸 것들로 다시 자네가 덜어냈던 투쟁의 불꽃을 되살리려 했어. 나 역시 자네와 같은 길을 걷길 바랐지. 허나, 나는 굴복이 선사한 무력감을 원동력으로 삼고 싶지 않았네. 예술은 그런 게 아니라 믿었어. 자네는 이를 이기적이라 칭했지. 나는 자네가 비겁하다고 말했고. 그렇게 갈라진 틈으로 우린 서로 도끼질을 해댔어. 누가 더 깊게 상처를 내나 경쟁이라도 하듯 말이야. 그러다 지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너덜해진 쌍둥이 나무 아래에서 한숨 돌리곤 했지. 입가에 자조적인 실소를 매달고 죄책감에 억눌린 채로 말이야.

 

     유명세를 이용해 다수 앞에서 나를 비난한 자네와, 못다 이룬 성공의 열등감을 자네에게 표출하는 삐딱한 나를 누가 우애 깊은 친우로 보겠냐만은, 어떻게 모든 순간들에 응원과 사랑만이 남겠는가. 우정의 존재는 사랑과 혐오가 난무하는 순간에 피어나는 것이지 않나. 가족은 탯줄이야. 엄마 몸 속 얇은 줄 하나에 태초의 천륜이 깃들어 있으니 말이야. 연인은 사슬이지. 사랑에 홀린 두 사람이 다른 누군가는 설령 가족일지라도 끼어들지 못하게 서로를 묶어버리는 것이니까. 그럼 우정은 뭐라고 생각하나. 가족이 가진 탄생의 순간부터 이어진 운명의 고리도, 연인의 매혹적인 헌신도 없는데 그들만큼 끈끈하고 애틋하지 않나.

 

     나는 우정을 덩쿨이라고 보았네. 갖은 줄기들이 얽히고 설켜 어딘가는 썩었고, 어딘가는 새롭게 싹이 트는 혼란의 관계. 그것이 친구 아닐까 싶네. 덩쿨이 관계를 압도할 만큼 자라면, 우리는 시작점이 어딘지도 잊어버리게 되지. 그래서 “우린 잊어버리는 거야. 왜 자네가 나를 좋아했는지.” 내가 자네와 왜 친해졌는지. 우리는 서로에게 실망할 때마다 덩쿨에 도끼질을 하는 걸세. 억센 가지들을 하나씩 원망으로 잘라내는 거지. 덩쿨줄기가 얼마나 될지는 우정의 크기에 달렸네.

 

     우정을 숭배하지 말게. 연인이나 가족만큼 걸리적거리는 게 없으니 그만큼 나약한 게 우정이야. 우리는  쉽게 친구를 미워하고 싫증내게 되지. 그 순간들은 생각보다 자주, 오랫동안 나를 맴돌 수도 있어. 어쩌면 자네와 내가 그토록 오랜 기간 친구로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우정이 튼튼한 것이 아니라 그저 덩쿨을 완전히 끊어낼 수 있는 기회들을 놓쳤을 뿐일지도 모르네. 새로 자란 줄기들이 빈 자리를 메꿔내는 것을 막지 못한 우리의 게으름 탓일 수도 있단 말일세. 그러나 에밀, 영원한 이별을 앞두고 겨우 연명하는 마지막 한 줄기만 남을지라도, 그 앙상함조차 우리는 우정이라 부를 것이네.

 

     사랑하는 에밀, 자네를 등지고 떠난 그 순간에 나는 위태로이 버티는 가냘픈 마지막 줄기를 잘라내었네. 그렇다고 믿었지. 자네는 뭐, 진작에 썩히거나 잘라낸 지 오래였을 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그러나 자네가 떠나니 알겠네. 자네를 욕하면서도 잘라낸 두 면을 붙잡고 내가 울고 있다는 것일 말이야. 우둔한 미련은 아직 자네와의 고리를 완전히 끊어낼 수 없다고 울었어. 그러나 이제 한 쪽 면이 사라져 가네. 제 주인인 자네를 따라 가는 것이겠지. 이제 남은 것은 손에 남은 촉감뿐이야. 그 손으로 난 계속 그림을 그릴 걸세. 자네를 닮은 날씨엔 미친 사람처럼 하늘로 손도 뻗어 보겠지. 기분 좋은 날엔 비를 내려주게. 짝을 잃은 한 쪽 면이 다시 자라 자네에게 닿을 수 있게 말이야. 자네는 마지못해 내 부탁에 응할 것을 알고 있네. 자네는 늘 그랬으니까 말이야. 이기적이지만 뭐 별 수 있나. 알다시피 “난 늘 이런 식”이었지 않았나.

 

 

그리운 나의 친구. 사랑해 마지않았던, 그러나 증오스러웠던 나의 에밀.

고맙고 미안했네.

 

 

세잔.

 

 

[오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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