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침대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의 경계
글 입력 2021.02.20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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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lix Gonzalez-Torres, "Untitled", 1991, Billboard © The Felix Gonzalez-Torres Foundation

 

 

여기 침대 사진이 있다.

누군가가 막 자다가 깨어난 듯 베개는 움푹 파였고 이불은 정돈되지 않았다.

누가 이 사진을 뉴욕 옥외광고판에 걸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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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Félix Gonzàlez-Torres (1957-1996)

 

그의 이름은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Felix Gonzalez Torres, 1957-1996)다. 쿠바에서 태어나 푸에르토리코를 거쳐 뉴욕으로 이주한 그를 수식하는 단어들은 다양하다. 이민자, 유색인종, 동성애자, 에이즈 환자 등. 사회적 소수자를 상징하는 다양한 단어로 불리며, 그는 차별받고 억압받은 자신의 경험을 작품으로 표현했다.

 

 

 

작가의 침대에 담긴 성 소수자의 삶



그 중 대표작이 바로 위의 작품, <무제(Untitled)>(1991)다. 작품은 침대의 주인이 누구인지 추측할 만한 단서를 제공하지 않는다. 움푹 파인 베개와 정돈되지 않은 이불이 전부이다. 하지만 “나의 작품은 모두 나의 개인적인 역사이고 전부이다.”라는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의 발언을 통해 그가 실제로 연인 로스와 공유했던 침대임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작품은 실제로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의 연인 로스가 에이즈로 사망했던 1991년에 제작되었다.


회색빛의 침대 이미지는 연인 로스에 대한 사랑과 연인을 잃은 슬픔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분명 누가 있었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지금은 없어서일까. 어딘가 쓸쓸해 보인다. 과거의 흔적을 마주하는 것이 지금의 상실을 더욱 실감하게 만든다. 이렇듯 침대는 작가의 사적인 기억을 환기시킨다.


하지만,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에게 침대란 완전히 사적인 공간이 될 수는 없었다. 그에게 침대란 정부에 의해 언제든지 노출될 수 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1986년 미국 대법원은 ‘바우어스 대 하드위크(Bowers v. Hardwick)’ 재판에서 “게이와 레즈비언은 정부의 간섭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없으며 이것은 그들 자신의 침실의 사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는 동성애자들의 존재를 거부하며, 그들의 성행위를 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인정한다는 의미를 내포했다.


이로써 정부는 동성애자들의 성행위를 감시하기 위한 공권력을 획득해 언제든지 그들의 침실에 무단 침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법원으로 인해 동성애자들은 성적 자유라는 사적 영역을 정부에 의해 침해받는 불평등을 경험했다. 그리고 이는 소수자에 대한 당시 미국 사회의 분위기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짐작하겠지만, 이는 결국 사회가 성적 소수자에게 부여하는 차별과 탄압의 일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의 침대를 그렇다면 어떤 공간으로 정의해야 할까?”

 


사적인 장소인 동시에 사적 장소가 되지 못하는 공간. 소수자라는 이유로 받아 온 차별이 만들어 낸 공간. 이를 제시하며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는 많은 것들을 꼬집는 듯하다.


하지만, 그는 구구절절하게 이를 설명하지 않았다. 그가 제시한 것은 함축적인 이미지일 뿐이다. 그렇기에 또 다른 질문을 던져 본다. “왜 이렇게 제시했을까?”

 

 


사람들이 모이는 곳, 빌보드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는 자신의 작품을 투사하는 공간으로 ‘빌보드’를 꾸준히 사용해왔다. 빌보드는 옥외광고물 중 하나로, 현대 사회에서 대표적으로 사용되는 매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빌보드는 보통 도시의 중심가, 혹은 지하철이나 정류장 등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밀집 지역에 위치한다. 또한, 대부분 거대한 크기로 구성되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노출될 수 있다. 이렇듯 빌보드는 뛰어난 접근성과 가시성을 간직한 매체이다.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역시 이러한 빌보드의 특징에 매료되었고,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계속해서 빌보드를 채택했다.


실제로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는 자신의 작품이 화이트 큐브와 같은 전시장이 아닌 화려하고 다채로운 상업공간에 위치하길 원했다. 관객들이 작품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작품 주변의 혼잡하고 시끄러운 환경을 함께 고려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는 빌보드를 복제가 가능한 포스터를 이용해 여러 곳에 위치시켰을 뿐만 아니라, 매우 큰 사이즈로 설치해 눈에 잘 띄게 하였다. 이로써 많은 사람들이 관객이 되어 <무제(Untitled>(1991)를 볼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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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lix Gonzalez-Torres. “Untitled.” 1991. Billboard, dimensions vary with installation.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Gift of Werner and Elaine Dannheisser. © The Felix Gonzalez-Torres Foundation, New York. Installation view at 11th Avenue and 38th Street, Manhattan (February 20–March 18, 2012), as part of Print/Out, The Museum of Modern Art, February 19–May 14, 2012. Photo by David Allison

 

 

아무런 텍스트 없이 제시된 일상적이고 평범한 이미지. 예술작품임을 드러낼 수 있는 장치를 의도적으로 사용하지 않았기에 사람들은 이를 예술작품이라고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는 아마도 작품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활짝 열어놓고 싶었던 것 같다. 작품의 제목에까지 '제목 없음'을 부여한 것을 보면 말이다.

 

이렇듯,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는 작품의 내용과 설치 방식, 그리고 제목을 통해 '사람들이 최대한 다양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그렇기에 그의 빌보드는 관람자 모두가 공유하는 공적 공간의 사람들을 관객으로 만들었고, 이곳에서 다양한 의미를 생성할 수 있었다.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경계



이렇듯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는 <무제(Untitled)>(1991)의 내용과 설치 방식을 통해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사이의 경계에 대한 질문을 계속해서 던진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사적인 기억을 바탕으로 한 작품을 제시하고 작품 속에 사회 비판의 의미를 내포하지만 이를 추측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지 않은 채 작품을 공적 영역에 제시하며, 작품을 보는 관객들에게 해석의 여지를 맡기고 있는 것이다. ‘무제’라는 제목으로 열려 있는 이 결과물 앞에서 관객은 자신의 기억을 떠올려 공공의 장소에서 다양한 의미를 생성해낸다.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가 <무제(Untitled)>(1991)를 통해 강조한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병합은 미학적 공간인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를 발현시킨다. 이 때, 헤테로토피아는 미셸 푸코가 제시한 개념으로 ‘현실에 존재하는 유토피아’이다. 유토피아는 실제로 현실에 존재할 수 없으니, 다시 말해 이는 현실에 존재하는 이상향의 공간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낸시 스펙터는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의 <무제(Untitled)>(1991)가 헤테로피아적 환경을 묘사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낸시 스펙터는 빌보드를 통한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의 시도가 사적과 공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영역을 공존시키고, 침투시켜 반상황(Counter-situations)을 만들어낸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는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소통의 공간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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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ed by Nancy Spector© The Felix Gonzalez-Torres Foundation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는 평생을 주변인으로 살아왔지만 작가 자신의 삶의 특징으로 인해 작품의 의미가 한정되는 것을 거부했다. 그는 자신이 겪은 다양한 고통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았다. 대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침대’라는 공간을 제시해 관람자에게 해석의 여지를 남겼다.


자신의 사적 공간으로부터 발현된 작품을 공적 공간으로 넘기고, 여기에 관람자의 사적 공간이 개입해 작품을 완성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그는 중심인과 주변인의 관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이룩해 냈다. 이로써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는 자신을 수식하는 많은 단어들로부터 해방을 이루었다.


그렇기에 뉴욕 옥외광고판에 침대 사진을 건 사람을 이제는 다른 문장으로 읽어본다.

 

 

"자신을 고통받게 만들었던 세계를 고발하고 비판하는 것에서 나아가, 자신의 신념을 담은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사람들을 초대하는 사람."

 

 

그 사람의 이름은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다. 이것이 그가 매력적인 작가로 계속해서 회자되는 이유이며, 내가 이 작가를 사랑하는 까닭이다.

 

 


참고자료

Anne Umland, "Projects 34: Felix Gonzalez-Torres,"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exhibition pamphlet, Julie Ault(ed)

김주민,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Felix Gonzalez-Torres, 1957~1996)의 ‘빌보드’설치작업 연구」, (석사학위논문, 숙명여자대학교, 2017)

허경 외 8인,  『공간에 대한 사회인문학적 이해: 푸코의 헤테로토피아』, (라움, 2012)

Nancy Spector, Felix Gonzalez-Torres

 

 

[남다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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