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잠깐 봄, 그리고 겨울 [도서/문학]

바깥은 여름 - 입동을 읽고
글 입력 2021.02.20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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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이 넘어 아내가 도배를 하자 했다.’

 

이 소설의 첫 문장이다. 자정이 넘은 시각, 맥락 없는 물음에도 ‘그래’하고 대답하는 남편과 뭔가를 ‘하자’는 게 오랜만이라는 아내. 무슨 사연일까 하며 책장을 넘겼다. 그리고 이어지는 사건에 아내가 좀 얄미워지려했다. 흰 내의에 검붉은 액체를 뒤집어쓴 노인이 계속 같은 말을 중얼거리며 바닥을 닦는 장면이 눈에 선했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이 보이지도 않는 건지 ‘다 엉망이 돼버렸다’고 말하는 아내는 조금 비정상적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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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장. 아내의 기행

 

그런 나에게 변명이라도 하듯 이야기는 과거, 그들이 이사를 온 작년 봄으로 되돌아갔다. 화자와 아내는 처음으로 마련한 새집을 부담스러워하고, 자랑스러워하면서 그들만의 애정을 가지고 꾸며나갔다. 아내는 자신의 정착지가 망가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고, 어린 아들 영우의 낙서와 어지럽힘에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그런 아내가 가장 신경 써서 꾸민 공간이 바로 ‘부엌 벽면’이었다. 결국 검붉은 복분자액으로 더럽혀지고 마는, 그 벽 말이다. 여기까지도 아직은 아내의 기행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눈을 옮겨 다음 문장을 읽은 순간 지금까지의 고민은 까맣게 잊고 굳어버리고 말았다.

 

‘지난봄, 우리는 영우를 잃었다. 영우는 후진하는 어린이집 차에 치여 그 자리서 숨졌다.’ 로 시작하는 다음 문단은 아이를 잃은 그들의 심정보다는 사실만을 나열하고 있었는데, 그러한 서술은 직접적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그들의 마음을 대변하기에 적합했다. 담담하고 절제된 어투이기에 더욱 그랬다.


벽면에 튄 그 복분자액은 영우의 어린이집에서 보낸 것이었다. 물론 영우가 죽은 후에. 아내는 어린이집의 무심함에 화를 냈다. 그리고 나는 그제야 아내가 말한 ‘엉망이 돼버렸다’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복분자액이 튀어 엉망이 된 벽과 영우가 떠난 후 망가진 일상. 아내에게 있어 올리브색 ‘부엌 벽면’은 새로운 시작이었고, 그 시작의 중심에는 영우가 있었으나 그런 영우가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새로운 시작에 대한 희망은 거기서 좌초하게 된다. 그리고 벽에 복분자액이 튀었을 때, 그녀는 거기서 영우의 죽음과 함께 좌절감을 느꼈을 것이다. 검붉은 복분자액이 피처럼 보였던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벽면에 튄 복분자액이, 영우의 죽음으로 이룰 수 없게 된 자신의 꿈을 나타내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 ‘엉망이 돼버렸다’는 그런 상황을 실감함으로써 나온 표현인 것 같았다.

 

 

제 2장. 이웃들

 

소설 속의 ‘이웃들’로 표현된 주변인들은 냉담하고 무심하다. 어린아이를 죽여 놓고도 형식적인 뒤처리만 한 채 더 할 것 없다는 태도를 취하는 어린이집 관계자와, 그들이 아이를 잃은 가족에게 보낸 복분자액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무신경하고 비인간적이었다. 그들 뿐 만이 아니다. 부모가 보험회사의 직원이라는 이유로 아이의 죽음을 보험금을 타기 위한 의도적 살인으로 만들어버린 사람들의 태도는 어떤가. 그들에겐 지나가는 가십거리에 불과했을 그 화제가, 피해자 가족들에게 어떻게 다가왔는지 그들은 알까? 소설 속 아내의 말대로, 다른 사람들은 모른다. 알려고 하지도 않고, 단지 드러난 현실을 잠깐 연민한 후 잊어버린다.

 

 

제 3장. 흔적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한다. 살다 보면 가끔, 잃음으로써 깨닫게 되는 소중함이 있다. 언제 이렇게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았나 싶은 사소한 것들이 있다. 너무 일상에 당연하게 뿌리를 내려 알지 못했던 소중함은, 잃어버리고 나서야 아프게 그 존재를 실감시킨다. 떠난 사람은 누구나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그러한 흔적은 언제 튀어나올지 모른다. 도배를 하다 발견한 영우의 쓰다 만 이름처럼, 괜찮아 질만하면 떠오르고, 벽에 튀어 지워지지 않는 복분자액처럼, 계속 가슴속에 남아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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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장. 그들과 우리들

  

이 작품은 상실자들의 아픔만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상실자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를 제시하고, 그 방향성을 고찰하게 했다. 우리가 취해야할 태도는 어쭙잖은 동정이 아님을 깨닫게 했다. 위에서도 말했듯 우리는 그들의 아픔에 완전히 공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사소한 배려들이 그들에게 큰 힘이 될지 모른다. 따뜻함을 느끼고, 앞으로의 삶에 일말의 희망을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인간은 누구나 상실의 고통을 겪게 된다. 그에 대처하는 방식은 누구나 다를 것이고, 아픔을 승화하는 방식 또한 각자 다를 것이다. 그러니 남에게 슬퍼할 것을 강요하지 말고,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꾸짖지도 말자. 그 대신 가만히 그들의 등을 두드려주자. 어린 영우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그랬던 것처럼.

 

 

[고연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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