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자유를 향한 끝나지 않을 춤,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공연]

글 입력 2021.02.20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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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옛날 옛적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작은 마을에 딸 다섯을 둔 베르나르다가 살고 있다. 두 번 결혼을 했는데, 처음 남편과 딸 하나, 둘째 남편과 딸 넷을 낳았다. 어느 날 둘째 남편 안토니오가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다. 남자는 다 떠나고 딸들과 하녀들로 가득 찬 이 집.


끼익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핏빛 조명이 쏟아진다. 무서운 침묵과 함께 베르나르다가 등장한다.


그렇게 안토니오의 집은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이 되었다.


 

 

1.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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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그룹 씬메이커스 / 촬영: 김정란 디자이너


 

"난 이 평화와 고요를 즐기고 싶어. 오늘도 무사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내 보호 안에서만 모두가 편하게 숨 쉴 수 있지."

 


창백하고 두꺼운 흰 벽, 아치형 문과 검은 의자만이 놓인 이 황량한 무대는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이다. 방금 안토니오의 장례식을 치른 베르나르다는 앞으로 8년 동안 전통에 따라 극히 절제된 삶을 살겠다고 선언한다. 모든 창문이 닫히고 외부로의 출입이 금지된다. 집에서 조용히 앉아 수를 놓는 것만이 딸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일상이다. 폭군으로 군림하는 베르나르다에게 대항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모두 검은 상복을 입고 그녀의 말에 따른다.


첫째 딸 앙구스티아스는 어리고 잘생긴 뻬뻬의 구애를 받고 있다. 동생들은 이 마을에서 가장 잘난 뻬뻬가 언니에게 빠졌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 늙고 건강하지 않은 여자에게 청혼하는 이유는 아빠가 물려준 돈 때문일 거라며 비웃는다.


앙구스티아스는 뻬뻬의 눈이 자신을 향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모른 척하고 싶다. 이 집에서 나간다면 반드시 행복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39살의 앙구스티아스는 그것을 아주 오래 기다려왔다. '난 아내가 필요해. 너도 동의하니?'라는 청혼의 말을 들었어도 매달릴 수밖에 없을 만큼. 더 이상 그녀에게 향하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자신은 행복할 것이라고 믿고 싶다.


어리고 제일 예쁜 막내 아델라는 언니들처럼 복종하며 살고 싶지 않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즐기고 밖으로 나가 자유롭게 살고 싶다. 지붕 위에서 반짝이는 밤 사이의 별과 창문 밖으로 보이는 들녘의 아름다움, 사랑하는 사람과의 행복을 그녀는 알고 싶다. 그런 아델라에게 찾아온 사랑이 바로 앙구스티아스의 약혼자 뻬뻬였다. 아델라는 집안 식구들 몰래 새벽에 창밖으로 만나는 뻬뻬와 불타오른다.


마르띠리오는 이런 아델라를 말리려 한다. 쭉 창밖의 소리를 듣고 있어 그녀가 모두가 잠든 시간, 뻬뻬를 만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르띠리오는 아델라가 무엇을 하는지 모든 것을 감시한다. 아델라는 그런 마르띠리오의 시선이 싫다.


마르띠리오가 앙구스티아스의 베개 밑에서 뻬뻬의 사진을 훔쳐 소동이 인다. 베르나르다는 장난이었으니 그냥 넘어가라고 말하지만. 하녀 폰시아의 말처럼 그것이 단순한 장난이었을까. 형체를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모래폭풍처럼 베르나르다의 집을 휩쓸기 시작한다.


이웃 리브라다의 딸이 정조를 잃은 대가로 죽임을 당한다. 갇혀 있던 암말들이 마구간을 박차고 나간다.


아델라는 그날 밤 뻬뻬를 만난다.


 

 

2. 베르나르다 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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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극장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은 온통 검은색으로 뒤덮여 있다. 창문과 문까지 굳게 닫혀 있어 가끔씩 창문 틈새로 드는 햇빛이 없다면 이곳은 아무런 빛도 존재할 것 같지 않다. 안토니오를 기리기 위해 입고 있는 검은색 상복은 죽음을 애도하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보호라는 명목으로 딸들에게 퍼부어지는 폭력과 감금, 억압된 생활. 그리고 베르나르다에게는 침묵과 고독이라는 무거운 짐으로 입혀진다.


베르나르다가 보여주는 결벽증과 강박은 아마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한 반동일 것이다. 그녀에게도 한때는 어리고 순수했던 시절이 있었다. 결혼으로 달콤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순수 말이다. 어린 하녀가 시작해 하녀들의 입으로, 안토니오의 옷으로 하나의 형체처럼 다가오는 이 노래는 그때의 어린 베르나르다를 상상하게 한다.


"내가 결혼하는 날, 내 탐스런 두 볼. 붉은 사과의 유혹. 모두 날 원할 거야."


어린 꿈은 베르나르다의 입으로 이어 붙지만 차마 끝내지 못한다. 붉은 사과의 유혹. 앙구스티아스가 뻬뻬에게 잘 보이겠다며 꼈던 붉은 귀걸이처럼 빨간색은 욕망의 상징이다. 다른 딸들도 자신의 내밀한 빨간 욕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런 욕망은 베르나르다에게 죄악과도 같은 것이 되었다. 이젠 이 노래를 믿지 못한다. 자신은 그저 그들의 창녀일 뿐이었다. 첫 번째 결혼도, 두 번째 결혼도. 어린 시절의 노래는 메마르고 깊은 속에서 성대를 타고 무겁게 창녀라는 단어가 떨어진다. 그 단어의 반복은 운명을 세뇌시키듯 종소리처럼 울린다.


그녀가 몸을 씻는 장면에서 맴도는 "멀리서 온 무어인 소녀. 올리브 따다 일을 당했지"는 더 이상 그렇게 당하게 내버려 둘 수 없는 베르나르다가 스스로를 구속하는 마음처럼 느껴진다. 무어인 소녀였을 어머니 마리아 호세파는 미쳐버렸다. 그의 후손인 베르나르다 역시 행복하지 않다. 역사는 반복되고 엄마와 할머니의 운명은 딸들에게 이어질 것이다.


폰시아의 입에서는 집 밖에서 갖은 폭력을 당하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남편을 묶어놓은 남자들에게 납치당해 올리브 숲에 끌려간 파카 라 로세타, 누군지 모를 남자의 아이를 낳고 죽였다는 이유로 마을에서 사냥 당하는 리브라다의 딸. 심지어 베르나르다 역시 집 안에서 안토니오가 첫째 딸 앙구스티아스와 하녀에게 손을 댈 때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이 자괴감은 딸들을 남자로부터 단속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표출된다. 베르나르다가 딸들을 지키기 위해 생각한 최선의 방법은 돌을 맞혀서라도 집으로 끌고 들어오는 것이다. 그렇게 남편이 사라진 가부장의 세계에 베르나르다는 자신이 남성이 모습이 되기로 한다. 자신의 보호 아래서는 모두가 편히 쉴 수 있을 테니까. 두꺼운 검은 옷 아래로 모든 감정은 묻어버린다.


 


3. 아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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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극장

 

 

프롤로그의 강렬한 플라멩코에서부터 조용히 뺨을 맞는 언니들과 달리 당당한 눈빛으로 베르나르다와 맞서는 유일한 인물이 있다. 그녀의 이름은 아델라. 아델라는 앞으로 나아간다는(adelantar) 그 이름처럼 무겁게 온 집안을 누르고 있는 검은색을 벗어던지고 그 너머로 나아가려 한다.


 

언니처럼 포긴 못 해

거짓으로 살 순 없어

그이와 함께 초록 드레스 입고

세상 저 밖으로 나가서 춤출래

모두 다 보게

그이와 함께 초록 드레스 입고

내가 가진 시간 사랑 다 바쳐서

내 남자와 함께 춤출래

 

 

막달레나가 만들어준 초록 드레스는 아델라에게 희망을 상징한다. 자유롭게 바깥으로 훨훨 날아가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겠다는 희망. 아델라는 사랑을 포기한 마르띠리오와 사랑하지 않으면서 결혼해야 하는 앙구스티아스처럼 살 수는 없다. 가장 어리지만, 아델라는 누구보다 욕망에 적극적이며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극의 후반부에서 모두가 잠든 밤에 아델라가 입고 나오는 옷은 검은색과 완벽하게 대비되는 흰색이다. 흰색은 극 중에서 앙구스티아스의 혼수를 위한 레이스로 등장한 적이 있다. 신부의 색이면서 사랑의 색일, 또 이 모든 것을 전복시킬 흰색의 잠옷을 입고 아델라는 뻬뻬와 만나게 된다.


아델라가 밖으로 나가기 전에 잠시 집을 돌아다니던 할머니 마리아 호세파를 만나는데 그녀는 광인으로, 베르나르다의 집에 갇혀 있는 또 다른 세대의 여성이다. 그녀 역시 흰옷을 입고 잠깐씩 등장해 바다로 가겠다며 노래를 부르곤 했다. 미쳐서야 아델라처럼 꿈을 꾸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아델라와 닮은 모습이면서 어쩌면 베르나르다의 미래의 모습일지도 모르는 늙은 여자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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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극장


 

바다로 갈 거야. 결혼을 할 거야. 

해변의 남자와 즐기며 살 거야.

떠나자 욕망의 바다로.

베르나르다, 난 사랑받으며 행복하게 살 거야.

 

 

지금 아델라가 만난 마리아 호세파는 갓난아이를 안은 것처럼 천을 돌돌 말아 안고 있다. 아델라와 마리아 호세파의 시선 사이에는 무언의 유대감이 느껴진다. 품에 조심히 안고 있던 천은 아델라에게 가까이 가는 순간 풀리고 만다. 마치 그 아이가 아델라인 것처럼.


그것이 어떤 신호라도 된듯 아델라에게 열리지 않던 세상을 향한 굳은 문이 드디어 열린다.




4. 마르띠리오


 

"캄캄해 난 안 보여. 더 가까이 와봐. 널 만질 수 있게." 아델라는 문밖에 있는 것이 뻬뻬임을 알고 다가선다. 만지고 싶으니 가까이 오라는 말을 들었다던 폰시아와 달리 같은 말이 아델라의 입에서 발화된다. 뻬뻬는 앙구스티아스와 결혼하겠지만 작은 집을 얻어 그가 찾아오기를 기다리며 사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을 것이다. 뻬뻬는 자신을 사랑하니까. 아델라는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뻬뻬와 성관계를 한다.


그러나 행위 뒤로 깔리는 폭력적인 가사들과 열린 문 사이의 핏빛 조명이 그녀의 비명소리처럼 찢어지는 마지막 노래를 함께 한다. 욕망의 빨간색으로 감싸인 흰옷의 아델라가 무대 위로 쓰러진다. 아델라는 온전히 행복했을까? 아델라의 말처럼 이것은 행복의 시작이었을까.

 

 

거부하면 또 매달려 

멈춰달라면 끌어당겨

부러질 것만 같은 다릴 타고서 

가녀린 등 뒤로 올라섰어

문을 열어 들어가게 

문을 열어 들어가게

문을 열어

 


아델라가 들어오는 모습을 마르띠리오가 보고 있었다. 아델라는 뻬뻬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 알지 않냐며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지만 마르띠리오는 자신을 껴안은 아델라와 울다가 소리를 질러 베르나르다를 찾는다. 아델라가 무슨 짓을 했는지 보라며. 그 소리를 듣고 찾아온 모두가 아델라의 모습에 경악한다. 앙구스티아스는 아델라에게 달려와 폭언을 퍼붓는다.


마르띠리오가 가장 사랑하는 동생인 아델라에게 보여주는 감정은 상당히 복합적이다. 아델라를 위한 마음도 있지만 자유롭게 사랑을 표현하는 아델라에 대한 부러움이기도, 자신이 뻬뻬에게 갖고 있는 사랑에서 발현된 질투이기도 하다. 뻬뻬의 사진을 훔쳤던 것도 마르띠리오에게 단순한 장난은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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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극장

 

 

마르띠리오의 이런 행동은 유일하게 자신에게 관심을 보였던 남성인 엔리케와의 관계에서 실패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급이 맞지 않다는 베르나르다의 거부로 쫓겨나 엔리케는 약속한 날 마르띠리오를 찾아오지 못했다. 다른 여성과 결혼한 엔리케를 보며 마르띠리오는 사랑을 포기하고 남성을 혐오한다. 못생기고 등이 굽은 자신의 모습은 남성들의 표적이 되지 않도록 신이 도와준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마르띠리오의 눈에 아델라는 가시 같을 수밖에 없다. 앙구스티아스를 찾아왔던 뻬뻬가 더 깊은 밤 다시 아델라를 만나러 오는 것을 참을 수 없다. 아델라가 언제 잠을 자는지, 집안의 사람들이 누굴 만나는지 마르띠리오는 항상 지켜본다.


마르띠리오의 감정은 뻬뻬를 사랑하는 것보다 욕망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아델라처럼 될 수 없다는 질투가 더 커 보인다. 마르띠리오는 아델라가 될 수 없다. 일꾼들이 일하러 가는 모습에 가슴이 설레고 그들의 노래에 춤을 춰도 돌아오는 건 수치심이다. 욕망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가 없기에 사랑받고 싶지만 그것을 내보일 수 없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혼자 입겠다는 흰 레이스 속옷에 대한 집착에도 이 수치심이 고여있을 것이다.


아직 밖에 뻬뻬가 있다는 것을 듣고 베르나르다는 총을 들고 찾아간다. 따라갔던 마르띠리오가 돌아와 얼굴을 감싸고 뻬뻬 로마노가 죽었다고 말한다. 아델라는 무너지고 만다. 언니들을 보며 살려달라고, 자기를 도와달라고 손을 뻗어보지만 아무에게도 닿지 않는다. 아델라는 망가진 채 자기 방으로 돌아간다. 그 곁을 마리아 호세파의 흰 천이 감싼다.




5. 죽음의 얼굴



하지만 사실 뻬뻬 로마노는 죽지 않았다. 그는 말을 타고 도망쳤다. 아델라를 절망시키기 위해 마르띠리오는 거짓말을 했다. 모두 엄습해오는 공포를 붙잡고 아델라의 방문 앞에서 문을 두드린다. 그 모습이 마치 리브라다의 딸을 죽여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던 모습과 겹친다. 말이 달리는 소리와도 같다. 숨는다고 수치심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며 당장 나오라고 소리친다. 끼이익거리며 겨우 열린 문안에서 아델라를 상징하는 흰 의자가 천장에서 떨어진다.


방안은 딸들의 비명이 가득하다. 베르나르다는 조용히 하라며 다그친다. 눈물은 혼자 있을 때만 흘려야 한다. 죽음의 얼굴을 똑바로 봐라. 내 딸은 처녀로 죽었다. 어서 침대에 눕혀 처녀처럼 꾸미라고 명령한다.


쓰러져서 울던 딸들은 터지는 울음을 막고 죽음의 얼굴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든다. 어떤 감정들이 그들의 얼굴에 스멀거린다. '쉿'하는 소리에 다시 검은 조명으로 뒤덮인다.




6. 자유를 향한 끝나지 않을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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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극장

 

 

옛날 옛적 스페인이라는 이름으로 환상성을 갖는 이 이야기는 단순히 남자에 미쳐있는 남자 없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들이 욕망하는 것은 남자 그 자체라기보다 남자라는 이름의 자유일 것이다. 결혼해 베르나르다의 숨 막히는 집에서 벗어나고, 사랑을 받고 행복한 가족을 이룰 수 있다는 자유. 그들이 욕망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사랑이며, 이것이 당시에 꿈꿀 수 있던 최대한의 자유였으리라. 비록 다른 집으로 옮겨가 이곳과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면서도.


그러니 이것은 폭력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들이 갇혀 있는 집은 아버지에서 남편으로, 베르나르다에게로 딸들로 폭력의 대물림 되는 곳이다.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남편의 8년 상을 치렀다는 것을 상기하면 마리아 호세파도 미치기 전에는 베르다르다와 비슷한 모습이지 않았을까.


구체적으로 안토니오가 베르나르다의 턱을 잡고 강요하던 동작은, 베르나르다가 앙구스티아스에게로, 마지막 순간에서 앙구스티아스가 아델라에게 화내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멀지 않은 미래에 딸 중 누군가가 베르나르다 같은 어머니가 될 것이라는 상상하기도 어렵지 않다. 그런 시대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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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극장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들의 깊은 곳에 (심지어 베르나르다 역시) 욕망이 드글거린다는 것이다. 이 극은 욕망을 체화하여 보여준다. 플라멩코의 강렬한 몸짓이, 발을 구르고 손뼉을 치는 모습들이 대놓고 드러내지 못하는 욕망에 대한 정열과 두근거리는 심장을 대신한다.


암말이 박차고 달려나갔다는 말처럼 이들의 발구름 소리는 마치 말이 달려나가는 소리 같다. 가둬놓았다고 해서 밖을 향한 시선마저 억압할 수는 없다. 자유롭고 싶은 욕망의 박동은 소리와 진동을 타고 흘러와 관객의 심장에까지 미친다. 전율은 객석의 저 뒤까지 거대한 파동을 만든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가사들 역시 그렇다. 이 시대 여자의 운명에 비극을 고하듯 울리는 "내 고통은 배고픔이 아니야. 내 고난은 사랑의 아픔"은 여러 인물들에 대입되게 된다.


다시 한번 사랑을 기대하며 가진 것 없는 안토니오와 결혼했을 것 같은 베르나르다. 베르나르다는 이 일로 더욱 딸들에게 수준이 맞는 남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앙구스티아스에게는 베르나르다처럼 불행한 삶이 예고되어 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자에게 순종하며 살아야 하는 삶. 뻬뻬는 그녀에게 다이아가 아닌 눈물을 상징하는 진주로 청혼을 했다. 아마 아델라가 죽지 않는다고 해도 앙구스티아스의 결혼은 그대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앙구스티아스에게 떨어진 유일한 동아줄이었으니.


막달레나는 이런 여자의 운명이 지긋지긋하다. 여자는 태어날 때부터 저주받았다는 그녀는 결혼을 꿈꾸지 않는다. 하지만 자매들이 겪고 있는 이 소란에 가슴 아프다. 아멜리아는 아무에게도 인기가 없어 잠시 스친 남자와의 기억에 행복해하고, 마르띠리오는 자신을 버린 남자 때문에 사랑을 포기한다. 아델라가 죽은 모습을 보며 마리띠리오는 그래도 뻬뻬를 가질 수 있었으니 행복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순간 드러나는 그녀의 비정상적인 사랑과 행복에 대한 집착은 소름이 끼칠 정도다.


진실로 사랑의 자유을 좇았던 아델라의 말로는 관객들에게도 큰 충격을 준다. 현실에 가로막힌 자유를 향한 그녀의 몸짓은 박제되듯 천장에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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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극장

 

 

그러나 아델라를 대신해 매달린 의자가 검은색이 아니라 흰색이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아델라는 죽었지만 자유로의 갈망이 영영 사라진 것은 아니다. 마리아 호세파가 아델라가 마지막으로 걷는 길을 수호하듯 감싸던 모습은 신성하기까지하다. 아델라의 죽음에 그녀 몫인 검은 의자를 쓰러트리고, 하얀 천을 씌워주는 것 역시 상징적이다.

 

예수의 부모인 마리아와 요셉의 이름을 합쳤다는 마리아 호세파. 그녀가 지키고 싶었던, 그리고 애도하고 있는 아델라는 이 집안의 어린 양이 아니었을까. 어린 양의 피로 물든 여자들의 역사는 다시 오롯한 열 명의 여자들의 목소리로 이어지고 있다. 단순히 여자들의 일만은 아닌 채로. 그리고 이 구원은 앞으로 역사를 써갈 관객들의 몫이다. 배우들의 몸으로 울린 욕망의 소리는 관객의 박수로 옮아 몸에 새겨진다. 온몸으로 갈망하는 자유를 가로막고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우리의 손이 기억하게 될 것이다.

 

어둠이 내리기 전, 붉은 조명이 마치 우뚝 선 베르나르다의 모습처럼 무대를 내리쬔다. 그 사이로 딸들의 방에서 아직은 조심스러운 초록 조명이 아른거린다. 아델라가 한 번도 입지 못했던 초록색 드레스의 꿈은 조용히 어둠이 깔리는 순간 모두의 마음에서 울렁인다. 마지막 순간, 베르나르다를 바라보던 딸들의 얼굴에 넘실거리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역사는 반복되지만 한 순간의 작은 비틀림으로 전혀 다른 길을 걷기도 한다.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은 그렇게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최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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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ScenemakerS
    • 최주현 기자님께.
      기자님께서 천번째로 올린 <베르나르다 알바> 무대사진은 정동극장이 촬영한것이 아닌 이 작품의 무대디자이너인 김정란 디자이너가 직접 촬영한 저희 <디자이너그룹 씬메이커스> 의 사진입니다. 가급적 정정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https://www.scenemakers-design.com/
      웹사이트 주소입니다. 참고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1 0
    • 댓글 닫기댓글 (1)
  •  
  • dia_deluna
    • 2021.02.24 18:3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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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고
    • ScenemakerS안녕하세요, 최주현입니다. 말씀해주신대로 출처 정정하였습니다.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다시 한번 확인했어야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디자이너 분께도, 씬메이커스 분들께도 정말 죄송합니다. 알려주셔서 감사드리며 다음부터는 정확한 출처 기재를 위해 더 신경 쓰겠습니다.
      더불어 좋은 작업 보여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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