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인간의 자아가 담긴 고궁의 옛 물건 [도서]

<잔치 열고 물고기 잡고 전쟁하는 그림이 그려진 주전자> , 전국시대 전기
글 입력 2021.02.19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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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평면_고궁의 옛물건.jpg

 

책 제목을 살펴보면, ‘유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옛 물건’으로 칭한다.

 

페이지를 넘겨 찬찬히 살펴보니 작가는 이런 말을 전했다. “시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모든 소장품에는 여러 왕조들의(하나라~청나라) 비바람이 수렴되어 있고, 시간이 힘이 응축되어 있다. 즉, 유물이라고 부르지 않고 옛 물건이라고 부르는 것은 ‘옛’에 맞춰 시간을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처럼 작가가 가지고 있는 전문분야에 대한 신념으로 인해, 제목부터 옛 물건들을 시간이 흐름으로써 남겨진 역사와 더불어 보기 시작했다.

 

외국 문화의 예술을 쳐다보는 건 신비감과 재미는 동시에 따라오지만, 어딘지 모르게 보면 볼수록 어렵다. 보고 느끼는 감정 그대로를 향유하면 되는데 꼭 외우려는 습관이 생겼다. 마치 좋은 문장을 보면 잊지 않기 위해 밑줄을 치고, 필사를 꼭 해두는 규칙처럼 말이다.

 

그런데 <고궁의 옛 물건>에서 흐르는 시간 속에 아름답게 녹아든, 사연이 풍만한 작품 하나를 발견했다. 외우려는 노력이 들어가지 않았는데, 자연스레 머릿속에는 그 한 작품의 스토리 라인이 입체적으로 떠올라진다.

 

 

전국시대

<잔치 열고 물고기 잡고 전쟁하는 그림이 그려진 주전자>의 문양 펼침 그림

 

 

[포맷변환]캡쳐.jpg

 

 

<잔치 열고 물고기 잡고 전쟁하는 그림이 그려진 주전자>는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그림의 외관적으로 보이는 모든 것들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제목에 다 붙여 논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제목에서 시선을 빼앗기는 것과 더불어 우리는 이 그림을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주전자에 그려진 것은 동물이 아니라 사람으로 표현되어 있다. 청동기에 인간이 담기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청동기 물건에서는 오로지 동물과 식물만 존재감이 있었고, 인간은 그저 동물과 식물을 통해서만 드러날 수 있었다. 그런 틀을 깨뜨린 물건이며, 이런 상황이 앞으로 다시는 없을 거라고 알려준다.

 

 

[포맷변환]아앙아.jpg

발을 베는 형벌을 받은 사람 솥, 서주 후기

 

 

인간이 주체인 물건이 나왔다고 해서, 강자가 되진 않았다. 영향력이 썩 크지는 않았다. 대표적으로 <발을 베는 형벌을 받은 사람 솥>을 보면 알 수 있다. 여기에는 문을 지키는 사람이 형벌인 월형을 받은 사람이다. 즉,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생명력이 있지 않은 사람들이다. 이 삶의 주제가 될 수 없었다. 매우 약자이며, 아무 쓸모 있지 않은 세상의 변두리 어디쯤 있는 먼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귀신과 요괴 그리고 신령이 주체가 되어 인간은 그저 끌려다니기만 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기본적인 문제로 혼란스러울 때가 많았다.

 

 

그들은 새가 어떻게 날 수 있는지, 산에 왜 안개가 끼는지, 사람은 왜 죽는지 몰랐다. 신과 귀신이 나오고 위험한 상황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세상에서 인간은 늘 무력감과 당혹감을 느꼈다. 그래서 그들은 청동기를 만들었다. 청동기의 무늬 장식이 갖는 초자연적 마력으로 하늘의 신들과 소통하며 더 이상 자신을 외롭지 않게 했다.

 

  

즉, <잔치 열고 물고기 잡고 전쟁하는 그림이 그려진 주전자>는 서주 후기의 <발을 베는 형벌을 받은 사람 솥>과는 달리 인간이 인간으로서 주체가 생긴 시발점이 되는 물건이며, 앞으로는 동물과 식물을 통해서만 인간이 존재감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암시한다.

 

다시 정리하여, 이 물건이 수많은 책에 소개된 물건을 제치고 매력적으로 느꼈던 이유는 인간이 자아가 생겼다는 점과 신과 요괴의 힘에 덜 의지했다는 변화를 나타냈기 때문이다.

 

원래 그랬다는 전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내는 점은 한 나라의 예술사적 개혁을 만들어주기에 마땅하다. 또한 춘추전국시대는 예술사적 관점에서 보면 문양과 조형 그리고 공예가 자유로워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전쟁으로 인한 중앙의 통제력이 약화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나를 잃고 하나를 얻었지만, 어쨌든 전쟁은 500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어졌지만 지금은 끝이 났다. 그러나 물건은 전쟁이라는 명목 아래, 현재까지 그 나라를 표현해내고 역사를 담고 있는 지표가 되어주니 예술사적 관점에서는 오히려 깊은 서사를 만들어주기에 충분했다.

 

(전쟁 중에는 본연의 규칙이 깨져 자유로워진다. 돈을 뺏을 수 있고, 사람을 죽이고 패도 배상할 필요가 없었기에 이와 비슷하게 ‘예술’에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강조해 <잔치 열고 물고기 잡고 전쟁하는 그림이 그려진 주전자>가 표현해내는 방식은 이러했다. 단순히 목숨을 걸었던 전투를 기록한 것이 아닌, 당시의 스크린이었던 청동기를 이용해 전국시대의 시대적 상황을 함께 담고 있는 한 국가의 의미 있는 클립 장면인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마지막에 짚고 넘어간 의견이 있었다. 이 세대에는 종교적 의미가 결여된 장식이 기물에 가득 차다고 한다. 전쟁, 살해 등의 그림을 그리는 바탕화면이 되어 청동기를 부재로 만들었다며 덧붙였다.

 

이에 반문이 생겼다. ‘왜 종교적인 의미만 담은 역사만 가치 있다고 판단이 되는 건가요?‘라는 궁금증은 꼭 물어보고 싶었다.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인간이 하나의 자아로서 주체적으로 나가려는 의지의 기운을 이 주전자로서 받기 마땅했기에,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가치 있는 ‘옛 물건’이라고 전하고 싶다.

   


[조우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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