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왜! 어째서! 잘 풀리지 않는 걸까 - 백엔의 사랑 [영화]

단 한번이라도 이기고 싶었어
글 입력 2021.02.17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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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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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두 살 ‘이치코’(안도 사쿠라)는 전문대 졸업 후 부모님 집에 얹혀살며 일도 연애도 하지 않고 살아간다. 모태솔로에 남자에게 인기도 없는 아이코는 집에서 만화책을 읽거나 조카와 축구 게임을 하는 것 말고는 생산적인 일은 그 무엇도 하지 않는다.


유일한 경력이라곤 어머니 도시락집을 잠깐 도운 것밖에 없다. 여동생은 그런 이치코가 너무나 한심하다. 나이는 나이대로 먹고 일도 안 하고 그렇다고 결혼할 생각도 없는 아이코의 모습은 인생의 패배자처럼 보였다.


어느 보통의 날, 이치코와 여동생은 그동안의 갈등과 불만이 폭발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돼지”, “남편이 버리고 간 이혼녀” 서로 모진 말을 내뱉으며 피가 터지도록 싸운다. 이를 계기로 이치코는 집을 떠난다. 어머니가 몰래 챙겨준 돈을 가지고 독립하게 된 이치코는 생계를 위해 그동안 잘 가던 백엔 샵에서 최저시급을 받고 시작한다.


우울증에 걸린 점장, 변태 이혼남 동료의 치근덕거림, 유통기한 지난 음식을 훔쳐 가는 4차원 노숙자, 바나나만 사가는 퇴물 복서 카노, 백엔 샵에 직원들과 찾아오는 손님들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 집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세상 밖으로 나온 이치코는 난폭하고 자기 멋대로 행동했던 집과는 달리 사회에서는 사람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소심하고 여린 사람이었다. 이런 아치코에게 퇴물 복서 카노가 눈에 들어오게 된다. 아치코는 일을 하러 가는 길에 있는 복싱장에서 카노를 몰래 쳐다보곤 하였는데 그 모습을 보고 카노는 이치코에서 접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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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노는 이치코에서 동물원에 놀러 가자고 데이트 신청을 하고 이치코는 처음 겪는 일에 당황한다. 그리고 동물원에서 무미건조한 데이트 도중 카노에게 왜 자신에게 데이트 신청을 한 건지 물어본다. 그는 “너라면 거절 안 할 것 같아서” 라 말한다. 이치코는 놀라지도 실망하지도 않는다. 당연한 일이라 생각한다. 이치코에겐 사랑마저 사치다.


여동생이 말했던 것처럼 이치코는 인생의 패배자다. 이치고 자신도 자신이 인생의 패배자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모습이 한심하고 안타깝고 안쓰럽다. 그녀는 인생의 패배자라고 하기엔 노숙자를 도와주는 착한 마음씨와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는 소녀 같은 마음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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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아치코에게 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 바로 복싱이다. 카노를 통해 보게 된 첫 복싱 경기는 아치코에게 복싱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서로 치고받고 다치고 죽을 듯이 싸우지만, 경기가 끝나고 나면 그 둘은 언제 싸웠냐는 듯이 서로의 어깨를 토닥이고 포옹한다. 이치코의 마음속에 어떤 열정이 피어오른다.


그러나 열정이 생겼다고 해서 이치코의 인생이 180도 달라지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최악으로 흘러갔다. 강제로 당한 첫 경험, 사랑하는 사람의 배신은 이치코를 더욱더 힘들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 아픔을 복싱을 통해 잊어갔다. 매 순간 복싱을 위해 움직이고 살아갔으며 그녀는 프로 데뷔를 위해 달려 나갔다. 그러나 프로 데뷔 나이는 32살, 복싱 관장은 이치코에서 10년이나 늦었다고 말하지만 이치코는 포기하지 않는다.


이치코의 노력으로 프로 데뷔를 앞둔 경기 날, 이치코의 주변은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사람들 눈도 마주치지 못했던 이치코는 어느새 자연스레 사람들과 이야기 할 수 있게 되고 소통이 없던 가족들 사이에서 소통이 생기고, 조금씩 가족들 앞에서 웃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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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에 “싸요, 싸요 백엔 샵에 놀러 오세요.”란 노래가 흘러나온다. “누가 이런 노래를 튼 거야”라고 추궁하는 관장님에게 “저는 백 엔짜리 여자니까요.” 라 말하며 이치코는 경기장으로 들어선다. 상대 선수는 이치코보다 한참 어리고 실력도 출중한 선수다. 하지만 이치코는 주눅 들지 않는다. 오로지 이기기 위해 지금까지 달려왔다.


4전 4패, 이치코는 경기에서 패배한다. 경기가 끝난 뒤 이치코는 아픈 몸을 이끌고 상대 선수에게 다가간다. 그리도 서로 어깨를 토닥이고 포옹하며 말한다. “고맙습니다.”


상처 가득한 얼굴을 매만지고 몸을 추스르며 관중들이 떠난 경기장을 나선 이치코 앞에 카노가 나타난다. 그녀는 카노의 앞에서 펑펑 울면서 말한다. 이기고 싶었다고  한번이라도 좋으니 이기고 싶었다고 말한다. 카노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밥 먹으러 가자고 말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승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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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코는 백수, 니트족, 캥거루족, N포세대 등 포기, 실패의 아이콘이다. 살아가는데 의욕도 없다. 그렇다고 하고 싶은 것이 있는 것도 아니다. 자신을 포기한 사람이다. 그런 그녀에게 따라다니는 꼬리표는 패배자였다. 그러나 이치코는 그 누구보다 살고 싶고 인생에서 승리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그 누구보다 복싱 경기에서 이기고 싶었다. 이곳에서 만큼은 승리자가 되고 싶었다. 복싱할 때만큼은 패배자라는 꼬리표는 신경 쓰이지 않았다. 주변의 시선과 눈치도 볼 필요도 없었다. 세상에 내 편은 없고 나를 질타만 하는 세상에서 복싱은 나를 몸과 마음을 바꿔놓았고 나를 지킬 수 있는 것이었다.


또한 복싱 경기 후 그렇게 치열하게 싸웠던 두 사람이 승리자, 패배자가 아닌 동등한 상대 선수로써 어깨를 토닥이고 “수고했다”라 말하는 모습이 좋았다. 그녀는 링 윙에서 만큼은 승리자도 패배자도 아닌 같은 동료로서 어깨를 두드리고 잘 싸웠다. 수고했다. 라고 말해주는 그 순간에 매료되었다. 그녀의 삶에 필요했던 건 승리라는 말보단 수고했다. 라는 말이 더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그녀는 복싱 경기에서 이기지 못하였다. 몇 번이나 쓰러져도 일어나 싸웠지만, 승리자가 될 순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을 배신한 남자의 앞에서 펑펑 울었다. 그리고 남자는 말한다. “밥 먹으러 가자” 이치코는 카노의 손을 잡고 앞으로 걸어 나간다.


이치코가 복싱을 통해 노력하고 점점 변해가는 모습은 보는 이에게 쾌감을 불러왔다. 그래서 이치코가 이기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아이코는 포기하지 않았다. 상대방에게 계속 맞아 쓰러져도 계속 일어났다. 그래서 이길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현실은 역시나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이치코는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승리자가 되어보지 못한 자들을 대표한다. 그러나 인생에서 승리자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인생이 내가 원하는 대로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인생은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상처받고 좌절한다. 그리고 가족, 친구와 웃고 연인과 사랑하며 살아간다. 이 삶 속에서 승자가 되기도 패자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경기에선 이기지 못했지만, 앞으로의 이치코는 달라졌을 것이라 믿는다. 이치코는 성장했다. 나이를 먹어 자란다는 의미가 아니다. 정신적으로, 내면적으로 성장한 것이다. 산다는 건 늘 행복한 일만 있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리고 늘 승자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아파하고 울고 좌절한다. 그런데 이 아픔을 가지고 멈춰있을 것인가? 나아갈 것인가? 그것은 오로지 자신에게 달려있다. 나이를 먹어도, 시간이 흘러도 자신이 이뤄낸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느껴져도 인생의 패배자가 된 기분일지라도 그 아픔을 가진 채 멈춰있지 않기를 바란다. 모든 시작은 끝이 있기에, 그 끝의 결말이 원하는 결말이 아닐지라도, 또 다른 시작이 있기에 우리는 아파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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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신 것처럼 서 있기도 힘들어요 뜻대로 안 되는 일들만 가득

초점 없는 눈에 희미하게 보이는 건 너무나 보잘 것 없는 힘들게 찾아낸 나만의 그곳


시작을 했기에 끝이 난 거죠 싸울 수 있었기에 질 수도 있었죠

만남이 있어서 헤어짐이 있었다는 걸 나도 다 알고는 있어요

눈물 따윈 방해만 되고 소중한 걸 안 보이게 만들어요 필요도 없는데 흘러버리니까 괜히 더 슬퍼지는 거죠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에도 소비세가 붙어서 100엔의 사랑에 8엔의 사랑세 다 알고 있긴 해요

눈물 따윈 방해만 되고 소중한 걸 안 보이게 만들어요 필요도 없는데 흘러버리니까 괜히 더 슬퍼지는 거죠


왜! 어째서! 잘 풀리지 않는 걸까

왜! 어째서! 잘 풀리지 않는 걸까


아파(いたい), 아파, 아파, 아파 

살 거야(いきたい), 살 거야, 살 거야, 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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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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