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죽음에 빚진 자들의 후일담 - 빛과 철

글 입력 2021.02.17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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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연컨대 올해 최고의 영화였다. 물론 올해는 아직 한참 남았지만 미리 남은 한 해를 다 바쳐도 괜찮을 정도로.

 

영화 <빛과 철>은 죽음, 죽음에 다가가고 있는 자, 그리고 죽음의 무게를 짊어진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영화는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낯선 삶의 모습 속에서 누구나 한 번쯤 느껴봤을 감정에 형태를 부여해 소름돋을 정도로 생생히 구체화한다. 모순적이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스토리텔링에 관람객의 감정을 끌어올리는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가 어우러져 하나의 작품을 탄생시켰다.

 

관람하는 내내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고장난 기차에 올라탄 기분이 든다.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덜컹이기만 하는 마음이 불편하다. 하지만 정말 흥미로운건 감춰둔 진실이 하나씩 밝혀지며 감정과 상황이 격정에 달할수록, 오히려 주인공인 두 인물의 마음은 평온에 가까워지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 기억과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들은 어떤 결말을 맞게 된 것일까.

 

(아래의 내용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피해자는 누구이며, 가해자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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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에서의 큰 충돌로 교통사고가 났다. 그리고 두 여자는 남편들을 잃었다. 희주의 남편은 죽었으며, 영남의 남편은 2년째 혼수상태. 이후 희주는 고향을 떠났으나 2년만에 돌아와 전 근무지로 다시 입사한다. 희주는 남편을 잃은 과거의 사건이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으나 이제는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왠지 모르게 교통사고를 당한 자의 아내인 영남을 계속 마주치며 순간순간 치고 올라오는 옛 기억으로 고통스러워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하기만 할 뿐인 초반부, 의뭉스러운 연출은 마치 피해자와 가해자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처럼 보인다. 희주의 남편이 중앙선을 넘었다고 판단됐기에 사건상 영남의 남편은 명백한 피해자로 처리되어 있었다. 이 불편한 관계가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지기 시작하는 부분은 희주와 영남이 서로 알 수 없는 반응을 보이면서부터다. 가해자의 아내가 된 희주는 영남을 마주할 때마다 단순히 미안함만으로는 정의할 수 없는 증오의 표정을 짓고, 반대로 피해자의 아내가 된 영남은 희주를 그저 모호하고 차분한 태도로 대한다. 이에 더해 이들을 둘러싼 사람들의 반응 역시 이상하다. 희주의 오빠는 사건을 덮으려 애쓰며, 영남의 딸은 희주를 따르고, 경찰은 영남을 과하게 챙기는 것처럼 보이고, 근무지의 과장은 과거의 사건에 은근슬쩍 간섭하며 각 인물을 챙긴다.

 

머지 않아 미묘한 관계성의 근간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영남의 딸이 희주에게 진실을 밝힌 것이다. 자신의 아버지는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 아니라 자살을 하려고 했던 거라고. 희주는 분노를 동력으로 삼아 너무도 무서워 덩그러니 덮어두었던, 하지만 그래서 진득하게 썩어들어가기 시작한 진실을 파헤칠 준비를 한다.

 

 

 

한 사람의 죽음은 남은 자들의 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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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주는 경찰에게 중앙선을 먼저 침범한 건 상대편이라며 재수사를 요청하고, 동시에 변호사에게 의뢰해 사건을 재구성해나간다. 그 과정에서 죽은 이를 대하는 남은 이들의 태도가 진실을 왜곡하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 희주가 재수사를 요청한 경찰은 왠지 시종일관 영남의 편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재수사에도 비협조적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이 사건 현장에서 더욱 신속하게 대응했다면 영남의 남편이 건강을 되찾지 않았을까 하는 죄책감.

 

○ 근무지 앞에서 산재 보상을 외치며 시위하는 아저씨는 사실 식물인간이 된 영남의 남편과 함께 일하던 사이였다. 그리고 같이 사고를 당했던 사이이기도 했다. 공장에서 일어난 사고로 아저씨는 팔 한 쪽을 잃고, 영남의 남편은 허리를 다쳐 거동이 불편한 처지였던 것이다. 희주는 허리가 불편한 사람이 대체 왜 운전대를 잡았는지 조사해나간다.

 

○ 사건을 덮으려던 희주의 오빠는 사실 사건 당일 그의 남편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조사 과정에서 혈중 알콜 농도가 초과됐다는 사실이 밝혀졌음을 알기에 사건을 이대로 덮어두려고 했었던 것. 자신이 동생의 남편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끊임없이 괴로워하고 있었다.

 

○ 영남의 딸은 허리를 다친 아버지가 자살하려는 걸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고통스러워했다. 아버지가 칼을 들고 침대에 숨어 있었다는 사실을 고해하듯 밝히며, 그를 말리지 못한 자신을 탓했다. 동시에 그를 말리지 못해 희주의 남편까지 죽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희주에게 용서해달라고 고백한 것이다.

 

○ 사건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던 근무지의 과장 역시 마지막에 이르러 영남에게 숨겨온 진실을 밝힌다. 사건 당일 영남의 남편이 칼을 들고 공장으로 찾아왔었다고. 그리고 상처 입고 돌아가는 그를 제대로 바래다주지 못해 이런 사건이 일어난 것이라고.

 

* * *

 

이처럼 사건의 진실이 마지막에 이르러 산발적으로 터져나오면서 갈등은 최고조에 이르며, 감정도 상황도 무척 급박하게 돌아가 손을 꼭 쥐고 지켜보게 된다. 희주와 영남은 피해자와 가해자를 오간다. 그 아무 것도 명확히 알 수 없다. 이들을 지켜보는 마음은 불편하기 이를 데 없다.

 

희주와 영남은 피해자가 누구고 가해자가 누군지 서로를 닥달하며 알아내려 했으나, 정작 주변인들은 자신이 가해자라 외치며 용서해달라고 다가오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이어진다. 이렇게 희주와 영남은 더 괴로워진다. 떠나간 이로 인해 정신적으로 병들고, 죽음 직전에 서 있는 이를 돌보느라 신체적으로 지친 두 여자에게 용서란 감당하기 힘든 감정이었다. 영남은 도와주는 거라며 돈을 건네는 과장에게 말했었다. 그 사람이 살아있을 때에는 회사가 외면했지 않냐고. 마음의 짐을 내려놓기 위해 자신들에게 용서를 구하며 다가오는 이들은 지극히 이기적이다. 구구절절한 자기 고해가 연달아 터져나오면서 죄책감과 용서, 죽음, 진실 이 모든 것이 갑자기 얄팍하고 가볍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동시에 진실은 혼돈 속으로 잠겨버린다.

 

한 사람의 죽음 뒤에 남은 진득한 죄의식이 여러 인물의 마음을 썩어들어가게 만들고 있었다. 모두 다 자신의 책임소재를 감추기 위해 모르는 척 살아가고 있었으며, 그저 이 죄책감을 누르기 위해 '자신의 기준으로 생각했을 때 피해자라고 느껴지는' 유족에게 일방적인 인정과 호의를 베풀 뿐이었다. 이러한 모습은 쉬이 공감하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결코 그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 인정하는 것이 두려워서 진실을 은폐한다는 것은 무척 이기적인 만큼 인간적인 모습이었다.

 

이처럼 영화가 죽음으로부터 남겨진, 혹은 버려진 자들의 삶을 다루는 방식이 흥미롭다. 삶과 죽음은 결코 로맨틱한 것이 아니었다. 피해와 가해, 그리고 당장 먹고 살 나날이 좌우되는 보험 처리 같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을 뿐. 사실 후회와 그리움 역시 한 사람이 떠나간 뒤에아 찾아오는 감정이다. 처연하고 안타까우며 가슴 절절한 감정의 이름이지만 반대로 사람을 잃지 않았다면 느낄 일 없었을 감정. 그렇다면 그것은 떠나간 이를 위하는 마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다독이기 위한, 스스로를 옭죄이는 마음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영화는 자신의 죄책감과 떠나간 이를 안타까워하는 이들의 태도에 감성적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죽음으로 완성된 패러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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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진실의 파편 속에서 사건이 재정의된다. 그리고 가장 밀접한 관계자인 희주와 영남의 숨겨진 비밀도 밝혀지며 충격적인 전개를 이어간다. 진실이 하나둘 밝혀지는 마당에, 두 여자의 반응에는 어쩐지 기묘한 구석이 있었던 것이다.

 

○ 사건 당일 희주의 남편과 술자리를 가졌던 사실을 고해하는 오빠에게 희주는 외친다. "어차피 중앙선을 넘은건 저쪽이야." 그런다고 해서 저쪽이 중앙선을 먼저 넘었다는 사실이 달라지는 건 아니라고. 그녀에게 음주운전이 사실인지의 여부는 중요해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남편이 실질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단 하나의 이유를 찾아내는 데, 피해를 입증하는 데 강박적으로 집착한다.

 

○ 한편 영남은 칼을 들고 찾아왔던 남편을 말리지 못했다 자책하는 과장의 말을 듣고 오열한다. 그리고 공장에 불을 질러버린다. 하지만 모든 것이 마무리되는 건 아니었다. 남편을 가사 상태에 이르게 한 원인을 알게 되었음에도 분노의 화살은 다시 희주를 향한다. 자신과 딸을 피해자의 가족으로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게 만드는 희주를 향해. 자신의 남편이 피해자여야만 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탓하며, 자신의 남편을 피해자로 만들기 원한다. 그 과정에서 죽음에 대한 애달픔은 찾아보기 힘들다. 감정이 클라이막스에 이를 무렵 또 하나의 진실이 밝혀진다. "아가씨, 아가씨가 남편분이랑 이혼 소송 준비하던거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 날, 트렁크에서는 연탄이 한가득 발견됐어요."

 

희주가 그토록 피하고 싶어했던 것은 제 남편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정작 자신이야말로 남편의 죽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기에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 죽음을 책임질 사람을 찾아 헤맸던 것이다. 결국 칼 끝은 자기 자신을 향한다. 그리고 극적인 순간 마주한 희주와 영남. 희주는 영남에게 "당신도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었잖아." 라고 말하며 남편의 죽음을 말리지 않은 그를 탓한다. 솟구쳐오르는 화, 혹은 서글픔. 각기 하나의 죽음과 하나의 혼수상태를 등에 지고 서로의 목을 조른다. 가해자 혹은 피해자, 피해자 혹은 가해자로 나뉘며 대척점을 달리던 두 사람이 갑자기 꼭 같아 보이기 시작한다.

 

죽어버린, 혹은 죽음을 목전에 둔 이를 향한 안타까움과 그리움, 이 비정한 현실을 이겨내며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연민, 덩그러니 남겨진 자로서의 분노, 그리고 죽음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 도저히 도망칠 수 없는 죄책감. 모순된 감정이 마음에 소용돌이친다. 자신이 숨겨온 내면의 진실을 마주한 두 사람은 같은 감정을 품고 있었다. 서로의 목을 조이는 두 사람은 마치 사이에 거울을 둔 것처럼 닮았다. 어쩌면 그들이 목졸라 죽이고 싶어했던 건 서로가 아니라 거울 너머 보이는 자신이었을지도.

 

이처럼 죽은 이를, 죽어가는 이를 대하는 두 사람의 모순된 감정과, 책임 소재가 모호해진 사상 사고가 얽혀 아이러니한 감각을 극대화한다. 죽으려 하던 두 사람이 사고가 났다면 대체 누구에게 이 책임을 물어야 할지. 더욱이 모든 이들이 자신의 책임이라 하며, 피해자의 가족마저도 죄책감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아주 기가 막힌 패러독스다. 인물의 감정과 상황을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엮어내다니 영화를 보는 내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웃지 않을 수 없는 완벽한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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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회에 앞서 감독님과 배우님들의 간략한 영화 소개가 있었다. 최대한 밝고 재미있게 풀려고 했다고 말하셨는데, 대체 이런 줄거리를 가지고 어떻게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인지 도통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겨우 몇분 남짓하는 결말부에 이르러 시종일관 가슴을 불편하게 하던 응어리가 순식간에 어이없이 풀려버리는 기이한 경험을 했다. 감독님과 배우님들의 말이 맞았다. 영화가 관객의 숨통을 쥐었다 폈다 한다.

 

온갖 비밀이 제 민낯을 드러낸 상황이나 아직도 죽음을 책임질 자를 찾지 못한 두 사람은 고통받는다. 하지만 그 순간 걸려온 한 통의 전화. 2년동안 혼수상태였던 영남의 남편이 갑자기 깨어났다는 얘기다. 왜 사고가 일어난 것인지 도저히 진실을 알 수 없었던 상황에서 한줄기 빛이 내려온 것이다. 그들은 함께 병원으로 달려간다. 발걸음이 무겁지 않다. 사실 그들은 현실을 마주할수록 고통스러워보였으나 반대로 어떤 해방감을 맛보는 것 같기도 했던 것이다. 모든 것을 두터이 덮어 놓은 채 언제 파헤쳐질까 두려워 살아가다가, 분명한 진실이 형태 없는 불안한 감정에서 그들을 자유케 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것도 모르고 산다면 차라리 편했겠지만 그럼에도 이들의 종착지는 진실을 마주하는 데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잔인하고 끔찍한 형태이든, 허울 없는 불안보다 명백한 사실이 그들을 해방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두 사람을 태운 차가 병원으로 달려가는 길. 하필 교통사고가 일어났던 그 길을 지나던 도중, 도로에 갑작스레 뛰쳐나온 무언가로 인해 차가 급정지한다. 급정지의 충격으로 정신없는 와중 눈앞에 보이는 것은 다름 아닌 고라니. 이 순간 최고의 엔딩이 빚어진다. 두 사람은 멍하니 서로를 바라본다. 진실을 향해 감정을 깎아내는 고통을 감내하며 달려온 지금, 그리고 그 날의 생존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듣기 위해 달려가던 도중 마주한 고라니. 사고가 있었던 그 도로에서 너무도 어이없게 마주하고 만 고라니 한 마리.

 

고라니가 많이 다니는 도로, 그리고 그 도로에서 일어난 사고. 어쩌면 과거의 교통사고는 그 누구의 잘못이 아닐 수도 있다. 그 죽음은 그 누구도 책임질 필요가 없는 것일 수도 있었다. 고라니의 맹한 두 눈이 2시간동안 불안과 고통으로 시달린 관객의 마음을 이렇게 한순간에 씻어낼 줄 누가 알았을까? 아무 생각 없어보이는 둥그런 얼굴이 갑자기 내 삶을 위로하는 기분이었다. 고라니에게 위로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리고 영화 그 순간 끝날 거라는 것도.

 

하지만 그 짧은 결말에 이르러 완벽한 해방감을 맛봤다. 영화 속 인물, 그리고 이들을 지켜봐 온 관객들 모두 한 순간에 자기 변명과 죄책감으로 견고하게 둘러쌓인 고리에서 완전히 벗어난다. 한 사람의 죽음에 빚을 지고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에게 고라니는 구원에 가까웠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아, 이게 삶이지, 했다. 무언가 더 설명할 필요가 없는 완벽한 결말이었다. 어쩌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마음을 찢어놓는 절절한 고통의 이야기였으나 엔딩은 이 같은 유머러스함이 또 없을 정도였다. 삶과 죽음의 발가벗겨진 모습을 통찰하면서도 이 세계가 빚어내는 우연의 힘에 기대어 버리는, 긴장감의 완급을 완벽하게 조절하는 영화다.

 



[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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