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잠들어 있는 당신의 서재로 체크인하시겠습니까? - 북유럽 [예능]

비움과 채움의 북폐소생 프로젝트 KBS2 '북유럽'
글 입력 2021.02.17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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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관련된 기존의 방송 프로그램은 보통 책을 소개하는 것을 중점에 두었다. 책 프로그램이라 하면 한 권의 책 혹은 두세 권의 책을 선정해 그 책의 내용을 소개하고, 전문가나 아나운서 등으로 구성된 패널들이 책에 대한 감상을 나누는 구조가 흔히 떠오른다. 그러나 최근 등장한 책 프로그램들은 뉴미디어의 시대 흐름을 따라 점차 다양한 방식을 취해가고 있다.

 

예를 들어, 2019년 10월~11월에 방영한 JTBC의 <멜로디책방>은 뮤지션 출연자들이 모여 영화나 드라마의 OST처럼 책을 대상으로 OST를 만들며 음악과 책을 결합했다. 또 2019년 9월부터 2020년 2월까지 방영한 EBS <발견의 기쁨, 동네 책방>은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이 동네 책방을 찾아가는 책방 중심의 방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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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 예능 <비움과 채움 북유럽>은 누군가의 책장 속 잠든 책들을 심폐소생 시켜 도서관을 건립하는 ‘북폐소생’ 프로젝트다. ‘북유럽’이라는 제목은 Book, You, Love의 조합으로 ‘당신이 사랑한 책’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제목처럼 <북유럽>은 ‘매너가 사람을 만들고, 책은 그 사람의 역사를 만들고, 그 사람의 책장은 도서관을 만듭니다.’라는 구호를 두고 책을 읽는 사람과 그 사람의 책장에 주목한다.

 

고정 출연자는 개그맨 송은이, 김숙, 유세윤, 소설가 김중혁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북유럽의 호텔리어 컨셉으로 게스트, 즉 기부자의 서재에 ‘책크인’한다. 그리고 기부자와 함께 책과 삶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눈 뒤, 기부자의 서재에서 ‘책크아웃’하는 것이 프로그램의 큰 틀이다. 출연자들의 서재에서 ‘인생책’을 기부받아 도서관이 부족한 지역에 도서관을 건립한다는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도 훌륭하지만, 무엇보다 기부자의 서재를 둘러보는 프로그램의 구성이 짜임새 있고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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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들은 기부자의 책장 속 책들을 둘러보며 책장의 주인이 누구일지 추측한다. 어떤 분야의 책이 많은지 혹은 어떤 작가들의 책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지 등을 보며 유추하기도 하지만 책장에 놓인 소품이나 사진 등도 꼼꼼히 살핀다. 책장에는 책뿐만 아니라 책장 주인의 다양한 취향과 흔적이 남게 된다는 점을 놓치지 않는 것은 책을 읽는 사람에 주목하는 <북유럽>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기부자가 등장하면 ‘(내.돈.내) 산책토크’라는 이름의 코너를 진행한다. 이 코너에서는 기부자가 사고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 책을 읽고 사는 습관 등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여기서도 역시 책장 속 물건에 엮인 삶의 이야기나 습관, 취미 등 책을 읽는 사람에 초점을 맞춘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간다.


다음 코너인 ‘인생책 해시태그 책!책!책! 책을 찾읍시다’에서는 기부자의 인생책 몇 권에 대한 해시태그를 보고 그 책을 찾는다. 책 전문가인 김중혁 작가를 제외한 4명의 출연자가 책장을 다시 둘러보며 책을 찾는데, 책장 앞에서 책을 선점하려 경쟁하는 출연자들의 모습이 소소한 재미 요소다. 책을 다 고른 후에 출연자들이 각자 들고 온 책을 소개하며, 어떻게든 자신의 책을 해시태그와 연관시켜 이야기를 지어내는 모습 또한 기발하고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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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자는 정답을 공개하면서 ‘인생책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을 어떤 시기에 어떻게 읽어서 왜 인생책이 되었는지를 찬찬히 듣다 보면, 단순히 지식을 쌓는 용도의 책이 아닌 한 사람의 인생 곳곳에 깃들어 있는 책을 보게 된다. <북유럽>의 가장 큰 장점이 바로 이것이다. 책은 읽는 사람들만 읽는 것이라는 편견을 허물고 책을 자신의 삶과 가까운 것, 편하게 가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느끼게 한다.

 

3회에서 기부자로 참여한 송은이는 “(이전에는) 책을 추천한다는 것은 어떤 경지에 오른 사람, 책을 천 권 이상 읽은 사람, 자신 안에 단단한 무언가가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라고 말한다.

 

누군가의 책장을 살펴보고 인생책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의 책장은 어떤 것들로 채워져 있는지, 내 인생의 책은 무엇인지, 어릴 때 나는 무슨 책을 읽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책과 친하지 않은 사람도 그들을 대변하는 김숙, 유세윤을 따라 재밌고 편안한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다. <북유럽>은 “잠들어 있는(혹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당신의 서재로 체크인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시청자 곁에 책을 놓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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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책임감’이라는 코너에서는 김중혁 작가가 기부자의 책장을 둘러보며 얻은 정보를 토대로 기부자에게 책을 추천한다. 책을 추천해주고 다시 책을 추천받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왠지 독서 모임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독서 욕구가 마구 생기는 느낌이다. 꼭 읽어야겠다는 다짐이 아니더라도, 어느 순간 장바구니에 책을 담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다만 ‘책임감’에 소개되는 책은 그리 자세히 다뤄지지 않고, 간혹 아예 편집되기도 한다. 그래서 김중혁 작가는 ‘블러썸이야기채널The본다’라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북유럽] 못다 한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책임감’에 추천한 책을 더 자세히 설명한다. 책 설명뿐만 아니라 촬영 비하인드나 소감 또한 엿들을 수 있다.

 

2020년 12월 12일부터 2021년 1월 30일까지 <북유럽>은 배우 조여정, 작가 김은희, 영화감독 장항준, 개그우먼 송은이, 기업인 김미경, 배우 정소민, 빅데이터 전문가 송길영, 작가 조승연, 방송인 알베르토와 럭키의 책장에 머물렀다.

 

아쉽게도 <북유럽>은 강원도 인제에 도서관을 개관하면서 종영했지만, 같은 유튜브 채널에서 진행되는 ‘북유럽: 가상캐스팅’이라는 이름의 외전을 통해 그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 이 영상에서는 김중혁 작가가 방송이나 언론에 공개된 셀럽의 책장을 통해 책장 주인의 취향을 추측해보고, 그 책장 속 책을 추천한다. 영상의 제목이 ‘가상캐스팅’인 만큼 언젠가 그들이 직접 책장을 소개할 수 있도록 <북유럽>이 시즌 2, 시즌 3으로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본다.

 

 

 

 

[정다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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