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확장된 기호 - 유에민쥔, 한 시대를 웃다!

글 입력 2021.02.16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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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는 사라지지 않는다. 중국에서 일어난 문화대혁명과 천안문 사태는 국가가 개인을, 사상이 존재를 압도하는 시대적 상처였다. 시대의 칼날에 베인 중국 사람들에게 역사는 트라우마가 되어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친다. 역사의 상처는 시간이 덮여 색을 잃어갈 뿐, 사라지지 않는다.

 

유에민쥔은 천안문 사태를 목도한 사람 중 하나다. 그는 강박적으로 자신의 얼굴을 반복하여 재현하는 방식으로 상처를 표현했다. '터져 나오는 냉소'의 예술가인 유에민쥔이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 것도, 내가 그의 작품을 더 궁금하게 된 것도, 아마 우리가 모두 그만의 표현에서 무기력만이 아닌 무언가를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발길이 줄어드는 와중에 한가람 미술관에서 유에민쥔의 개인전이 열렸다. <유에민쥔: 한 시대를 웃다>는 국내외를 통틀어 최대 규모로 열리는 작가의 개인전이다. 이번 전시회는 유에민쥔의 최근 작품과 국내 도예과 교수와의 백자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한 대형 프로젝트다.

 

 

The Entombment, Oil on Canvas 380x300cm 2010 ⓒYue Minjun 2020.jpg

The Entombment, Oil on Canvas 380x300cm 2010

ⓒYue Minjun 2020

사진제공 : 유에민쥔, 한 시대를 웃다! 사무국

 

 

이번 전시회는 관람객으로서는 아주 만족스러운 전시회였지만, 개인적으로는 무언가 멜랑콜리한 느낌도 드는 전시회였다. 관람객으로서의 만족은 훌륭한 전시기획이 바탕이 되었다. 내가 위에민쥔 본인이었다면, 이번 전시회는 잘 포장된 선물로 느꼈을 것 같다. 그만큼 작가에 대한 애정과 에너지를 담아 완성한 전시회였다.

 

전시회는 작가의 작품세계를 성공적으로 축약했을 뿐만 아니라, 관람객의 체험을 위해 다양한 연출을 시도했다. 전체적인 흐름과 공간의 크기, 텍스트를 제시하는 방식은 관람객을 화이트 박스에 갇힌 수감자가 아니라,작가의 내면세계를 방문한 탐험가로 만들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전체적인 공간 구성 부분을 먼저 말하자면, 전시는 위에민쥔이 반복해서 그리는 인물의 거대 조각상과 위에민쥔의 일대기를 나열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전체적으로 검은 톤으로 연출되어있다. 그다음 들어간 공간은 좀 더 밝은 톤으로 꾸몄고,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전시회와 비슷한 모습이다. 하지만 그 다음 장막을 들추고 들어가는 마지막 섹션에서는 좀 더 창백한 톤의 넓은 공간에 여러 거대한 조각상을 배치했다.

 

조각상으로 넘어가는 네 번째 섹션은 나에게 이차원에서 삼차원으로 넘어가는듯한 느낌을 줬다. 이상하게도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에서 약간의 감동이 있었다. 작품 자체가 가진 주제의 전환에서 오는 감동이라기 보다(사실 개인적으로 주제적으로는 흐름이 깨지는 느낌이 있었다. 삼차원이 되면서 그의 메시지가 무게를 갖는 느낌도 있었지만, 그전 섹션에서는 어떤 경계를 해체하는 것 같이 보였기 때문이다. 인간의 이중성, 복잡한 웃음을 재현한 조각상들은 새롭다기보단 그전 섹션으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고 해야 할까?), 전시회에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기대를 어기는 부분이 좋았었다.

 

조각상 다음에는 국내 아티스트와의 협업의 결과물이 거대한 테이블에 놓여 제시되었다. 마지막 부분에는 처음 들어온 입구와 비슷하게 좁은 통로가 제시되고, 짧은 글귀와 함께 세 인물상이 얽혀있는 색칠된 작은 조각상이 제시된다. 일반적인 전시회보다 관람객의 체험을 신경 쓴 듯한 장치들이 좋았다. 덕분에 한 시간 이십 분 정도의 시간 동안 집중력이 분산되지 않고 감상할 수 있었다.

 

 

Memory 2, Oil on Canvas 140x108cm 2000 ⓒYue Minjun 2020.jpg

Memory 2, Oil on Canvas 140x108cm 2000

ⓒYue Minjun 2020

사진제공 : 유에민쥔, 한 시대를 웃다! 사무국

 

 

내용에 해당하는 전시회의 흐름 자체도 직관적이었다. 전시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웃음', '한 시대를 웃다', '사의 찬미- 죽음을 기억하고, 삶을 사랑하라!', '조각광대'로 이어진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웃음'에서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충돌, 그 안에서 작가가 느낀 복잡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우리가 흔히 유에민쥔의 작품에서 기대하는 작품들을 이 섹션에서 찾을 수 있다.

 

광소를 터뜨리는 작가의 형상은 볼품없는 옷을 걸치거나 반라의 모습으로 그려지며, 웃느라 두 눈을 꼭 감고 있다. 스스로 두 눈을 감아버리고, 시끄러운 웃음으로 귀를 막아버리는 웃음에는 미로와 같이 복잡한 감점, 절망과 구원에 대한 강렬한 열망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의 얼굴은 처음에 제시된 <처형>의 그것처럼 레닌과 마르크스, 인민복 사이를 떠돈다.

 

그 다음 섹션에서는 냉소의 범위가 넓어진다. 한 시대를 웃다의 영제 표현인(A-maze-ing Laughter of our time)의 센스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슬픔, 웃음, 절망과 같은 단일 감정으로 표현할 수 없는 유에 민 쥔 만의 복잡한 기호를 표현한 적절한 제목이었기 때문이다.

 

 
__EXPRESSION__ in Eyes, Oil on Canvas 240x200cm 2013 ⓒYue Minjun 2020.jpgGaze, Oil on Canvas 200x240cm 2012 ⓒYue Minjun 2020.jpg
__EXPRESSION__ in eyes, Oil on Canvas 240x200cm 2013 ⓒYue Minjun 2020
Gaze, Oil on Canvas 200x240cm 2012 ⓒYue Minjun 2020
사진제공 : 유에민쥔, 한 시대를 웃다! 사무국

 

 

'사의 찬미- 죽음을 기억하고, 삶을 사랑하라'와 '조각 광대'는 뭔가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몰려왔다. 이 부분이 바로 내가 앞서 말한 개인적으로 멜랑콜리한 부분이다. 결코 유에민쥔의 작품이 실망스러웠던 것은 아니다. 한 명의 작가로서 그의 세계는 어떤 중요한 확장을 한 것처럼 보였다.


특히 해골이 기호로 등장하기 시작한 부분 중 __EXPRESSION__ in eyes와 Gaze의 대비는 인상깊었다. 나는 두 작품을 짝으로 생각했지만, 사실  __EXPRESSION__ in eyes 옆에는 딱봐도 작품과 짝이 되는 작품이 있었다. 눈을 감은 사람을 배경으로 해골이 떠돌아다니는 그림이었다. 불가피한 죽음과 실존을 표현하는 두 작품의 대비도 좋았지만,  __EXPRESSION__ in eyes와 Gaze는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착각이 드는 것 같지 않은가? 우리가 눈을 감고 있건, 뜨고 있건 죽음은 우리 목전에 놓여있다. 모든 것이 끝날 수 있다는 사실은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의미있게 만든다.


__EXPRESSION__ in eyes는 유에민쥔의 작품 중 유일하게 눈을 뜨고 있는 작품이다. 지금까지 잃어버렸던 시선을 그는 비로소야 죽음 앞에서 크게 뜨고 있는 것이다.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해골을 기호로 내세웠는지 모르지만, 이후 작품으로 미루어 보아 유에민쥔은 삶과 죽음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했던 것 같다. 그가 어떤 답을 갈구했는지 모르지만, 이후 이어지는 이나 을 보다보면 어떤 경계를 해체한 것으로 보인다. 개인과 개인, 국가와 국가 간 장벽을 세우기 바쁜 코로나 바이러스 시대에 유에민쥔이 보내고 싶은 메시지도 이 작품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

 

 

The Blue Ocean, Oil on Canvas 250x200cm ⓒYue Minjun 2020.jpg

The Blue Ocean, Oil on Canvas 250x200cm 2018

ⓒYue Minjun 2020

사진제공 : 유에민쥔, 한 시대를 웃다! 사무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작품들에서 뭐라 말하기 어려운 약간의 씁쓸함을 느꼈다. 특히 나처럼 유에민쥔의 작품 세계를 <처형>으로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조금은 이해가 갈지도 모른다. 이번 전시회에서 만날 수 있는 유에민쥔은 날카로운 날이 조금 무뎌지고, 인류 보편성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예술가이다. 자신을 들여다본 예술가들이 결국 삶과 우주를 초월한 초개아를 생각하는 것처럼, 그의 작품들도 초기 기호보다 확장된 무언가로 표현되었다.

 

어떤 무언가를 특정해두고 재현되던 이미지는 어떤 철학적 메시지를 담는 것처럼 보였다. 관람객으로서 작가의 확장을 관찰하는 일은 즐거웠고,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도 좋았다. 전시회는 훌륭했고, 작품은 그만한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전시회의 끝에서 도달한 메시지, '오늘을 즐기라'라는 그 메시지는, 무언가 나에게 이상한 기분을 들게 했다. 다소 안전하다고 느껴졌다고 해야할까? 아가리를 벌리고 달려드는 수많은 복잡한 이 복잡한 세상에서 죽음은 때로 너무나 가볍게 느껴진다. 어쩌면 인류보편성에 관한 이야기가 코로나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는데도 말이다.

 

작가의 작품이 무뎌졌다고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회로 내밀어진 냉소 다음에 내밀어진 발걸음이 인류 보편적인 이야기와 성찰적 이미지일지라도 모른다는 것이 조금 씁쓸함으로 다가왔다. 마치 그 중간이 잘린 것처럼 말이다. 나의 불온한 상상력은 무례하지만, 무례한 사람도 글을 쓰는 것을 막지 않는 플랫폼의 힘을 빌려 한 두줄, 짧은 글로 끼적여본다.


 

[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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