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시대의 아픔을 웃음으로 기록하다 - 유에민쥔

글 입력 2021.02.15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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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중국 미술사 수업을 재미있게 들은 기억이 있다. 다양한 민족과 함께 유구한 역사를 거쳐 온 중국은 미술사 또한 동적이고 드라마틱하다.

 

특히, 현재 중국의 풍경과 직접적인 상관을 맺는 현대사와 관련하여 어떻게 문화 예술이 정치적·사회적 간섭을 받았으며 예술가들은 어떻게 대응했는지 알아보는 시간은 역사와 결부하는 방법론을 통해 중국 미술을 보다 심층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 체제가 개인을 옭아매는 사회에서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미술가들의 작품은 그 자체로 반항이었기에, 사회적 맥락과 함께 접하는 중국 미술사는 지난한 투쟁의 기록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문화대혁명과 천안문 사태가 쓸고 간 1960년대~1980년대의 중국 미술 동향은 더욱 흥미롭게 다가왔다.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프랑스 68혁명의 영향을 받은 20세기 중후반대는 전 세계적으로 기존 질서에 저항하고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진보하고자 하는 경향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 미술은 정치적인 이유로 문화·예술을 아예 백지상태로 만들어버린 거대한 체제의 억압 아래 처음으로 돌아가 발돋움해야 했다. 이상과 낭만은 사치였다. 사실주의 경향이 도래했고 그중에서도 냉소적이고 허무주의적인 시선으로 사회를 관찰하는 냉소적 사실주의가 시대를 관통했다. 진보를 향한 소망과 낙관이 아니라 체념과 초탈의 정서로 세상을 바라봤다는 점에서 어떤 미술보다도 직설적으로 현실을 논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흠칫 놀랄 정도로 크고 과장되게 그려졌으나 아무런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냉소적 사실주의 그림 속 얼굴들은 왠지 섬뜩했다. 그중에서도 유에민쥔이 그린 붉은 얼굴들은 웃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래서 더욱 기이하게 느껴졌다. 항상 웃기만 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으나 유에민쥔의 그림에서는 그것이 현실 속에 배치되어 있었고, 그것만큼 사실적이지 않아 보이는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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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최 중인 《유에민쥔(岳敏君): 한 시대를 웃다!》 전은 여섯 개의 섹션을 통해 유에민쥔의 작품을 총망라하여 소개한다. 걸음을 멈추고 시대를 기록하는 일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진 지금, 급변하는 중국 사회 한가운데 서서 변화와 과도의 아픔을 드러내고자 했던 그의 작품이 전해주는 울림은 상당하다.


전시는 간략하게 작가를 소개하는 설명으로 시작한다. 시대의 통각(痛覺)을 체현하는 작가라는 설명과 함께 놓여 있는 조각 작품이 눈길을 끈다. 유에민쥔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해맑은 웃음을 짓고 있는 조각이 설명과는 사뭇 대조되어 보였기 때문이다. 몇 걸음 더 걸어 나가면 이어지는 첫 번째 섹션, ‘세상에서 가장 슬픈 웃음’에서는 작가가 경험한 통각이 어떻게 웃음으로 표현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작품이 연이어 등장한다.

 

레닌, 엥겔스, 마르크스 등의 철학자와 웃는 얼굴을 병치한 회화 <사막>과, 마찬가지로 총을 든 시늉을 한 사람들과 웃는 얼굴을 대치하여 천안문 사태를 묘사한 <처형>은 경제적·정치적 격변과 비극에 희생되어 웃을 수 없는 현실을 사는 사람들을 도리어 과장된 웃음으로 표현한다. 작가가 느낀 시대의 아픔은 웃어야 하는, 웃는 것밖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무력감과 허무감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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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형, 캔버스에 유채, 150 x 300cm, 1995


 

두 번째 섹션, ‘한 시대를 웃다’에서는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정의한 설명처럼 ‘이 시대의 슬픈 자화상’을 본격적으로 소개한다. 주체란 타자가 있어야 성립하는데 유에민쥔의 그림에서는 타자가 죽어 있어 주체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는 섹션 설명이 인상적이다. 유에민쥔의 그림에서는 주체와 타자가 모두 죽어서 완벽히 선을 긋고 모른 척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그림 속에 있는 인물들, 그림 바깥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관객들 모두 작가가 포착한 시대의 아픔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전시를 보다 보면 작가가 표현하는 특유의 웃는 얼굴의 생김새와 표정이 너무나 획일적이어서 오히려 웃는 사람 뒤에 묘사되어 있는 배경과 상황에 눈을 돌리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는 외면하고 싶은 정치적 현실이 놓여 있다. 매우 효과적인 고발의 방식이다. 웃는 얼굴의 사람이 바다에 빠져 있고 배에 탄 사람들이 그를 지켜보고 있는 모습을 그린 <방관자>는 이러한 방식으로 ‘빠진 자’가 아닌 방관자에 주목하게 하여 주체와 타자의 경계를 지우고, 관객으로 하여금 특정한 역할에 자신을 위치하게 하기보다 피해와 방관이 이루어지는 현실 그 자체에 집중하게 한다.

 

 

Gaze, Oil on Canvas 200x240cm 2012 ⓒYue Minjun 2020.jpg

바라보다, 캔버스에 유채, 200 x 240cm, 2012) ⓒYue Minjun 2020

사진제공: 유에민쥔, 한 시대를 웃다! 사무국


 

세 번째 섹션 ‘死의 찬미-죽음을 기억하고, 삶을 사랑하라!’에서는 죽음과 삶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드러난다. 여기에서는 웃는 얼굴보다 커다란 해골 그림이 눈에 많이 띄는데, 해골이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진 그림을 보다 보면 오히려 웃고 있는 사람보다 더욱 생명력 있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웃음은 위대하고 죽음은 영광이다>라는 작품의 이름이 시사하듯, 작가는 웃음 자체를 무의미한 행위로 바라보지는 않는다. 어떠한 이유로 인해 웃음이 획일화된 양상으로 전락하는 현실을 비판할 뿐이다. 죽음 역시 마찬가지다.

 

죽음은 역설적으로 삶을 가능하게 ‘영광’이지만 삶이 삶답지 않은 세상에서는 무의미해진다. 웃음과 죽음은 개개인의 가치를 통해 해석되고 존중되어야 한다. 작가는 역설적으로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을 획일화된 표정으로 웃는 사람과 병치함으로써 진정한 웃음과 죽음의 의미를 고민하게 한다.


유에민쥔의 조각 작품을 전시한 네 번째 섹션 ‘조각광대’를 거쳐, 다섯 번째 섹션인 ‘일소개춘-한 번 크게 웃으니 온 세상이 봄이다!’에서는 냉소적인 전시 분위기를 반전시키듯 노장사상에 영향을 받은 작가의 행복관을 투영한다. 여기서 그려진 인물들은 이전 섹션에 비치된 그림 속 인물들처럼 뚜렷하고 강렬한 색채가 아닌, 오히려 마구 중첩되고 겹쳐져 흐릿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배경에 정치적 현실을 사실적으로 투영했던 작품들과는 달리 초현실주의적인 경향이 강하게 느껴지는 그림들도 많다. 작가의 행복과 이상은 선명하게 상상할 수 없는 ‘초현실’에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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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최지만과의 콜라보레이션 작품과 P.K Studio가 실크스크린으로 재해석한 유에민쥔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마지막 섹션을 지나면 ‘웃음이 여러분에게 행복한 순간을 가져다주길 바랍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출구에 놓여 있는 작가의 조각 작품인 <낭만주의&현실주의 1>을 볼 수 있다. 또한 천편일률적으로 웃고 있는 사람들의 형상이다. 웃음이라는 하나의 표정으로 관통할 수 있듯 작가의 낭만, 즉 이상과 현실은 다르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에게는 현실을 뼈저리게 그려내는 것이, 웃음과 죽음의 가치를 고민하는 것이 곧 이상을 향한 발돋움이었을 것이다. 현실을 그리는 그의 차가운 웃음은 이상을 포기한 체념의 표현이 아니라, 이상과 가까워지기 위해 기꺼이 시대의 아픔을 느끼기로 한 그의 일말의 소망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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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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