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뒤돌아 보지 않는 이별 [영화]

영화 '허공에의 질주'
글 입력 2021.02.13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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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쨍쨍한 여름날, 자전거를 타고 가는 소년을 두 대의 FBI 차량이 뒤쫓는다. 소년은 익숙하게 차량을 따돌리고 아무렇지 않게 부모님에게 이 소식을 전한다.

 

이 소년은 ‘대니’이다. ‘대니’의 부모인 ‘아서’와 ‘애니’는 과거에 베트남 반전 운동 중 경비원을 실명시킨 후, FBI의 추적을 받아왔다. 대니는 몇 개월에 한 번씩 이름을 바꾸고 전학을 다니는 일, 절대로 집안 얘기를 외부인에게 하지 않는 일에 익숙하다.

 

이사를 준비하는 가족의 모습은 이상하리만치 차분하다. 그들은 살던 집, 키우던 강아지,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미련 없이 버려두고 새로운 집을 찾아 나선다. 대니의 어린 동생, ‘해리’는 강아지를 버려두고 가야 했냐며 볼멘소리를 한다. 그 와중에 대니가 챙긴 것은 소리도 나지 않는 연습용 키보드 하나뿐이다.

 

언제나 무뚝뚝하고 말 없는 대니가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것은 피아노 앞에서뿐이다. 새로 전학 간 학교의 첫 음악 수업 시간에 조심스럽게 피아노를 연주하는 그의 모습은 금세 음악 선생 ‘필립스’의 눈을 사로잡는다. 필립스는 흔쾌히 자신의 집에 와서 피아노를 연주해도 좋다는 허락을 내린다. 피아노를 연주하기 위해 필립스의 집을 찾은 대니는 우연히 같은 학교에 다니는 필립스의 딸, ‘로나’를 만난다. 비슷한 점도, 다른 점도 많은 그들은 순식간에 서로에게 빠져들고, 연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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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스와 로나의 삶은 대니와는 정반대이다. 안정적인 가정과 직장, 거대한 그랜드 피아노가 정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거실과 온전히 본인의 관심사로 채워진 로나의 방까지, 대니는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던 삶이 고스란히 눈앞에 있었다. 대니가 로나를 만난 후 자신이 여태껏 살아왔던 방식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게 된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로나를 알아가고, 사랑에 빠지면서 그는 누구에게도 허락한 적 없는 자신의 마음 한구석을 내어주고,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던 가족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대니는 필립스의 추천으로 부모님 몰래 줄리아드 음대의 입학 오디션을 보러 가고, 면접관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만, 사라진 그의 학교 기록이 문제가 된다. 화재로 잃어버렸다는 말로 대충 둘러댄 대니는 건물을 나오며 신나게 내달린다. 입학 여부와 관계없이 누군가 자신에게 재능이 있다는 말을 해줬다는 것만으로 그는 순수하게 기뻐한다. 로나는 부모님 저지른 일에 대해 네가 책임을 질 필요는 없다며 입학을 권유한다.

 

하지만 대니는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권력에 반항하라고 가르친 것은 아빠 아니냐는 말로 부모와 싸우지만, 로나와의 대화에서는 아빠는 가족이 없으면 무너질 것이라며 떠나는 것을 주저한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이름, 집, 차, 그리고 신분이 이들을 스쳐 지나갔을까. 어린 대니와 그보다 더 어린 해리는 자리 잡지 못한 자아 위에 흔한 이름들을 덧씌우며 자라났다. 뿌리조차 단단하게 박히지 못한 대니가 붙잡을 수 있었던 것은 이 불안정한 삶을 자신에게 들이민 가족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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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가 말도 없이 줄리아드 음대의 입학 오디션을 치른 것을 알게 된 애니는 착잡한 마음에 사로잡힌다. 자신들의 잘못과 욕심이 아들들을 옥죄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기 시작한다. 결국 애니는 아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버지를 만난다. 해리가 자라 더는 부모가 필요하지 않을 때가 되면 자수하겠다며, 대니가 대학에 갈 수 있게 도와 달라고 우는 애니는 흉악한 범죄자도 아니고, 대단한 사회 운동가도 아니다. 자식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돕고 싶은 부모일 뿐이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다. 애니는 자식들을 직접 키워 내기 위해 가족, 친구들과 관계를 끊었다. 대니처럼 줄리아드에 입학할 수 있을 정도로 피아노 실력이 뛰어났지만, 그 삶을 등지고 살아왔다. 신념을 따른 것에 대한 대가는 무거웠지만, 아서와 애니는 자신들이 내린 결정을 후회하지 않았다. 선택의 결과가 어찌 됐든, 그들은 오롯이 책임을 지려 했다. 그럼에도 애니가 대니를 떠나보내야겠다고 생각한 것, 그리고 애니의 아버지가 그 부탁을 들어준 것은 대니에게서 애니의 젊은 시절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두 사람은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같은 부모의 입장으로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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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가족은 정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도망쳐야 하는 상황과 마주한다. FBI가 코 밑까지 그들을 따라잡은 상황에서, 아서는 대니에게 차에 타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아서와 애니는 어쩌면 마지막으로 보는 것일지도 모르는 아들의 얼굴을 쳐다보다 차를 돌려 떠난다. 하지만 그들의 이별은 슬프지 않다. 잘 가라며 웃으며 손을 흔드는 그들은 대니에게서 점차 멀어지고, 어둡게 페이드 아웃되는 화면과 함께 노래 ‘Fire and Rain’이 흘러나온다.

 

첫 부분에서 길러오던 강아지를 거리에 버려두고 떠난 것처럼, 아서와 애니는 대니를 두고 떠난다. 대니를 두고 떠난 것이 강아지를 버린 행위와 동일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들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던지며 살아야 했다. 하지만 더 멀리 달아날수록 그들이 마음 깊숙이 품고 있던 불안은 더 커질 뿐이었다. 언제까지나 도망자로 살 수는 없었다. 아서와 애니가 가족을 지키기 위해 희생해야 했던 것들을, 대니에게도 똑같이 요구할 수는 없다는 사실은 그들을 세게 짓눌렀다. 하지만 강아지를 버린 것이 두려움과 불안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대니를 떠나는 것은 그가 다시 가족과 만날 수 있다는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 영화의 원제 ‘Running on Empty’는 남은 힘이 없는 상태에서 억지로 일하거나 움직이는 것을 의미한다. 아서와 애니의 투쟁은 대상도, 목적도 이미 희미해진 지 오래다. 자신의 신념을 따라 오랫동안 달려온 이들은 다른 삶을 마주하기엔 지나치게 멀리 와버렸다.

 

흐르지 못하고 고인 물은 그 자리에서 썩을 뿐이다.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시도를 멈춘다면, 우리의 삶 또한 그렇게 고여 버릴 것이다. 그들의 질주가 궤도를 멀리 벗어나 허공을 나는 중이라고 해도, 또 아서와 애니가 그 사실을 알았다고 해도 멈출 수는 없었다. 가족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발버둥이 멎는 순간, 그들의 모든 것이 멈추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대니의 삶이 마침내 단단한 무언가를 딛고 섰을 때, 아서와 애니의 삶은 우려하던 것처럼 끝나지 않았다. 물론 해리를 위해 다시 도망자의 길을 선택했지만, 이번에는 이전처럼 허우적대지 않을 것이다. 가족은 이제 서로를 목적지 삼아 나아갈 테니.

 

‘다시 보게 될 거야’가 지니는 무게는 ‘다시 만나자’ 보다 조금 더 크게 느껴진다. ‘다시 만나자’는 화자 자신을 위한 말이지만, ‘다시 보게 될 거야’는 듣는 사람을 안심시키기 위한 말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들이 정말로 다시 만날 수 있었는지는 중요치 않다. 아서와 애니, 대니와 해리는 언제가 되었든 서로와 다시 함께 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엔딩 크레딧을 보며, 어쩌면 그것만으로 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고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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