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라진 것들이 지나가고 우리에게 남은 것은 - 라스트 북스토어

글 입력 2021.02.12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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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사람들은 종이책을 전보다 덜 읽는다. 디지털 매체가 늘어나면서 우리는 이제 굳이 종이책을 사모을 필요가 없어졌다.

 

종이책 뿐 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는 책 자체를 덜 읽기도 한다. 향유할만한 콘텐츠들이 더 많아졌고, 책보다 직접적이고 자극적인 매체들은 우리가 굳이 책을 읽으며 머리를 싸맬 필요가 없게 한다.


전시는 책의 역할이 희미해져가는 현실을 바탕으로 상상한 ‘라스트’ 서점의 이미지를 설치미술로 표상한다. 건물의 층 2개를 전부 차지하고 있었고, 사람이 아무도 없어 편안한 관람이 가능했다.

 

그리고 그 편이 ‘최후의 서점’이라는 분위기를 온전히 느끼기에도 더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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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가 된 책 (book canvas drawing)

 

입구를 통해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첫 작품은 우리가 비교적 어렸을 때 접하던 책에 대한 감각에서 온다. 인생에서 가장 오랜 시간 붙어있었던 책을 고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교과서를 꼽을 것이다. 그 긴 학창시절동안 교과서 귀퉁이에 한 번도 낙서를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작품은 우리와 함께하던 작은 귀퉁이의 낙서들에게 더 넓은 공간을 차지할 기회를 부여하고, 마침내 책 전체를 내준다. ‘북 스토어’는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공통적인 경험을 통해 공감의 창을 두드리는 것으로 가볍게 그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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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the space)

 

‘마지막 서점’이라는 전시의 테마를 구현해 낸 작품 '공간'에는 서점하면 특히 떠오르는 빼곡한 책의 이미지가 담겨있다. 우리가 아직도 인터넷 서점보다 오프라인 서점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 빼곡한 책장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서점에서 책을 구경할 때에는 반드시 그 빽빽하게 채워진 책장에서 원하는 카테고리의 수많은 책들을 동시에 접하게 된다. 표지에 이끌려 열어본 책들이 이미 찾아둔 그 책만큼이나 마음에 드는 경우는 생각보다 꽤 많다.

 

낯선 책들로 가득한 책장은 새로운 책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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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보석 (hidden jewels)

 

작품 '숨겨진 보석'의 손 댈 수 없을 것 같은 빨간색 실들 사이에는 작은 책들이 마치 ‘최후의 책’처럼 매달려 있다.

 

책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끊임없이 토로하고 있던 전시의 거의 막바지에서 이 작품을 마주했을 때, (창작자의 의도와 다를지 모르지만) 자연스럽게 사라진 책과 문인과 서점에 대해 추모했다.

 

빨간색 실들 안에 소중하게 보관된 작은 책들은 우리가 지켜야하는 남겨진 책들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사실 몇 개의 작품은 전시의 맥락과 관련해서 이해하기 어려웠고, 작품의 완성도 측면에서도 분명히 아쉬웠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책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려고 한 작가의 목적은 입장과 동시에 쉽게 달성한 듯하다.

 

작가는, 그리고 우리는 항상 사라진 것들에 대해 필연적으로 아쉬움을 갖는다. 하지만 전시를 관람하다 보니 아이러니 하게도 우리가 마냥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람들은 여전히 서점을 찾는다. 시대가 변하고, 서점의 수는 줄어들었지만, 아직 종이책을 사랑하는 독자들이 많다. 우리는 더 이상 쾌쾌한 냄새가 가득한 오래된 책들을 만나기 위해 서점에 가는 것은 아니나, 우리는 여전히 책을 보러가고, 이제는 그게 다가 아니기도 하다.


몇 년 전 제주의 독립 서점을 찾았을 때, 그 좁은 공간에 끊임없이 들어오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우리는 비록 옛날의 작고 오래된 서점을 잃었지만, 이제 서점은 그보다 많은 역할을 하는 새로운 복합 문화 공간으로 거듭났다.

 

‘최후의 서점’을 모방한 전시관 사이에 작은 굿즈샵이 있고, 카페가 있는 것처럼, 우리가 지금까지 겪었던 경험의 확장을 기대하니 변화가 부정적으로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신지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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