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재능'이라는 의미심장한 말 – 위플래쉬 [영화]

글 입력 2021.02.08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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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지 않았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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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1학년 때 밴드동아리를 했다. 그중 내가 연습하던 악기는 드럼이었다. 그런 나에게 이 영화의 존재를 알려오는 이가 없었을 리 없다. 오히려 아직도 이 영화 안 봤느냐는 이야기만 수백 수십 번을 들었다. 그래도 그때는 영화를 보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아도, 조금은 오기로 그랬다.

 

내가 드럼을 연습하는 데 그다지 열심이었던 것은 아니다. 동아리에는 사람들 합주하는 걸 구경하기를 좋아해서 들어왔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기엔 민망하니 드럼 연습을 시작했다. 그 뒤로 간간이 무대도 서고 했으나 그다지 열심히 연습하는 부원은 아니었다. 오히려 멋지고 좋은 곡들은 다 남들 줘 버리고, 쉬운 곡들을 골라 연습하는 게으름뱅이였다.

 

듣기로는 ‘드럼 열심히 치는 이야기’였던 <위플래쉬>는 그런 나에게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 왓챠 플레이 보고 싶어요 리스트에 넣어두긴 했는데, 사실은 그저 그랬다. (내 리스트에는 그런 영화들이 간간이 있다) 언젠가 볼 영화라 생각해서 틀었을 때도 그저 그랬다. 다 보고 나서야 내가 그토록 열심히 ‘그저 그랬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영화가 재능을 이야기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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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영화에서 재능은 뻔한 소재이다. <위플래쉬>는 그토록 뻔한 소재를 이야기하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 음악 영화에서 재능은 주로 아름답다. 아무도 모르게(가끔은 당사자도 모르게) 숨겨져 있다가, 어느 극적인 순간에 발휘된다. (이때 당사자가 몰랐다면, 극적인 감동은 배가 된다.)

 

재능은 낭만이다. 어쩌면 나도 그런 재능을 가지고 있는데, 그저 모르는 건 아닐까 하는 희망을 준다. 영화 같은 특별한 계기만 있다면, 주인공의 해피엔딩이 나에게도 찾아올 것 같은. 재능은 그동안 그래서 영화와 참 잘 어울리는 소재였다.

 

<위플래쉬>의 주인공, 앤드류의 재능은 다르다. 재능은 말 그대로 피 튀기는 존재다. 재능을 가졌다는 건 고작 지옥으로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는 꼴 밖에 안되어 보인다.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평범함을 위로하며 평온한 세상을 만들 때, 재능은 그럴 여유를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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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만 해도 플레쳐 선생님의 따귀와 인격적인 모독이 날아오는 가운데, 재능은 앤드류를 무섭도록 채찍질한다.

 

드럼을 연습하다 손에 피가 나고, 자리를 따기 위해서 무섭도록 경쟁한다. 그 어느 것도 호락호락하지 않을뿐더러, 때로는 상식적인 선을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재능은 어느 날 성공과 꿈 같은 미래를 가져다주는 호박 마차가 아니다. 오히려 현재를 망가뜨리는 무자비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 흔한 사제지간의 절절한 정 같은 것도 없다. 플레쳐 선생님은 엄격해 보이지만 사실은 마음이 따뜻한 호랑이 선생님이 아니다. 비상식적인 교수법으로 끝내 학부모와 학생의 이해를 받지 못하고 교단에서 쫓겨난 선생님일 뿐이다. 앤드류가 그를 이해하고 존경하는 감동적인 결말 같은 것도 없다.

 

이 둘은 서로에 대한 믿음과 정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닌, 그저 재능의 존재에 열광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재능에 대한 오해는 끝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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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우리가 가지고 있던 재능에 대한 환상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다. 찰리 파커의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드러머가 던진 심벌이 그를 최고의 연주자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듣기에 감동적일지 모른다. 영화는 보여준다. 그것이 현실이었을 땐, 보다시피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그제야 내가 알고 있던 그토록 대단한 일화들이 막상 마주하면 아름답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에서야 찰리 파커도 상식적이지 않은 일을 당한 불쌍한 연주자일 뿐이다.

 

비로소 재능에 대한 오해가 풀리고서, 이런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다. 재능이 그렇게 고된 것이라 해도, 재능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가? 이 영화에서 플레쳐와 앤드류 말고 나의 기억에 남았던 또 한 명의 인물이 있었다. 앤드류와 데이트를 하던 영화관 알바생 니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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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은 평범함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대학생이지만 전공은 그저 그렇고, 딱히 되고 싶은 것도 없다. 자신감인지 자만심인지 알 수 없는 자기소개와 함께, 최고의 연주자에 대한 자신의 꿈을 펼쳐 놓는 앤드류 앞에서 당황스러움을 느끼는 평범한 인물이다. 이 음악에 대한 빼곡한 열정으로 가득 찬 영화에 니콜의 등장이 나는 내내 신경 쓰였다.

 

평범한 니콜은 아마도 앤드류보단 행복하게 살아갈 것 같다. 앤드류가 자신의 자리에 대한 열정과 욕심이 넘치다 못해 퇴학까지 당했을 때도, 니콜은 새 남자친구를 만나 행복한 연애를 시작했다. 명백히 후자의 삶이 더 나아 보이는 와중에도, 나는 니콜의 삶이 더 낫다고 선뜻 이야기하기가 어려웠다. 꿈에 대해 대답하지 못하고 얼버무리는 니콜의 고민이 너무 익숙하고 지겨워서 일지도 모른다. 혹은 영화가 미처 깨지 못한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선망일지도 모른다.

 

*

 

나는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무척 배 아팠다. 재능이 영화에서 그려지듯 아름답고 근사한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플래쉬가 열심히 드럼 치는 영화라는 걸 알았을 때도, 그저 그럴 수 있었다. 주인공이 열심히 성장하고 재능을 인정받는 걸 보면서 감동하여야 하는 관객이 되고 싶지 않았다.

 

당연히 그런 내용일 것이라는 고정관념에서 출발한 오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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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니 나의 게으름이 차라리 평범함에 대한 특권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살면서 ‘즐겁게’ 했던 모든 것들은 평범함이 준 선물이나 다름없는 거였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앤드류의 재능이 부러웠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싶었다. 그토록 피 튀기는 과정을 보면서도 부러움을 느끼다니.

 

이 영화가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았던 건, 사실 모두가 비슷한 걸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재능에 대한 뻔한 묘사를 뒤집어 버린 것이 통쾌하면서도, 앤드류가 마지막으로 드럼을 치는 장면은 다시 넋 놓고 보게 되는. 나는 더는 드럼을 치지 않지만, 다시는 예전 같은 마음으로는 드럼을 바라볼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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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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