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에 대하여

글 입력 2021.02.04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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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손택의 책 <타인의 고통>에는 ‘툴슬렝 감옥에서 사진에 찍혔던 사람들은 영원히 죽음을 응시하고 있으며, 영원히 살해당하기 일보직전에 처해있고, 영원히 학대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라는 구절이다. 우리는 행복한 순간을 영원히 남기고 기억하고 싶어서 사진을 찍는다. 하지만 이들은 그들이 원하지도 않는데 이들의 고통은 사진에 찍힘으로써 영원히 남겨지게 된다. 손택은 카메라가 총과 동일시된다고 하였는데,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총이 확인사살을 한다면, 이 사람들을 찍은 카메라는 사전사살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 사진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가 가해자의 위치에 서게 된다는 것은 소름끼치는 일이다. 사진이라는 매체가 등장한 이후 특히 필름에서 디지털로 바뀐 지금, 우리는 여러 장의 사진을 찍고 여러 장의 사진을 지운다. 좀 더 예쁘게, 아름답게 그 순간을 담기를 원하면서 말이다.

 

우리는 이런 욕망을 가지고 있으면서 타인의 고통은 왜 그렇게 프레임 속에 영원히 지속시키려고 하는지, 타인의 고통뿐만 아니라 당사자와 그 가족들의 비참함까지 남겨두고자 하는지, 좀 더 처참해보이도록 프레임 속의 사물들을 배열하고 진실 된 것들을 프레임 밖으로 배제시키는지, 이렇게 타인이 가한 고통으로 죽음의 문턱을 여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슬픈 일이다. 이 강한 이미지는 프레임 속의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고통을 받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그 사람의 아주 조금의 행복했던 순간도 남아 있지 않게 만들어버린다. 도대체 ‘무엇’을 증명하기 위하여 그런 사진을 찍는가. 한 사람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아주 잔인한 방법이다.

 

사진은 얼마나 진실한가? 회화나 그림은 있었던 일을 표현하는 것이라면, 유명한 전쟁사진은 없었던 일을 사실처럼 포장해왔다. 사진의 ‘일어났던 일의 증명’이라는 기능을 무참히 짓밟아 버린 것이다. 이런 사진은 승자와 패자를 구분 짓고 누군가가 느낄 비참함만큼 누군가는 우월함을 느끼게 한다. 우리 역시 이 사진을 보고 우리와는 동떨어진 저 세계라 생각하며 안심하고 연민을 감정을 느끼고 넘어간다면 저 거짓을 진실로 인정해버리고 마는 꼴이다. 여기서 ‘연민의 감정을 느끼고 넘어가는 것’이 어떤 맥락에서 잘못된 일인지에 대해 해석했다. 단순히 연민을 느끼는 것은 수많은 감정들 중 하나를 즐기고 마는 것이 아닐까? 슬픈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자신의 감정을 재확인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것을 타인의 고통에 대한 진정된 관심이라고 자신을 합리화하면서 말이다. 더욱 더 잔인하고 자극적이고 비현실적인 사진을 찾아보겠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연민을 보내는 것에 한정되어 있다고 합리화하면서 말이다. 잔인한 사진을 보면서 그 사태를 만든 진실은 외면하는 것, 프레임 속에 담기지 못한 진실들을 외면하는 것. 그렇게 밖에 하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사진 속 타인들은 진실을 알아달라고, 외면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수전 손택은 말한다.

“텔레비전 카메라가 매일같이 보여준 최초의 전쟁, 즉 미국이 개시한 베트남 전쟁 당시에는 머나먼 곳을 상세히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장치를 통해서 죽음과 파괴의 모습이 가정의 코앞에까지 찾아 들어 왔다. 그때 이래로, 발생할 때마다 곧바로 필름에 담겨지게 된 각종 전투와 대량 학살은 정기적으로 끊임없이 흘러 들어올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작은 화면으로 즐길 수 있는 오락거리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오늘날,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이런 이미지들이 가져다주는 충격을 통해서 전쟁을 이해한다.”

 

매체를 통해 자극적인 것들을 쉽게 접하는 오늘날, 사람은 본성적으로 더 자극적인 것에 흥미를 느낄 것이다. 수전 손택은 “인간에 특성에 대하여 언급하며 잔인한 사진은 인간의 관음증적 향락을 위한 매체가 되었다”고 지적한다. “한번 충격을 줬다가 이내 분노를 일으키게 만드는 종류의 이미지가 넘쳐날 수록, 우리는 반응 능력을 잃어가게 된다. 연민 극한에 다다르면 결국 무감각에 빠지기 마련이며, 그래서 통속적인 처방이 내려지는 법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정작 무엇인가? 대학살의 이미지를 일주일마다 계속 바꿔나가야 한다는 말인가?”

 

대중이 계속해서 더 자극적인 것을 요구하게 된 원인이 이미지다. 계속해서 자극적인 사진이 쏟아질수록 사람들은 점점 무감각하게 된다. 이렇듯 이미지가 왜곡이 되었다, 즉 사진이 조작되었다고 계속해서 의심하며 불편을 느낀다면 보지 않으면 되지 않을 것이냐는 질문을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사람들은 자신들이 경험해 보지 못한 것, 다시 말해 새로운 것에 대한 체험을 하고 싶은 욕구는 대단히 크다. 뿐만 아니라, 정보화인 시대에서 더 많은 정보를 담고 싶은 사람의 욕심 또한 계속해서 매체를 찾게 되는 이유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사진을 통해서 현실을 확인하고 사진을 통해서 경험을 고양하려는 욕구, 그것은 오늘날의 모든 이들이 중독되어 있는 심미적 소비주의의 일종이다. 산업화된 사회는 시민들을 이미지 중독자로 만들어 버린다. 이것이야말로 불가항력적인 정신적 오염이다.”즉, 수전 손택은 이러한 욕심과 욕망을 정신적 오염으로 표현하였다. 이미지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주지만, 이러한 정보가 왜곡되게 전달될 때에 사람들의 심리상태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그러므로 사진은 진실을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고 처음부터 사진을 찍을 때 사진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진실을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정혜성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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