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살 떨리는 도전, 일단 해! - 우리는 중년의 삶이 재밌습니다

그 누가 발견해준 좌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만들어가는 인생 좌표
글 입력 2021.02.03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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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다행이다. 얼마나 무서웠니?”

“그때 그렇게 죽었어도 여한은 없어. 하고 싶은 건 질릴 때까지 다 해보며 살았거든. 하하하.”

 

본문 229쪽

 


대한민국에 살면서 누구나 겪을 편견은 이제 무언가 시작하기에 너무 나이가 많단 어림짐작이다. 이런 오해는 주변 사람들에게 전염되는 것인데, 언젠가부터 유행한 반 백 살, 반 오십 따위의 말이 그렇다. 학교 입학해도 마흔 전에는 대학교 졸업한다는 따위의 명언으로 마음을 다잡아보려고 해도 세뇌에 가까운 편견은 도무지 쉽게 깨지지 않는다.


 

하지만 나이 먹으며 키는 성장을 멈춰버렸는데 머릿속 생각 벌레는 쑥쑥 자라나는 것을 보니, 바람이 이뤄지기가 쉽지는 않겠다. 생각 벌레가 나쁜 생각만 잡아먹으며 제 덩치를 키운다. 좋은 생각을 늘려가도 부족할 판에 나쁜 생각을 먹고, 먹고, 또 먹어서 뇌가 비만에 이르는 게 아닐까.

 

본문 54쪽

 


딱 이렇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어릴 땐 아무것도 모르고 덤벼들어 부딪히고 깨지며 헤쳐나간 것이 이제는 버겁다.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기도 전에 시도했을 때 겪을 인간관계 불화, 스트레스, 촉박한 시간, 체력적 한계 등이 어쭙잖게 보인다. 생각 벌레가 자라면 자랄수록 부정적인 생각만 늘려가며 몸뚱이를 키우니 선뜻 그래, 해보자, 하는 생각이 쉽게 들지 않는다. 그러니 인기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에게 열광하는지도. 너도 한 번 해봐. 그럼 돼, 아주 쉽고 명쾌한 답을 내려주는 것 같아서.


 

사람들이 꼭 뭘 해야만 쓸모가 있고 그래야만 가치가 있는 건 아니라고 믿어요. 그냥 존재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네,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믿어요.

 

본문 69쪽

 


이 글의 화두는 책의 공동 저자이자 배우인 윤현정이 친한 친구가 생사를 넘나드는 사고를 겪었다는 말에 병문안을 찾아가 나눈 대화다.

 

후회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은 모두 존경스럽다. 사람은 청개구리와 같아서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한다. 하늘로 올라가는 날 즐거웠단 말만 툭 뱉을 수 있으려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사실 답을 알고 있다. 두려움을 떨쳐내고 도전하는 삶. 온 힘으로 부딪혀보고 그래도 안 되면 최선을 다했다며 훌훌 털어내는 삶. 참 쉽지 않다. 머리는 아는데 마음은 모른다. 몸뚱이를 불린 나쁜 생각 벌레 앞에서 용기는 먼지보다 하찮아진다.

 

69쪽에 이런 말이 적혀있다. 존재 자체로 가치가 있다. 정답은 확실한데 괜히 답을 쓰기 싫다.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지만, 세상이 그렇게 내버려 두던가. 실무와 동떨어진, 오직 필기만을 위한 답 같다.

 

안다. 사고가 굉장히 우중충하다는 것을. 꼭 도전도 안 하고 겁만 많은 사람이 이렇게 온갖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더라. 그러다 옆에서 시도하려는 사람까지 멈추고 눈치 보게 만들지. 하지만 생각이라는 게 어디 내 마음대로 되나. 그렇다면 나는 세계에서 제일 건강하고 긍정적이며 활기찬 사람일 것이다.


 

거기 망설이고 있는 당신도 이리 와요. 생각은 그만하고.

 

본문 231쪽

 


어찌 되었건 이렇게 부정적이고 우중충한 나까지 도전을 해보고 싶다, 생각하게 만든 게 바로 이 책, “우리는 중년의 삶이 재밌습니다”이다.

 

단순히 평균 나이 55세의 늦깎이 배우가 창작 초연을 올리고 책까지 냈기 때문에, 아, 그러면 더 젊은 나도 무엇이든 할 수 있겠군, 느낀 것이 아니다. 그들도 나와 똑같이 인터넷 수강 신청을 하기 전 2주 동안 망설이거나 별 생각 없이 도전했다가 후회하고, 중간에 다 관둬야지 마음먹기도 하고, 남들과 싸우거나 제대로 못 하는 자신에게 속상해하기 때문이다. 경험을 바탕으로 한 ‘누구나 충분히 가치 있다’는 말은 그냥 그 말을 나열한 것보다 더 깊게 와닿는다.

 

책에 설명되는 극 ‘강 여사의 선택’은 주연인 두 강 여사 외에 치매 노인이나 간호사 등 여러 조연이 나온다. 처음에는 등장이 적은 배역에 대한 반발하던 배우가 차츰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만들어가는 과정을 적은 파트 ‘세상에, 내가 연극배우?’ 는 존재 자체만으로 충분히 가치 있다는 말을 더욱 와닿게 만든다. 보잘것없이 삶의 조연처럼 느껴지는 나도 누군가는 가만히 들여다보고 대화를 하고 접점을 찾아 나만의 주인공으로 세워줄 것 같다.

 

 

잘하고 못하고는 내 관심사가 아니다. 내가 그것을 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류시화 잠언집에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라는 글이 나온다.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몰랐던 그때가 아는 지금을 만들어주는 게 아닐까? 엉금엄금 기고 아장아장 걷는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을까?

 

본문 47쪽

 

 

“오늘부터 운동뚱” 사이클 편에서 운동이면 뭐든 쉽게 잘하는 김민경이 몇 시간이 지나도 자전거를 제대로 타지 못해 속상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일일 코치이자 국가대표 사이클 선수인 김원경은 이렇게 위로한다. 이건 과정이에요. 실패가 아니라. 자꾸 넘어지고 마음처럼 되지 않는 일에 실패자처럼 느껴지지만 성공할 때까지 하면 과정이 된다. 몰랐던 그때의 실수와 사고가 조금 더 성숙해진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다.


실패할까 봐 도전하지 못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라는 거다. 실패가 아니라 과정의 일부이며 엉금엉금 기던 과거의 내가 있어 뛰어다니는 내가 존재하는데 기기를 두려워하면 아무것도 해내지 못한다. 어제의 내가 없으면 오늘의 나도 없듯이. 역시 머리로는 알지만 실천하기 참 어려운 말이다. 그래도 이런 말로 자신을 달래어주면 마음을 들쑤셔 위까지 쓰리게 만드는 불안이 조금은 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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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명의 배우와 한 명의 연출은 결국 ‘그것을 했다.’ 연극을 올리고, 협동조합을 꾸리고 책을 내며 코로나로 모임이 힘든 이 시기에도 공연 준비를 하고 있다. 잘하고 못하고는 중요하지 않다고 하면서 심지어 무척 잘했다.

 

각자의 말투와 속도로 풀어나가는 글은 참 재미있게 읽힌다. 책은 자기소개, 첫 만남, 배역 선정 후, 연습 기간, 공연 당일, 에필로그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같거나 비슷한 상황을 한데 묶어 여러 시선으로 서술해두었다. 다양한 프레임을 쓴 영화를 보는 것 같다. 공동 저자 1, 2가 있을 때 ‘기승전결1, 기승전결2’의 순서가 아니라 ‘기1, 기2, 승1, 승2…….’의 순이다. 다른 이가 자기 시점으로 같은 사건을 풀어내니 지루할 새가 없다. 이 저자가 앞서 무슨 글을 쓴 사람인지 유추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뿐 아니라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강 여사의 선택’도 현재 준비 중이라는 ‘말괄량이가 길들이기’도 무척 궁금해지니 홍보 효과도 톡톡히 본 셈이다.

 

솔직히 조금 배가 아프다. 조금이 아니고 많이. 최근에 무언가에 도전했다가 여러 이유로 관두었다. 그러고 나서 어떻게든 “무언가를 해낸” 사람들의 글을 읽고 나니 너무 쉽게 포기한 것 같아 후회된다. 그냥 끝까지 해볼걸. 후회할 걸 알았는데 막상 포기하니 아쉬움이 생각 이상으로 커진다. 조금만 일찍 이 책을 보았더라면 미련 두지 않을 선택을 했을 텐데.

 

늘 금방 포기해버리고 마니 끝맺은 후의 성취감을 느낀 적이 드물다. 드무니 포기가 잦다. 성취감을 책을 통해 간접 경험하고 나니 몸이 근질거린다. 제대로든 엉성하든 마무리 지은 그들이 새로운 도전 앞에서 더 당당해지는 게 보인다. 성공한 기억은 언제나 좋은 자존감이 되어준다. 존재 자체로 가치가 있다는 말을 부정하던 내게 꼭 항의하듯 각자의 삶을 늘어놓으며 우리도 너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라고, 그러니 생각 좀 그만하라고 조언한다.


 

평화로운 만남과 행복을 전하는 전령사이면서 어디에서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 결코 교만한 법 없이 최고의 정성과 배려로 인연을 가꾸는 사람.

 

본문 245쪽

 


역시 공동 저자이자 배우인 최정주의 말이다.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작가의 말에 독자는 이미 그렇게 되셨어요, 말하고 싶어진다. 새로운 일을 시도하기 전에 나만 이렇게 두려운 게 아니었다.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일에 나만 이렇게 힘들고 지치는 게 아니었고. 모두가 똑같은데 일단 해본 거구나. 책은 그 어떤 명언보다 용기를 준다. 위대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내 주변, 나의 이야기라 그렇다.

 

어렵게 도전한 일을 쉽게 포기하고 나서 왜 나만 이러지, 나만 이렇게 겁나고 두려워서 아무것도 못 하지, 자책했었다. 그런데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거였다.

 

생각해보면 이번에 포기한 일은 이런저런 상황이 너무 맞지 않았다. 고민도 많이 했고 후회할 각오를 하고도 포기했으니 포기 또한 하나의 선택이 아닐까. 위로해본다. 과거에 얽매여 있으면 새로 불어오는 바람에 탑승할 시기를 놓칠지도 모르니까. 마음을 다잡는다. 책을 읽은 이제부터라도 무엇이든 하고 싶은 거, 심장이 뛰는 거, 즐거운 것을 찾아보자고. 생각은 그만하고.


 

60년 인생을 그저 네네 거리며 몸이 부서져라 일만 했다. 싫어! 라는 말을 입 밖에 내본 적 없다. 그러는 사이 마음속엔 불편함이 쌓였지만 애써 무시했다. 그렇게 눌러온 묵은 감정들이 시시때때로 이번엔 내가 나갈 차례라고 다투는 게 아닐까? 그가 세상에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다. 나를 그냥 내버려 둬!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게 놔두란 말야!

 

본문 109쪽

 

 

중년의 삶_표지평면.jpg

 

 

우리는 중년의 삶이 재밌습니다

 

 

지은이

김영희, 마기원, 안은영

윤현정, 정호정, 최상옥, 최정주


발행일

2021년 01월 15일


ISBN

979-11-89533-53-3 03800


페이지

252쪽


규   격

140×205, 무선제본


정  가

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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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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