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상상 그 이상의 도시 그리고 건축: 도서 '도시의 깊이'

글 입력 2021.02.03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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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깊이_표1.jpg

 

 

자연과 극적으로 대비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단언컨대 '인공'일 것이다. 자연스럽다는 말에 반의어로 인공적이다를 떠올리듯이, 있는 그대로 혹은 주어진 그대로의 상태에서 자생적으로 변모하는 자연과 달리 사람의 손길로 변화시키는 모든 것이 인공적이다. 이 인공적이라는 표현의 범주에는 수많은 것들이 포함될 것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 범위로든 깊이로든, 사람들의 의식과 무의식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을 하나만 꼽아본다면 아마 도시가 아닐까 싶다.

 

왜 도시는 인공적인가. 도시는 산업화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물론 근대 이전의 중세나 고대에도 나라마다 수도가 있었고, 교통의 요충지에는 사람들이 몰려 살았다. 그러나 현대적인 의미의 도시는 분명 산업혁명 이후에 발생했다. 산업혁명으로 일어난 경제성장과 일자리의 증가가 수많은 사람들을 도시로 끌어들였다. 이로 인해 도시는 점차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도시가 점차 개발되었다.

 

처음에는 도시로 이주해오는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한 차원에서 도시가 개발되었다면, 이제 도시개발은 점차 다른 맥락으로까지 발전했다. 도시는 이제 비단 삶의 터전에서 그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일상인 도시가, 또다른 누군가에게는 비일상의 공간으로 와닿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도시에는 거주민에게도, 여행객에게도 한 번 쉼표를 찍어줄 수 있을 만한 요소들이 녹아들기 시작했다. 무차별적으로 없애던 녹지를 보존 또는 개발을 하거나, 건물을 짓는 차원에서도 외관에 보다 심미적인 요소들을 가미하는 등의 방식으로 도시 내에 있는 사람들의 의식을 환기시키려는 노력들이 늘어났다. 그런 건축의 조류가 이어진 덕에 이제 세계적인 도시들에는 각 도시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들이 형성되어 있다.

 

이런 차원에서 살펴본다면, 정태종 교수가 지은 도서 '도시의 깊이'는 아주 흥미로운 책이 될 것이다. 일상을 예술로 만드는 세상의 숨은 공간들을 저자가 여행하면서, 직접 느꼈던 바들을 건축과 함께 엮어낸 책이기 때문이다. 세계 각지 도시들의 아름다운 면면들을 살펴보면서, 책의 후면에 쓰여있던 것처럼 "고립의 시대를 연결하는 섬세한 비대면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목 차

 

프롤로그_모든 도시엔 표정이 있다


1. 도시는 일상이 아닌 것을 상상한다: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추모 공간 

신이 머무는 장소들 

유구한 지식에 접속하는 도서관 

즐거운 헤테로토피아, 문화 공간 

도시의 인상을 결정하는 거리 풍경 


2. 도시는 오감 그 자체다: 현상학(Phenomenology)

색과 향기의 건축 체험 

빛으로 완성되는 공간들

경계를 뒤집는 물과 유리 

미니멀리즘과 건축 재료 

시간과 공간의 매듭 


3. 도시는 공간을 실험한다: 구조주의(Structuralism)

현대 건축의 중심, 구조주의 

뚫고, 비우고, 접고, 연결하는 위상기하학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파라메트릭 디자인 

유리와 철이 만드는 낭만과 혁신 


4. 도시는 자연에서 배운다: 바이오미미크리(Biomimicry)

유닛, 조합, 반복, 연속성 

건축 요소의 상호의존성에 대하여 

디테일이 세계를 만든다 


5. 도시와 건축과 사람은 하나다: 스케일(Scale)

역사를 증축하는 리모델링 

현대 건축이 과거와 대화하는 방법 

중국 대륙에서는 상상이 현실이 된다 

유럽에서 아시아까지 관통하는 거대한 스케일 

도시는 항상 상상 그 이상이다 


에필로그_나만의 건축과 도시 공부법 

 


 

 

저자는 이 책의 첫 번째 챕터로 '헤테로토피아'를 테마로 잡았다. 미셸 푸코가 만든 헤테로토피아의 개념은 현실에 존재하면서도 다른 일상의 장소들에 대해서 이의제기를 하고 새롭게 환기시키는, 실제로 현실화된 유토피아적인 장소를 말한다. 정태종 교수는 이를 일상 속에서 만날 수 있는 비일상의 장소들로 보다 구체적으로 담아내고 있었다. 도시 속에 녹아들어 있는 묘지, 성당, 도서관, 문화시설이 바로 그 대상이었다. 일상 속에서 과거를 기리는 추모의 공간, 일상과 비일상을 넘나드는 신을 기리는 공간, 유구한 과거와 현대의 지식을 만나는 공간 그리고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공간까지 말이다.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는 그 공간들에서 이만큼 다양한 의미를 찾을 수 있었던가. 건물을 보면서 외관의 아름다움, 내부 구조의 독특함을 보면서도 그 이상을 생각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시벨리우스 기념공원이다. 정태종 교수가 다녀온 수많은 곳들 중에서도 나와 발걸음이 겹쳤던 몇 장소 중 하나인 동시에, 시벨리우스 기념공원에 갔던 날의 시린 눈발이 생생해 책 속의 사진을 보는 순간 그 날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새하얀 눈 속에서 본 시벨리우스 기념비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600개가 넘는 파이프로 만들었는데 고작 3개의 파이프로만 그 형태를 지지하고 있는 이 기념비는, 여행자였던 나에게도 비일상의 순간을 선사했지만 그곳을 찾는 헬싱키 시민들에게도 분명 일상 속의 비일상을 느끼는 환기의 순간이 되었을 것이다.

 

도시의 '현상학'적인 면 역시 저자가 다루는 테마 중 하나였다. 빛, 색, 향기를 비롯한 모든 오감으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현상들이 극대화되는 공간들이 도시 내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런 2장의 소개를 보자마자 모로코의 마라케시가 생각났다 여행을 가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끝내 가지 못했던 그 곳. 마라케시라는 그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싱그러운 푸른빛이 감은 눈 사이로 스며드는 느낌이 들었다. 정태종 교수 역시 그곳을 다녀온 것을 볼 수 있었다. 오래된 분위기가 물씬 나면서 아름다운 에든버러의 로열마일 역시 빠지지 않았다. 잉글랜드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 왠지 모르게 끝없이 걷고 싶어지는 그 아름다운 골목길 사이에서 발견했던 티룸이 떠오르면서, 정태종 교수가 이끄는 글 속으로 함께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들었다.

 

시간과 공간의 매듭을 이야기하며, 저자는 서울시청사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였다. 현 서울시청은 처음 건축되었을 때에 어마어마한 비난을 받았다. 주변의 아름다운 고궁과 다른 건물들과의 조화를 고려하지 않은 듯이, 마치 쓰나미를 혀상화한 것 같은 모양새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그 나름의 모습대로, 서울시에 녹아들어 주변과의 풍경을 조성하고 있는 것을 언급한다. 언젠가는 시청 부근의 경관들과 더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느낌이 들까? 서울에는 현대적인 공간과 전통적인 공간이 다양하게 포진해 있는 만큼, 전통과 현대가 조화롭게 경관을 이룰 수 있도록 앞으로 도시 경관 조성에 더 많은 노력이 들어야 할 것 같았다.

 

*

 

구조주의는 현대 건축의 중심이라 할 수 있다. 정태종 교수가 세 번째 테마로 선정하여 다룬 구조주의는 기존의 원이나 삼각형, 사각형 같은 일반적인 도형의 모양에서 벗어나 보다 위상기하학적인 차원의 건축물을 조성한다고 볼 수 있다. 저자는 이러한 건축의 중심지로 네덜란드와 덴마크를 꼽았다. 유럽에서 중심이 되는 나라가 아닌 두 국가가 현대 건축계에서는 실험적인 도전들을 행하며 앞서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구조주의적인 건물들은 먼 유럽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한강진과 이태원 사이에 있는 현대카드 라이브러리, 신용산에 위치한 아모레퍼시픽 본사와 드래곤 시티 호텔 역시 비움과 관통을 넘나드는 구조주의적인 건물들이다. 서울에 있는 건물들이 사례로 나오니, 저자가 말하는 구조주의 건축물들의 뉘앙스가 더욱 실감났다.

 

건축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바이오미미크리' 역시 네 번째 테마로 등장했다. 구조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물리적 자연현상을 이론화하는 현대물리학과 생물학에서 건축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하는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저자는 쿠마 켄고, 키쇼 쿠로카와 등의 일본 건축가들을 필두로 몰러 아키텍츠, 제로니모 준케라 등이 만든 건축물들을 소개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자연을 모방하는 가장 대표적인 건축가로, 독자층 전반에 피부로 와닿을 건축가는 역시 가우디일 것이다. 이슬람 문화와 고유의 문화가 섞여 독특한 디자인이 형성되었던 스페인에서, 자연과 인공을 유기적으로 어우러지게 만든 그는 이제 역사에 길이 남는 건축가가 되었다. 그런데 저자는 가우디의 청출어람으로 엔릭 미라예스를 언급했다. 언젠가 스페인을 여행하게 된다면 그가 건축한 산타 카테리나 시장의 모습을 직접 보고 싶어졌다.

 

조금 의외였던 것은, 바이오미미크리 챕터에서 정태종 교수가 홍콩의 익청맨션을 다뤘다는 점이었다. 홍콩은 정말 두 얼굴의 도시다. 엄청난 부와 극심한 빈곤을 동시에 목격할 수 있는 곳이다. 휘황찬란한 번화가에서 조금만 골목으로 들어가면 바로 폐허같은 공간들이 보인다. 높은 지대로 인해 점차 밀려난 도시의 노동자들이 한 평짜리 맨션에 모여 사는 게 바로 익청맨션이다. 나로서는 이 건물의 어디가 바이오미미크리와 잇닿아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저자의 말로는 익청맨션 현장에서는 사진만으론 결코 느낄 수 없는 분위기가 있다고 하는데, 그곳에 가보면 뭔가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마지막 챕터인 '스케일'에서, 저자는 도시와 건축과 사람은 하나라고 말한다. 인공성의 극치인 도시는 이제 도시를 대표하는 건축물인 랜드마크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건축물의 스케일이 도시의 스케일까지 확장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만큼 도시들은 점차 노후화되고 있다. 근현대에 지어진 건축물들 중에서 리모델링 보수 소요가 왕왕 발생한다. 전통적인 건물들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일종의 도시재생사업들이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재생을 현대적인 방법으로 할 것인가, 과거의 모습을 보존하는 형태로 할 것인가의 문제는 언제나 논란이 된다. 과거의 모습을 지켜나가는 유럽과 싱가폴, 나름대로 전통과 현대의 조합을 추구하는 일본 그리고 오히려 현대적인 스케일로 가는 중국까지 다양한 모습들이 담겨 있었다.

 

*

 

타지에 가면, 그곳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여행이 시작된다. 공항, 기차역, 버스정류장에서부터 그 도시의 이미지를 느낄 수 있다. 그래서인지 생각해보면, 공항이나 기차역은 대부분 깔끔하고 멋진 외관에 정돈된 내부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현대적인 느낌이 가득한 지금의 서울역, 그 옆에 남아있는 과거의 서울역 모두 나름의 특색이 있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인천국제공항 역시, 현대적이면서도 여행의 설렘을 느낄 만큼의 공간감이 어마어마하다. 건축물, 그 건축물이 조성하고 있는 공간의 느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끝없이 우리에게 비언어적인 표현을 하고 있는 셈이다.

 

유럽여행을 한창 다니던 시기에, 여행을 몇 번 다니다보니 조금은 오만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한국을 비롯한 동양권과는 다른 매력이 있어 유럽이 좋았는데, 다니다보니 유럽도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건물들이 비슷하다보니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 도시의 경관은 어느 정도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여행에 대한 흥미가 떨어졌다. 그 때 그단스크 여행, 약간의 시차를 두고 말라가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그 계획들을 취소했었다. 수년 전의 일인데 지금 생각해도 너무 뼈아픈 선택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왜 유럽을 비슷하다고만 느꼈을까. 각 도시에 녹아들어 있는 이 다양한 건축물들의 배경과 철학, 실제 공간감만 보아도 충분히 가봄직한 여행이었는데 말이다. 쉽게 말하는 것은 그만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스스로를 통해 뼈저리게 느낀 계기였다.

 

낯선 도시, 특히 외국의 어느 도시를 돌아다니다보면 스스로가 이방인이라는 것을 여실히 느낀다. 이방인으로서 낯선 곳에 갖는 두려움, 그렇지만 미지의 세계를 알아가게 된다는 설렘이 얽히고 설켜 누군가의 일상을 신비로운 비일상으로 바꿔 향유하는 것이 바로 여행이 아닌가. 정태종 교수의 안내에 따라 같은 한국에서부터 가까운 일본, 중국을 거쳐 베트남, 대만, 싱가폴을 너머 저 멀리 유럽 그리고 더 바다 건너에 있는 남미까지 세계여행을 다녀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여행을 가면 항상 그 도시에 있는 미술관과 박물관을 방문하곤 했는데, 저자의 안내대로 여행하다보니 문득 깨닫게 되었다, 사실은 도시 자체가 철학과 인문학, 건축학을 총체적으로 아우르는 거대한 미술관과도 같다는 것을. 저자 정태종 교수의 말처럼, 도시는 상상 그 이상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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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정태종 교수는 서울대 치대를 졸업하고 치과의사 생활을 하며 여행을 다니다가 건축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 후 유학을 감행하여 단국대학교 건축학부 조교수가 되었다. 이미 한 분야를 깊게 파 본 사람이어서 그럴까, 건축에 대해 파고드는 그의 글 속에서는 몰두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깊이감이 느껴졌다. 심오한 것을 자연스럽게 풀어내어 익숙치 않은 사람들에게 쉽게 전달하는 것이야말로, 깊이 있게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도서 '도시의 깊이'는 수많은 타도시들을 여행다니며 어렴풋이 느꼈지만 명확하게 풀어 설명할 수 없었던 수많은 '무언가'들이 성문화되어 있는 책이었다. 건축에 문외한인 독자가 보아도 직접적으로 알 수 있는 조형감, 아름다움 더불어 건축이 갖는 기본적인 기능적 측면 이상의 철학을 두루 살펴볼 수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국내외 아름다운 명소들을 누비며 건축의 아름다움을 생생하게 느낄 수 없는 이 시국에, 도서 '도시의 깊이'는 독자들에게 섬세하고 깊이있는 건축의 세계와 도시의 아름다움을 선사할 것이다.

 

 



도시의 깊이

공간탐구자와 함께 걷는 세계 건축 기행

 

지은이: 정태종

출판사: 한겨레출판

 

분야: 교양인문학, 예술기행

페이지: 296쪽

 

정가: 16,000원

ISBN: 979-11-6040-452-4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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