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스승과 제자의 숨 막히는 심리전 - 위플래쉬 [영화]

글 입력 2021.02.02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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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위플래쉬’가 개봉했을 당시 난 학생이었고 교내 영화 제작 동아리에 속해 있었다. 동아리 시간에 한 선배가 ‘위플래쉬’에 대해 발표를 했었다. 발표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선배가 굉장히 몰입해서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쏟아냈었던 것 같다.

 

그때 이 영화를 처음 알게 되었고 이후에도 주변에서 종종 이 영화가 명작이라고 하는 경우를 봤었다. 하지만 나는 무슨 고집에서인지, 뻔한 음악 영화일 거라는, 지금 생각해 보면 섣부른 판단이자 선입견을 가지고 보지 않았었다.

 

심지어 작년에 이 영화가 재개봉했을 때 예매하기 직전의 상황까지 갔었는데 그만두기도 했었다. 그땐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볼 기회를 놓친 것을 이렇게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줄 몰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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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난 직후엔 정말 멍하게 ‘미쳤다’ 혹은 ‘소름 돋는다’는 말만 반복하게 된다. 노트북으로 봤음에도 불구하고 사운드, 배우들의 눈빛과 표정 연기, 연출 등 그 생생함과 긴장감에 굉장히 압도당했던 것 같다.

 

한 시간 삼십분이 삼십분처럼 지나가는 영화였다. 영화를 보는 동안 미간엔 나도 모르게 주름이 잡혀 있었고 숨 막히는 긴장 속에서 땀 나는 주먹을 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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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플래쉬’는 개인의 열정 혹은 한계에 대한 도전보다는 스승과 제자의 대결에 더 초점을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두 인물의 심리전이 영화의 핵심이 아닐까 싶다.

 

드럼에 대한 꿈이 있는 앤드류는 뉴욕의 유명한 셰이퍼 음악 학교에 들어간다. 셰이퍼의 최고 재즈 밴드인 스튜디오 밴드의 지휘자 플레처 교수는 혼자 연습하던 앤드류의 재능을 알아보고 자신의 밴드에 들어오게 한다.

 

관객의 입장에서, 플레처가 앤드류의 심리를 조종하는 것만 같은 기술에 감탄 아닌 감탄을 했다. 플레처가 단순히 앤드류의 재능만을 본 것이 아니라, 자신이 교묘하게 조종해서 천재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상대를 고른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앤드류는 드럼에 대한 재능과 열정도 있었지만 성공에 대한 집념과 야망, 욕심, 경쟁자에 대한 승부욕과 자존심 또한 무척 강했고 표면적으로도 크게 드러났기 때문에 플레처가 더 다루기 쉬운 상대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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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처는 당근과 채찍을 정말 적절하고 치밀하게 사용한다. 부드럽게 격려하며 대해 주다가도, 어느 순간 돌변해 욕설과 폭언, 폭력을 퍼붓고 온갖 망신을 주며 몰아세운다. 그리고 그때의 분한 감정을 앤드류에게 각인시켜, 스스로 물집이 터지고 밴드가 몇 차례 피에 물들 정도로 연습하게 만든다.

 

또한 앤드류가 메인 드러머가 되어 자신감을 되찾자마자 플레처는 그에게 경쟁자를 만들어준다. 인정받을 때의 짜릿함을 느끼자마자 메인 자리에서 밀려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심지어 메인 드러머 후보 세 명을 앉혀놓고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경쟁으로 밀어붙여 메인 드러머를 선정한다.

 

이때 앤드류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을 얼음 물에 담가가며 연습하는 장면, 교통사고가 나도 파트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피투성이가 된 채로 무대에 오르는 장면은 보는 이가 고통스러울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물론 플레처의 속마음이나 진짜 의도는 추측할 수밖에 없지만, 플레처는 앤드류에게 성취와 좌절을 번갈아 쥐여주며 가혹한 방식의 가르침에 그를 길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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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과 제자의 대결에서 과연 승리자는 누구였나? 확실하게 대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결말만 봤을 땐 앤드류가 승리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가 다시 플레처의 늪으로 걸어 들어갔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는 플레처의 시점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결말이 플레처의 큰 그림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위플래쉬(Whiplash)’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곡의 제목이자 ‘채찍질’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이기도 하다. 플레처는 ‘그만하면 잘했어’라는 말이 가장 해롭다고 말한다. 자신은 천재를 양성하기 위해, 학생들이 한계를 넘어설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한다.

 

천재적인 드러머인 버드가 무대에서 당한 망신을 계기로 성공하게 되었다는 일화를 들었을 때, 결말까지의 앤드류의 성장이, 그가 보여줬던 광기와 재능이 플레처의 의도된 계략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그가 학생들로부터 열정을 끌어내는 과정은 거의 학대나 다름없고, 감독 역시 그의 가혹한 교육 방식을 미화시키려는 의도가 아니었다고 한다. 앤드류가 계속해서 플레처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는 그의 동급생처럼 우울증과 불안 장애에 시달려 비참한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른넷에 술과 마약에 찌들어 비참하게 죽더라도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것이, 아흔 살까지 그저 그런 인생을 살다가 사람들에게 잊혀지는 것보다 낫다는 앤드류의 말을 들었을 때 과연 그가 나처럼 생각할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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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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