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모두에게 주어진 사유의 이공간, A room of one's own [미술/전시]

드로잉을 통한 명상과 마음 챙김
글 입력 2021.02.01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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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마음 한 켠에 자신만의 방을 지닌다. 이는 일종의 '기억의 방’으로, 망각과 상기의 반복적 과정 안에서 독특한 공간성을 발휘한다.

 

각종 기억들이 뒤섞인 채 지극히 개인적인 내러티브가 함축된 곳. 필연적으로 개인의 모든 기억은 감정과 함께 추상적으로 존재하기 마련이다. 추억과 트라우마의 구분이란 실은 주관적이면서도 모호한 개념일 뿐.

 

어떤 기억은 구체적 장면이 잘 연상되지 않기에 우리는 종종 왜곡된 감정과 생각을 기반으로 시간의 경계를 지운다. 다소 부정확할지라도 기억은 현재 시점에서 우리를 과거나 미래로 자유롭게 유영하게 한다.

 

타인의 ‘자신만의 방’은 과연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며 유쾌한 시각적 경험을 원한다면 아트스페이스 블루스크린에서 이번주에 진행된 김노을 작가의 전시에 주목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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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노을 작가에게 드로잉이란 명상의 출력물이다. 그녀는 그리는 행위를 통해 안에 있는 감정들을 풀어낸다. 여러 드로잉들은 베끼듯이 반복된 형태로 나타나는데, 점, 선, 면으로 직조되는 패턴의 알고리즘은 기억이 휘발되는 메커니즘과 닿아있다.

 

수많은 기억들 중에서도 유의미한 울림을 자아내는 류의 특징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인상적인 감정이 엮인 기억들이다. 슬픔, 기쁨, 좌절 등이 결부된 감성적 기억들. 기하학적인 도형들 모두 작가가 자신의 감정들을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기억을 잔잔하게 복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적 의미이다.


우리는 나열된 드로잉과 메모를 통해 그녀의 사유의 과정에 빠져든다. 기억은 우리의 내면에 잠들어 있다가도 다양한 방식으로 숨결을 부여받는다. 때로는 당시에 남긴 기록물이 회상의 매개가 되고 아주 우연한 계기로도 되살아난다. 그녀의 추상적인 드로잉은 스스로를 시간을 들여 되돌아보는 과정에서 발생한 상의 집약이다. 나쁜 기억일지라도 회피하지 않고 진정성 있게 마주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전시에서 관람객은 작가에게 영감을 받음과 동시에 작품을 완성짓는 주체이다. 관람객들은 바닥에 널부러진 드로잉들을 마구 밟고 흔적을 남겨도 된다. 왜냐하면 작가가 드로잉으로 사유의 흔적을 이미지화한 뒤에는 관객들이 발자국으로 감상한 흔적들을 표시할 때 비로소 작가가 구현한 ‘자기만의 방’이 완전해지기 때문이다.


전시를 보고 나서 나 또한 드로잉을 통한 사유에 동참하고 싶어졌다. 사실 나는 현재 시점에서 과거를  떠올리기를 약간 두려워하는 편이다. 아무리 행복한 순간일지라도 시간이 흐를수록 뚜렷하게 느껴지던 감정들은 결국 덧없이 옅어진다는 점이 몹시 슬프고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인지 존재하지 않는다 느껴질 찰나일지라도 시간의 흐름이 보다 길게 느껴질 수 있도록 최대한 그 순간을 붙잡으려 애쓰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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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 전시에서 불필요한 외피를 벗어던진 솔직하면서도 과감한 드로잉을 감상하며 나름의 용기를 얻었다.

 

불편할지라도 내가 느꼈거나 느끼게 될 희노애락의 감정들 하나하나 아껴주고 싶다. 꼭 현재 시점에만 매몰되어 있지 않아도 된다. 나만의 방 안에 속한 무수한 기억의 파편들을 통해 다채로운 생의 찰나를 목격하는 빈도를 늘려가고 싶다.

 

 

"자신만의 방이란 기억의 표정들을 엿볼 수 있는 감각적 쾌의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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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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