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이 잃어버린 '불꽃'에 대하여: 소울 [영화]

우리는 '무엇'이 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글 입력 2021.01.30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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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 <소울>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장래희망'처럼 지겨운 단어가 또 있을까 싶다. 초등학생 때 특히 질리도록 들었던 질문이 바로 '장래희망이 뭐니?'였다. 사실 나는 꿈이 없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하고 싶은 일은 많았지만 되고 싶은 직업은 딱히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도 어른들은 내 꿈에 대해 자꾸만 물었다. 친구들의 입에서 대통령, 경찰, 간호사, 의사가 쏟아지는 사이에서 '없다' 혹은 '모른다'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나는 결국 내 꿈을 정하기로 마음먹었다. 꿈을 정하기로 마음먹었다니 참 이상한 문장이다. 그런데 정말이다. 나는 '패션 디자이너가 내 꿈이야!' 하고 정했다. 그리고 나에게 꿈을 묻는 모든 질문에 패션 디자이너라고 답했다. 더 이상 이 신물 나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어 마음이 놓였다.

 

이렇게 오래전부터 '직업'을 마치 우리 삶의 최종 목표인 것처럼 질문하고 답해왔다. 그래서 과거의 어떤 날에는 어쩌면 꿈이 없다는 이유로 불안해하는 친구들을 보며 내가 습관처럼 말하는 이 '직업'을 놓치지 말아야겠다, 계속 좋아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주변을 보면 꿈이 없다는 것은 곧 절벽 끝에 내몰리는 사람처럼 보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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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주 오랜만에 과거의 기억을 되살린 것은 이 영화 때문이었다. 디즈니의 신작, <소울>. 이 영화에는 '조'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재즈 피아니스트가 되어 동경하던 밴드와 함께 연주하는 것이 꿈이었던 그는 그 꿈을 목전에 두고 예기치 못한 사고로 '태어나기 전의 세상'에 떨어진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무대에 서야만 하는 조는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영혼 '22'의 멘토가 되기로 하지만 22는 어쩐지 지구로 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불꽃'을 찾아야만 '지구 통행증'을 얻을 수 있어 22의 불꽃을 찾아주려는 조와 지구로 가지 않으려는 22의 이야기가 내게 감명 깊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조가 22의 불꽃을 찾아주려고 노력한다. 자신에게 있어 '재즈'가 불꽃인 것처럼 22에게도 분명 그를 가슴 뛰게 만드는 특별한 재능이나 관심사가 있으리라고 생각한 조. 하지만 이미 오랜 시간 동안 아무리 노력해도 찾을 수 없었던 22의 불꽃은 우연한 기회로 조의 몸을 통해 지구를 경험해본 뒤 생겨났다. 조는 결국 지구 통행권을 가지고 다시 지구로 돌아가 무사히 원하던 꿈의 공연을 마칠 수 있었지만 22의 불꽃이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지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드는 이상한 기분. 함께 무대를 선 우상에게 이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를 묻자, 그는 매일 이렇게 무대를 서는 거야, 하고 답한다. 알 수 없는 허탈함과 공허함에 놀란 조. 그런 조를 보며 그가 해주는 이야기가 나를 반성하게 했다.

 

이미 바다에 속해 있으면서도 이것은 그냥 '물'일 뿐이라며 '바다'를 찾겠다고 말하는 물고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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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꼭 무엇이 되려고 태어난 것은 아닐 텐데. 무엇이 되지 못하는 나를 오랫동안 책망해온 스스로가 떠올랐다.

 

러닝타임 초반을 보고 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나의 '불꽃'은 대체 뭘까, 나에게 주어진 재능이란 게 있긴 한 걸까 골몰했었다. '이것이 아니면 내 인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 같다.'라고 주저 없이 말하는 조가 부러웠다. 나에게 상대방이 '정말? 확실해?'라고 두 번 정도 더 물으면 내 동공은 사정없이 떨리기 시작했을 테다. 겨우 발견한 내 인생의 '의미'를 훼손시킨 상대방을 원망하기나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결국 22를 지구에서 태어나게 만든 불꽃은 특출 난 재능이나 비범한 애정 따위의 것이 아니었다. 물론 어느 누군가는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이 어린 영혼들이 지구로의 여행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가장 핵심적인 가치는 용기였다. 지구에서의 삶을 한 번 살아보고자 하는 용기를 가진 준비된 마음.

 

'이게 아니면 내 인생은 의미 없어. 난 이것을 위해 태어난 거야.' 분명 멋진 말인데. 그런데 조는 그렇게 바라 왔던 꿈을 이루고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결국 원하던 날들조차 별거 아닌 일상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은 그간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기 때문이다.

 

나도 많은 날들을 그렇게 지내오지는 않았나 돌아보게 된다. 이 일을 하게 되면, 이 직업을 가지게 되면 얼마나 멋진 인생이 시작될까? 생각해보니 그 이후의 삶은 꿈꿔 본 적이 없었다. 모르긴 몰라도 아무튼 뭔가 엄청나고 대단해지지 않을까 기대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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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언가가 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영화 속 작은 영혼들처럼 나도 이 지구에서만 누릴 수 있는 일상의 작은 순간순간들에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지구 통행권을 얻어 이 삶에 뛰어든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가 끝나고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수많은 어린 영혼들이 지구 통행권을 쥐고 지구라는 미지의 행성으로 뛰어드는 모습이다. 살아갈 준비가 되어서, 살아볼 용기가 생겨서 다른 누군가 떠민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이 곳에서의 삶을 위해 몸을 던진다.

 

내가 원하는 내 모습을 꿈꾸고 이루는 것은 대단하고 멋진 일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이 영화는 말하는 듯하다. 수의사가 꿈이었지만,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이 만족스럽고 행복하다고 말하는 미용사 친구의 말처럼 우리가 지금껏 '불꽃'이라고 착각해온 그 무엇이어야만 우리 삶이 의미 있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꿈도 목적도 없고, 손에 쥐어지는 것조차 바람에 날려 우연히 떨어지는 단풍나무 씨앗이 전부일 때도 그런 우리 삶은 소중하고 행복할 수 있다. 누군가는 그 씨앗 덕분에 이 엉망진창 시끌벅적한 지구에서 살아볼 마음이 생겼으니 말이다.

 

주위를 둘러보자. 지금까지 그렇게 찾고 헤맸던 '바다' 속에 살고 있는 물고기가 나 자신은 아닌지. 나도 생각해보니 그렇다. 이거 하나만 있으면 아무리 힘들어도 썩 견디고 살아 볼만 하겠다, 하는 책을 얼마 전 발견했다. 별거 아닌 것 같은 그 순간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고작해야 내 좁은 시선 안에서 꿈꾸고 정의되어 사는 삶보다 다채로운 삶이 펼쳐질 수 있으리라는 근거 없지만, 행복한 기대로 오늘도 오늘만의 일상에 최선을 다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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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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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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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민지
    • 우화정정세랑 작가의 '지구에서 한아뿐' 입니다! 뭔가 아주 엉망인 일이 벌어진 것 같은데, 세상이 무너지긴 커녕 여전한 속도로 굴러가는 이야기가 담겨있는데다가 그 표현방식도 너무 사랑스럽고 재밌어서 아끼지 못하고 여러 번 읽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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