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성적이고 분명한 확신, 파울라만의 그림이 되다 [미술]

글 입력 2021.01.27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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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보다 보면 언제나, 느닷없이 팍 꽂히는 작품이 있다.

 

처음 보는 작가의 처음 보는 작품인데, 이상하게 그 앞에 오랫동안 머물게 되고 전시장을 나선 후에도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그런 작품이 있다. 반년 만의 뉴욕 재방문 기념, 오랜만에 들른 뉴욕 현대 미술관에서 만난 이 작품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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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f-Portrait with Two Flowers in Her Raised Left Hand, 1907



미술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익숙할 만큼 유명한 미술가의 유명한 작품들과, 기발함을 넘어 기상천외한 매력을 자랑하는 수많은 현대미술 작품들로 가득한 뉴욕 현대 미술관에서 이 작품은 솔직히 말해 객관적으로 그리 눈에 띄는 작품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 작품에는 보는 사람을 사로잡는 강렬함이 있었다. 꾸덕한 물감으로 진하게 칠해진, 손에 들고 있는 두 꽃송이만큼 발그레한 선홍빛의 얼굴에 보일락 말락 걸린 미소, 소중하게 배를 감싸고 있는 한쪽 손까지.


얼핏 보면 곧 태어날 아이와 이미 사랑에 빠진 평범한 예비 엄마 같았지만, 나를 똑바로 바라보는 두 눈이 그렇지 않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하긴 21세기에도 임신과 출산이란 여성에게 한 인간으로서 큰 기쁨일지언정 커리어에는 최소 '일시정지', 최대 '중단'을 의미하는데 1900년대 초에는 오죽했을까.

 

그렇지만 그림 속 두 눈에 담긴 것은 결코 예술가로서의 삶의 끝을 맞이하는 비관이 아니었다. 강인한 의지였고 확신이었다. 여성이 사회에서 아내나 엄마 외의 지위를 획득하고 유지하기 쉽지 않았을 시대에, 출산을 앞두고 있으면서도 저리도 분명한 확신을 가진 눈빛이라니. 그 사연이 절로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 눈빛이었다.


그렇게 내가 알게 된 파울라 모데손 베커의 삶은, 평범한 여성의 삶이기도 했지만 비범한 확신을 갖고 남다른 길을 걸어간 예술가의 삶이었다.

 

*


그녀는 생전 일기장에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내가 아는데, 나는 아주 오래 살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슬픈가? 축제가 길다고 더 아름다운가? 내 삶은 하나의 축제, 짧지만 강렬한 축제이다. 마치 내가 나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에 모든 것, 전부를 지각하기라도 해야 하듯이, 나의 감각은 점점 더 예리해진다. 지금 나의 후각은 놀라울 정도로 예민하다. 숨을 쉴 때마다 보리수, 잘 여물은 곡식, 짚과 목서초를 느낄 수 있다. 나는 모든 것을 들이마시고 빨아들인다. 그러나 내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내 안에서 사랑이 한 번 피어나고 좋은 그림 세 점을 그릴 수 있다면 나는 손에 꽃을 들고 머리에 꽃을 꽂고 기꺼이 이 세상을 떠나겠다." (<짧지만 화려한 축제> 중, 라이너 슈탐 작)


짧은 글이지만 파울라가 지녔던 두 가지 열망에 대해 엿볼 수 있다. 첫째는 아이를 낳고 싶은 소망, 둘째는 훌륭한 예술적 성취를 이루고자 하는 소망.


전자는 아마도 평범한 한 사람으로서 갖게 된 소망일 것이다. 어머니와 아들을 화폭에 담으면서도 전통적인 '모성'의 느낌은 지우려고 노력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작가이기에, 파울라의 모성에서 비롯된 소망이라기보다는 '아이'와 같은 존재들을 향한 파울라의 남다른 관심에서 피어오른 소망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독일 브레멘 근교의 예술가 공동체 '보르프스베데'의 일원으로서 주로 풍경화를 그리던 파울라는, 폴 세잔 등 당대의 초기 인상주의 미술에 깊은 영향을 받아 기존의 화풍과 소재에서 벗어나 인물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그중에서도 파울라가 가장 많이 그려낸 모델은 바로 아이들이었다. 파울라가 400여 점의 인물화 중 3분의 2 가량이 아이들의 그림이었을 정도로, 당대의 그 어떤 화가보다도 아이들이 등장하는 그림을 많이 그렸다.


독특한 점은 아이들을 향한 작가의 시선에 감정은 절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파울라가 아이들을 인물화의 모델로 자주 삼은 이유로 첫째는 모델료가 저렴해서, 둘째는 '유년기' 그 자체에 매력을 느껴서라고 한다. 작가가 아이들이라는 존재를 사랑스럽게 여겼다기보다는, 유년기에만 경험할 수 있는 아이들의 세상을 '동경'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일까. 파울라의 그림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자신만의 세계에서 자유롭게 유영하고 있는 듯 보인다. 어른들의 눈에 자신이 예뻐 보이든 말든 전혀 상관하지 않은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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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ant with the hand of the mother, 1903

Girl's head in front of a window, 1902


 

이렇듯 아이들을 어른의 시각이 아닌 또래의 시각에서, 같은 한 인간으로서의 동등한 존재로 존중하듯 바라보며 그려낸 파울라는 그 공식을 그대로 자기 자신에게도 적용한다. 파울라는 총 30여 점의 자화상을 남겼는데, 그중 다수를 인생의 마지막 1-2년 동안 만들어냈다.

 

남편과 불화 끝에 이혼할 결심을 하고 파리로 건너가서 홀로서기를 시작했지만, 파리로 찾아온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이가 생기며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했던 파란만장한 시기였다. 그 혼란스러운 시간을 겪어낸 자기 자신의 모습을 파울라는 있는 그대로, 자신의 눈에 보이는 그대로 표현했다. 파울라의 자화상들에서는 작가가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마음으로 그려낸 자기 자신, 파울라라는 사람의 역사가 그대로 묻어난다.


그중에서도 파울라가 근대 서양 미술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는 작품으로는 여성 작가로서는 최초로 그린 누드 자화상이 있다. 특히 한 작품은 임신을 했을 때 그려진 것으로 더욱 획기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 당시엔 여성의 누드를 그린 것은 거의 대부분 남성 작가였을 것이고, 거기에 스스로의 누드를 그린 작품이라니 그 희소성과 담대함이 당대 미술계에는 큰 충격을 가져다주었을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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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f-Portrait Nude with Amber Necklace, 1906

Self-portrait on the 6th wedding anniversary, 1906



그러나 그림을 보면 알겠지만 그 '충격적인' 작품은 사실 굉장히 차분하다. 역시 지나친 감정을 배제한, 적절히 냉철하고 적당히 따스한 시선으로 스스로를 화폭에 담아냈다.

 

한결같이 강직한 눈빛은 한 곳을 흔들리지 않고 응시하며 담담함을 드러낸다. 인물을 둘러싼 배경과 인물이 쥐고 있는 꽃, 혹은 인물이 감싸고 있는 부른 배는 당시 파울라의 삶이 머물고 있던 순간을 표현한다. 붓을 든 그 순간, 파울라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그려낸 것이다.

 

남성 작가의 시선에서 바라본 여성의 나체는 때로는 관능적이고, 때로는 연민을 불러일으키며 타자화되어 있다. 서로 다른 성별이니 당연한 것이다. 그런 누드화들이 대부분이던 시대에, 아무것도 꾸며내지 않은 파울라의 누드 자화상은 역시 당연하게도 충격적이었을지 모른다.


*


평범한 듯 비범한 파울라의 삶을 따라가며 파울라의 작품들을 마주한 후 내가 내린 결론은, 내가 반한 그 자화상 속 파울라의 눈빛에 확신이 깃들어 있었던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것이었다. 31세의 나이에 벌써 자신만의 화풍을 정립하고, 시대가 요구하는 것들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올곧게 바라보며 따를 줄 알았던 젊은 화가에게는 자신과 자신의 예술에 대한 확신이 있었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파울라가 31년밖에 살지 못했다는 점이 애석하지만 그만큼 후대의 작가들, 특히 여성 작가들에게 파울라가 미친 영향이 분명하다는 점은 약간의 위로가 된다. 파울라만의 특색이 분명한 화풍뿐만 아니라, 파울라가 삶을 대한 태도 역시 먼 미래의 여성 예술가 후배들에게 영향이 되어주었으리란 점이 말이다.


더불어 감정을 절제한 채 가능한 한 객관적인 시선에서 대상을 바라보며 나만의 색을 입히는 과정은 21세기의 평범한 나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된 것 같다. 파울라의 삶의 궤적을 알아가며 그런 글을 써야겠다 다짐했으니. 어쩌면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내가 마주한 파울라의 눈빛이 유달리 강렬했던 것은, 파울라가 나에게 남길 흔적이 남다를 것임을 내가 미리 알아봤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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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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