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기자 생리학 - 친절한 구식 비평가 제1품종적 서술에 숨은 칼날

글 입력 2021.01.24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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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렇게 글을 쓰는 나도 언론인으로서 ‘기자’와 같은 범주에 속한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려고 한다. 푸르스름한 하늘색 표지에 감탄하며 첫 장을 넘긴 이후 마지막 장을 덮을 때쯤이면 이 책은 내 목을 겨누는 글로써 담금질 한 서슬 퍼런 칼이 됐기에 미리 경고하기 위함이다.

 

가까스로 칼날을 피해 살아남은 뒤에는 내가 어느 품종에 속하는지 정도는 알게 된다. 다만 멈추지 않는 발자크의 칼날은 모든 언론을 가리지 않고 베어버리고자 날을 더욱 세워갈 뿐이기에 지속해서 주의할 필요가 있다. 품종과 관계없이 그의 칼날은 손에 쥐고 있던 펜으로부터 태어난 생리학이라는 날로 모든 언론과 언론인을 난도질한다.


구식 비평가 제1품종에 가까운 나를 아슬아슬하게 비껴간 그 칼날은 무척이나 날카로웠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이따금 어른들은 옛말에 틀린 것 하나 없다고 하시는데 살다 보면 정말 그렇구나 싶을 때가 있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 했지만 그러지 않고 집을 다 나선 뒤에서야 내 코를 꿰뚫는 상쾌한 공기로부터 마스크를 깜빡했음을 깨닫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는 한다.

 

모든 말이 다 맞는 것은 또 아니다. 감기는 약 먹으면 일주일이고 버티면 7일이라는 말 믿고 버티다가는 몸 다 상한다. 현대 의학은 괜히 수없이 많은 피로 점철되어 우리를 살려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듯 맞는 것도 있고 틀린 것도 있지만, 언론이라는 놈은 옛말이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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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한 번 몸에 밴 습관을 고치기는 어렵기에 우리는 그만큼 반복이라는 악마의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 발자크의 생전에 존재하던 언론이나 지금의 언론이나 크게 다르지는 않았나 보다.

 

당시의 언론과 언론인을 난도질하는 발자크의 칼날을 그대로 가져온다면 지금의 것들도 그처럼 난도질할 수 있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게 아니라면 발자크가 분류한 이 생리학적 분류가 지금의 언론에 그대로 적용되는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다.

 

다수의 언론사가 자본 또는 정치권력의 지배에서 크게 자유롭지 못한 탓에 그 언론의 재정 사정을 받쳐주고 있는 쪽의 파벌은 지지하고 반대의 파벌은 깎아내리기 위한 사설과 기사들을 쏟아낸다. 끝까지 읽은 후 되짚어보면 내가 무엇을 위해서 이 글을 읽었나 싶은 글도 허다하다.

 

쓰린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주는 것은 실상이 어떻든 이런 태도를 고쳐나가러는 태도를 보이는 곳들도 생겨나고 있다는 점이다. The Guardian도 "Power vital, open, independent journalism"이라는 슬로건을 대문에 떡하니 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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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언론사 또는 기자가 만들어 내는 프레임을 일반 대중이 자세히 살피며 사실이라는 돋보기를 들고서 그 속에 숨은 틀린 그림을 찾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언론은 중립을 지향하고 어느 한쪽으로 편향되지 않는 기사를 써야 한다고 외치지만 잘 지켜지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분명한 것은 어떤 아무개는 자신이 읽는 언론사의 기사를 보고서 그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는 것인데, 만일 그 프레임이 어느 한쪽을 편파적으로 공격하는 시선으로 짜여 있다면 그 공격의 대상이 되는 이는 구독자의 수만 큼에 달하는 공격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발자크의 칼날은 그 시대에 존재하던 이런 기사를 쓰는 자들의 목을 겨누었고 그 칼날은 지금도 다시 한 번 같은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한다.

 

 

 

.mEss Media



언론은 큰 틀에서 미디어에 속한다. 정치나 사회 분야에 몸을 담고 있지 않은 보통의 다수의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교육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이 미디어로부터 태어난다. 지금 사회와 기득권이 미디어라는 무기에 혈안이 된 이유다.

 

미디어가 유익한 정보와 사실만 전달하고 그를 해석하는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수준이 높아지는 대중과 함께 더 발전한 사회로 나갈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그게 쉽지가 않다. 인터넷에 떠도는 "인생은 실전이다 x만아"라는 밈만 봐도 우리는 현실이 얼마나 잔혹하고도 냉정한지 알 수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미디어와 교육, 대중 사이에 생긴 소통의 부재로 우리가 모두 혼란 속에서 살고 있는 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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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사례를 언급할 경우에는 논란이 생길 여지가 있기에 생략한다. 포괄적으로 말하자면 어떤 미디어가 특정 사건에 대해서 사실을 기반으로 하되 이에 대한 해석을 본인들이 원하는 쪽으로 흘러가게끔 하여 사회로 내보내는 경우, 대중은 그 흐름을 그대로 따라간다. 호의적인 방향이면 호의적으로 적대적인 방향이면 적대적으로 흘러간다. 문제는 미디어마다 취향이 다 다르고 그 미디어를 보는 대중들도 그에 따라 서로 다른 취향을 갖게 되면서 필연적으로 충돌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도 정치 얘기만 나왔다 하면 그 순간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감정 상하는 일이 다반사다. 이런 점이 미디어의 미학이기도 함과 동시에 이면에 숨겨진 독이다. 미디어를 소유한 이들은 이 점을 입맛에 따라 자유자재로 이용하고 순진한 사람들은 거기에 속아 넘어간다.


발자크의 칼날은 이런 미디어의 목을 겨눔과 동시에 우리를 꾸짖는다. 미디어라는 것이 얼마나 통속적이고 그 속에 몸담은 자들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달으라며 우리를 혼낸다. 처음부터 끝까지 발자크의 손에서 나온 한 글자 한 글자가 따끔하다. 그렇기에 생리학이라는 이름을 붙일 자격이 있다.

 

생물체의 기능을 연구하는 과학적인 학문이 생리학이기에 기자라는 생물을 날카롭고 정확하게 분석하여, 비난이 아닌 비판을 가하는 발자크의 서술은 말 그대로 기자 생리학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교육을 끝마치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난 이후부터 우리는 더는 미디어의 노예가 아닌, 미디어의 시민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지식을 얻게 된다.


발자크는 목을 겨누던 칼을 내려 우리의 손에 쥐여주고서 날을 겨누라며 떠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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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자: 오노레 드 발자크

 

옮긴이: 류재화 

 

판 형: 양장본 146*214

 

면 수: 266면

 

가 격: 16,800원 

 

발 행: 2021년 1월 7일

 

분 야: 인문/사회 비판

 

    ISBN: 979-11-90475-37-2 (03300)

 

 

[김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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