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콘트라바스, 번역가의 책 [도서]

아, 이제 공연을 시작합니다.
글 입력 2021.01.23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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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콘트라바스와 번역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습니다. 우연이라는 만남으로 도출된 관계입니다.>

 

 

 

번역가의 서재


 

1월은 무척이나 추웠습니다. 눈도 많이 왔고요. 코로나 때문에만 밖에 나가지 않았던 건 아니었습니다. 그냥 따뜻한 이불에 몸을 맡긴 채 주황빛 귤을 까먹는 게 행복해서, 그냥 그래서 나가지 않았습니다. 할 일은 많았지만, 집을 나가지 않기 위한 하나의 핑계로 작용할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가로수의 기분 좋은 찰랑거림을 듣지 못한 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1월의 어느 날, 망원동에 위치한 한 작은 서점에 다녀왔습니다. 친한 친구에게 선물을 줄 겸, 잠시 스치듯 지나간 망원동의 좁은 골목길에 위치한 서점의 작은 불빛은, 건너편에 위치한 공원을 외롭지 않게 만들 정도였습니다. 그래선지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물론 망원동에 그 서점이 있었다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골목길에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운명이라면 운명이고, 인연이라면 인연처럼 느껴진 그 서점으로 자연스럽게 발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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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의 서재', 한겨울이라 달의 시간이 빨라졌음을 고려해도 조금은 늦은 저녁, 골목길에 유일하게 켜진 불빛의 보금자리였습니다. SNS에서 미리 만나본 책방 사장님의 말투는 무척이나 부드러웠기에, 기대 반, 설렘 반, 그리고 약간의 희망을 품으며 문을 열었습니다. 글쎄요 희망의 존재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이번엔 어떤 녀석을 만날까,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부터 파생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기대와 설렘 사이에서 태어난 희망이라는 존재는 언제나 빛이 납니다.

 

책방은 생각보다 넓었고, 따스했습니다. 듣기 좋은 재즈 음악이 들려왔고, 큐레이팅 된 책들은 표지에서부터 장난스러운 개성을 뽐내는 듯 했습니다. 번역가의 서재라는 서점의 이름에서 추측 할 수 있다시피, 책장엔 다양한 국적을 갖고 태어난 책들이 가득했습니다. 처음 본 작가들의 책도 많았지만, 익숙한 이들의 이름도 많았고, 반가운 모습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오랜만이었습니다. 언제 한 번 꼭 읽어봐야겠다는 책이었는데, 책장의 중앙에서 저를 만나주었습니다. 서점의 중앙엔 '소금차 운전자'라는 동화책의 전시회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서점 사장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는데요. 30분 남짓 나눈 그 대화의 시간이 참 소중하고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이야기를 하며 사장님께 책 추천을 부탁드렸습니다. '사람' 이야기가 독특하게 담겨있는 책을 추천 부탁드렸어요. 아무래도 책을 바라보는 시선이 정말 넓고 따뜻하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습니다. 몇 권의 책을 추천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지금 제 옆에 있는 작은 책 한 권을 더 추천해주셨습니다.

 

'콘트라바스' 였습니다. '향수_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로 알려져 있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책이었습니다.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되는 콘트라바스 연주자의 삶에 대한 넋두리와 예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콘트라바스라는 악기도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 이 짧은 책에 예술가의 삶이 어떻게 녹아들어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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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트라바스


 

콘트라바스 연주자의 모노드라마입니다. 주인공은 분명 콘트라바스를 사랑하지만, 그렇다고 음악에 큰 재능이 있지는 않은, 불가피하게 콘트라바스를 연주하게 되었지만 또 만족하는, 그런 인물입니다. 그는 콘트라바스를 오케스트라의 가장 기본으로 생각합니다. 독주도 불가능하고, 서열도 가장 낮은 악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케스트라에서 제일 필요한 악기라고 말합니다. 음역대도 좁고, 낮은음밖에 낼 수 없는 악기라고 또 다시 불평하지만 자신의 악기를 사랑하는 모습이 보이는 그런 귀여운 주인공입니다.

 

콘트라바스는 우리의 삶과 무척이나 닮았습니다. 오케스트라는 수직적인 구조가 강한 집단이라고 합니다. 앞 쪽엔 바이올린, 그 뒤엔 트럼펫과 플룻, 그리고 저 뒤에 가장 끝자락에 콘트라바스가 위치합니다. 간혹 뒷줄의 악기들이 앞줄로 가는 혁신적인 상황이 발생한다곤 하지만, 콘트라바스는 항상 예외입니다. 콘트라바스는 지휘자를 포함한 모든 오케스트라를 받치는 기본 골격이 되고요. 책의 주인공은 웅장한 건축물을 세우는 토대라고도 했습니다. 콘트라바스를 오케스트라에서 뺀다면, 바빌론의 붕괴와 함께 언어가 탄생한 대혼란이 초래돼고, 누구도 왜 음악을 하는지 알지 못하는, 그런 상태가 된다고도 합니다.

 

인기 없는 악기를 다루는 주인공의 삶은 별 볼 일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멜로디를 돋보이게 해주고 간간히 음을 넣어 다른 연주자들을 받쳐줍니다. 주목을 받지는 못하지만 사회에서 무엇보다 필수적인 존재, 콘트라바스는 알면 알수록 매력적입니다. 그래서인지 주인공도 점점 매력적으로 느껴집니다. 콘트라바스의 위용과 쓸모, 가치에 관해 이야기하던 그는 자신이 짝사랑하던 한 소프라노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소프라노와 콘트라바스라니, 친하지 않을 이유는 없지만, 그렇다고 어울릴 이유도 없는 그런 사이처럼 느껴집니다. 소프라노는 유명한 남성 성악가들과만 데이트를 합니다. 콘트라바스 연주자를 신경이나 쓸까 싶지만, 매번 그는 다시 한번 다짐합니다. 그녀와 데이트 하기를 말입니다.

 

책에선 주인공이 콘트라바스 음악을 소개해줍니다. 어떤 음악가의 무슨 코드, 몇 악장, 콘트라바스 음악과 함께 책을 읽다 보면 낮은음에서 맴도는 멜로디에 은근히 취하게 됩니다. 대중적이고 대표적인 악기는 아니지만, 존재 자체로 의미 있고 아름다운 악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래에 있는 영상은 콘트라바스 음악을 찾던 도중 우연히 알게 된, 유명한 영상이었습니다. 이탈리아 거리의 연주가들과 즉흥연주를 하는 한 콘트라바스 연주가의 공연입니다. 유럽 골목길 특유의 분위기 덕분인지, 조화로운 멜로디 덕분인지는 모르지만 아름답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됩니다.

 

 

 

 

 

작은 책방과 아름다운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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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제일 좋아하는 것들의 조합입니다. 따사로운 햇볕이 들어오는 오후의 반짝임도 좋고, 이른 저녁 노을 녘에 풍겨오는 향기로운 커피 향도 좋습니다. 그리고 늦은 저녁 책방 문을 열고 나오면서 느껴지는 다음번 만남에 대한 설렘과 기대도 너무나 좋습니다. 해가 저물고 달이 우리를 비춘 후, 제가 책방에 들어선 약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이, 올해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아직 서른 밤도 지나지 않았지만요.

 

벌써부터 다음엔 어떤 책과 어떤 인물을, 그리고 어떤 음악을 만나게 될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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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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