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삶의 가장 작은 순간들에 보내는 찬사 - 소울 [영화]

삶의 모든 순간은 의미가 있다. 그 작은 의미들을 알알이 누리며 살기를
글 입력 2021.01.19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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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는 영화 <소울>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또한 이 글은 국내에서 서비스되지 않는 OTT 플랫폼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영화를 감상한 후 작성되었습니다. 국내에서 아직 개봉하지 않은 작품이기에 미리 밝혀둡니다.

 

*

 

삶의 목적과 가치는 무엇일까?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던져봤을 질문이고 각자 한 번쯤은 답을 내려 봤을 질문이다. 나의 경우 그 답은 ‘꿈을 이루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의 꿈은 공연을 만드는 것이었다.

 

공연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인문계 대학생이었던 나는 꿈을 이루기 위해 전공을 하나 더 하는 것을 택했고, 관련된 경험을 한 번이라도 더 하기 위해 매일같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정보를 찾아다녔고, 엇비슷한 기회만 생겼다 하면 죽어라 매달렸다. 내 꿈과 연관성이 없는 것들은 전부 안중 밖이었다.

 

영화 <소울>의 주인공 ‘조’는 나와 같은 사람이다. 재즈 뮤지션이 되겠다는 꿈을 가진 조의 삶은 온통 재즈 음악 뿐이다. 조에게 있어 재즈란 삶에 기쁨을 가져다 주는 것을 넘어 삶의 이유 그 자체다. 비록 현실은 재즈에 전혀 관심이 없는 학생들 투성이인 학교 재즈 밴드의 교사일 뿐이지만, 조는 언제나 자신의 음악을 온전히 보여줄 수 있는 무대에 서기를 꿈꾸고 마침내 그 꿈을 이룬다.

 

그렇지만 꿈을 이루고 난 다음 순간, 조는 이상하게도 허무한 감정을 맛본다. 꿈을 이루기만 하면 무언가 달라질 줄 알았지만,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다. 모두가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있는 암울한 지하철부터, 싸늘하게 자신을 기다리는 불 꺼진 집까지 조의 일상은 그대로다.

 

내가 수 년 간 꿈을 이루기 위해 아등바등 노력한 결과 내가 꿈꾸었던 것들을 경험하고 내 꿈에 더 가까워질 수 있는 많은 것들을 갖추게 되었음에도, 그 끝에 성취감보다는 묘한 공허감과 회의감을 마주하게 되었던 것처럼. 조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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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조에게 답을 주는 것은 태어나지 못한 영혼 ‘22’다. 22는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영혼들이 성격과 같은 개인적인 특성들을 발견해 얻는 공간인 ‘The Great Before’에서 수천 년을 보낸 존재다. 모든 특성을 발견해야 지구로 갈 수 있는 ‘Earth pass’를 얻게 되는데, 특성 중 한 가지인 ‘spark’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더 테레사, 에이브러햄 링컨 등 소위 ‘위인’으로 일컬어지는 훌륭한 삶의 대표적 예시들이 22의 ‘spark’를 찾아주는 멘토 역할을 맡았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도리어 22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22는 꿈이 이루어지기 직전 뜻하지 않게 죽음을 맞이한 조의 영혼과 마주하고, 삶을 건너뛰고 싶은 자신과 삶을 되찾으려는 조의 목적이 서로 맞아떨어진다는 사실에 조에게 협조한다. 그러나 영혼이 육체로 되돌아가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조의 몸에 22의 영혼이 들어가게 된다. (재미있게도, 조의 영혼은 조의 육체 위에 앉아 있던 고양이에게로 들어간다.) 그렇게 22는 우연히 ‘삶’을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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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의 몸으로 경험한 반나절의 ‘삶’은 22에게 매 순간 경이로움을 선사한다. 값싼 피자 한 조각, 나무에서 떨어진 작은 단풍 씨앗, 소음 가득한 지하철과 플랫폼에서 기타를 치는 버스커, 심지어는 그저 두 발로 걸어다닌다는 사실까지 조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한 파편들일 뿐이지만 22에게는 전부 특별하다.

 

어쩌면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나 걷는 것이 자신의 ‘spark’일지 모른다는 22의 말을 조는 ‘그건 그저 당연한 일상이지 삶의 목적이 될 수 없다’고 일축하지만, ‘삶’을 경험한 후 22는 ‘Earth pass’를 얻게 된다.

 

자신의 육체로 되돌아온 후, 22로서 보낸 하루의 기억들을 되짚어 보면서 조는 비로소 깨닫는다. 삶에 의미나 목적이 따로 있지는 않다는 걸. 무대에 오르는 꿈을 이루지 못한 삶이었기에 평생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수의사라는 꿈을 이루지 못했음에도 이발사로서 만족스럽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친구처럼, 삶의 모든 순간들을 그저 살아내는 것 자체가 삶의 의미이자 목적이라는 걸.

 

꿈, 그러니까 ‘spark’는 삶의 목적이 아니라 단지 기쁨을 줌으로써 삶을 조금 더 사랑하게 해주는 요소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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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울>은 이처럼 훌륭한 성취를 일궈내지 못했어도, 삶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것이며 살아가는 모든 순간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특히 꿈을 이루지 못한 삶이라도 꿈을 가진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열정과 기쁨을 충분히 누렸다면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삶이며, 심지어는 꿈이 없더라도삶은 충분히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이는 모든 영화가 그렇듯 인물들의 대사와 이야기의 흐름으로 간접 제시되지만, 그렇기에 더 깊숙이 와닿는다.

 

더불어 영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야기지만 많은 서사가 그렇듯 사후 세계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생전’의 세계를 다루고 있다는 점과, 그 세계를 그려내고 있는 독창적인 방식에서 디즈니와 픽사의 조합에서 나오는 창의적인 발상과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다시 한 번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영화라는 것만으로도 <소울>은 충분히 볼 가치가 있다.

 

영화관에 방문하기 쉽지 않은 요즘이지만 이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 그저 흘러버린 듯한 삶을 살았다는 생각에 좌절하는 모든 이들을 향한 위로와 그저 흘러가고 있는 모든 삶들을 향한 격려가 보다 많은 관객에게 전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최우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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