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떠나야 할 세계와의 작별 [영화]

글 입력 2021.01.17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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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7년이다. 강아지가 아프다는 거짓말에 무작정 낯선 이의 뒤를 따랐던,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지닌 소녀가 극악무도한 범죄자의 창고에 갇혀 지낸 시간이.

영화는 플래시백을 통해 몸소 과거를 보여주진 않으나 그 시간이 마치 영겁과 같았으리라는 추측은 충분히 가능하다. 넓이가 3.5 제곱미터밖에 되지 않는, 창문이라고는 천장에 조그맣게 하나 달린 게 전부인 그 폐쇄된 방에서 소녀는 자그마치 일곱 해를 지새웠다. 잠시라도 바깥의 공기를 들이마실 자유, 가족을 만나기는커녕 그들에게 생사를 알릴 자유, 그리고 자신의 몸을 지켜낼 자유까지 일말의 것조차 그녀에겐 허락되지 않았다.

그렇게 성노예와 다를 것 없이 지내던 그녀는 어느 날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를 한 아이를 배게 된다. 그 작은 존재의 정체성은 소녀가 그 방에서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고, 그녀는 그것을 불행이 아닌 축복으로 결정지은 채 사랑으로 감싸 안는 편을 택한다. 우리가 그들을 만나는 시점은 그녀가 감금된 지 7년, 그 아이가 다섯 살이 되는 해다.

고통의 시간 동안 소녀는 강해져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작은 방의 프레임에 갇혀 아이의 세계 또한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있음을 목도한 엄마는 곧 탈출을 계획한다. 다행히 그 계획이 성공적으로 들어맞아 아이는 무사히 탈출했고, 여러 역경을 거쳐 끝내는 엄마까지 창고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박진감 넘치는 전개 탓에 손에 땀을 쥔 채 관람하던 차였다. 무사히 경찰차에 탑승한 모자를 보자 그제야 한시름을 놓는다. 잘 됐다며 가슴을 쓸어내리는데, 어라. 스크롤 바를 보니 러닝타임은 이제 겨우 반밖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부조리로 인한 증오, 그에 따라 염원해 온 반격. 그리고 탈출. 이어지는 행복한 결말. 어느새 눈에 익었던 구조를 기대하며 영화를 관람하고 있었고, 그와 판이한 흐름을 인지하여 의아함이 들던 찰나 아이가 묻는다.

"이제 자도 돼?"
"그럼, 잘 수 있는 곳으로 데려다줄 거야."
"아니, 우리 침대. '우리 룸'."

관객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닫는 동시에 비로소 눈치챈다. 감독이 진정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여기서부터가 시작이라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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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갇혀 지내는 시간 동안, 조이(브리 라슨)는 무척이나 위태로워 보인다. 때로는 피로감이, 때로는 분노가, 억울함이 북받쳐 그녀의 인내심은 종종 한계에 다다르곤 했다. 그렇게 감정의 끝자락에 내몰릴 때조차 그녀는 자신을 납치한 닉(숀 브리저스)를 해하거나 아들 잭(제이콥 트렘블레이)에게 여과 없이 감정을 쏟아낸 적은 있어도, 결코 본인을 해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정작 그토록 원하던 바깥세상에 나온 후 조이는 본인의 삶 자체를 포기하는 선택을 한다. 살고 싶은 마음에 강인하게 몸부림치던 그녀는 과연 무엇에 맞서다 꺾여 버린 것일까.

오랫동안 이루기를 고대하며 노력해오던 목표를 성취한 후, 얻은 만족감이 예상과는 다를 때의 그 섬찟함을 아는가. 좋을 텐데, 좋아야 할 텐데, 좋은 게 맞는데 싶은 마음에서 출발하는 초조함은 곧 방향이 틀렸다는 불안감과 함께 자기 파괴의 형태로 싹튼다. 그에 따라 삶은 급속도로 공허해지며 점차 그 목적을 잃게 된다.

조이의 경우 성취하고자 하는 목적이라기보다는 벗어나고 싶은 해방감에 더 가까웠을 것이다. 아득한 행복으로 남았던 과거의 집으로 돌아왔으나 예전에 누워 놀던 해먹은 사라졌고, 그때의 부모님도 서로 헤어져 이제는 다른 집에 살고 있었다. 예상과 다른 현실 속에서, 그녀는 강박에 시달린다. 하루빨리 남들이 바라보는 '비정상'이라는 시선에서 탈출하고 싶다는 강박이다.

이러한 강박의 뿌리는 학창 시절을 반추하며 괴로워하던 그녀의 모습에서 알 수 있듯, 날아갔다고 생각하는 본인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박탈감에 기인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참을 수 없는 박탈감을 잠재울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잭이었다. 잭은 그 시간 동안 몸과 마음, 시간을 빼앗겨버린 그녀가 모든 걸 박탈당한 건 아니라는 유일한 반증이다. 그녀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허함을 채우고자 승낙했던 인터뷰에서 그녀는 지금껏 축복이라 믿으며 의심조차 해본 적 없었던 본인의 선택에 대해 의문을 제기 받는다. 바로 그를 손수 키워낸 그녀의 그 선택마저 최선이 아니었을 수 있다는, 그녀의 욕심일 수도 있다는 것. 이러한 타인의 시선은 조이를 끈질기게 괴롭히며 과거의 박탈감을 키우고 미래로의 희망을 앗아간다. 지금껏 좋은 엄마인 적이 없었다는 자괴감과 더불어 더 이상 그 역할을 해낼 자신이 없어진 것이다.

어쩌면 영화에서 말하는 '룸'이란 본인을 옭아매는 과거를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에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저주하고 그 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못하는 사람, 이 영화에서는 조이일 것이다. '그때 왜 닉을 따라갔을까'라는 자책은 나아가 '왜 잭을 자유롭게 풀어주지 못했을까'로 탈바꿈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힌다. 따라서 그녀에게 공간의 변화는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트라우마라는 것이 그러하다. 원래의 세상은 점점 줄어 3.5제곱 미터의 크기가 되고 어느덧 그것이 전부로 자리 잡는다. 어쩌면 그 안에서 나오지 않기로 고집을 부리는 건 자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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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직접적으로 언급하듯 그런 그녀를 구한 건 잭이다. 그녀는 잭을 통해 자신만의 방과 작별하는 법을 배운다.

처음 접하는 빛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세상과 낯을 가리던 잭은 영화가 후반부로 이어지면서 혼자 그네를 타고 친구를 사귀게 된다. 심지어 낯선 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며 망설임 없이 사랑을 전하기까지 한다. 이러한 장면은 깊게 몰입한 관객이 눈시울을 붉히도록 만드는데, 이러한 감동은 비단 어린아이의 성장담이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나이에 관계하고 있다기보다는 자신의 한계를 딛고 성장하는 이를 볼 때의 뭉클함에 더욱 가깝다. 자신만의 껍질을 깨고 나오는 그 숭고한 과정은 보는 이에게 감동과 함께 한없이 응원하고 싶은 대견함까지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한층 성장한 잭은 마지막으로 룸에 가보면 안 되냐고 묻지만, 그건 그곳에서 보낸 과거가 그리워서가 아니었다. 조이처럼 더 큰 세상을 알지 못했던 과거가 후회되어서도 물론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미처 하지 못한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잭은 룸에 들어가 과거를 찬찬히 돌이켜보고 직면한 뒤, 인사를 나눈다. 더 완벽한 룸처럼 보이기 위해 조이가 문을 닫을까 묻지만 그는 거절한다. 예전의 룸을 다시 느껴보고 싶어 온 게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반대로, 이제 놓아주려고 온 것이기에. 엄마가 말하는 세상은 없다며 악을 쓰고 울던 소년은 어느덧 성장해 늠름하게 헤어짐에 임한다. 과거의 세계를 직면하고 좁았음을 인정할 용기가 있는 잭은 세계와 작별할 힘을 지닌 인물이었다.

어린 마음에 여전히 엄마의 품과 모유를 원하던 잭, 그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하자 잭은 알겠다며 순순히 응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 모습을 본 조이는 오히려 표정을 구기다 실토한다. "난 좋은 엄마가 아닌가 봐." 자신만의 세계를 빠르게 탈피하고 새로운 세상에 쑥쑥 적응하는 잭을 보며 조이는 마치 홀로 남겨진 듯한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다시 끝없는 불안감과 외로움이 스멀스멀 기어오를 찰나, "그래도 엄마잖아."라는 잭의 대답은 그녀를 웃게 만든다. "나는 왜 이렇게밖에 못할까?"라는 자책에 대해 "아냐, 잘했어."보다는 "그래도 뭔가를 해냈잖아."라는 대답이 더욱 힘이 될 때가 있는 것처럼, 무심해 보이는 듯한 그의 말은 그녀를 깊게 위로한다. 그 위로는 조이에게 삶의 의지를 불어넣고, 현재의 존재를 부여했으며, 미래의 가능성 또한 열어준다.
 
 
문이 열려있으면 룸이 아니거든.
 
 
이 영화의 룸이란 각자가 이미 떠나온, 그리고 떠나와야 할 과거의 세계처럼 느껴졌다. 그곳에 갇혀버리지 않도록 우리는 세상으로 통할 수 있는 문을 열어두어야 한다고 영화는 말한다. 이러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탈출을 기점으로 나누었을 때 영화의 앞부분보다는 뒷부분에 힘을 실었을 것이다.
 
실화를 바탕 삼은 소설을 원작으로 둔 레니 애브라함슨 감독의 영화 <룸>은 이렇게 각자의 작별에 애를 쓰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힘을 실어준다. 자칫 자극적으로 다루어질 수 있는 부분들을 최대한 줄이고 피해자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는 점에서 더더욱 따뜻하게 여겨지는 이 작품은, 자신만의 터널에서 힘겨워하는 이가 있다면 망설임 없이 추천해줄 수 있는 영화다.

 

 

[김수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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