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오늘은 어떤 꿈을 꾸고 싶나요? - 달러구트 꿈 백화점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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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이 평소보다 빨리 지나간 것처럼 느끼며 아직 문서에 날짜를 작성할 때 실수하고 있지만, 잠자기 전에 가만히 생각해 보면 생각보다 한 일들이 있다는 것에 놀라곤 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친구들과의 책 모임이다. '한 번 해볼까?' 하는 가벼운 생각에서 시작한 이 활동을 지속한 지 벌써 1년이 되어간다.
규칙적으로 격주에 한 권씩 지정된 도서를 각자 읽고, 미리 정한 시간에 모여 책에 대한 자유로운 생각을 나눈다. 나름 책을 읽는 걸 좋아한다고 말하는 나였지만 막상 규칙적으로 책을 읽어야 하니 평소보다 더 의식적으로 책을 읽게 된 것 같다. (이 글을 읽고 관심이 생긴다면 당장 주변 친구들을 설득해보자!)
매번 구성원들이 원하는 책을 나름 공정하게 선정해서 읽었는데 혼자만의 취향과 선택으로 읽는 게 아니라서인지 1년간 기대했던 만큼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그렇게 꾸준히 이어오던 2020년 마지막 책 모임 날. 우리는 새해를 여는 첫 도서로 이 책을 선정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
사실 이번 책은 나의 의견이 많이 반영된 결과였다. 내가 읽고 싶었던 이유는 먼저, 난 잠을 좋아한다. 세로 자세로 하루 종일 생활하다가 깊은 휴식을 취할 때는 가로 자세가 된다는 게 (어딘가에서 읽었는데... 어디서 읽은 표현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필사가 중요한 이유!) 얼마나 재미있고 신기한 일인가.
잠이라는 행위 자체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잠을 통해 경험하는 새로운 세계. 꿈속 세상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무척 흥미롭다. 어릴 때 나를 재우기 위해 부모님은 어서 잠자리에 들어야 꿈나라로 가는 열차를 놓치지 않는다고 이야기해 주셨는데 아직도 열차가 실제로 존재할 것 같다고 생각하곤 한다. (꿈나라 열차에서 더 나아가 먼저 꿈나라에 가 있을 테니 빨리 들어오라고 장난친 기억도 있다.)
그러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잠>이라는 놀라운 책을 읽었는데 무려 2권 분량임에도 집중해서 읽었던 기억이다. 작가는 분명 법학을 전공했는데! 나에게 깊은 과학적 지식에 상상력을 더해서 하나의 작품으로 전해줬다. <잠>에서 꿈을 '이용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그려지는데 내가 직접 따라 해보고 싶을 만큼 기발하지만 사실적이고, 내가 가진 꿈에 대한 관심을 더 키워주는 계기가 되었다.
마지막 이유는 새해 시작은 동화 같은 책으로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책을 선정하기 위해 이런저런 책 후보를 내놓으며 독자들의 평을 읽어보는데, 어른들의 동화이며 힐링이 되는 판타지 소설이라는 반응이 많았다. 마침 직전에 읽은 책이 현실에 관한 통계자료를 보여주는 도서였기 때문에 다른 친구도 나의 의견에 동의해 준 것 같다.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한 2020년을 마무리하고 새해에는 조금 더 동화 같은, 기분 좋은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들어간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와 친구들은 <달러구트 꿈 백화점>을 읽으며 새해를 맞이했다. 앞서 <잠>을 쓴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가 본인의 전공(법학)과 다른 분야(과학)의 책을 쓰는 것에 대해 놀라움을 표현했는데, 이 책의 작가도 본 전공(공학)과는 거리가 먼 판타지 소설을 썼다.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작가의 첫 작품이라는 것을 알고 뭔가 전에 읽었던 다른 책들보다 '일반인'에 가까운 사람이 쓴 글이었다는 게 신기했다.
책의 얼굴이 되는 표지와 제목만 봤을 때는 자연스레 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떠올랐다. 아주 단순한 연결이었지만 첫인상이 좋았기 때문에 이후에 책을 읽는 과정이 더 즐겁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 읽고 나니 '나미야 잡화점'도 '달러구트 꿈 백화점'도 한 번쯤 가보고 내 기억으로 저장해두고 싶은 장소라는 점도 비슷하다는 연결점이 새로 생겼다.
책은 프롤로그부터 1장까지 대략적인 '달러구트 꿈 백화점'에 대한 소개와 백화점이 위치한 세계에 대해 소개를 하고, 2장부터는 거의 에피소드 형식으로 진행된다. 각 에피소드를 순서대로 읽어가면서 꿈 세계에 대해 점점 더 알아가게 되었고 어느새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가장 큰 전제는 꿈속 세상에 사는 사람들과 내가 사는 현실 세계는 분리된 것이다. 즉,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 위치한 꿈속 세상이 이야기의 배경이므로 이곳을 기준으로 잠을 통해서 꿈속 세상으로 가는 사람들은 외부인 혹은 손님으로 불린다. 이게 더 현실성 있게 다뤄진 부분은 손님들은 대부분 편한 복장과 신발을 신지 않은 모습으로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잠든 손님들이 가벼운 옷차림으로 돌아다니지 않도록 '녹틸루카'들은 100벌이 넘는 수면 가운을 가지고 다니며 옷을 입힌다.
이 디테일을 처음에 빠르게 읽었을 때는 왜 '녹틸루카'들이 수면 가운을 가지고 다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왜 손님들은 가벼운 옷차림인가. 왜 간혹 팬티만 입은 사람이 돌아다니는 거지. 사실 손님들의 옷차림은 '달러구트 꿈 백화점'에게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겼는데 천천히 작가가 설계한 꿈나라 세계관을 그려보며 읽다 보니 결국 나의 이야기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끔한 정장을 입고 잠자리에 드는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책은 이렇게 현실의 이야기를 비현실적인 요소로 재미있게 풀어낸다. '녹틸루카'에 관한 내용만큼 시작부터 나의 시선을 이끈 내용은 주인공 '페니'가 '달러구트 꿈 백화점' 취업을 위해 면접을 준비하는 장면이었다. 나 역시 '페니'처럼 언젠가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의 현실과 비슷한 '취업 상황' 자체에서 공감했는데 면접을 준비하는 내용이 좀 신기했다.
꿈속 세상에서는 어떤 교육을 받는지 사실 모르겠다. 어쩌면 나의 교육과정처럼 국어, 영어, 수학 같은 과목을 배우지 않을지도 모른다. '꿈'을 판매하고 주로(책에 다뤄진 내용만 보면) 잠과 관련된 상품(수면 사탕, 양파 우유, 심신 안정용 쿠키)을 판매하는 모습을 보면 분명 나랑 다른 기초과목을 배울 것 같기는 하다. 어쩌면 영어가 아닌 '언어'라는 과목으로 통칭해서 다양한 국가(현실 세상 속)의 언어를 배울지도 모른다. 꿈 세상으로 오는 손님들은 시차 때문에 매시간(꿈 세상 속) 국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외부인이 구매한 꿈의 요금을 '드림 페이 시스템즈'라는 기술로 받는다는 설정도 새로웠고 기발했다. 사실 서비스를 먼저 제공받은 후에 후불로 요금을 지불하는 경우가 현실 세계에서도 존재하지만(식당의 경우), 내가 골라서 선택한 상품을(CD나 비디오를 대여하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감각으로 즐기지만 소장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잠들어 있는 동안 경험한 후에 느끼는 감정으로 지불하는 것이라니! 현실 세계에서는 감정이 돈으로 환산되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상 외부인은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서 놀라운 서비스를 제공받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앞에서 잠시 언급한 것처럼 2장부터는 각 에피소드로 내용이 진행되는데 사실 모든 에피소드가 흥미로웠다. 꿈으로 연결된 커플의 이야기와 예지몽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에 붙여진 이름, 레프라혼 요정들의 영악한 성격을 엿볼 수 있던 꿈 제작자 정기총회 등 하나하나 짚으며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으로 가득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타인의 삶(체험판)'을 다룬 에피소드이다.
'타인의 삶(체험판)'은 제목부터 사실 내가 좋아할 내용일 것 같다고 예상했다. 모든 사람이 그런 건지 나만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역시나 좋았다. 판타지 같은 책을 읽으면서 가끔 현실에 사는 내가 위로를 받는 부분이 있었는데 이 에피소드도 그랬다. 사실 어떻게 보면 '모두가 힘든 시간이 있으니 견뎌내라'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도 타인의 삶을 경험하면 환경에 대해서는 여전히 막막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변화의 희망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외부인(손님)들은 현실에서 잠을 통해 꿈속 세상으로 온다. 그렇다면 그들이 꿈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꿈과 숙면을 돕는 상품을 구매하는 것 말고 또 무엇이 있을까? 자는 시간에만 잠시만 들르는 공간이면 외부인은 꿈 백화점 말고 또 어디를 갈까? 손님은 꿈 세상에 들어오는 게 자유로운데(낮잠을 자서도 들어올 수 있다) 나갈 때는 어떻게 나가는 걸까? 꿈 세상에 사는 페니는 현실로 나갈 수 없는 것일까?
책을 읽다 보니 너무나 많은 질문이 생겼다. 내 질문의 씨앗은 거의 메말라버린 줄 알았는데, 작가님이 그리신 세계를 나도 같이 공유하고 싶다는 마음이 상상력을 발휘해 질문을 갖게 한 것 같다. '해리 포터 시리즈'를 좋아한다고 하시고 이번 책을 통해 꿈속 세계관을 구축해서 그 속에서 살아가는 많은 인물을 만드셨으니,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 존재하는 세계관으로 추가 시리즈를 만드시는 것은 어떨까 기대하고 싶다.
어른들의 동화라는 수식어처럼 어렵지 않게 읽었고, 읽는 내내 내용을 상상하며 읽어 나간 것 같다. 책에서는 정말 셀 수 없이 많은 꿈 내용이 나왔는데, 나는 오늘 밤에 '달러구트 꿈 백화점'에서 '와와 슬립랜드'가 만든 '우주를 유영하는 꿈'을 구매할 수 있길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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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레프라혼 요정들의 생각처럼 꿈 내용이 실제 현실보다 나쁠 경우 안도감과 해방감을 느끼며 비싼 감정을 요금으로 받을지도 모른다(감정들은 증권처럼 가격이 서로 가격이 다르다. 성취감, 자신감처럼 긍정적인 감정이 대체로 가격이 비싸고, 허무함과 무기력함처럼 부정적인 감정은 가격이 낮다).
하지만 그 꿈이 현실과 유사했다면 그게 아가냅 코코가 제작한 예지몽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손님이라면 분명 레프라혼 요정들의 꿈은 비싼 값을 받지 못할 것이다.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기분 좋은 꿈을 만들어라. 레프라혼 요정들! 영업 비밀 소문나면 매출 하락이야.
[정서영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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