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서로에게 보내는 위로 – 지구에서 스테이

글 입력 2021.01.11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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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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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에 살면서 매번 느끼는 것이 있다면, 정말로 역사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마스크를 끼지 않는 것이 어색해지고, 옛날 영상 속 사람들의 마스크 없는 모습을 볼 때마다 깜짝 놀라고는 한다. 외출할 때 마스크를 끼지 않는 것은 이제 신발을 신지 않는 것보다 더 비일상적인 이야기가 되었다.

 

코로나로 사람들이 만나는 곳들이 사라지고 있으며 관계는 단절된다. 외로움에 점점 익숙해지지만 우울해지는 것은 막을 수 없다. 모두에게 낯설고 우울한 코로나 시대에서 <지구에서 스테이>는 세계 각국의 시인들의 작품들을 한데 모았다.

 

<지구에서 스테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출판사 관계자는 동일본대지진을 예시로 들면서 힘든 시기의 소통의 중요성을 언급한다. 2011년 지진 당시, 사장은 우울증에 빠졌지만 당시 상황을 기록한 에세이와 시를 읽으면서 서서히 회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코로나로 전 세계의 사람들이 힘들고 슬퍼하더라고 경험자가 직접 기록한 문학은 위안이 될 수 있다. 즉, 슬픔을 나눌수록 서로 위로가 된다는 것이다. <지구에서 스테이>는 우울하면서도 서로 이 시기를 힘내보자는 메시지를 함께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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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의 코로나



 

어둠의 시기엔 어둠의 언어가 되어 만나자.

시를 쓰고 읽는 눈빛도 빛의 하나여서,

이 어둠 속에서 반짝반짝 점멸한다.

 

_나민애 문학평론가 (들어가는 말, [생존신고서가 된 시] 중에서)

 

 

<지구에서 스테이>는 총 4부로 나뉘어 있다. 한국, 유럽ㆍ영미, 일본, 중국으로 나눠어 있으며 나라마다 작품의 분위기가 달랐다. 유럽과 중화권의 경우, 시는 더 암울했다. 역설적이게도 시집 중에서 위로를 주려고 하는 시보다 가장 우울하고 암울했던 시가 위로되었다. 오히려 이 우울함을 회피하지 않고 그 진상을 제대로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특히 리커 마르스만의 ‘뒤늦은 의회 대표 질문’이 인상적이었다. 코로나 이후 사람들이 정리해고되거나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을 시적으로 표현했다.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살아남는 것’이라는 표현이 와닿았다.

 

가장 시니컬하면서도 위로가 되었다. 무엇이 되었든 살아남고 싶은 모습에서 의지가 보였기 때문이다. 정신적인 가치가 점점 흐려지고, 어찌 됐든 살아남는 것이 중요한 현실이 되었다. 어떻게든 살아남자는 메시지가 위로가 되었다.

 

 

나는 산책이 늘었다

나는 요리가 늘었다

나에게 시간이 너무나도 늘었다

축제가 사라졌다

장례식이 사라졌다

옆자리가 사라졌다

재난영화의 예감은 빗나갔다

잿빛 잔해만 남은 도시가 아니라

거짓말처럼 푸른 창공과 새하얀 구름이 날마다 아침을 연다

 

_김소연, [거짓말처럼] 중에서

 

 

여전히 하늘은 맑고 푸르며 살아갈만하다고 표현하는 시가 있었다. 혹은 외국 작품 중 마트의 모든 물품이 동나고 두루마리 휴지 하나를 사수하기 위해 기이한 행동을 벌이는 사람들의 진상까지 보여준다. 어떤 감성의 작품이든지, 모두 현실이다. 우울한 시대를 살아가지만, 마냥 우울하게 쓰지 않고 적응해 나가는 시도 위로가 되며, 슬픔에 잠긴 작품 또한 독자를 다독여준다.

 

시가 직접적으로 코로나를 물리쳐주지 않는다. 그러나 정신적인 가치는 복원해준다. <지구에서 스테이>는 18개국 56명의 시인이 언어와 리듬으로 그려지는 세계는 모두 다르지만, 코로나 상황 속에서 바라는 마음은 모두 같다. 코로나 재난 앞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다 함께 살아남길 바라는 마음이 어딘가에서 그 누군가에게 시로 쓰게 했다.

 

특히, <지구에서 스테이>는 코로나를 살아가는 시인들의 다양한 삶이 반영되어있다. 생각보다 살아갈 만하다는 시인, 악몽 그 이상이라고 표현하는 시인 등 다양하다.

 

 

 

자신만의 코로나 시대


 

코로나 이전의 세상은 마치 꿈속에서 본 것인 듯 아련해졌다. 하늘길이 막히고 이동 수단의 막차 시간은 빨라졌다. 9시 이후 여는 가게가 거의 없어서 빛으로 반짝거리던 서울은 을씨년스러워졌다.

 

추운 겨울, 한파가 찾아오면서 빛없는 서울이 황량하게 느껴진다. 그럴수록 이 황량한 곳에서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고 현실이 무엇인지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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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코로나가 질병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지 1년이 되어간다. 1년 사이, 질병에 대한 인식뿐만 아니라 기술, 그리고 인간 스스로 존재에 대한 철학이 오고 갔다. 인간은 무엇이든지 이겨낼 수 있었다는 생각은 오만한 것이라고 모두 이야기했지만 코로나 때만큼 모두가 몸으로 느꼈던 때가 있었던 것인가?

 

<지구에서 스테이>는 시가 한데 모이느라 코로나에 대해 다양한 담론이 오가면서 변화된 사항들이 고스란히 보였다. 예를 들어, 지난 상반기 시행됐던 마스크 공적 마스크는 더 진행하지 않는다. 시에서 그러한 상황들을 마주했을 때 잠시 그때로 돌아가는 듯했다. 코로나에 대해 서로 다른 시간대에 쓰인 작품들이기에 독자 자신도 코로나 시대 속에서 자신의 어떻게 변화했는지 다시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코로나 이후, 우울함도 있었지만 다가오는 미래에 대해 어떻게 살고 싶은지 정리해보고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이기도 했다. 지구에서 머물면서, 각자의 코로나는 어땠는지, 역사 속의 시였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두렵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지치고 외로운 사람에게 시는 평안과 위로를 준다. 신종 바이러스 위협에서 적나라한 시적 언어를 통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스테이 세이프(Stay safe)' 하시기를 기원한다.

 

-김우주(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

 

 

[연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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