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언젠가 잊힐 기억이길 바라며 - 지구에서 스테이

우리는 이 지구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글 입력 2021.01.10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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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지구에 전염병이 살포됐다. 전염병은 너무나 무시무시해서 치료제도 없고 백신도 없다. 이로 인해 우리의 일상이 사라졌다. 타인을 의심하고 가족을 의심하고 나를 의심한다. 마스크를 쓰는 건 이제는 일상을 넘어선 규칙이 되었다.


이제껏 전염병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체감하지 못했다. 평범했던 삶에서 전염병은 상상도 못 한 무서움이었다. 가장 무서운 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을 무력하게 만든다. 전염병이 그런 것이다. 무형 무취의 전염병은 그렇게 우리의 삶을 180도 변화시켰다.


전염병이 세상에 살포되면 어떻게 행동해야 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지구상에 사는 모든 이들은 아무도 몰랐다. 모든 관계를 차단하고 집에서만 있으라고 한다. 가족끼리도 대화를 최대한 줄이고 대면하지 말 것, 밖을 나갈 때는 무조건 마스크를 착용할 것, 함부로 접촉하지 말고 손을 자주 닦을 것,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다음에는 무서웠다. 그리고 점차 무뎌지고 포기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만남이 금지되었다. 세워뒀던 계획들이 다 무용지물이 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지구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니 버텨야 한다. 과연 어떻게 이 재난을 버틸 수 있을까? 이럴 때야말로 문화예술의 힘이 필요하다. 서로의 고통과 아픔은 어느 나라에 살든 다를 것이 없다. 그렇기에 서로 소통해야 한다. 공감하며 위로를 나눠야 한다. 그렇게 우리는 이제껏 지구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지구에서 스테이>는 세계 18개국 56명 대표 시인의 코로나 프로젝트 시집으로 각자의 위치에서 지구에서 스테이할 우리에게 위로의 메시지와 공감의 메시지를 엮어냈다.


1. 우리도 구하고 싶습니다 -한국

2. 이 도시가 죽은 사람을 바다로 버리기 시작한 것은 사월이었다 -유럽·영미

3. 나는 바이러스 맑은 후에 흐림 가끔 멸망 -일본

4. 적어도 우리는 아직 살아있다고 -중국·홍콩·타이완


총 4 챕터로 나눠 각국의 시인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다른 나라에 살아도 다른 인종이어도 느껴질 수 있었다. 다시 너를 마스크를 끼지 않고 만날 수 있는 날이 돌아오길, 서로의 존재가 두려움이 아닌 기쁨의 존재로 다시 돌아가길 말이다.

 

 

나는 산책이 늘었다 나는 요리가 늘었다. 나에게 시간이 너무나도 늘었다

축제가 사라졌다. 장례식이 사라졌다. 옆자리가 사라졌다

재난 영화의 예감은 빗나갔다. 잿빛 잔해만 남은 도시가 아니라

거짓말처럼 푸른 하늘과 새하얀 구름이 날마다 아침을 연다

 

-김소연 <거짓말처럼>

 

 

코로나는 재난이다. 재난 영화에서 보았던 것처럼 건물이 무너지고 회색빛 먼지가 가득한 상황이 아니다. 하늘은 여전히 파랗고 쾌청하다. 그런데 단 한 가지, 거리에 사람이 없다. 기묘한 일상이 시작되었다. 사람이 가득 찼던 명동거리엔 사람들이 사라진다. 수많았던 가게들은 하나씩 폐점하고 거리에서 자취를 감춘다. 거리에 가득했던 추억들이 하나씩 사라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연말연시, 휴가철에 가득했던 공항이 쥐죽은 듯이 조용하다. 나는 도쿄에서 긴급사태 선언으로 인해 필수적인 마트, 병원 등만 문을 열고 그 외의 모든 가게, 백화점이 문을 닫는 상황을 겪은 적이 있다. 마트에 가면 생필품, 오래 보존되는 음식들은 다 동나고 사람들이 가득했던 시부야, 신주쿠, 하라주쿠 등 번화가에 사람이 없는 모습을 보았다. 비가 내리던 날 서류 처리 때문에 시부야에 홀로 간 적이 있다.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이곳이 내가 알던 시부야였나 싶을 정도로 늘 화려한 빛과 사람들로 가득했던 곳이 문이 다 닫히고 돌아다니는 사람을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하늘은 회색빛에 비가 끊임없이 쏟아지는 그 날, 그곳에서 왠지 나 혼자 멍하니 시부야 거리를 걸었던 기억이 있다.


영화 <나는 전설이다>와 같이 온 세상에 나만 살아남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기묘한 소름과 무서움이 나를 덮쳤다. 이곳은 내가 알던 세상이 아닌 기분이 들었다. 색을 잃은 그곳은 내가 알던 세상이 아니었다. 내가 알던 지구는 이렇지 않았다. 이 곳이 내가 살던 지구가 맞나?

 

 

나는 너를 만나지 못한다. 놈은 박쥐를 점유했다가 사람을 점유했다가 도시와 국가, 대륙을 지구 전체를 점유했다 놈의 세력은 나날이 확대됐다. 1킬로미터에서 1만  킬로미터까지 11월에서 1월 또 다른 1월까지 탄알 하나 보이지 않고 피 한 방울 보이지 않고 놈도 보이지 않았다. 이는 무형 무색의 소리 없는 습격이다


-천위홍 <먼 끝-바이러스 2019>

 


백신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코로나 19는 없어질 수 있을지, 솔직히 말하면 이 상황이 무섭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이라는 건 사람을 지치게 만들고 포기하게 만든다. 그래서 더 빠르게 지친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지구에서 살아가야 한다. 지구에서 스테이 할 지구인이니까 버텨야 한다. 우리의 일상을 되찾기 위해서 계속해서 소통할 것이다. 그리고 버티고 버티다 마지막에는 그런 일도 있었지, 라며 잊힐 기억으로 남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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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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