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자유'에 대한 공부, 자유론 [도서]

그의 단어와 문장을 닮고 싶다. 필사하기 좋은 책이다.
글 입력 2021.01.09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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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유를 추구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일상 자체가 욜로족의 삶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재미없게, 틀에 갇혀 사는 사람으로 보이기 쉽다. 하지만 나를 ‘자유롭다’ 고 정의하는 것은 행동들이 모두 나의 의지와 선택으로 이루어진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삶의 중심가치인 자유를, 존 스튜어트 밀은 어떤 식으로 접근하고, 적용했을 지 궁금했다. 지난 2학기, 현대사회와 생명윤리라는 철학 교양을 들으면서 접한 존 밀 스튜어트는 단편적이었다. 공리주의의 효용성의 원리를 계승해, 쾌락의 질적 차이를 인정하는 질적 공리주의를 만든 사람. 생애, 사상의 특징, 의의, 한계로 단순히 정의된 인물 속에서 별 감흥을 느낄 수 없었다. 자유론을 읽으면서 그는 생생한 사상가로, 많은 접점을 가진 인물로 다시 평가되었다.

 

하루만에 책을 다 읽었다. 그가 서술한 사상, 의견을 개진하는 방식까지, 고전은 역시 고전이라는생각이 들게 했다. 존 밀 스튜어트가 살았던 시기는 19세기, 지금으로부터 약 2세기 전이지만 저서의 통찰들, 저술들은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아우른다. 21세기에 보아도 촌스럽거나 구식이 아니다. 하나의 서술적 틀로 써도 될 만큼 논리 정연 하다. 서론에 글의 요지와 주제를 설명하고, 본론은 상황별로 구분하여 명확한 근거를 제시한다. 결론에 긴 설명들을 요약해 주장을 확고히 한다. 특정 부분들은 단어만 바꿔서 다른 주장, 의견들을 개진할 때 써도 유용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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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존 스튜어트 밀이 말하는 자유


 

자유론이 다루는 시민적, 사회적 자유는 사회가 개인에 대해 합법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의 본질과 그 한계에 대한 것이다. 개인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 정치적 차원으로 자유를 중심가치로 하여 체제의 합리성에 대해 고찰한다.

 

밀은 자유가 절대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고유한 3가지 영역을 제시한다. 첫 번째는 “의식” 이라는 내면적인 영역이다. 양심의 자유, 사상과 감정의 자유, 모든 주제에 대해 자신만의 의견과 정서를 가지고, 표현할 자유가 지켜져야 한다. 두 번째는 “취향과 추구의 자유”이다. 자신에게 적합한 인생계획, 원하는 일들을 실행하고 그에 대한 결과를 책임지는 것이다. 세 번째는 “결사의 자유”이다. 자발적이고 진정한 의사에 의거해 단체를 결성할 자유를 지닌다. 물론 개인의 자유의 추구가 다른 사람들에게 해악을 끼칠 때는 제한되어야 한다.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고 밀은 자유를 절대적으로 지지한다. 이러한 자유들이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사회는 완벽하게 자유로운 사회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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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류의 복리를 위해 필수적인 개성


 

과거에는 획일화, 평범함, 체제 속의 인간을 중시했다. 현대에 들어서며, 과거와 정반대로 자신만의 개성, 차별점, 체제를 만들어 가는 독창적인 인간이 이상적 기준이 되었다. 그것이 현 시대에서 자기 PR, 자소서, 포트폴리오가 중요한 이유이다.

 

밀은 개개인의 개성을 가로막는 요인들 중 하나로 관습을 제시한다.

 

자유를 사랑하는 형태를 띠든 아니면 개혁을 사랑하는 형태를 띠든, 진보의 원리는 관습의 전횡에 적대적이기 때문에, 적어도 관습의 멍에로부터의 해방을 포함한다. 그리고 이 둘 간의 싸움이 인류 역사의 기조를 이룬다. 아니, 제대로 말하자면, 이 세계의 많은 지역들은 그런 역사를 갖고 있지 않다. 관습의 독재가 완벽하게 때문이다. 거기에서는 관습이 모든 일을 결정한다. 관습에 부합하는 것이 정의하고 옳은 것이다. 권력에 도취된 폭군이라면 모를까, 아무도 관습에 저항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진보와 성장이 멈출 때는, 개성이 허용되지 않을 때이다. 다양성이 없는 사회는 자유가 없다. 남들과 다른 의견과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표현하다 낙인화, 사형 등 권력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 그것은 종교만이 절대적인 선, 유일한 가치로 여겨지던 중세의 회귀이다. 관습의 권력은 다수파의 폭정을 닮았다. 사회 자체가 폭군이 되고, 구성원인 개개인들에게 집단적으로 폭정을 행할 때, 사회의 틀과 강제는 개개인의 삶 모든 영역에 깊이 파고들어서 영혼 자체를 예속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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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비난이 아닌 세련된 비판


 

이성을 중시한 근대 철학자 답게, 그는 책 곳곳에서 중세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억압하고, 죽였던기독교를 비판한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즉각적인 마녀 제도, 교회의 부패, 착취 등을 전면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자체가 가진 본질적인 문제를 파고듬과 동시에 현실의 한계를 적절히 녹여 내어 신자들의 위선과 가식을 파고 들었다.

 

엄밀하고 정확한 법률 규정이라기보다는 감동적인 시나 웅변을 통해 대단히 일반적인 말들로 표현되어 있어서, 흔히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기독교 도덕의 이상은 선을 활발하게 행함으로써 고귀한 목표에 도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악을 소극적으로 행해서 죄가 없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또한 미덕의 삶을 살게 하기 위한 적절한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천국에 대한 소망과 지옥에 대한 경고를 제시한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천국에 가기 위해 필요한 일들만을 하게 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웃을 접촉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인류와 이웃들의 이익을 위한 의무들은 행하지 않게 됨으로써, 기독교 도덕은 본질적으로 이기적인 성향을 띠게 되었다.


기독교 도덕은 본질적으로 수동적으로 순종할 것을 가르친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모든 권위에 대해 복종하라고 역설한다.

 

그는 기독교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독교라는 교육, 통제 체계가 없었다면 문명사회의발달은 오히려 더 더디고, 험난했을 것이라고 서술한다. 하지만 기독교의 건강한 지속을 위해서는 동시에 다른 윤리가 나란히 공존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러 개의 정당이 존재해야 의견교환, 충돌이 활발하게 일어나 더 나은 방향을 위해 나아갈 수 있듯이, 종교 간에도 의견 교환과 변화, 개선은 필요하다.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진리는 없다. 그저 그 시대와 상황에 속해 있는 사람들의 인식 속에 특정 관념이 ‘진리’라고 뿌리 박혀 있는 것 뿐이다. 본질적으로 종교를 망치는 주범은 ‘진리’이다. 내 종교는 옳고 너의 종교는 틀렸다. 나는 맞고 너는 틀렸다. 라는 편협한 사고방식, 그리고 그에서 비롯된 변화와 수용 자체의 거부이다.

 

자유론은 내가 생각해 오던 사회적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제시하기도 했고, 새로운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밀의 의견에 동조하기도 했고, 이해가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훌륭한 이론이지만 실제 상황에 적용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 사회를 더 겪고, 사람과 정치에 대한 이해가 깊어 졌을 때 다시 한 번 읽어 보고 싶은 명저이다.

  

 

[박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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