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무엇'을 해야 한다는 강박 [사람]

글 입력 2021.01.0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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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마지막 날을 ‘날렸다’.

 

통째로. 의미 없이.

 

 

 

2020년 12월 31일, 버스 안에서


 

부산 행 버스를 탔다.


2020년, 가족과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일을 마치고 고속버스터미널로 달려갔고, 무사히 19시 10분 차를 탔다. 하지만 문제는 휴대폰 배터리 20퍼센트. 초조했다.


업무 관련하여 한번쯤 연락이 올 것이고, 지인들에게 새해인사도 보내야했고, 2021년 새해 계획도 세워야 했고, 밀린 예능이나 기삿거리도 봐야했다. 보조배터리는 왜 두고 왔으며, 21세기에 버스 안에 충전단자가 없는 것이 말이 되는 것인가!


무엇보다도 서울-부산은 최소 4시간에서 5시간이 걸리는데 그 시간을 어떻게 채우지.... 라고 생각하자마자 잠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1시간 만에 깼고 그 뒤로 잠이 오지 않았다. 휴대폰 배터리는 어느새 10퍼센트. 승객들을 위해 버스 앞에 붙여놓은 TV는 수신이 원활하지 않아 SBS 연기대상 오프닝에서 멈췄고 내려서 동생과 연락해야 했기에 휴대폰은 더 이상 만지면 안 되었다.카톡 하나를 보내니 어느새 배터리 5퍼센트. 휴대폰을 가방 안으로 넣었다.


그래서,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뭘 해야 할까? 급기야 김이 서린 창문에 그림을 그렸다. 스마일 캐릭터를 그리기도 하고... 다른 스마일 캐릭터를 그리기도 하고... 또다른 스마일을 그렸다. 웃는 얼굴을 3개 그리니 레퍼토리가 없었다.


‘아, 나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해도 되나’


신년 계획을 세우지도 못했고, 지인에게 새해인사도 못했고, SBS 연기대상, MBC 가요대제전도 못 봤고, 2020년 마지막 이슈는 뭔지 확인하지도 못했다.


나의 2020년 마지막 날은 그냥 그렇게 지나갔다.

 

 


친구와의 만남도 ‘의미’ 있게!


 

친구들과 만나기 전에 생각한다.


‘오늘은 어떤 대화를 나누지? 요즘 주식, 투자 하는 애들 많던데 그 이야기를 할까? 아니면 토익, 토스, 오픽 시험 공부하는 방법? 자기계발에 대해서? 아니면 뭐가 있을까....’


하지만 막상 만나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한다. 고등학교 때 매점 갔던 이야기, 애인 이야기, 교환학생 가서 있었던 에피소드 등. 아주 재밌다. 배를 잡고 드러눕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점점 불안해 진다.


‘이렇게 ’아무 이야기‘ 해도 되나’


따라서 어느새 친구와의 만남이 두려워 졌다.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기지 못했다.

 

 


의미 없이 살아보자


 

카카오TV ‘밤을 걷는 밤’에서 유희열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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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카카오TV ‘밤을 걷는 밤’


 

‘아무 소득없이’


언제부턴가 시간을 알차게 채워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다. 친구와 어떤 ‘유의미’한 이야기를 할지 고민했다. 대중교통에서도 책, OTT 등 콘텐츠로 시청각을 채우고 길을 걸을 때도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듣는다. 여행을 가면 카페나 숙소에 가만히 있기 보다는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관광지, 유적지 등을 찾아 다녔다.


하지만 왜 모든 시간에 의미가 있어야 했을까. 왜 가만히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했지? 왜 뭔가를 얻으려고만 했을까. 24시간에서 공란을 왜 두지 못했을까.


‘멍때리기’ 대회가 생긴 이유를 이제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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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때리기 대회 1등 가수 크러쉬

 

 

 

그래서 나의 2021년은?


 

한때 나에게 ‘하루살이’라는 별명을 붙인 적 있다. 대부분의 반응은 ‘내일 죽게?ㅎㅎ’였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바로는, 하루살이는 ‘하루’만 살기 때문에 자신에게 주어진 1일에 최선을 다한다. 따라서 매일을 진심으로 살자는 의미에서 붙인 별명이었다.


진심을 다하자는 말은, 굳이 어떤 행동에 의미를 두지 않고도 친구를 만날 때 시시한 대화를 나누며 그냥 웃기도 하고, 버스 안에서 창밖을 보며 멍을 때리기도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나의 짧은 삶을 되돌아보면, 의식하지 않고 발 가는 대로 행동했을 때 더 강렬한 인사이트와 자극을 받았던 것 같다.


그렇다면 이 글의 마지막 사진은, 아무 의미 없이, '그냥' 귀여워서 넣은 사진이다.

 

 

[크기변환]KakaoTalk_20210101_162353541.jpg


 

[신재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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